SNS에서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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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이사를 하며 사지 멀쩡한 옷장을 버렸다. 이사하기 이틀 전, 새로 가는 집 천장이 10cm가 낮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팔았으면, 아니 누군가에게 주기라도 했으면. 덩치 큰 옷장의 주인을 하루 만에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SNS에서 반상회가 부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바로 그 옷장이다. 빠른 시간 안에, 가장 비슷한 환경에 사는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 바쁜 일상 속에서도 공통된 관심사가 있어 연대할 수 있는 곳. 첨단 지향적인 단어 ‘SNS’와 사어로 등록되기 직전의 단어 ‘반상회’가 만나니 서로의 약점을 극복한 이상적인 조합으로 보였다. 우리 동네에 그런 공간이 있었다면 옷장은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었을까?

페이스북 ‘망원동 좋아요’는 20~30대가 동네를 구심점으로 SNS에서 소통하는 대표적인 ‘장’이다. 브라질 음악 밴드 라퍼커션의 렉토 루즈가 ‘망원동 좋아요’를 만든 건 2년 전. 공식적인 인맥 외에 그저 동네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 게 시작이다. 처음에는 회원이 모두 지인이었으나 동네 이야기가 쌓이고 지인 초대가 늘면서 회원 수는 현재 1만 명에 이른다. ‘망원동 좋아요’에는 동네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솜씨좋은 수선집을 알려달라는 게시물에 버스 라인까지 알려주는 댓글이, 미니 오븐을 구한다는 글에 “팔긴 부끄럽고 급하시면 빌려드리겠다”는 댓글이 달린다. 카레를 만들었는데 양 조절에 실패해 너무 많으니 함께 먹자, 집이 좁으니 신혼부부 세 쌍까지 선착순으로모여 보드게임 하자는 게시물도 올라온다. 망원동 주민 누구의 목소리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 분실물도 금방 주인을 찾고 길 잃은 반려묘도 주민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다. 이사 와서 외롭다는 글에는 친구 하자는 댓글이 포도송이처럼 달리며 또 하나의 새로운 모임이 결성된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엔 호프집에서 번개 제안이, 선거 날엔 개표 방송을 함께 보자는 글이 올라온다. 골목길 무단 주차, 젠트리피케이션 등 문제를 제기하는 글도 올라온다. 이 모든 수다에 주동자는 없다. 뮤지션이자 이제는 합정동 주민인 렉토 루즈는 기본적인 게시판 관리만 하고 있다. 그는 ‘망원동 좋아요’가 SNS 마을회관 같다고 말한다. 언제든 들러 수다를 풀어놓고 서로 돕고 공유하는 공간.

옆 동네지만 페이스북 ‘연남동 부루스’ 분위기는 또 조금 다르다. 멤버는 850여 명으로 ‘망원동 좋아요’보다 적지만 연대는 만만치 않다. 연남동에서 10년 넘게 거주하며 보드숍을 운영하는 탄탄한 커뮤니티가 SNS에서도 그대로 반영, 적극적인 친목이 오고 간다. 바자회, 독서 모임 등 자생한 오프라인 모임이 여럿이고, 얼마 전에는 연남동 숲길 다과회와 영화 상영회를 열기도 했다. 관리자 우종현은 과거에는 동네 인맥이 할머니, 할아버지 위주였는데 최근 20~30대가 많아졌다고 말한다. 이들의 활발함과 네트워크의 힘을 느껴 ‘新새마을운동’을 구상 중이기도 하다. 학교에 모여서 청소를 한다든지, 스케이트보드 교실을 연다든지 동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해보려고 한다. 회원들은 동네모임을 통해 외로움을 덜었다고, 이런 활동을 통해 뿌듯함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 ‘OOO 모여라’ ‘OOO를 사랑하는 사람들’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모임은 꾸준히 있어왔다. 카페, 카카오 스토리 등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할 때마다 동네 커뮤니티는 1순위로 등장했다. ‘OOO’에 들어가는 동네는 당시 뜨는 동네를 중심으로 계속 바뀌었다. 하지만 오래 유지되진 않았다. 트렌드에 따라 모였다, 헤쳐 모여를 반복해왔을 뿐. 동네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공통점은 되었지만 유지하는 구심점은 되지 못했다. 물론 온라인상에 활성화된 동네 커뮤니티가 없는 건 아니다. 특히 ‘OO맘’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는 웬만한 관공서보다 낫다. ‘나눔’과 ‘드림’은 기본이고, 먹거리 공구, 구인 구직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오고 간다. 문제가 생기면 한목소리를 내어 변화를 끌어내기도 한다. 실제로 이들 ‘맘커뮤니티’는 문 닫으려던 동네 빵집을 살리기도 하고, 유해시설 설립을 막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태생이 다르다. 동네를 중심으로 모이지만 그보다 앞서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사적인 목적이 있다.

‘망원동 좋아요’나 ‘연남동 부루스’를 동네 커뮤니티의 새로운 흐름으로 볼 수 있는 건 바로이 지점이다. 실질적인 필요에 앞서 동네에 대한 순수한 호감이 자리한다는 것. 망원동은 사람 냄새 나는 동네다. 협동조합, 풀뿌리 조직 활동이 활발해 ‘동네에 사는 장점’이 많은 곳이다. 일터와 거주지가 일치하는 주민이 상당수 된다. 20대에 홍대, 상수동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30대가 되어 망원동과 연남동에 정착해 동네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이들이 대다수다. 동네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웃사촌 문화의 부활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동네 커뮤니티를 붕괴시킨 도구가 다시 이웃 관계 회복에 사용되는 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이는 이웃 사이의 수다 한판이 가지는 가치가 고유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영국에는 스트리트라이프(streetlife.com)라는 SNS가 있다. 동일한 우편번호를 가진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SNS다.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스크래블 게임 빌려주실 분?’ ‘세인트 폴 교회에서 디스코 파티가 열려요’ 등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만 유용한 대화를 나눈다. 우편번호로 모인다는 발상 하나가 끊겼던 이웃과 연결 고리가 되었다. 반상회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것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다과 한 상 차려놓고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는 엄마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신나는 이벤트였다. 꽃밭 관리, 창틀 설치 등 협의해야할 안건은 있었지만 수다 한판으로 우선 즐거웠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었다. 반상회가 사라진 2016년, 이웃사촌 사이 정은 SNS를 타고 새록새록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