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생 로랑의 비밀 공간

지난 5월 초,이브 생 로랑의 스튜디오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개했다. 그가 직접 만들고, 선택하고, 관리한 보기 드문아카이브로 가득 찬 곳. 영원한 아티스트로 남길 원했던 그의 가장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에 초대받았다.

지난 5월 초, 이브 생 로랑의 스튜디오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개했다. 그가 직접 만들고, 선택하고, 관리한 보기 드문 아카이브로 가득 찬 곳. 영원한 아티스트로 남길 원했던 그의 가장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에 초대받았다.

1974년 5번지 애비뉴 마르소가에 자리 잡은 스튜디오는 를 비롯한 유수 잡지의 편집장들과 룰루 드 라 팔레즈, 탈리타 폴게티 등 70~80년대의 패션 아이콘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한때 136명에 달하는 꾸뛰르 아틀리에 장인들의 목소리로 분주했던 스튜디오는 이브 생 로랑이 마지막으로 아틀리에의 불을 끄고 나간 모습 그대로 남았다.

1974년 5번지 애비뉴 마르소가에 자리 잡은 스튜디오는 <보그>를 비롯한 유수 잡지의 편집장들과 룰루 드 라 팔레즈, 탈리타 폴게티 등 70~80년대의 패션 아이콘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한때 136명에 달하는 꾸뛰르 아틀리에 장인들의 목소리로 분주했던 스튜디오는 이브 생 로랑이 마지막으로 아틀리에의 불을 끄고 나간 모습 그대로 남았다.

책상을 쓰고도 남을 것 같은 그가 이토록 검박한 책상에서 그 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다니! 그렇기에 기능에 충실한 이 공간에서 이브 생 로랑은 보다친근하게 다가온다. 책상 위에는 생전에 그가 즐겨 쓰던 파란 스테들러 연필과 색연필, 애완견 무지크 피규어, 무척이나 좋아했을 법한 대리석과 크리스털 문진, 그리고 생전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던 안경이 놓여 있다. 뒤의 벽에는 ‘앤디 워홀이 그려준 나의 개, 나는 이브 생 로랑’이라는 문구를 직접 적고 사진을 붙여 만든 1991년도 엽서, 무지크의 어린 시절 사진, 카트린 드뇌브를 비롯한 친구들의 초상 사진, 친구들이 여행하며 보내준 듯한 엽서로 가득하다.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듯한 그도 결국 자잘한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던 거다. 무엇보다 그는 이곳에 그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큰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을 남겨놓았다. 크리스찬 디올에서 데뷔해 44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살았던 그의 손에 가장 익숙한 물건, 크리스찬 디올에서 어시스턴트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함께했던 나무자다.

책상 위에는 생전에 그가 즐겨 쓰던 파란 스테들러 연필과 색연필, 애완견 무지크 피규어, 무척이나 좋아했을 법한 대리석과 크리스털 문진, 그리고 생전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던 안경이 놓여 있다. 뒤의 벽에는 ‘앤디 워홀이 그려준 나의 개, 나는 이브 생 로랑’이라는 문구를 직접 적고 사진을 붙여 만든 1991년도 엽서, 무지크의 어린 시절 사진, 카트린 드뇌브를 비롯한 친구들의 초상 사진, 친구들이 여행하며 보내준 듯한 엽서로 가득하다.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듯한 그도 결국 자잘한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던 거다. 무엇보다 그는 이곳에 그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큰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을 남겨놓았다. 크리스찬 디올에서 데뷔해 44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살았던 그의 손에 가장 익숙한 물건, 크리스찬 디올에서 어시스턴트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함께했던 나무자다.

이브 생 로랑은 1963년부터 자신 의 패션 디자인을 스스로 컬렉션해 아카이브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기 이름을 걸고 첫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발표한 것이 1962년이니 단 1년 만에 이런 야심 찬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오뜨 꾸뛰르 컬렉션 중 영구적으로 보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의 크로키에 크게 M자를 적기 시작했다. 불어로 박물관, Musée의 머리글자다. 동시대의 어떤 디자이너도 하지 않았던 시도이자 오늘날 오뜨 꾸뛰르 메종에서조차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브 생 로랑은 1963년부터 자신의 패션 디자인을 스스로 컬렉션해 아카이브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기 이름을 걸고 첫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발표한 것이 1962년이니 단 1년 만에 이런 야심 찬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오뜨 꾸뛰르 컬렉션 중 영구적으로 보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의 크로키에 크게 M자를 적기 시작했다. 불어로 박물관, Musée의 머리글자다. 동시대의 어떤 디자이너도 하지 않았던 시도이자 오늘날 오뜨 꾸뛰르 메종에서조차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그 덕택에 1962년 꾸뛰르 무대에 올랐던 야상과 트렌치 코트, 1966년 발표된 최초의 르 스모킹 수트, 1965년부터 전개한 몬드리안 시리즈를 비롯한 팝아트, 고흐, 피카소 등의 예술 작품을 차용한 의상, 다양한 나라의 고유한 민속 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선보인 최초의 민속 의상 시리즈 등 지금은 패션 역사의 일부가 된 의상은 오리지널 그대로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다.

그 덕택에 1962년 꾸뛰르 무대에 올랐던 야상과 트렌치 코트, 1966년 발표된 최초의 르 스모킹 수트, 1965년부터 전개한 몬드리안 시리즈를 비롯한 팝아트, 고흐, 피카소 등의 예술 작품을 차용한 의상, 다양한 나라의 고유한 민속 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선보인 최초의 민속 의상 시리즈 등 지금은 패션 역사의 일부가 된 의상은 오리지널 그대로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은 그의 옷을 입고 화면과 무대를 넘나들었다. 그는 너무나 프랑스적인 미녀, 카트린 드뇌브의 가장 찬란한 모습을 담은 영화 에서 의상과 액세서리를 도맡았는데, 지금은 로저 비비에의 심벌이 된 사각 버클이 달린 베르니 구두는 사실 이브 생 로랑과 로저 비비에의 콜라보레이션 아래 탄생한 제품이다. 그의 아카이브에는 이런 구두, 모자, 액세서리 등 완벽한 룩을 완성하는 소품까지 망라되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은 그의 옷을 입고 화면과 무대를 넘나들었다. 그는 너무나 프랑스적인 미녀, 카트린 드뇌브의 가장 찬란한 모습을 담은 영화 <세브린느>에서 의상과 액세서리를 도맡았는데, 지금은 로저 비비에의 심벌이 된 사각 버클이 달린 베르니 구두는 사실 이브 생 로랑과 로저 비비에의 콜라보레이션 아래 탄생한 제품이다. 그의 아카이브에는 이런 구두, 모자, 액세서리 등 완벽한 룩을 완성하는 소품까지 망라되어 있다.

한번 연필을 잡으면 3주 동안 쉬지 않고 담배를 피우며 크로키를 그렸다는 일화처럼 40년에 걸친 이브 생 로랑의 왕성한 창작력은 거대한 아카이브를 만들어냈다. 5,000점에 달하는 꾸뛰르 의상을 비롯해 1만 5,000여 점의 액세서리, 10만여 점의 크로키 데생과 컬렉션 북, 고객 명부를 비롯해 사진, 화보 스크랩까지 그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긴 아카이브는 그의 메종에서 오래 일한 몇몇 측근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한번 연필을 잡으면 3주 동안 쉬지 않고 담배를 피우며 크로키를 그렸다는 일화처럼 40년에 걸친 이브 생 로랑의 왕성한 창작력은 거대한 아카이브를 만들어냈다. 5,000점에 달하는 꾸뛰르 의상을 비롯해 1만 5,000여 점의 액세서리, 10만여 점의 크로키 데생과 컬렉션 북, 고객 명부를 비롯해 사진, 화보 스크랩까지 그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긴 아카이브는 그의 메종에서 오래 일한 몇몇 측근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이브 생 로랑은 사후 자신의 아카이브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 역시 완벽하게 세워두었다.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 로랑 재단은 이브 생 로랑의 사후, 그의 아카이브를 관리하며 전시 및 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문화 재단으로 성격을 바꾸었다. 재단에 소속된 의상 보존, 복원 전문가들의 임무는 다시는 만들어지지 못할 이들 ‘작품’을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다.

이브 생 로랑은 사후 자신의 아카이브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 역시 완벽하게 세워두었다.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 로랑 재단은 이브 생 로랑의 사후, 그의 아카이브를 관리하며 전시 및 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문화 재단으로 성격을 바꾸었다. 재단에 소속된 의상 보존, 복원 전문가들의 임무는 다시는 만들어지지 못할 이들 ‘작품’을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다.

빛과 습기 등에 특히 취약한 옷과 모자 등으로 구성된 아카이브는 일반에 공개할 수도, 공개해서도 안 되는 보물 창고가 되었다. 특수 제작된 철제 보관함과 하나의 블록처럼 개폐가 가능한 옷장이 늘어선 아카이브 센터는 직원 외의 외부인은 거의 입장이 허용되지도 않지만, 간다 해도 특수 제작된 가운을 입고 신발에는 덧신을 착용해야만 들어설 수 있는 알리바바의 동굴이다.

빛과 습기 등에 특히 취약한 옷과 모자 등으로 구성된 아카이브는 일반에 공개할 수도, 공개해서도 안 되는 보물 창고가 되었다. 특수 제작된 철제 보관함과 하나의 블록처럼 개폐가 가능한 옷장이 늘어선 아카이브 센터는 직원 외의 외부인은 거의 입장이 허용되지도 않지만, 간다 해도 특수 제작된 가운을 입고 신발에는 덧신을 착용해야만 들어설 수 있는 알리바바의 동굴이다.

이브 생 로랑의 전기 영화를 만들었던 자릴 라스페르 감독은 재단 의 후원 아래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던 오리지널 작품으로 이브 생 로랑의 첫 번째 쇼 장면을 찍었다. 전기 영화를 찍는 영화감독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지만 촬영은 녹록지 않았다. 일일이 오리지널 의상의 사이즈에 맞는 모델을 캐스팅해야 했음은 물론이고 재단 측 보존 전문가 외에는 의상에 손을 댈 수 없기에 모델에게 옷을 입히고 벗기는 일역시 전문가들의 손을 빌려야 했다.

이브 생 로랑의 전기 영화를 만들었던 자릴 라스페르 감독은 재단의 후원 아래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던 오리지널 작품으로 이브 생 로랑의 첫 번째 쇼 장면을 찍었다. 전기 영화를 찍는 영화감독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지만 촬영은 녹록지 않았다. 일일이 오리지널 의상의 사이즈에 맞는 모델을 캐스팅해야 했음은 물론이고 재단 측 보존 전문가 외에는 의상에 손을 댈 수 없기에 모델에게 옷을 입히고 벗기는 일역시 전문가들의 손을 빌려야 했다.

자신의 아카이브가 100년 후에도 연구와 경탄의 대상이 되기를 바란 이브 생 로랑의 꿈은 결국 자기 이름을 딴 두 개의 박물관으로 현실화된다. 2017년, 그의 아틀리에가 위치한 5번지 애비뉴 마르소가와 파리 다음으로 사랑했던 곳, 모로코의 마조렐 정원에 두 개의 이브 생 로랑 박물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아카이브는 두 개로 나뉘어 각 박물관으로 이전된다. 그동안 이브 생 로랑의 아카이브에 대해 침묵을 지켜온 재단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공간을 공개한 이유다. 영원한 아티스트로 남길 원했던 한 위대한 디자이너의 유산이 생전 그가 사랑했던 수많은 여자들과 만날 그날까지, 이브를 위해 건배를!

그렇게 되면 지금의 아카이브는 두 개로 나뉘어 각 박물관으로 이전된다. 그동안 이브 생 로랑의 아카이브에 대해 침묵을 지켜온 재단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공간을 공개한 이유다. 영원한 아티스트로 남길 원했던 한 위대한 디자이너의 유산이 생전 그가 사랑했던 수많은 여자들과 만날 그날까지, 이브를 위해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