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울

제주로, 통영으로, 외국으로 떠났던 친구들이 돌아왔다. 서울이 역겨워 떠난다더니 10년도 못 가서 향수병이 났다. 천국은 어디에도 없거나, 어디에나 있다.

제주로, 통영으로, 외국으로 떠났던 친구들이 돌아왔다. 서울이 역겨워 떠난다더니 10년도 못 가서 향수병이 났다. 천국은 어디에도 없거나, 어디에나 있다.

‘많이 반성하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단골 술집 사장 A가 몇 달 만에 문자를 보내왔다. 7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꿈은 코타키나발루로 이민을 가서 작은 바가 딸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돈이 모이는 족족 동남아로 여행을 다니다 보니 슬그머니 지겨워졌는지, 3년 후에는 불현듯 제주도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술집에 들를 때마다 김녕이나 함덕에서 새로 보고 온 상가 사진을 보여주기를 몇 년째, 그때 만일 그 상가 중 하나를 샀더라면 부동산 시세 차익으로 떼부자가 되었을 만큼 제주도가 급변한 후에, 그는 더 한갓진 곳을 찾아 홀연히 통영으로 떠났다. 서울에서도 불친절로 악명 높던 그가 과연 텃세 심한 타지에서 친구나 사귈 수 있을는지 흥미진진해서 언제 한번 가봐야지 했는데, 그 언제는 끝내 오지 않았다.

서울에서 다시 만난 A는 ‘반성했다’는 문자와 달리 여전히 괴팍했고, <보그> 편집장이나 간행물윤리위원회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표현을 섞어 지방 이민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순화하자면, 동네 아저씨들이 가게에 드나들면서 참견하고 군기 잡으려 드는 게 귀찮았고, 소품 하나도 서울에서 조달해야 해서 불편했고, 현지인들은 말이 안 통하고 관광객들은 쩨쩨해서 장사가 통 재미없었으며, 정신없이 상업화되는 동네 분위기 탓에 번화하고 나름 질서가 잡힌 서울이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A의 말을 들으며, 나는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서울 사람은 미세 먼지를 먹어야 해’라고, 서울 사람처럼 생각했다. 무릇 서울 사람이란 늘 자기 도시에 대해 자학하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부류들이 아니던가. 경상도 어촌 출신인 나로선 왜 서울 같은 문명 세계의 사람들이 굳이 불친절하고, 무례하고, 가부장의 행패와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하루만 비질을 안 해도 방에 거미줄이 끼는 시골에 가서 살려고 하는지,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도 안 봤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항시 마음 한쪽에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사는 게 또 도시인들인지라 그 꿈을 깨기 싫어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다. 그리하여 또 다른 친구 B가 제주로 내려갈 때도 말리진 않았다. 물론 그 역시 1년 만에 돌아왔다.

B가 노후에 귀촌하겠다고 제주도 허허벌판에 사둔 땅이 금싸라기 상업지가 돼서 떼돈을 번 것까진 좋았다. 섬이라고 물가가 비싸다 못해 제주산 광어가 뉴욕 한인타운보다 제주도 식당에서 더 비싼 것까지도 어떻게 이해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내려가 살겠다고 공사를 하다 보니 지긋지긋한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제주도 전역이 공사판이라 레미콘 하나 부르는 데도 뒷돈을 줘야 했고, 공사장 진입로에 있는 땅 주인은 통행세를 거하게 요구했으며, 진갑 가까운 동네 할아버지를 아침저녁 차로 모셔드리며 일을 시켜야 할만큼 인부 구하기가 힘들었다. 작년에 모 영화제 신인상 후보였던 감독이 “제주도에 집을 짓고 있는데 레미콘 스케줄을 몰라서 참석 여부를 확정할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스태프들이 몇 주간 애를 태웠다던데, 과연 제주도 레미콘은 영화제 트로피보다 귀한 몸이었던 것이다.

B의 또 다른 문제는 평생 서울과 뉴욕 등 대도시에만 살았던 터라 포유류와 어패류 이외의 생물을 무서워한다는 점이었다. 지네는 꼭 쌍으로 다닌다는 걸 나도 B 때문에 알았는데, 급기야 마당에 뱀까지 나타나자 그는 궁여지책으로 사냥 잘하게 생긴 길고양이를 섭외했다. 하지만 길고양이도 아침저녁 방문해서 차려주는 밥만 날름 챙겨 먹고 지네와 뱀은 잡아주지 않았다. 결국 동네 곤충들에게 호구 잡혀 살던 중 보다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으니, 밤이 무서워도 불러들일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귀농 힐링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는 내내 농사짓고 밥만 하던 여주인공이 비 오는 밤 문득 전화를 걸자 잘생긴 옆 동네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장면이 있다. 그쯤은 돼야 시골 생활도 할 만하다. 하지만 B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동네 주민의 평균 연령은 60세쯤 되는 것 같았고, 젊은 보헤미안 이민자들은 도도했으며, 골프 클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부유한 명퇴자나 교육 이민자 커뮤니티는 체질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불륜이 난무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고독에 시달리던 그도 서울로 돌아오며 “반성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부부끼리 떠나 다행이다 싶던 한 커플은 제주의 습한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여름에 납작한 김 한 봉지를 뜯으면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흐물흐물해져버리는 곳이니 체질이 안 맞으면 견디기 힘들 터. 특히 아내가 그랬는데, 처음엔 몸이 축축 처지는 정도였다가 점점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오더니 몸이 나뭇가지처럼 말라갔다. 그래서 충청도 산골로 이사를 갔으나, 애초 그들이 원한 건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완연한 시골 생활은 지루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결국 서울로 돌아와 성북구의 오랜 동네에 터를 잡았다. 몇 해 전 울릉도로 귀향해 현지 남자와 결혼하고 눌러앉은 친구가 “선착장에 내리는 사람들이 크리스피 도넛 박스를 손에 든 걸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는데, 그에 비하면 서로 뜻이 맞아 아니다 싶을 때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 부부는 행운이었다. 한국을 떠나는 게 평생의 꿈이다가 결혼과 함께 소원 성취한 친구들도 있다. 그들이 이따금 메신저로 수다를 늘어놓을 때면 수 세기 만에 빙하 속에서 눈을 뜬 용가리가 얼음을 녹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불을 내뿜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내용은 주로 인터넷에서 본 고국 정세에 대한 장렬한 통탄과 수치심인데, 대화를 마칠 때면 꼭 “아아, 이런 수다 그리웠어! 한국 가고 싶다”라고 한다.

‘피로 사회’ 대한민국의 국민은 모두 어딘가 떠나고 싶다. 특히 서울은 그렇다. 살인적인 주택난, 교통난, 열악한 노동 여건, 높은 인구밀도, 머무르면 뒤처질 것 같은 숨 막히는 분위기, 유치원생들도 만났다 하면 서로 아파트 평수부터 확인하는 천박한 교육 환경… 모든 것이 이번 생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거기서 떨어져 나가지 않겠다고 나를 갈아대며 아등바등 버티다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빵 굽고 바느질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리하여 올 한 해에만 제주도 인구가 2만 명 증가할 예정이다. 하지만 둘러보는 것과 머무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큰 차이다. 여기가 내 인생이고 내 터전이다 생각하면 어디나 결점은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 그게 나의 토양이 된다. 예컨대 서울의 치명적인 결점에도 불구하고, 올 상반기에만 제주 면세점 연 이용 한도인 6회를 다 채워버릴 만큼 바지런히 바다를 건넜음에도, 내가 아직 서울에 사는 이유는 그만큼의 문화시설, 조형미, 다양한 밤 문화, 친숙한 언어, 다량의 쿨한 술친구를 동시에 제공해주는 도시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게는 이런저런 고충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충청도, 부산, 베를린 그리고 런던으로 떠나서 더 행복해진 친구들이 있다. 소금밭에 피는 염생식물이나 사막을 좋아하는 선인장처럼 각자에게는 각자의 토양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 여기만 떠나면 만사가 좋아질 거라는 막연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공간이 삶을 지배하는 건 맞지만 삶은 그 밖에도 아주 많은 것의 지배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