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를 꿈꾸던 고대인들의 왕국, 전설을 지닌 불탑이 여기저기 펼쳐진 들판, 마르코 폴로가 예찬한 황금의 땅 미얀마. 호사스러운 지붕과 첨탑이 노을에 물들면 신비로운 소녀의 한여름 꿈이 시작된다.

불탑과 부처의 나라, 황금의 땅, 전설과 신화로 가득한 미지의 나라, 고대인들이 일궈낸 황금빛 보물의 성지 등등. 미얀마를 수식하는 말은 끝이 없다. 특히 미얀마의 상징인 금빛 파고다는 성지순례를 위해 모여든 전 세계 불교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미얀마에 관한 어느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첫눈에 반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곳을 여름 화보 촬영지로 찜하자 그다음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과연 이곳에서 ‘어떤 비주얼을 만들어낼까?’ ‘모델과 스태프 구성은 어떻게 할까?’ 여행이 주는 설렘처럼 이런저런 즐거운 상상도 잠시. 생소한 사원과 수없이 많은 불탑, 그리고 도시별로 분포된 유적지에 관한 방대한 자료 조사는 또 다른 과제였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사진가 김보성은 에디터의 고민을 간파한 듯 미얀마 유적지 사진을 모아 분류했고, 구글 맵을 돌려가며 4박 6일이라는 짧은 일정을 촘촘하게 나눠 양곤에서 바간, 다시 양곤에서 바고의 순서로 촬영 루트를 완성했다.


인도차이나 반도 북서부에 위치한 미얀마로 말할 것 같으면 외부로 개방한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미지의 땅. 이번 촬영 팀 여정의 시작은 미얀마의 옛 수도인 양곤이었다. 세계 3대 사원 중 하나인 황금빛 쉐다곤 파고다는 마지막 날로 미루고 다음 날 일찍 새벽 비행기를 타고 바간으로 이동했다. 작은 프로펠러 완행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바간은 한여름의 열기 속에도 고요하고 신비로운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붉은 들판 위로, 그리고 울창한 숲과 나무 사이로 삐죽삐죽 솟은 파고다와 사원이 한 폭의 그림처럼 서 있었다. 신비로운 메이크업에 커트 가발을 쓴 모델 신현지가 그 절묘한 그림 속으로 들어가자 사진가의 폴라로이드에는 미지의 세계에 불시착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담겼음은 물론이다.

멋진 비주얼을 위해 희생이 따르는 것은 불변의 진리일까. 해외 로케이션 촬영은 늘 즐거운 동시에 고생길임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모두를 가장 힘들게 한 건 40℃가 훌쩍 넘는 ‘화끈한’ 날씨. 오전부터 뜨거운 불가마에 앉은 듯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고, 작열하는 태양으로 인해 잘 달궈진 돌바닥은 모두를 고생을 넘어 고행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미얀마의 모든 사원은 입구에서부터 맨발로 입장해야 한다!).

900년 전 왕세자 책봉하는 자리였던 틸로밍로 사원을 시작으로, 바간에서 제일 높은 사원이라는 탓빈뉴, 1000년 전 아나우라타 왕이 바간 통일 왕국을 만들고 세웠다는 금으로 뒤덮인 로카난다 사원에서의 촬영을 끝으로 첫날 일정을 마쳤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왕국으로 돌아간 듯,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각기 다른 사원의 자태도 자태지만, 마지막 컷 촬영 때 이라와디 강변을 붉게 물들인 석양도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 또 치마처럼 생긴 롱지를 입은 남자들과 하얀 피부를 위해 얼굴에 흰색 타나카를 바른 여인들, 사원과 도시 곳곳에서 근사한 승복을 걸친 승려들과 탁발하는 여승들 그리고 순진무구한 동자승들까지.

다음 날도 흙먼지가 날리는 40℃의 아열대 태양을 잠시 피하기 위해 동틀 무렵부터 촬영을 시작하기로 했다. 바간 왕국의 설립자 아나우라타 왕이 세웠다는 웅장한 쉐지곤 파고다에서부터. 온통 황금색의 우아한 종 모양 덕분에 미얀마 ‘파고다의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된 쉐지곤 파고다(석가모니 부처의 머리뼈와 앞니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성지)에는 이른 새벽이지만 신도들과 관광객들, 승려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제만 해도 더러운 맨바닥을 맨발로 걷는 게 마음이 불편했지만, 어느새 적응했는지 다들 발바닥이 까매지도록 걸어 다니는 게 아무렇지 않았다.

이틀의 바간 여정 후 다시 완행 비행기를 타고 양곤으로, 100m 높이의 황금과 엄청난 보석이 장식된 미얀마인들의 상징물이자 세계 불자들의 성지순례지인 쉐다곤 파고다와 초대형 와불이 있는 바고에서의 촬영을 끝으로 패션 기행을 마쳤다.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쉴 틈 없는 촬영으로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되고, 밤마다 수분 부족으로 손발은 퉁퉁 붓고, 촬영 내내 갈증에 시달려야 했지만, 역사와 신화를 간직한 이국적인 문화와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현지인들의 친절한 미소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종교는 다르지만 전설의 사원 앞에서 스태프들 모두가 각자 소원을 빌고 염원한 일까지.

사막처럼 덥던 한낮 더위도 언제 그랬냐는 듯 물러간 이른 저녁.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스태프들과 도란도란 추억을 나누며 문득 드는 생각, 여기가 바로 지상 낙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