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의 초상

사진가 김형선은 우리가 잘 안다고 여겼던 해녀들의 모습을 정면에서 직시한다. 제주의 푸른 바다와 분리된 채 흰 배경 앞에해녀가 서 있다. 비로소 한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사진가 김형선은 우리가 잘 안다고 여겼던 해녀들의 모습을 정면에서 직시한다. 제주의 푸른 바다와 분리된 채 흰 배경 앞에해녀가 서 있다. 비로소 한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바닷속에 들어가서 해삼, 전복, 미역 따위를 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여자.’ 굳이 사전을 들추지 않더라도 해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주 방언으로 잠녀 혹은 삼춘이라 불리는 이들은 거친 바다를 삶의 텃밭 삼아 물질을 한다. 새까만 고무 옷을 입고 먼바다에서 자맥질을 반복하는 해녀의 모습은 돌고래보다 익숙하다. 사진가 김형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해녀의 얼굴을 정면에서 직시한다. 사진 속 주인공은 대부분 늙은 여자들이다. 바다와 분리된 채 흰 배경의 천 앞에 선 이들의 주름진 턱 끝에선 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바닷속에 들어가서 해삼, 전복, 미역 따위를 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여자.’ 굳이 사전을 들추지 않더라도 해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주 방언으로 잠녀 혹은 삼춘이라 불리는 이들은 거친 바다를 삶의 텃밭 삼아 물질을 한다. 새까만 고무 옷을 입고 먼바다에서 자맥질을 반복하는 해녀의 모습은 돌고래보다 익숙하다. 사진가 김형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해녀의 얼굴을 정면에서 직시한다. 사진 속 주인공은 대부분 늙은 여자들이다. 바다와 분리된 채 흰 배경의 천 앞에 선 이들의 주름진 턱 끝에선 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김형선의 ‘해녀’ 사진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한국 사진계에서 그는 무명에 가깝다. 2013년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린 한 번의 전시가 전부다. 20년 가까이 상업 사진가로 활동해온 그가 해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5년 전이었다. “우도에서 우연히 해녀 한 분을 봤어요. 물질을 끝내고 뭍으로 올라와 앉은 할머니가 허리의 납을 풀고 조끼를 벗는데, 그 모습이 저한텐 충격이었어요. 삼척동자도 해녀는 알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죠.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어요.” 서울로 올라온 그는 곧장 촬영 장비를 챙겨 다시 제주도로 내려갔다. 자비를 털어가며 해녀 사진에 열중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지난해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김형선의 개인전은 숱한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앞다퉈 전시를 소개했고, <가디언>은 2면에 걸쳐 그의 사진을 실었다. 올 초에는 프랑스 툴루즈 페스티벌과 포토 드 메르 페스티벌의 초청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최근에야 SNS를 통해 이슈가 되었다. 그의 친형이 블로그에 올린 해녀 사진은 단 몇 장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수소문 끝에 김형선을 만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돌아오자마자 <보그 코리아>의 연락을 받았다는 그는 논현동 작업실에서 평창동까지 자전거를 타고 단숨에 달려왔다.

해변에 흰색 배경의 천을 설치한 건가요? 천에 물기가 남아 있어요.
자연을 배제하고 최대한 인물을 부각시키려고 했어요. 제가 처음 우도에서 해녀 할머니를 봤을 때 주변 풍경은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곳에 오직 그분만 존재하는 것 같았어요. 묘한 경험이었죠. 그때 제가 받은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느낌 그대로예요! 스튜디오 같은 배경 덕분에 비로소 한 여성이 보이더군요. 촬영에 참여해주신 할머니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하.

사진은 모두 물질을 끝내고 난 직후에 찍은 건가요?
바다로 나가기 전의 모습도 찍긴 했는데 최종적으로 선택되지 않은 것뿐이죠. 4~5시간 바다에서 작업하고 나면 거의 탈진 상태예요. 물기가 마르지 않은 그 모습이 저에겐 더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한 컷 찍는 데 평균 몇 분 정도 걸리나요?
한 분당 1~2분 정도예요. 원래는 대형 카메라를 쓰려고 했는데 카메라를 세팅하는 사이 그냥 가버리시더라고요. 그때가 초겨울이라 추웠거든요. 결국 제주도에 일곱 번 내려갔는데 한 장도 못 찍었어요.

카메라를 바꾼 후에야 첫 촬영이 시작된 셈이군요.
그렇죠. 처음엔 무식하게 시작했어요. 물때라는 게 있는데 그걸 몰랐던 거죠. 물때가 맞아도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또 물질을 못해요. 일주일 동안 물에 못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작전을 바꿨죠.

작전을 바꿨다?
처음엔 한 달에 한두 번 잠깐 내려가 촬영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가만히 계산해보니 이런 식으로는 20~30년이 걸려도 다 못 찍겠더군요. 물때에 맞춰 움직이려면 제주에 사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주공항 근처에 아예 집을 구했어요.

제일 처음 촬영한 지역은 역시 우도였겠죠? 해녀가 가장 많은 곳이니까요.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우도로 들어가요. 그래서 전 반대로 촬영하기 제일 힘든 곳부터 찾았어요. 우도는 마지막 순서였고요. 제주도에서 가장 가기 힘든 지역은 마라도예요. 그곳에 일고여덟명의 해녀가 있다는 얘길 듣고 무작정 찾아갔죠. 당연히 미친놈 취급하시죠. 다행히 차츰 안면이 생기면서 젊은 해녀분이 도움을 주셨어요. 그게 지금까지 온 거고요.

사진을 보면 해녀들의 옷차림이 저마다 달라요. 그게 참 신선했어요.
지역마다 스타일이 다르더라고요. 오렌지색 고무 옷은 도입된 지 얼마 안 됐어요. 선박 사고가 많이 나니까 새로 지급한 거예요. 그래도 검은색 고무 옷만 고집하시는 분도 있어요. 조끼는 물속에서 따뜻하라고 입는 거래요. 직접 토시를 만들어 쓰는 분도 계시고요. 처음엔 흑백으로 찍다가 선명한 색감을 보여주고 싶어서 컬러사진으로 바꿨어요.

지금까지 총 몇 분 촬영한 건가요?
250분 정도예요.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예정이고요.

5년이라는 기간에 비해 적은 숫자네요.
하루에 한 분 찍기도 힘들어요. 광활한 데는 입수한 곳과 나오는 곳이 달라요. 한참 기다렸다가 한 분을 따라가면 다른 분들은 다른 데로 나와 이미 옷 다 갈아입은 후죠. 촬영을 허락하고도 그냥 들어가시는 경우도 있고요. 마라도에 우리나라 최연소 해녀와 최고령 해녀가 있는데, 최고령 할머니는 올해 아흔한 살이에요. 지금도 물질을 하세요. 다만 몸이 안 좋으셔서 아직 애프터 촬영은 못했어요.

오랜 기간 작업하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을 것 같아요.
마을마다 해녀 회장님이 계신데 그분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촬영이 불가능해요. 관광객들의 카메라에 많이 노출되어 촬영에 민감하시기도 하고요. 욕도 엄청 먹었죠. 해양수산부 같은 관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 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어요. 매그넘 사진가 데이비드 앨런 하비는 그런 식으로 진행했죠. 전원 집합해서 입수하고, 이게 다 연출이 되더라고요. 전 상업 사진만 찍었지 순수 사진이 처음이라 몰랐어요. 하지만 지금도 그 방법을 쓰진 않고 있어요.

대신 어떤 진행 방식을 택했나요?
해녀 할머니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빵이에요. 대부분 빈속으로 물에 들어가시거든요. 그 빵 한 상자랑 검정콩 두유를 미리 챙겨두었다가 물에서 나오시면 같이 먹어요. 그리고 무거워진 망사리를 대신 옮겨드리죠. 그럼 요즘은 소라같은 것도 하나씩 까서 주시곤 해요.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분들도 있나요?
작년에 돌아가신 김절자 어머님의 따님과는 종종 연락해요. 딸도 해녀예요. 잠수복을 입고 모녀가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죠. 최연소 해녀 김재연 씨도 제주도에 내려갈 때마다 뵙고요. 마라도에서 짜장면집을 하거든요.

올해는 제주 해녀의 유네스코 등재 여부가 결정되는 해이기도 해요.
11월로 알고 있어요. 원래는 지난해 됐어야 하는데, 일본과 경쟁이 과열되면서 프랑스에서 중재하고 나섰죠. 일본의 아마와 제주 해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요? 아마 문화는 존속 가능하나 해녀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 일본 아마는 90%가 30대예요. 우리나라 해녀는 60대 이상이 대다수고요. 그렇다 보니 사라질 것 같아요. 제가 보는 견지에서는 그래요.

앞으로의 전시 일정이 궁금해요.
6월 16일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해양과 환경이라는 주제로 5개국 투어 전시가 시작돼요. 내년엔 영국 해양 박물관에서 사운드 아티스트 미카엘 카리키스와 콜라보레이션 전시를 하기로 했고요.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과 해녀들이 사용하는 도구도 같이 보여주려고 해요.

외국에서만 해녀 사진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군요.
인터뷰 연락도 국내에선 거의 처음이에요. 하하. 이번에 이탈리아의 아트 패션 잡지와 베네통이 함께 이 해녀 사진으로 카탈로그를 만들었어요. 8개 국어로 번역해 전 세계 매장에서 소개할 예정이에요.

패션 매장에서 만나는 해녀라니, 기대되네요! 계속 해녀 사진을 찍는 이유가 뭘까요?
5년 전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땐 유네스코 등재와 관련된 이슈도 없었어요. 다만 제가 처음에 받은 그 느낌을 정말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 표현의 수단이 사진이 되었을 뿐이고요. 내년부터는 다른 시리즈도 시작할 거예요. 해녀 사진이 그렇듯 20년 넘게 인물 사진만 찍어온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