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결핍 장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도시의 답답한 공기에 숨 막혀 쉽게 짜증을 낸다. 만약 이렇다면 당신도 자연 결핍 장애를 앓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도시의 답답한 공기에 숨 막혀 쉽게 짜증을 낸다. 만약 이렇다면 당신도 자연 결핍 장애를 앓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윈디시티 김반장 편’을 보고 충격 받은 사람 좀 있을 거다. 북한산 밑에 사는 그는 도시가스와 온수가 전혀 나오지 않는 곳에서 땔감을 때 불을 피우고 거름도 직접 만들며 손수 가꾼 텃밭의 채소로 밥을 해 먹는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편리한 이 21세기에 말이다. 그는 흥이 나면 맨발로 북한산을 오르고 흥이 줄어들면 지붕 위에 올라가 낮잠을 청한다. 그의 삶은 인공지능을 얘기하는 지금 이 시대와 같은 시간 속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원시적이고 자연 친화적이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월든 호수 근처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숲 속에서의 삶을 영유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21세기식 재림인 건가? 믿거나 말거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콩밭에서 캐낸 쇠비름을 끓여서 소금을 친 것만 가지고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고 했다. 근데 말이다. 가만 생각해보자. 마지막으로 자연 한가운데에서 새 울음소리를 듣고 바람의 냄새를 맡은 적이 언제인가? 미친 듯이 위치를 구글링한 다음 시속 100km로 차를 몰고 여행 갔을 때? 혹시 당신은 보리수나무와 플라타너스, 양귀비와 갈퀴나물이란 단어를 들으면 머릿 속에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나? 망설이는 시간이 길다면 결론은 하나다. 당신도 어쩌면 식물맹(盲), 아니 자연 결핍 장애를 겪는 걸 수도 있다.

‘자연 결핍 장애’라는 개념을 만든 미국의 저널리스트 리처드 루브는 <지금 우리는 자연으로 간다>라는 책에서 “현재 우리의 낮과 밤은 기술에 파묻혀 있다”면서 그 집단적 장애 현상이 “우리의 건강과 영혼, 경제와 환경 보존에 대한 책무까지도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끄럽고 복잡하며 종종 폭력적인 도시의 환경에서 이유 없이 자주 화가 나나? 질식할 것 같은 도시의 욕망을 뒤로하고 자연으로 떠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답답한가? 도시의 위압적 태도는 갑자기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허겁지겁 자연 속으로 떠나는 도시 이탈자들을 종종 만들어낸다. 엊그제만 해도 이마트에서 장을 보던 그들은 귀농을 하거나 시골에서 소일거리로 생계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한다. 그 사례의 대표 주자는 화장품 브랜드 버츠비 창립자 버트 샤비츠일 거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뉴욕에서의 삶을 버리고 책과 매트리스만 챙겨서 어린 시절 휴가를 보낸 메인 주 남부 뱅고어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여긴 5시에 일어나서 차를 몰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도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좋은 곳에 대한 생각이 있을 거다, 나에겐 이곳이 그렇다”고 말했다. 자신에게는 매와 부엉이, 레트리버가 있다나. 그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도시의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들어가 앉아 남의 험담을 하는 대신 주말마다 작은 공원이라도 방문했다면 그렇게 도망치듯 떠나진 않았을 것이다. 최근 들어 더 심화된 자연 결핍 장애 현상은 이끼 냄새보다는 콘크리트 냄새에 더 익숙한 ‘경험 멸종 세대’의 주요 특징일 것이다. 건물 벽이나 내부에 식물 정원을 만드는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이나 식물을 인테리어의 요소로 활용하는 ‘플랜테리어(Plant+Interior)’ 트렌드는 그와 같은 자연 결핍 장애를 미약하게나마 극복하려는 움직임일 것이다.

자연이 얼마나 우리의 건강과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지는 누구나 다 알지만 선뜻 자연으로 나가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사실을 알아서인지 리처드 루브는 객관적인 연구 자료를 예로 들며 자연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책에 아주 길게 설명해놓았다. 자연은 우리의 정신적인 피로를 해소시키며 우리의 본질과 직관에 심오하게 연관돼 있으며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시큰둥한 사람을 위해 근거를 대자면, 과학자 아인슈타인과 수학자이며 철학자 쿠르트 괴델은 매일매일의 산책 덕분에 뇌가 활성화됐다고 한다. 자연을 자주 접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타액 내농도도 낮아진다. 자연에서의 경험을 질병의 치료에 사용하는 ‘에코 테라피’가 사이비 가짜 치료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자연은, 우리가 삶에서 필요로 하는 건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놀라운’ 사실과, 우리는 결국 모두 죽는다는 ‘새삼 놀랄 것도 없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모든 걸 가진 유명인들에게도 그건 예외가 아닌가 보다. 17세기 정원이 마음에 들어 벨기에 리르에 사는 드리스 반 노튼은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원으로부터 배운다. 정원은 내게 겸손을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살았던 뉴멕시코에 목장을 지어 틈만 나면 거기서 시간을 보내는 톰 포드도 정신 수양자처럼 말했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를 내리 누르는 이 모든 것이 덜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보다는 벌레가 나뭇잎을 풀 위로 옮기는 걸 보고 조용함에 귀 기울이고 말을 타고 광활한 공간에 있는 게 더 즐겁다.”

물론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겨우 28달러로 집을 짓고 사는 네이처 긱(Nature Geek)이 될 필요는 없으며 펩시 콜라 직원들처럼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이용해 회사에서 당근과 애호박을 키우는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가난하고 소외된 시민들을 위한 녹색 경제(Green Economy)를 실천하기 위한 단체 ‘그린 포 올(Green for All)’을 만든 반 존스의 주장대로, 모든 사람이 자연환경을 동등하게 누릴 권리는 있다. 리처드 루브는 “스물네 해가 지난 지금도 나는 페코스 강가에 서 있던 그 미루나무를 생각한다”고 말한다. 미루나무가 어떤 건진 몰라도 되지만 누구나 숲을 산책할 권리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