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동쪽, 인도양 남서쪽의 푸른 섬 모리셔스엔 에메랄드빛 바다와 아프리카의 생명력이 공존한다. 초원과 협곡이 펼쳐지는 남서부 카스카벨에서의 야생미 넘치는 패션 사파리.

Beautiful Mauritius

“혹시 신혼여행 가세요?”“모리셔스는 어느 대륙에 있는 거죠?”“어머, ‘모리셔츠’요? 좋으시겠어요!” 모리셔스 출발을 앞둔 내게 쏟아진 질문의 성향은 딱 두 가지로 분류됐다. 신혼여행지로 들어는 봤거나 아예 모르거나. 나 역시 모리셔스에 대해 아는 건 아프리카와 가까운 섬이라는 게 전부였다. “몰디브와 비슷할 것 같은데, 그럼 패션 화보가 너무 뻔해지지 않을까요?” 이번 화보 출장에 동행한 사진가 김영준은 예쁜 바다뿐일 거라며 목적지를 바꾸자고 은근히 설득까지 해왔다. 그러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신은 모리셔스를 창조하고 난 뒤 천국을 만드셨다!” 그의 말처럼 드넓은 인도양에 자리한 모리셔스 섬의 아름다움은 그만큼 고귀했다.

모리셔스는 아프리카 대륙과 마다가스카르 섬 동쪽 인도양 남서쪽에 위치한다. 사진가 김영준의 우려와 달리 모리셔스는 하늘과 바다만이 전부가 아닌, 사람 사는 냄새가 폴폴 풍기는 섬나라였다. 비행기 이륙부터 꼬박 22시간을 날아 도착한 모리셔스 공항은 매우 소박했다(대개 두바이를 경유하는데 두바이 경유 시간이 6시간 30분. 그러니 비행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제주보다 약간 더 큰 면적으로 섬 중앙엔 기암괴석이 삐죽삐죽 솟은 산과 해변을 따라 방대하게 펼쳐진 사탕수수밭 등 풍경은 제주와 비슷했다. 공항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려 숙소인 샹그릴라 리조트에 도착하자 우리를 맞이한 직원의 첫 마디는 “봉주르!”. 17세기 초 프랑스인들이 노예들을 데려다 사탕수수를 재배했던 곳이 모리셔스다. 네덜란드의 지배와 인도인들의 이민, 영국 식민지로서 수많은 흔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불어를 쓰는 듯했는데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크레올(Creole)어라는 현지어가 불어와 비슷하단다.

머나먼 곳으로 <보그> 촬영 팀을 이끈 건 마크 트웨인이 찬양한 천혜의 자연경관만은 아니다. 사파리 공원 카셀라(Casela Park)에서 아프리카 초원에서나 볼 법한 낭만 가득한 사파리 모험이 가능하다는 사실! 카셀라는 사자, 호랑이, 얼룩말, 거북, 코뿔소 등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는 환상의 ‘와일드 하우스’. 카셀라에는 사자나 치타와 함께 걷거나 아기 사자를 만져보는 등 아프리카 동물과 가까이서 교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다큐멘터리나 영화 속 이미지로 익숙한 ‘리얼 사파리’를 경험할 수 있는 바로 그 곳. 그래서 6월호의 와일드한 패션 여행에 카셀라보다 더 적당한 곳은 없었다.

이 섬에서 가장 흔한 풍경은 새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어우러진 하늘과 어딜 가든 펼쳐진 사탕수수밭이다(모리셔스는 세계 최대 설탕 수출국 중 하나다). 하지만 한밤중에는 태풍이라도 엄습한 것처럼 비바람을 토해내다가 이른 아침이면 구름이 싹 걷히고 그림 같은 수평선을 선사하곤 한다. 이래서 마크 트웨인이 그토록 극찬한 걸까.

촬영 첫날. 우린 해안 도로를 따라 섬 중심부로 들어갔다. 길이 100m가 넘는 샤마렐 폭포(Chamarel Waterfall. 모리셔스는 800만 년 전, 수중 화산 폭발과 지각운동으로 인해 탄생한 화산섬이다)를 거치고 아프리카의 강렬한 태양을 품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지나(화보 촬영은 내륙에서만 진행됐다) 카셀라에 도착했다. 하이라이트는? 사륜구동쿼드 바이크나 세그웨이를 타고 초원 곳곳을 누비며 달리다가 영양, 타조, 거북 등과 마주치면 잠시 멈춘 뒤 다시 출발하며 초원을 탐험하는 리얼 사파리. 물론 촬영 팀은 창문이 없는 버스에 옷과 촬영 장비를 가득 싣고 동물과의 접선을 노렸지만. 꽤 용감한 얼룩말 새끼나 타조 무리, 두 살짜리 코뿔소 두 마리가 버스 가까이 다가왔을 땐 사바나 초원 한가운데 있는 듯한 아찔한 기분마저 들었다. 모델 배윤영과 얼룩말 무리를 카메라에 함께 담았을 땐 왠지 모를 감동까지 밀려왔다. 여행객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몇몇 초식 동물도 있는 반면, 기린, 영양, 얼룩말 같은 초식동물 대부분은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부리나케 도망을 치는 바람이 촬영에 애를 먹기도 했다.

마지막 날 육식동물(사자, 치타, 호랑이)과의 만남은 더 충격적이고 드라마틱했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맹수기에 꼼꼼한 사전 준비(맹수 조련과 관람객 행동 가이드)가 필요했다. 이들과의 촬영은 아침 7시부터 2시간만 허용됐다.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아침 해가 밝아오자 사자 무리에선 엄청난 데시벨의 무시무시한 포효가 들려왔다. “아침이 됐으니 다들 일어나라고 서로 알려주는 겁니다.” 사육사가 설명했다. 이날의 첫 동물 모델 역시 사자. 촬영 장소에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사파리 우리 쪽에서 금빛 털의 수사자 ‘짐보’와 아이보리색 암사자 ‘마타타’가 여러 명의 조련사와 함께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그 순간 작은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예민한 사자를 자극할 수 있기에 촬영 팀의 말과 행동은 사전부터 철저히 제한됐다. 하지만 덩치 큰 사자 두 마리와 유유히 초원을 거닐고, 수사자 바로 아래에서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강아지처럼 애교 부리는 새끼 백호와 촬영은 함께 포즈를 취한 모델은 물론 지켜보던 스태프들에게도 잊지 못할 경험과 추억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짐보 콧바람이 정말 세더라고요. 가끔 내 쪽으로 돌아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지 뭐예요.” 맹수들과 직접 포즈를 취한 모델 배윤영은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마타타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볼 때나 치타 ‘짐발리’와 아주 가까이서 촬영할 땐 긴장됐어요. 하지만 정말 귀여운 녀석들이었어요.” 이번 촬영 중 가장 즐겁고 기억에 남은 순간 역시 맹수와의 촬영.

꼬박 이틀 하고도 반나절 동안 진행된 사파리 투어를 마친 뒤, 마지막 날엔 숙소 근처인 작은 섬 일로셰프(Ile aux Cerfs)로 나갔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린 동네 탐방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숙소 근처의 벨 에어(Bel Air)는 작고 소박한 시골 동네였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 열대수와 한가롭게 조화를 이룬 마을로 남미의 작은 도시에 와 있는 듯 착각이 들 만큼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주로 해변에 머무르고 사탕수수밭 사이로 드라이브했다면 모리셔스의 수도 포트루이스(PortLouis)와의 만남은 좀 어색할지 모른다. 고층 빌딩과 트렌디한 쇼핑몰과 레스토랑, 거기에 서울과 맞먹는 교통 체증까지 있었으니까. 사탕수수밭과 카셀라 공원, 벨 에어 지역만이 모리셔스의 전부인 줄 알던 우리에게 이곳은 모리셔스가 결코 낙후된 시골 섬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바닷물에 발 한번 못 담갔지만 지평선 위 파란 하늘에 나직이 드리운 구름, 비 온 뒤 이른 새벽 사탕수수밭에서 만난 아스라한 여명과 무지개, 보석 빛으로 넘실대던 바닷물, 그리고 미세먼지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새파란 하늘과 쏟아질듯 무수히 반짝이던 밤하늘의 별. 절대 잊지 못할 여름날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