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베컴은 모든 것을 이뤘다. 팝 스타를 꿈꾸던 소녀는 스파이스 걸스 멤버로  하룻밤 사이에 월드 스타로 떠올랐고, 지구 제일의 스포츠 스타와 결혼해 네 아이의 엄마가 됐다. 이젠 평생 소망하던 패션 디자이너로서 제2의 삶을 누리고 있다. 시그니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19년 만에 서울을 찾은 빅토리아의 완전한 나날.

여느 화요일과 별다를 바 없는 광화문 풍경. 넥타이 부대는 건물 사이 골목에 숨어 끽연을 즐기고, 세종로를 오가는 차량은 뻥 뚫린 도로를 질주했다. 멀리 보이는 경복궁과 북한산 풍경도 평화롭기만 했다. 이 근사한 풍경이 모두 내려다보이는 포시즌스 호텔 22층 스위트룸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빅토리아 베컴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보그> 촬영을 위해 이동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회색 스웨트 티셔츠와 트레이닝 팬츠 그리고 새하얀 스니커즈 차림의 빅토리아가 등장했다. 재빠른 걸음으로 <보그>가 마련한 미니 스튜디오로 들어선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고 스태프 한 명 한 명의 눈을 바라보며 악수를 청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듯 “헬로, 아이 엠 빅토리아!”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굳이 “아이 엠 빅토리아”라는 말을 더하지 않더라도, 빅토리아 베컴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년 전, 톰 포드가 디자인한 구찌 페이턴트 미니 드레스 차림으로 “Spice Up Your Life!”를 외치던 심드렁한 표정의 영국 소녀는 스파이스 걸스 멤버로 하룻밤 사이에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아이돌 그룹의 생명이 다할 때쯤 그대로 잊힐 법했지만, 그녀는 영리하게 다음 챕터를 준비했다. 지구 최고의 스포츠 스타와 결혼하며 대중의 관심 가운데 머무른 것이 첫 번째다. 까만 선글라스에 짧은 보브 컷,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특징을 완성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일거수일투족을 공개하는 리얼리티 시리즈로 대중에게 자신을 내보였고, 아들 셋과 딸 하나, 네 아이의 엄마가 된 것조차 화제가 됐다.

그러나 빅토리아 베컴의 진정한 인생 2막이 펼쳐진 건, 2008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시작하며 디자이너로 변신하면서부터다. 스파이스 걸스 중에서도 패션을 좋아해 ‘Posh Spice’로 불렸으며, 디자이너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그녀가 마크 제이콥스 쇼핑백 안에 주저앉은 광고 이미지를 누가 잊을까)이 익숙했기에 그녀에겐 더없이 자연스러운 선택인 셈이었다. 비록 셀러브리티 브랜드에 보내는 패션계의 시선은 곱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베컴은 서두르거나 욕심내지 않았다. 열 벌의 드레스로 완성한 첫 컬렉션을 발표하던 뉴욕의 아담한 호텔 룸에서 그녀는 단 한 명의 기자 앞에서도 드레스에 대해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 오붓한 스위트룸은 근사한 타운하우스의 살롱으로 옮겨갔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녀의 옷과 브랜드를 찾았다.덕분에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공식 패션쇼를 발표하는 것으로 브랜드를 성장시켰다. 게다가 영국패션협회가 꼽은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으며, 미니멀하고 여성적인 옷을 찾는 고객들은 늘어갔다. 서울을 찾은 것 역시 ‘패션 디자이너’ 자격이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마이테레사닷컴’과 함께 세컨드 브랜드 ‘VBB’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고,서울에서 그를 기념하는 파티를 열기 위해서였다. <보그> 촬영 역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100만명을 넘어서며, 월드 스타이자 뉴욕에서 손꼽히는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그녀라면, <보그> 표지에 등장할 이유가 충분했으니 말이다(이미 영국, 호주, 중국 등 월드와이드 <보그> 표지가 그녀를 원했다).

“공항에 저 말고 유명한 사람이 있는 줄 알았어요.” 19년 만에 서울을 찾은 소감을 묻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입국 심사를 기다리는데 주위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사진을 찍더라고요. 그래서 저 뒤에 유명한 한국 스타라도 있나 싶어 두리번거렸더니, 저를 보고 반가워한 거였어요. 무척 감사했어요.” 빅토리아는 나에게 자신을 환영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꼭 써달라며 당부하듯 전했다.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은 도시에서도 따뜻한 환영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는 멘트까지 덧붙이며. “다음엔 꼭 데이비드랑 아이들과 함께 오고 싶어요. 이번에 한국에 간다고 하자, 데이비드 역시 다음엔 같이 가자고 그러더군요.”

이번 한국 방문은 그녀의 아시아 투어의 일부다(스파이스 걸스로 활약할 때는 뮤지션으로서 전 세계 투어를 하던 그녀다). 홍콩에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첫 번째는 런던 도버스트리트에 있다)의 오픈 일정에 맞춰 아시아에 오면서 한국을 찾은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담은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아시아까지 오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그렇다고 조급할 건 없었다. “제가 하는 일에 늘 열정적이었어요. 제가 패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어요. 그저 제 작업이 자랑스러웠고, 그런 사실을 알리고 싶었죠. 사람들이 제 진심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었어요.” 단번에 성공할 것을 기대하지 않은 건 스스로 완벽한 옷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 브랜드를 시작한다고 하자, 마크 제이콥스가 이렇게 조언했어요.‘퀄리티를 신경 써. 디자인을 싫어할 순 있어도, 품질이 좋다면 쉽게 욕할 수 없거든.’ 그 말을 가슴 깊이 담았어요.”

그녀가 즐겨 입는 드레스를 그대로 담은 컬렉션은 이제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 성장했다. “처음 몇 시즌은 드레스에 집중했어요. 그야말로 완벽한 드레스를 선보이고 싶었죠.” 그 다음은 세컨드 라인 VBB를 론칭할 때였다. 덕분에 메인 컬렉션은 드레스를 넘어서 좀더 폭넓은 디자인을 담을 수 있었다. “액세서리도 론칭했고 아이웨어 라인도 시작했죠. 천천히 하고 싶은 걸 이루고 있어요.” 그다음을 묻자 구두, 메이크업, 향수, 남성복, 아동복 등 ‘위시 리스트’가 이어졌다.“저야말로 제 브랜드를 대표하는 고객이에요. 제가 입고 싶은 옷을 디자인하고, 제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생각하죠.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조급하지 않다는 거죠. 시간이 걸려도 전혀 문제 될 건 없어요.” 그녀는 영국에서 K-뷰티가 유명하다며, 서울을 떠나기 전 한국의 뷰티 브랜드를 꼭 경험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가볼 만한 곳을 묻기도 했다.

셀러브리티 브랜드의 장점 중 하나는 이미 수많은 디자이너 옷을 입어본 이들의 감각이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제일의 옷을 직접 즐긴 경험을 바탕으로 디자인한 옷은 분명 다르다. “디자인은 물론, 소재와 장식, 고객들이 사는 곳의 기후 등 다양한 것을 고려합니다. 최고의 테일러링과 완성도는 기본이죠.” <보그>가 촬영을 위해 준비한 의상과 액세서리가 걸린 옷걸이를 유심히 살피던 그녀는 고객이자 디자이너의 마음으로 자신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고르기도 했다. “제 옷을 입은 여자들이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최고의 목표예요.”

여자들에게 자신감을 선사하는 건 빅토리아에게 있어 꽤 중요한 일이다. 그건 네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로서의 책임감 때문일 것. 20년 동안 대중의 시선 속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좀더 올바른 삶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제 삶을 통해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다른 여자들도 자신의 꿈을 이루고, 스스로가 지닌 열정을 따를 수 있도록 말이죠.” 결코 아이가 있다고 해서 일하는 것에 있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으며,워킹맘이기에 가정에 신경 쓰는 것을 죄스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제가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물론 저는 운이 좋죠. 데이비드와 저는 아주 현대적인 부부입니다. 서로 자리를 비울 때 그 책임을 다하니까요. 그리고 방학이나 공휴일이 오면, 우리 둘 모두 함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원칙으로 해요. 물론 그러긴 쉽진 않아요. 영국엔 공휴일이 너무 많거든요!”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책임감 역시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그녀는 UNAIDS(UN 산하 에이즈 퇴치 운동 기구)의 홍보대사로서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얼마 전 에티오피아에 다녀왔어요. 현지 여성들에게 HIV와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습니다. 더 이상 그 바이러스는 사망 선고가 아니라는 것을,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해도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어요.” 이런 그녀의 움직임은 가족에게도 이어진다. 남편인 데이비드 베컴은 다양한 재단을 통해 자선 사업을 벌이고, 버버리 광고 모델로 유명한 둘째 아들 로미오는 얼마 전 자선 행사를 위해 런던 마라톤을 뛰었다.“아프리카로 떠나기 전에는 꼭 하퍼와 함께 쇼핑을 가요. 그리고 그곳 아이들을 위해 쇼핑을 하죠. 필기용품부터 스티커나 작은 장난감 같은 소박한 물건을 삽니다. 하퍼는 그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해요.” 그녀는 네 아이가 모두 그들의 유명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하길 소망한다. “네 아이 모두 아주 작더라도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오래전 R&B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그녀는 나의 선곡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스피커에 직접 자신의 아이폰을 연결했다) 촬영이 계속됐다. 마음에 드는 포즈가 나오면 데이비드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야겠다고 웃는가 하면, 호텔 외벽을 청소하는 인부들이 밧줄을 타고 내려오자 재빨리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보그> 촬영이라고 올려도 되죠?”). 오랫동안 요가와 댄스로 단련된 몸은 촬영을 위한 포즈에서도 자연스러웠다. 20년간 카메라 앞에 선 경험 역시 도움이 됐을 것이다. “운동을 좋아해요. 특히 등산이 좋아요. 지난해 마흔 살 생일에는 가족이 다 함께 유타의 그랜드 캐니언에 올랐어요. 힘들어 쓰러질 뻔했지만, 그 추억은 잊지 못할 거예요.”

마지막 컷 촬영이 끝나자 그녀는 다시 스태프들에게 큰 목소리로 “땡큐!”를 외치며 대기실로 쓰던 옆방으로 향했다. “제가 혹시 한국 분들에게 고마워한다고 이야기했던가요? 꼭 전했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네일을 지우던 그녀에게 꿈에 대해 물었다. “제 삶의 모토는 ‘Dream Big!’이에요. 디자이너로서는 전 세계 모든 여자들에게 다가가는 거죠. 제 브랜드를 사 입을 형편이 되지 않는 여자도 어떤 방식이로든 제 브랜드를 경험해보길 원하고 있어요. 그게 어떤 방식이 될진 좀더 고민해봐야겠죠.” 그렇다면 여자로서의 꿈은? “가족이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라는 거죠. 세상 모든 것 중에 가족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그 어떤 것보다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