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거펠트, 이탈리아 장인으로 나서다

 

셀프 포트레이트(2013)

셀프 포트레이트(2013).

반짝이는 샹들리에 아래, 종이로 만든 패셔너블한 형체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 이곳은 살라 비앙카(Sala Bianca). 플로렌스 패션과 아트의 본고장이라 볼 수 있는 플로렌스 피티 궁전의 ‘하얀 방’이다.

공중에 매달려 흔들리는 이 패션 오브제들은 우피치 갤러리를 통해 전시되는 칼 라거펠트의 작품이다. 1962년 발렌티노가 전설적인 ‘화이트 컬렉션’을 선보인 이후 또 다시 이 공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

피티 궁전의 살라 비앙카에 전시 중인 칼 라거펠트의 사진 설치물

피티 궁전의 살라 비앙카에 전시 중인 칼 라거펠트의 사진 설치물.

아마도 박학다식한 패션 디자이너만이 고대 그리스부터 르네상스 유화에까지 이르는 역사적인 작품들에 자신의 이미지를 감히 견줄 수 있을 것이다. 공동 큐레이터인 에릭 프룬더(Eric Pfrunder)와 제라드 슈타이틀(Gerhard Steidl)의 도움으로 보볼리 공원이 내다 보이는 팔라조의 고대 창문아래 사진 사진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칼 라거펠트는 이렇게 말했다. “패션이 일생생활의 부분이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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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까지 진행되는 ‘패션의 시각들(Visions of Fashion)’ 전시는 다양한 이미지들로 시작됐다. 샤넬을 중점적으로 펜디, 그 밖에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 그가 진행해온 사진 작품들에는 진실된 색채를 통해 정교함과 정신적인 고통이 표현돼 있었다. 높은 스크린 위로 보여지는 이미지들에는 그 어떤 날짜, 설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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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십년 전부터 기록된 캠페인 컷들.

나는 그 중 1992년 작, 파란색 아이 섀도를 칠한 슈퍼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사진이 화가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를 오마주 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왜 그 러시아 표현주의 작품이 칼에게 영향을 주었는 지에 대해선 아무 단서가 없었다. 미처 찾아내지 못했다.

린다 에반젤리스타: (1992)

린다 에반젤리스타: 야브렌스키를 위한 오마주(1992).

라거펠트의 이미지들로 채워진 장엄한 방의 병렬적 배치는 집중하기 충분했고, 메시지는 점점 확실해졌다. 비록 그 곳에도 어느 그 짧은 묘사나 날짜 표기도 없었지만, 여전히 우아하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우피치 갤러리의 디렉터, 아이케 D. 슈미트(Eike D. Schmidt)는 조화와 고의적인 의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예를 들어 모델들이 쉬고 있는 현대적 감각의 방을 표현한 작품 ‘우아함의 교습(Lesson of Elegance, 2009)’은 벽에 걸려있는 역사적인 페인팅을 고의적으로 빗댄 것이며, ‘펜디 아틀리에(Atelier Fendi, 2011)’는 작가의 모델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산문적으로 풀어낸 것이었다.

2010년 펜디 S/S 캠페인

2010년 펜디 S/S 캠페인.

“이 아이디어는 일년에도 몇 천장의 사진을 찍는 현대적인 방문객들과 함께하는 사진전에서 비롯됐죠” 슈미트가 말했다. “유명 포토그래퍼가 촬영한 사진을 소유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입니다. 우리는 패션을 입기도 하지만 패션을 기억하기도 하죠.”

마리아 칼라 보스코노, 인터뷰(2001)

마리아 칼라 보스코노, 인터뷰(2001).

대부분은 색채에 의해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슈미트 또한 그것이 설치작업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저는 분명히 사람들이 칼의 사진들과 명작들 사이에서 어떠한 연결고리를 찾아낼 것이라고 확신해요” 슈미트가 말했다. “고전적이고 우아한 갤러리에서 바라보는 이 사진들의 매력은 좀 더 특별하죠”

카라 델레빈의 샤넬 캠페인 컷. 라 마델레나 그림과 함께 전시되었다

카라 델레빈의 샤넬 캠페인 컷. 라 마델레나 그림과 함께 전시되었다.

대중들은 선명한 블루 샤넬 드레스를 입은 카라 델레빈과 비슷한 색감의 르네상스 버전 작품 ‘라 마델레나’가 이루어내는 ‘비교와 대조’에 보다는 ‘칼의 3장의 연속사진-트립틱’에 매료된 듯 보였다. 슈미트는 복원된 명작이 남긴 어떠한 허무함을 라거펠트의 포트레이트 사진이 채워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칼 라거펠트의 트립틱

칼 라거펠트의 트립틱 사진.

박학다식한 패션 디자이너가 종이, 펜, 잉크 그리고 카메라를 가지고 만드는 창작물은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원형띠 형태로 된 사진 창작물 ‘율리시스의 여행(Le Voyage d’Ulysse)’은 고전적인 조각상과 신고전주의 페인팅 모두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라거펠트의 역사와 아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정의하는 듯했다.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이야기 역시 칼이 가진 지능적 재산과 타고난 달변 실력이 이끌어낸 결과물이었다. 나는 이것이 칼이 디지털 시대에 창조해낼 수 있는 간편하고도 독보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다프네스와 클로에의 사진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사진.

또다른 프레젠테이션으로는 칼의 남성복 컬렉션 모델이자 칼의 또 다른 자아와도 같았던, 밥티스트 지아비코니를 추모하는 이미지가 등장했다. 간질 발작이란 극심한 고통에 몸부리치는 이 프레젠테이션의 보여준 것은 ‘폭력의 아름다움’이었다. 디자이너의 어떤 해석없이는 이해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고, 심지어는 불편까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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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티스트 지아비코니가 등장한 ‘폭력의 아름다움’.

공동 큐레이터 제라드 슈타이틀은 2010년 샤넬의 ‘파리, 모스코바’ 컬렉션 이미지에 대해 설명했다.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동안, 라거펠트는 밥티스트의 간질 발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초기에 이 비디오의 제목을 ‘위기’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는 철학자에게서 ‘천천히 둘러보아라, 곧 폭력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게될 것이다’라는 구절을 발견했죠. 그것은 정치적이면서도 진실된 방법을 도출하는 길이었습니다. 패션은 손 끝의 힘으로 패브릭을 파괴시키는 행위죠. 아마 이런 쓰레기들 또한 새로운 아름다운 존재로 창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샤넬 2016 S/S 캠페인 컷

샤넬 2016 S/S 캠페인.

나는 칼이 그 자신만의 언어로 설명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역시 그는 격식있는 수수께끼 같았다. 현재 맨즈웨어 컬렉션과 이탈리아 패션 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도시 플로렌스에서 마주한 이 전시 ‘패션의 시각들’은 제목 그 자체로도 무척이나 어울린다.
그런 느낌을 간직한 채, 그 모든 방대한 박물관의 공간은 예술적인 영혼을 어김없이 표현한 칼 라거펠트에 모두 헌정된 듯 보였다.

샤넬 2012 S/S 캠페인 컷

샤넬 2012 S/S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