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복원된 디올 그라스 저택

그라스의 성을 방문하기 전, 먼저 들려주고 싶은 옛날 이야기가 있다. 뉴룩으로 새 시대를 열고 전 세계 상류사회 여인들이 열망하는 실루엣 시리즈를 창조했던 세기의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 하지만 이런 전설의 꾸뛰리에 손에 호미와 쟁기가 들렸던 시절이 있었으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시름 하나 없는 나날을 보내던 그도 전쟁을 피할 순 없었던 모양이다. 1929년 디올 가문의 사람들은 삶의 터전이었던 노르망디를 떠나 프랑스 남부 ‘바르’로 피란길에 올랐고, 프랑스가 독일의 점령을 받는 동안 그곳에서 채소를 재배하며 살았다. 종전 후 그는 우리가 아는 바대로 위대한 디자이너가 됐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당시 농지를 가꾸며 만났던 이웃들의 진실함,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라스와 남부 지방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자리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파리 몽테뉴가의 스타. 인간 디올로서의 감상은 그렇게 H, A, Y 실루엣의 알파벳 속으로 잊히는 듯했다.

그라스의 성을 방문하기 전, 먼저 들려주고 싶은 옛날 이야기가 있다. 뉴룩으로 새 시대를 열고 전 세계 상류사회 여인들이 열망하는 실루엣 시리즈를 창조했던 세기의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 하지만 이런 전설의 꾸뛰리에 손에 호미와 쟁기가 들렸던 시절이 있었으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시름 하나 없는 나날을 보내던 그도 전쟁을 피할 순 없었던 모양이다. 1929년 디올 가문의 사람들은 삶의 터전이었던 노르망디를 떠나 프랑스 남부 ‘바르’로 피란길에 올랐고, 프랑스가 독일의 점령을 받는 동안 그곳에서 채소를 재배하며 살았다. 종전 후 그는 우리가 아는 바대로 위대한 디자이너가 됐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당시 농지를 가꾸며 만났던 이웃들의 진실함,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라스와 남부 지방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자리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파리 몽테뉴가의 스타. 인간 디올로서의 감상은 그렇게 H, A, Y 실루엣의 알파벳 속으로 잊히는 듯했다.

디올이 46세가 되던 1951년, 마침내 그는 그라스 중심에 있는 성, ‘샤토 드 라 콜 누아르’를 인수한다. 매입 당시 그 저택은 몽토루 평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지만 와인 셀러와 헛간으로 쓰이던 방치된 공간에 불과했다. 디올은 리뉴얼을 위해 네오 프로방스 건축의 대가인 앙드레 스베친를 불러들였다. 성 주변의 부지는 그 지역 농업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꾸렸다. 그리고 직접 이 모든 작업을 섬세하게 진두지휘하기 시작한다. 뜰에는 화려한 가든을 꾸미고, 성 주변에는 수백 그루의 아몬드, 올리브, 체리, 포도나무를 심었다. 파리에 가 있을 때도 그는 끊임없이 그의 ‘프로방스 드림’이 실현되는 과정을 체크하곤 했다.

디올이 46세가 되던 1951년, 마침내 그는 그라스 중심에 있는 성, ‘샤토 드 라 콜 누아르’를 인수한다. 매입 당시 그 저택은 몽토루 평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지만 와인 셀러와 헛간으로 쓰이던 방치된 공간에 불과했다. 디올은 리뉴얼을 위해 네오 프로방스 건축의 대가인 앙드레 스베친를 불러들였다. 성 주변의 부지는 그 지역 농업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꾸렸다. 그리고 직접 이 모든 작업을 섬세하게 진두지휘하기 시작한다. 뜰에는 화려한 가든을 꾸미고, 성 주변에는 수백 그루의 아몬드, 올리브, 체리, 포도나무를 심었다. 파리에 가 있을 때도 그는 끊임없이 그의 ‘프로방스 드림’이 실현되는 과정을 체크하곤 했다.

“이제 이곳이 저의 진정한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 가 은퇴하고 나면 내가 크리스찬 디올이었음을 잊고 평범 한 개인이 될 수 있는 그런 집 말이에요.” 실제로 그는 샤토 드 라 콜 누아르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꾸뛰리에의 가면을 벗고 인간 디올로 돌아갔다. 그는 화이트 재스민 꽃길을 따라 매미 소리를 들으며 스케치를 하곤 했다. 그의 이런 변화는 이 성에 살 당시 그가 발표했던 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너무 조이지 않는 허리 라인, 전원의 넉넉함을 그대로 반영한 볼륨감, 자수 장식으로 섬세하게 꾸민 내추럴 패턴… 몽테뉴의 디올이 프로방스의 디올로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곳이 저의 진정한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은퇴하고 나면 내가 크리스찬 디올이었음을 잊고 평범한 개인이 될 수 있는 그런 집 말이에요.” 실제로 그는 샤토 드 라 콜 누아르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꾸뛰리에의 가면을 벗고 인간 디올로 돌아갔다. 그는 화이트 재스민 꽃길을 따라 매미 소리를 들으며 스케치를 하곤 했다. 그의 이런 변화는 이 성에 살 당시 그가 발표했던 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너무 조이지 않는 허리 라인, 전원의 넉넉함을 그대로 반영한 볼륨감, 자수 장식으로 섬세하게 꾸민 내추럴 패턴… 몽테뉴의 디올이 프로방스의 디올로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디올의 자서전, )을 끝마치는 지금, 프로방스 지역의 별장도 데커레이션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아직 완성 전이기에 새로운 집의 모습을 완벽하 게 묘사할 순 없지만, 심플하고 기품 있는 곳이 될 겁니다. 이 집의 기품이 제가 맞이할 인생의 시기를 잘 표현해주 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1957년 가을, 안타깝게도 디올은 자신의 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 성은 여동생과 가까운 동료에게 유산으로 남겨졌지만 몇 번이고 되팔리며 잊혀갔다. 그 후 샤토 드 라 콜 누아르는 2013년 디올 퍼퓸에 인수되어 2016년 복원에 성공하기까지 60년 동안 긴긴 잠을 자게 된다.

“이 책(디올의 자서전, <디올 바이 디올>)을 끝마치는 지금, 프로방스 지역의 별장도 데커레이션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아직 완성 전이기에 새로운 집의 모습을 완벽하게 묘사할 순 없지만, 심플하고 기품 있는 곳이 될 겁니다. 이 집의 기품이 제가 맞이할 인생의 시기를 잘 표현해주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1957년 가을, 안타깝게도 디올은 자신의 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 성은 여동생과 가까운 동료에게 유산으로 남겨졌지만 몇 번이고 되팔리며 잊혀갔다. 그 후 샤토 드 라 콜 누아르는 2013년 디올 퍼퓸에 인수되어 2016년 복원에 성공하기까지 60년 동안 긴긴 잠을 자게 된다.

2016년 5월, 가 샤토 드 라 콜 누아르를 방문했을 때, 이 성은 오랜만에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디올 퍼퓸 하우스가 이곳을 예전의 디올 생전 모습대로 복원하고 재단장한 것이다. 현관 바닥, 살롱, 디올의 사무실, 이집션 룸 등 성의 곳곳이 기록에 남아 있던 그대로 복구됐다. 샤갈, 피카소, 달리 등 디올 생전에 자주 함께 어울렸던 예술가들의 방은 그들의 취향과 스타일을 반영해 장식돼 있었다. 웨지우드 스타일의 작은 화분 하나부터 켄티아야자, 양치 식물, 장미를 가득 담은 꽃병을 침실마다 놓았던 무슈 디올의 라이프스타일까지 모든 것이 빈틈없이 섬세하게 되살아났다.

2016년 5월, <보그>가 샤토 드 라 콜 누아르를 방문했을 때, 이 성은 오랜만에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디올 퍼퓸 하우스가 이곳을 예전의 디올 생전 모습대로 복원하고 재단장한 것이다. 현관 바닥, 살롱, 디올의 사무실, 이집션 룸 등 성의 곳곳이 기록에 남아 있던 그대로 복구됐다. 샤갈, 피카소, 달리 등 디올 생전에 자주 함께 어울렸던 예술가들의 방은 그들의 취향과 스타일을 반영해 장식돼 있었다. 웨지우드 스타일의 작은 화분 하나부터 켄티아야자, 양치 식물, 장미를 가득 담은 꽃병을 침실마다 놓았던 무슈 디올의 라이프스타일까지 모든 것이 빈틈없이 섬세하게 되살아났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1951년부터 1957년까지 여기 살았을 인간 디올 의 하루하루, 그 시간의 퇴적이었다. 진짜 누군가 살고 있는 집처럼 구석 구석에 생활감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 다락을 기웃거 리거나 낯선 기둥의 모퉁이를 돌아설 때면 그곳에 무슈 디올이 서 있다 가 “자네, 내 집에서 뭐하고 있나?”라고 말을 건넬 것처럼 생생하다. 어떻게 과거의 찰나들을 복원해낸 걸까. 그리고 누가 이걸 해냈을까.

무엇보다 놀라운 건 1951년부터 1957년까지 여기 살았을 인간 디올 의 하루하루, 그 시간의 퇴적이었다. 진짜 누군가 살고 있는 집처럼 구석구석에 생활감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 다락을 기웃거리거나 낯선 기둥의 모퉁이를 돌아설 때면 그곳에 무슈 디올이 서 있다가 “자네, 내 집에서 뭐하고 있나?”라고 말을 건넬 것처럼 생생하다. 어떻게 과거의 찰나들을 복원해낸 걸까. 그리고 누가 이걸 해냈을까.

디올 가문에는 ‘브랜드 헤리티지 & 패트리모니 매니저’라는 재미있는 타이틀의 직업이 있다. 프레드릭 부르들리에는 디올 자체를 연구하고 그와 관련된 모든 기록과 자료를 수집해 후대에 남기는 일을 한다. “2008년 처음 디올에 합류했을 때까지만 해도 무슈 디올이 남부 지방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여기서 얼마나 많은 영감을 받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저 여동생 카트린이 남부에 살고 있었다 정도가 다였죠.” 디올 가문이 ‘프로방스의 디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카트린이 오빠의 가구를 팔기 시작하면서부터다. “2012년, 그녀가 판매한 가구를 구입하게 됐어요. 그것을 계기로 프로방스에 찍혀 있던 디올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성 매입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디올 가문에는 ‘브랜드 헤리티지 & 패트리모니 매니저’라는 재미있는 타이틀의 직업이 있다. 프레드릭 부르들리에는 디올 자체를 연구하고 그와 관련된 모든 기록과 자료를 수집해 후대에 남기는 일을 한다. “2008년 처음 디올에 합류했을 때까지만 해도 무슈 디올이 남부 지방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여기서 얼마나 많은 영감을 받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저 여동생 카트린이 남부에 살고 있었다 정도가 다였죠.” 디올 가문이 ‘프로방스의 디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카트린이 오빠의 가구를 팔기 시작하면서부터다. “2012년, 그녀가 판매한 가구를 구입하게 됐어요. 그것을 계기로 프로방스에 찍혀 있던 디올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성 매입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저택을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하자니 자료 외에도 증인이 필요했다. 프레드릭은 당시 무슈 디올과 알고 지냈던 이웃, 그와 함께 일했던 요리사, 건축가, 정원사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까지 찾아가 기억을 더듬고 기록을 수집했다. “저기 저 여든 살 할머니 보이세요? 당시 남편은 디올의 포도밭에서 일했고 자신은 라 콜 누아르 정원에서 장미를 수확했대요. 그리고 지금은 디올의 뮤즈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네요. 샤를리즈 테론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 직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군요.”

저택을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하자니 자료 외에도 증인이 필요했다. 프레드릭은 당시 무슈 디올과 알고 지냈던 이웃, 그와 함께 일했던 요리사, 건축가, 정원사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까지 찾아가 기억을 더듬고 기록을 수집했다. “저기 저 여든 살 할머니 보이세요? 당시 남편은 디올의 포도밭에서 일했고 자신은 라 콜 누아르 정원에서 장미를 수확했대요. 그리고 지금은 디올의 뮤즈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네요. 샤를리즈 테론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 직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군요.”

디올이 그토록 사랑했던 프로방스의 자연을 재현해낸 것은 조경 건 축가 필립 들리오였다. “당시 이 집을 리뉴얼했던 건축가 앙드레 스베친의 아카이브를 참고했어요. 그리고 당시 사진이나 디올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조경 계획을 기반으로 작업을 시작했죠.” 필립은 정원은 물론, 성을 둘러싼 수백 헥타르에 걸친 광활한 대지를 프레이그런스 플라워와 각종 과실나무로 채워나갔다. 화원 또한 은방울꽃, 튤립, 아가판투스, 제비꽃 그리고 장미 등 당시 디올이 심었던 거의 모든 꽃을 그대로 옮겨왔다.

디올이 그토록 사랑했던 프로방스의 자연을 재현해낸 것은 조경 건축가 필립 들리오였다. “당시 이 집을 리뉴얼했던 건축가 앙드레 스베친의 아카이브를 참고했어요. 그리고 당시 사진이나 디올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조경 계획을 기반으로 작업을 시작했죠.” 필립은 정원은 물론, 성을 둘러싼 수백 헥타르에 걸친 광활한 대지를 프레이그런스 플라워와 각종 과실나무로 채워나갔다. 화원 또한 은방울꽃, 튤립, 아가판투스, 제비꽃 그리고 장미 등 당시 디올이 심었던 거의 모든 꽃을 그대로 옮겨왔다.

“가능하다면 그의 기분까지도 공유하고 싶었어요. 저는 여기 오면 행복해지거든요. 디올이 그랬던 것처럼.” 실제로 디올은 자서전에 당시의 감정을 이렇게 서술했다. “마지막 문장을 쓰는 지금, 저는 몽토루에 있습니다. 운명이 나를 프로방스 근교의 잔잔하고 평화로운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밤이 깔리고 그와 함께 무한한 평화로움도 함께합니다.” 우리는 그날 저녁 어느 때보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한잔을 기울였다. 감정의 공명이라는 궁극의 복원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을 축하하면서.

“가능하다면 그의 기분까지도 공유하고 싶었어요. 저는 여기 오면 행복해지거든요. 디올이 그랬던 것처럼.” 실제로 디올은 자서전에 당시의 감정을 이렇게 서술했다. “마지막 문장을 쓰는 지금, 저는 몽토루에 있습니다. 운명이 나를 프로방스 근교의 잔잔하고 평화로운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밤이 깔리고 그와 함께 무한한 평화로움도 함께합니다.” 우리는 그날 저녁 어느 때보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한잔을 기울였다. 감정의 공명이라는 궁극의 복원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을 축하하면서.

사실 복원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85% 정도 완성된 상태라 감 춰진 통로나 복도, 숨겨진 계단, 지하 창고, 세탁실, 온실 등은 아직 공개 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프레드릭에게 “완성되면 다시 초대해줄 거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한다. “좋아요, 하지만 디올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초 대한 친구를 그런 곳으로 데려가진 않을걸요.” 정말 그대로의 디올이다.

사실 복원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85% 정도 완성된 상태라 감춰진 통로나 복도, 숨겨진 계단, 지하 창고, 세탁실, 온실 등은 아직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프레드릭에게 “완성되면 다시 초대해줄 거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한다. “좋아요, 하지만 디올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초대한 친구를 그런 곳으로 데려가진 않을걸요.” 정말 그대로의 디올이다.

 스타일과 기억, 물 질과 정신이 교차하는 것이 바로 향수다. 디올은 성공한 파리의 디자이 너였지만 이것은 그의 반쪽에 불과하다. 자연을 사랑한 프로방스 퍼퓨머 로서의 삶까지 모두 합쳐져야 비로소 완성형의 디올이 된다. 그는 언제 나 자신이 만든 드레스만큼이나 향수도 탁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미스 디올, 오 프레쉬, 디오라마, 디오리시모 그리고 오 소바쥬 같은 디올 의 초기 향수는 그라스의 꽃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이다. 디자이너 이자 조향사로서 디올은 자신의 첫 향수 탄생에 큰 영감을 주었던 그라스를 진심으로 아꼈다.

스타일과 기억, 물질과 정신이 교차하는 것이 바로 향수다. 디올은 성공한 파리의 디자이너였지만 이것은 그의 반쪽에 불과하다. 자연을 사랑한 프로방스 퍼퓨머로서의 삶까지 모두 합쳐져야 비로소 완성형의 디올이 된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만든 드레스만큼이나 향수도 탁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미스 디올, 오 프레쉬, 디오라마, 디오리시모 그리고 오 소바쥬 같은 디올의 초기 향수는 그라스의 꽃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이다. 디자이너이자 조향사로서 디올은 자신의 첫 향수 탄생에 큰 영감을 주었던 그라스를 진심으로 아꼈다.

영화 에도 등장한 그라스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물과 꽃의 도시로 기록된 축복받은 땅, 향기의 고장이다. 무슈 디올이 그런 그라스의 심장부에 위치한 성, 샤토 드 라 콜 누아르를 사들여 마지막 쉼터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디올이 이 성을 인수할 당시 그라스는 왕성한 향수 원료 사업으로 크게 번성 중이었고 그는 이곳에서 직접 재배한 꽃으로 만든 에센스와 앱솔루트를 넣어 향수를 만들고자 했다. 디올 퍼퓸만을 위한 디올 플라워를 키우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가졌던 것이다.

영화 <향수>에도 등장한 그라스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물과 꽃의 도시로 기록된 축복받은 땅, 향기의 고장이다. 무슈 디올이 그런 그라스의 심장부에 위치한 성, 샤토 드 라 콜 누아르를 사들여 마지막 쉼터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디올이 이 성을 인수할 당시 그라스는 왕성한 향수 원료 사업으로 크게 번성 중이었고 그는 이곳에서 직접 재배한 꽃으로 만든 에센스와 앱솔루트를 넣어 향수를 만들고자 했다. 디올 퍼퓸만을 위한 디올 플라워를 키우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때에 디올 퍼퓸이 그라스로 돌아온다는 건 향기의 오리진, 그라스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다. 이에 대해 프랑수아 드마시는 이렇게 설명한다. “시간이 지나 세상은 변했지만 땅과 자연조건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라스의 꽃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특히 장미와 재스민에 주목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그라스 지역의 재스민과 메이 로즈는 탁월한 향을 가졌어요. 그 에너지와 정교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이러한 때에 디올 퍼퓸이 그라스로 돌아온다는 건 향기의 오리진, 그라스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다. 이에 대해 프랑수아 드마시는 이렇게 설명한다. “시간이 지나 세상은 변했지만 땅과 자연조건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라스의 꽃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특히 장미와 재스민에 주목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그라스 지역의 재스민과 메이 로즈는 탁월한 향을 가졌어요. 그 에너지와 정교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1947년 탄생한 디올 최초의 향수, 미스 디올은 그라스의 오마주 그 자체다. “미스 디올은 반딧불이가 살아 있고 어린 재스민이 밤과 땅의 멜로디를 부르는 프로방스의 저녁으로부터 생겨났다”는 무슈 디올의 말 그대로의 향이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로즈를 비롯해 그라스의 햇빛을 가득 받고 자란 꽃의 생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이 컬렉션을 그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나.

1947년 탄생한 디올 최초의 향수, 미스 디올은 그라스의 오마주 그 자체다. “미스 디올은 반딧불이가 살아 있고 어린 재스민이 밤과 땅의 멜로디를 부르는 프로방스의 저녁으로부터 생겨났다”는 무슈 디올의 말 그대로의 향이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로즈를 비롯해 그라스의 햇빛을 가득 받고 자란 꽃의 생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이 컬렉션을 그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나.

올여름 선보이는 ‘미스 디올 앱솔루틀리 블루밍’은 달콤하고 먹음 직스러운 향으로 단장한 신제품. 우아한 피어니 어코드 위에 레드 베리의 달콤한 청춘이 춤을 춘다. ‘깨물고 싶은 향’이라는 표현대로 조향사 프랑수아 드마시는 장미 잼을 맛볼 때의 느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향을 조향했다고 밝혔다. “먹고 싶은 향이라는 건 조향사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무브먼트라고 할 수 있어요. 움직임이 느껴지거든요. 특히 젊은 세대들이 이런 향을 선호하는데 접근하기도, 사용하기도 쉬운 향이라 그런 것 같아요.” 쉬운 향이라 고급스럽지 않을 것 같다고? “천만의 말씀이에요. 미스 디올이잖아요. 기본은 로즈에서 출발해요. 거기에 과일 향을 좀더 강조하면서 작업한 거죠.”

올여름 선보이는 ‘미스 디올 앱솔루틀리 블루밍’은 달콤하고 먹음직스러운 향으로 단장한 신제품. 우아한 피어니 어코드 위에 레드 베리의 달콤한 청춘이 춤을 춘다. ‘깨물고 싶은 향’이라는 표현대로 조향사 프랑수아 드마시는 장미 잼을 맛볼 때의 느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향을 조향했다고 밝혔다. “먹고 싶은 향이라는 건 조향사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무브먼트라고 할 수 있어요. 움직임이 느껴지거든요. 특히 젊은 세대들이 이런 향을 선호하는데 접근하기도, 사용하기도 쉬운 향이라 그런 것 같아요.” 쉬운 향이라 고급스럽지 않을 것 같다고? “천만의 말씀이에요. 미스 디올이잖아요. 기본은 로즈에서 출발해요. 거기에 과일 향을 좀더 강조하면서 작업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