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검푸른 세상의 소설가, 정유정

2016.06.03

by VOGUE

    검푸른 세상의 소설가, 정유정

    악인의 심연을 파헤치던 작가 정유정은 신작 에서 그 시작점을 찾아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마음의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검푸른 속내를 끄집어낸다. 정유정은 어떤 지독한 세상에서도 눈길을 거두지 않는 거침없는 이야기꾼이다.

    악인의 심연을 파헤치던 작가 정유정은 신작 <종의 기원>에서 그 시작점을 찾아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마음의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검푸른 속내를 끄집어낸다. 정유정은 어떤 지독한 세상에서도 눈길을 거두지 않는 거침없는 이야기꾼이다.
    [남색 셔츠는 아이잗 컬렉션(The Izzat Collection), 아방가르드한 디테일의 팬츠는 데무 박춘무(Demoo Parkchoonmoo), 스트랩 샌들은 롱샴(Longchamp), 드롭 이어링은 젤라시(Jealousy), 왼손에 낀 보석 장식 링은 드라마홀릭(Drama Holic).]

    “정유정이 ‘애정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서늘하다. 등단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정아 아버지, <내 심장을 쏴라> 점박이, <7년의 밤> 오영제, 박동해까지. 소설 속 만남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지만 실제로 맞닥뜨린다면 등골이 서늘하다 못해 굳어버릴 것 같은 기이한 악인들. 작가는 이들을 설명하며 우리 안에도 분명 그런 인간들이 존재한다고 말해왔다. 정유정이 3년 만에 내놓는 소설 <종의 기원>은 평범해 보였던 유진이라는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악인의 탄생기’다. 1인칭 시점으로 악인의 속내를 한 겹씩 들춰 보는 소설은 마치 미제 살인 사건의 뒷이야기를 보듯 생생하고 그래서 섬뜩하다. 작가를 사로잡았던 ‘악’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간 프리퀄 같다고나 할까. 한번 탑승하면 내릴 수 없는 롤러코스터처럼 독자들을 몰고 가는 이야기의 힘은 더 강력해졌다. 환한 얼굴로 스튜디오에 들어선 작가는 책을 읽은 소감을 물었고 “무서워서 아들 얼굴을 못 보겠다”는 반응에 더 환하게 웃었다. “소설이 무서워야 읽는 거 아니겠어요? 서스펜스도 있었으면 했고 좀 슬프기도 했으면 했어요.” 롤러코스터 탑승을 마치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작가가 말한 슬픔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건 아마도 인간에 대한 자그마한 이해의 한 조각인 것 같았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한 달간 히말라야 다녀온 뒤 바로 40일 동안 산티아고에 머물렀다. 연속으로 두 번 해외에 다녀왔더니 살이 좀 빠졌다. 이번 작품 시작하면서 수영을 시작한 이유도 있다. 복싱을 할 때는 몸이 근육질이었는데 수영을 하니까 근육이 사라졌다. 그래서 치마를 입으면 되게 기분이 좋다. 주인공을 수영 선수로 설정해서 수영을 시작했다. 물은 생명이 태어나는 근본이라는 상징적인 면이 있다. 인간은 물고기가 아니니 물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유롭지 않은 세상에서 자유롭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을 담아보고 싶었다.

    1인칭 사이코패스 소설이라니 당신이 그토록 천착했던 악인의 결정판이다. 스토리는 어떻게 구상했나.
    애당초 스토리는 정해져 있었다. 시놉시스를 A4 서너 장에 걸쳐서 쓰고 취재하면서 초고를 썼다. 아들이 오사카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거기에서 석 달을 함께 살며 초고를 썼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너무 시크했다. 인간적인 맛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남해 바닷가에서 4개월간 머물면서 이야기를 부수고 해체해서 썼다. 광주로 돌아와서 읽어보니 또 비슷했다. 그러다가 행사 때문에 베트남에 갔는데 비로소 알겠더라.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으로 윤리관을 버리지 못해서 이야기가 틀에 갇혀 있었다. 나 스스로 사이코패스가 된다는 건 너무 불경한 상상이라서 잘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이코패스의 심리는 이해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지 않나.
    우리가 사이코패스를 동정할 순 없다. 공감하진 못해도 어쩌다 이렇게 태어나서 인생이 꼬였을까, 그렇게만 생각해주면 성공이다 싶었다. 유진이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엄친아’다. 그런데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인간의 본성에 있는 ‘악’이 어떤 계기로 인해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3인칭이 아닌 1인칭이어야 했다. 1인칭은 서술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 자기 관점에서 멋대로 쓰는 거다. 그러기 위해 유진이의 인성 자체가 모두 거짓말, 합리화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 부분이 혼란스러워서 초반에 캐릭터 잡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전 작품에서는 강렬한 서사를 보여줬지만 이번에는 장면 묘사에 크게 할애하지 않았다. 살인할 때 심정, 살인하고 나서 심정처럼 심리 묘사에 주안점을 뒀다. 그래서 이전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 들 거다.

    세 번을 고쳐 쓰도록 벗어던지기 힘들었던 세계관은 무엇이었나.
    보편적인 사람들의 사고다. 엄마를 죽이는 건 너무 한 거 아닐까? 어떻게 엄마를 죽일 수 있어? 그냥 도우미 아줌마를 죽이면 안 될까? 같은 자기 검열에 가까운 고민들이다. 사이코패스는 사실 살인의 대상이 엄마든 누구든 상관이 없다. 왜 만날 여자만 죽여? 남자도 하나 죽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진짜 사이코패스는 여자와 어린아이만 죽인다. 그들에겐 비용 대비 효용 가치만이 중요하다. 이런저런 유혹을 이기고 이른바 소설적 진실을 가지고 가려면 나 자신부터 깨야 하는 거다. 세상의 규범에서 벗어나 진짜 사이코패스가 되려고 몸부림을 했다. 사이코패스라면 이 순간 어떤 행동을 할까 시시각각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완전히 몰입되어 쓸 수 있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유진이가 짠하게 느껴졌고 엄마가 원망스러워졌다.

    유진을 두고 분신이라고 말했던 이유인가 보다.
    정말 나 자신이 되어 완전히 사랑했던 캐릭터라서 만족스럽다. 작품을 쓸 때마다 매번 인물에 몰입하지만 이렇게까지 몰입한 건 <내 심장을 쏴라> 수명이 이후 두 번째다.그때도 수명이한테 몰입이 되어서 정신병자처럼 굴었다. 실제로 1인칭 소설로 쓴 것도 그 후로 처음이다.

    유진이의 스펙을 화려하게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촉망받는 수영 선수였다가 로스쿨 합격까지 한다.
    결손가정이나 하류층 아이들이 사이코패스가 된다는 세상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싶었다. 힘든 집안에서 태어나도 반듯하게 잘 자라는 아이가 있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도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도 많다. 사이코패스 계보를 살펴보면 다들 키도 크고 잘생겼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성이 있어서 그렇게 희생자가 많은 거다. 심지어 미국의 한 사이코패스는 감옥에 갇혀 있는데 그걸 뒷바라지하는 여자도 있다. 얼마 전에 옥중에서 결혼도 했다. 사진을 보면 정말 꽃미남이다. 말도 청산유수니 여자들이 껌뻑 넘어가는 거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취재가 엄청났을 것 같다.
    취재를 많이 하고 이론 서적도 많이 봤다. 애당초 정신병리학적인 책과 정신분석학, 융의 상징, 꿈 이야기 같은 책을 보다가 어느 순간 관심이 진화생물학으로 옮겨갔다. 진화생물학을 공부하다 보니 진화심리학을 공부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범죄심리학을 공부하게 되고, 그야말로 범죄 케이스를 전부 찾아서 다 보게 된 거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사이코패스의 캐릭터를 정했다.

    취재 과정에서 실제로 사이코패스를 만나본 적도 있나.
    만나보고 싶었고 만나려면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마음이 바뀌었다. 사이코패스는 정말 강렬해서 잘못 이야기하면 확 끌려간다고 하더라. 전문적인 프로파일러들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휘둘려서 커피 심부름을 하고 있단다. 머리가 너무 좋아서 순식간에 사람들을 이용해 먹는 거다. 내가 휘둘리면 그 사람 위인전을 쓸 것 같아서 차단했다. 그냥 순수하게 상상력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작에 비해 등장인물이 많지 않다. 심지어 다들 선량하다. 다른 본성을 드러낼까 봐 걱정되는 인물도 없었다. 유진이의 악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이었나.
    평범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보통 평범하게 살려고 애를 쓰지 않나. 그리고 강인한 엄마를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가 낳았기 때문에 책임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엄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가 생각나기도 했다. 사이코패스는 인과관계 없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악의 씨앗 같은 것이다. 자식에게 헌신하는 보통 가족 사이에 있을 때 그 고통이 가장 커 보인다.
    나는 <케빈에 대하여>의 엄마가 되게 얄미웠다. 너무 자기 위주고 신경질적이라 호감이 안 갔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식이 세상의 악이 되지 않게 키우려는 엄마를 독자들에게 이해시켜야 했다. 큰아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죽인 것과 다름없는데 그걸 용서하고 키울 순 없을 것 같다. 사랑하면서도 증오하고 무서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약하면서 강인한 복합적인 성격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자궁 적출 수술로 여성성을 일찌감치 제거해버린 이유도 여자로서 역할을 닫는 게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로지 엄마 역할로만 살아온 여자지만 아들에게만 매달리는 전형성을 넘어 차가운 도시 느낌을 주는 엄마로 만들고 싶었다.

    만약 당신의 인생에도 그런 악이 뚝 떨어진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 같나.
    작품 속 엄마의 입장은 실제 내 입장이다. 나 같아도 그 인생이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형의 감옥에 가둘 것 같다. 아이보다 더 오래 살면서 끝까지 통제했을 것이다.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사실 엄마 입장은 너무 쉽게 정리되었다. 문제는 유진이었다.

    세 번을 고쳐 쓰고 나니 유진이의 마음이 이해가 가던가.
    그렇다. 마지막에 해진이가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어쩌려고 이 등신 새끼야… 네 인생 어쩌려고…” 라며 유진이를 두들겨 패면서 우는데 그 장면은 울면서 썼다. 감정이 자꾸 올라와서 고쳐 쓸 때마다 운 것 같다. 보통 내가 고쳐 쓸 때마다 우는 장면이 그 소설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군도신시 설정은 정말 한국적이다. 모델로 삼은 곳이 있나. 시화호 방조제다. 얼마 전 토막사체 사건도 그곳에서 일어나지 않았나. 도시 자체는 송도를 모델로 삼았다. 가상 공간을 만들려면 머릿속에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한다. 찾아가서 사진을 찍고 스케치해서 나
    름대로 여러 번에 걸쳐 그림을 그린다. 이번에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대부분의 일이 일어나지만 둘러싸고 있는 도시 분위기도 중요했다. 머릿속에서 공간을 장악해야 주인공의 동선이 딱 잡히기 때문에 많이 그려보는 편이다.

    인물 이름은 어떻게 짓나. 중성적인 이름을 선호하는 것 같다.
    너무 특이한 이름은 싫어한다. 예전에는 야구 선수 이름을 가져다가 뒤에 한 글자만 바꿔서 쓰곤 했는데 이번에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외모도 예쁘고 행실도 예쁘니까.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인 유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등단하기 전에 <마법의 시간>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그 책 주인공 이름도 유진이다. 유진이를 주인공 삼아 쓴 두 번째 소설이다.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의 호흡 역시 당신 작품이 가진 힘이었는데 이번에는 분량이 많이 줄었다.
    <7년의 밤>이나 과 비교해서 100페이지가량이 줄었다. 줄인 게 대부분 엄마의 일기다. 엄마 일기를 구구절절 쓰다 보니 유진이보다 엄마한테 감정이 이입되더라. 그러면 독자들도 엄마를 따라가게 되는데 그러면 내가 원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다 잘라버렸다. 못 쓰는 거면 끝내 못 쓰는 거라는 생각으로 미련 없이 버리려고 애쓰는 편이다.

    뼈를 깎으면서 문장을 쓰는 타입인가, 아니면 몰아치듯 써버리는 스타일인가.
    뼈를 깎는 스타일이다.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는다. 사실 이번에는 문장 다듬는 시간을 줄였다. <7년의 밤>이나 같은 경우에는 차갑고 군더더기 없이 아주 절제된 문장이 필요했다.<종의 기원>은 감정이 굉장히 중요한 소설이었기 때문에 많이 풀어놓고 달리듯이 썼다.

    “행복한 이야기는 대부분 진실이 아니다” “떠밀면 니가 떠미는 게 세상의 이치야”처럼 메모하게 되는 문장이 많이 보이더라.
    원래 아포리즘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그런데 이번에 많이 쓴 이유는 어느 순간에도 폼을 잡길 좋아하는 유진이 성격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문장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철저하게 기승전결을 지킨다. 소설 전체부터 부, 장, 문단, 문장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그걸 지키지않으면 독자가 헷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독자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다. 독자들은 내가 쓰는 소재를 불편해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쓰고 싶은 거라 타협이 안 된다. 내가 독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선명하게 쓰는 것이다. 멋진 문장이 아니라 간결하고 분명한 문장을 쓰는 이유다. 그리고 사실 이번에도 유머 코드를 많이 넣었는데 편집주간에게 물어보니 어디서 웃어야 하냐고 하더라. <7년의 밤>에도 오영제가 웃긴 말을 많이 하는데 사람들은 안 웃기다고 나 보고 사이코패스 같다고 한다. 나만 웃긴가 보다.(웃음)

    <종의 기원>이라는 제목에는 굉장히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유진이는 별종이다. 별종의 탄생기를 압축하는 제목을 찾다 보니 ‘종의 기원’이 튀어나왔다. 다윈의 진화론을 설명한 이 어마어마한 제목을 가져와서 내가 과연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지 이 제목을 감당할 수 있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처음부터 정해놓고 썼다.

    소설 외에 평소 쓰는 글이 있다면.
    거의 없다. 일기도 안 쓴다. 노트에 쓰는 건 공부할 때다. 나는 필기 맹신주의자다. 책을 펴놓고 노트로 일일이 정리를 하며 공부한다. 글을 쓰면서 내용이 무의식에 박힌다. 보통 소설 하나를 쓰면 두꺼운 노트가 몇 권씩 나온다. 언제든 찾아볼 수 있게 인덱스도 붙여놓는다. 다 써놓고 필요할 때 찾으면 좋은 자료가 많이나온다. 요즘 한 달에 한 번 신문사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데 그것도 힘들어 죽겠다. 전방위로 글을 쓰는 작가들을 보면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 활력이 넘치지? 소설 하나 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말이다.

    관심사가 다른 게 아닐까. 한 가지를 깊게 파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것 같다.
    사실 성격이 무신경하다. 관심 있는 부분이 아니면 전부 스쳐 지나간다. 누군가가 말하면 열심히 듣고 있는 것 같지만 고개만 끄덕거릴 뿐 사실 머릿속에서는 딴생각을 하고 있다. 성격을 테스트해보면 세상의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 향해 있는 스타일로 나온다. 흔히 수줍음을 타거나 얌전하면 내성적이라고 하는데 관심사가 세상을 향해 있느냐 자신에게 향해 있느냐에 따라 나뉜다. 나는 야구 외에는 취미도 없고 아무런 관심사도 없으니 상당히 내향적인 성격이다.

    TV도 보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TV가 있으면 중독되어서 하루 종일 볼 것 같다. 얼마 전에 후배 집에서 우연히 <프로듀스 101>을 봤는데 완전 꽂혀서 밤새도록 봤다. 김소혜에게 빠져들었는데 그 친구가 가진 스토리 때문이었다. 우리는 역사, 문화모든 걸 이야기로 인식하는 존재다. 운동선수 중에도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매번 속 썩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빵 터뜨리는 이대호, 이승엽 같은 인물들이다. <프로듀스 101>을 보면서 예전에는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던 아이돌이 이해가 되더라. 인간이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중요하다. 한 인간이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것과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는 건 새로운 시각이 생기는 것이다. 독자한테 나는 그런걸 주고 싶은 거다. 소설 속에서는 너무나 안전한 거리에서 평소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를 감정적으로 겪어볼 수 있다. 그러면서 시각이 생기고 생각이 바뀐다. 책 마지막에 독자들에게 즐겨달라고 쓴 건 그런 마음에서였다.

    독자들로부터 가장 듣기 좋은 말은 무엇인가.
    “이 작가는 광기가 있다” “괴물이다” 같은 말들이다. 얼마 전에는 “이 작가는 진짜 사이코패스 같아”라는 말을 들었는데 되게 좋았다. 소설이 실감 난다는 얘기니까. 이번에 책 나오면 더 의심할 것 같다. ‘이 여자 이럴 줄 알았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어. 그동안 참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같은.(웃음)

    소설 집필과 일상생활 사이의 거리는 어떻게 유지하고 있나. 캐릭터에 몰입하면 일상생활 유지가 힘들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소설을 쓰면 밖에 안 나가니까 일상생활에서 인물에게 빙의가 되어도 별 상관이 없다. 우리 남편만 자기 목숨 잘 챙기면 된다.(웃음) 인물에게 빠져들어 감당이 안 되면 혼자 술 먹고 떡이 되어 잔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또 견딜 만하다. 남편이 외조를 많이 해준다. 장 봐오고 모든 심부름을 책임지고 있으며 돈 관리도 다 한다. 밖에 나가서 며칠씩, 한 달씩, 몇 달씩 글 쓰고 있으면 자기가 찾아다닌다. 남해에 있을 때도 일주일에 한 번씩 오고 오사카에도 찾아와서 밥해달라 그래서 귀찮아 죽을 뻔했다.(웃음)

    집에서 규칙적인 스케줄에 따라 집필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 집필 장소를 옮긴 이유가 있었나.
    이번에는 그게 안 됐다. 소설이 너무 기가 세서 그런지 죽겠는 거다. 그래서 장소를 옮겨가며 썼다. 오사카, 남해 모두 바다가 보이는 곳이니까. 마지막에 쓸 때는 집에서도 괜찮았는데 책상을 바꿔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10여 년 된 합판 책상을 쓰다가 이번에 60만원짜리 책상으로 바꿨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책상이다.

    <7년의 밤>이 프랑스, 독일에서 번역되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반응 예상했나.
    미국식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유럽식 스릴러에 가까워서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지 않을까 기대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더라.(웃음)

    소설가로 사는 즐거움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못해볼 짓이 없지 않나. 지금 나는 살인마가 됐다. 판타지를 쓴다면 마술사도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일단 매일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 좋다. 직장 생활을 15년 동안 했는데 조직 생활이 진짜 안 맞았다. 자고 싶으면 자도 되는 지금이 너무 좋다.(웃음)

    어린 시절 간절히 소설가를 꿈꾸던 소녀가 지금 당신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 것 같나.
    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된다는 생각만 해도 너무 기뻤다. 그래서 ‘결국은 됐구나’라고 말해줄 것 같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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