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섹스 로봇

2016.07.11

by VOGUE

    섹스 로봇

    커다랗고 보드라운 ‘물건’을 가진 섹스 로봇이 왔습니다. 성격과 헤어스타일은 취향대로 골라주세요. 잠자리 토크는 물론 웬만한 대화도 가능하답니다. 가격은 운송비 불포함 1,000만원. 구매하시겠습니까?

    커다랗고 보드라운 ‘물건’을 가진 섹스 로봇이 왔습니다. 성격과 헤어스타일은 취향대로 골라주세요. 잠자리 토크는 물론 웬만한 대화도 가능하답니다. 가격은 운송비 불포함 1,000만원. 구매하시겠습니까?

    섹스 로봇 하나만 놓고 본다면 영화와 드라마는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보여주는 마법의 거울 같다. 2001년 영화 에는 이미 섹스만을 위한 로봇이 등장했고, 2008년 일본 드라마 <절대 그이>에서는 꽃미남 애인 로봇이 택배로 배달되어 왔다. 영화와 드라마는 현실보다 한 발자국 앞서 발전을 거듭한다. 2년 전 영화 에 등장한 인공지능 그녀는 사람과 깊이 있는 감정을 쌓고 멘탈만으로 섹스까지했다. 작년에 방영된 미국 드라마 <휴먼스>는 로봇과 함께 살아갈 현실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줬다. 매춘부로 일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하고, 성인 인증 코드를 풀고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과 섹스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던가. 일본에서 개발한 세계 최초의 감정 인식 로봇 ‘페퍼’ 구매 계약서에 “페퍼를 성적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는 걸 떠올려보면 실로 실감 나는 에피소드다.

    그래서일까. 섹스 로봇 록시(Roxxxy)가 시판에 들어간다는 기사는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국에서 패했다는 소식보다 덜 충격적이었다. 록시는 인공지능 전문가 더글러스 하인스가 성관계가 필요한 사람이나 배우자를 잃은 사람을 위해 개발한 섹스 로봇이다. 2010년 성인 엔터테인먼트 엑스포에 처음 등장했고 지금 당장 트루컴패니언 홈페이지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키 170cm, 몸무게 54kg의 늘씬한 로봇 록시를 구매하는 과정은 마치 온라인 사이트에서 아바타를 꾸미는 과정과 비슷하다. 눈동자 색깔, 헤어스타일 등 열 가지 조건에 맞춰 외모를 선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성격’을 선택할 수 있다.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 주도적인 성격 등 다섯 가지 자아를 가지고 있다.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바로 섹스를 할 수 있지만 냉랭한 성격이라면 달콤한 말로 설득을 거듭해야만 섹스를 할 수 있다.

    섹스 토크뿐만 아니라 듣고 말하는 일상의 대화도 가능하다. 축구 게임이나 주식시장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단 얘기다. 구매자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싫어하고 감상적일 때도 있고 오르가슴도 느낀다. 보드라운 피부를 가지고 있고 체내가 따뜻해지며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가지고 있다. 졸려 하기도 하고 잠꼬대도 하고 굳이 코도 곤다. 물론 배터리를 충전해줘야 하고 매달 와이파이를 통해 업데이트도 해야 한다. 트루컴패니언은 여성과 게이 남성을 위한 남자 섹스 로봇 록키(Rocky)도 출시했는데 “크고 아름답고 움직이는 ‘사적인 부위’가 꿈결 같은 기분을 선사하고 록키의 에로틱한 성격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여자를 기다릴 줄 안다. 섹스하거나 대화할 수 있는 섹스 로봇의 가격은? 9,995달러. 팔다리가 없고 리스닝이 불가능한 ‘보급판’ 록시 베개는 995달러다.

    선주문으로 수천 대가 팔렸다고 하지만 록시와 록키의 사진을 보면 솔직히 실망이 앞선다. 이들과 육체와 정신이 하나 되는 진정한 섹스를 즐기려면 왕성한 성욕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 보인다. 섹스돌 같은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걷지 못한다. 인공관절을 가지고 있지만 팔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 대체로 다리를 벌리고 소파에 앉아 있을 뿐이다. 스리슬쩍 백허그를 하거나 섹스하기 전에 같이 장을 봐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을 수 없다는 얘기다. 존재 목적대로 섹스 로봇은 섹스에 충실하다. 실제 사용자들은 몸통에서 돌아가는 모터 소리만 참아낼 수 있다면 3시간 동안 충분히 뜨겁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후기를 남겼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인간의 뼈마디를 그대로 재현해 움직임이 정교하고 실제 살에 가까운 감촉을 가졌으며 게으른 터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섹스돌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24시간 섹스만 하고 살지 않기에 섹스돌이 아닌 섹스 로봇에게는 육체를 넘어선 공감을 기대하게 된다. 일상의 섹스라는 건 교감과 본능의 뒤섞임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록시와 록키는 말 많은 고성능 딜도에 가까워 보인다. 록시와 록키는 사람 사이 섹스를 대체하기엔 부족하고 로봇 페티시를 충족시키기엔 어설프게 인간답다.

    그럼에도 언젠가 로봇이 사람인 척해도 감쪽같은 세상은 도래할 것이다. 섹스 로봇을 두고 찬반론이 들끓는 것은 이 때문이다. 록시와 록키는 출시 전부터 반대 캠페인 사이트가 등장했다.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개발된 로봇은 여성과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보게하고 성을 착취하는 분위기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 공감 능력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편 성병이 예방되고 성매매가 줄어들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성적 트라우마나 조루증 환자, 소아성애자 치료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다.

    ‘섹스 로봇은 과연 인간의 섹스 라이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전제로 섹스 로봇에 대한 찬반양론 어느 쪽에 손을 들기 전에 의문이 먼저 든다. 기혼자가 로봇과 섹스하는 건 불륜일까? 하고 싶어 하지 않은 로봇을 붙잡고 섹스하는 건 강간일까? 짝사랑 대상과 똑같이 생긴 로봇을 주문 제작해서 섹스하면 초상권을 침해하는 것일까? 로봇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싶어지면 법원에서 받아줄까? 로봇과 섹스하기 전 우리는 로봇을 인격을 가진 존재로 대할지, 청소기와 동일하게 대할지 마음을 정해야 한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사람과 대화를 시작한 이상 로봇에게도 윤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에 따라 로봇은 법적 보호를 받는 첫 기계가 될지도 모른다.

    로봇은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발됐고 사람의 일을 대신하기 위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섹스는 로봇이 현재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청소보다 상당히 복잡한 것이다. 일단 트루컴패니언사의 기술 업그레이드와 파격적인 가격 할인 정책이 가장 시급하다.

    에디터
    조소현
    일러스트레이터
    JO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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