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레서피

신선한 줄무늬 농어를 준비한다. 소금과 후춧가루, 레몬, 타임 등으로 마리네이드한 뒤, 버터를 발라 석쇠에 굽는다. 로이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파란 생선’을 요리하는 법이다. 모든 미식가가 예술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예술가 중엔 유난히 미식가가 많다. 피카소는 소문난 식도락가였으며 달리는 음식과 사람을 섞어 즐겨 그렸다. 자기 어깨 위에 놓인 양갈비 고기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마치 애완동물처럼!) 여자 친구의 모습을 담은 ‘양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는 대표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또 어떤가. 궁중 요리사 경력을 지닌 이 르네상스맨은 친구 보티첼리와 함께 ‘세 마리 개구리 깃발 식당’이라는 요상한 이름의 술집 겸 식당을 개업한 적도 있다. 비록 접시 위에 달랑 네 조각의 당근과 안초비 한 마리만 올리는 파격을 시도함으로써 양머리 케이크 따위에 길들어 있던 15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외면당했지만, 사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웰빙 요리사였다. 다빈치의 요리 비법과 요리 관련 발명품에 관한 메모가 적힌 소책자 <엘 코덱스 로마노프(El Codex Romanoff)>에 따르면 스파게티를 개발한 것도 바로 그다. 이를 ‘먹을 수 있는 끈’이라 명명한 그는 내친김에 국수 가닥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삼지창 모양의 포크까지 발명했다. 어쩌면 그는 천재 예술가나 과학자보다 최고의 요리사로 기억되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여기, 자기만의 특급 레서피를 소개하는 일군의 예술가들이 있다. 지난 5월 부터 ‘디자인 없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토탈미술관은 그 일환으로 미술관 앞마당에 움직이는 식당을 차렸다. 미술가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로부터 각자의 사연이 담긴 레서피와 그림을 전달받아 실제 요리로 완성하는 ‘모바일 키친: 오픈 레서피’ 프로젝트다. 그래픽·제품 디자인 스튜디오 제로랩이 이동식 주방을 만들었고, 음식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푸드 콘텐츠 기획 회사 심플 프로젝트 컴퍼니가 조리를 맡아 매주 메뉴를 바꿔가며 점심 식사를 준비한다. 예술가가 직접 요리하는 날도 가끔 있다. 물론 장소가 미술관인 만큼 단순히 먹고 즐기는 데서 끝나진 않는다. 이 식사의 하이라이트는 재료의 원가가 적힌 특별한 영수증인데 여기엔 레서피에 대한 가치, 노동의 가치 등의 항목이 빈칸으로 남아 손님이 직접 전체 가격을 책정하며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가치를 고민하게끔 유도한다. 지금까지 작가 7인이 참여했으며 이 프로젝트는 이후 책으로도 만들 예정이다. 아래에 그 레서피를 소개하니 조리 과정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각각의 값어치를 생각해보라.


첫 번째는 안토니 문타다스의 토르티야. 피카소도 즐겨 먹었다는 바로 그 스페인식 오믈렛 말이다. 재료는 간단하다. 감자 4개, 양파 6개, 달걀 11개, 올리브유만 있다면 준비 끝이다. 요리를 시작해보자. 하나, 먼저 감자와 양파를 썰어 팬 위에 둔다. 둘, 팬에 올리브유를 뿌린 후 감자와 양파를 익힌다. 셋, 달걀을 풀어준다. 넷, 2번에서 익힌 감자와 양파를 3번의 달걀에 섞어준다. 다섯, 중간 불에서 익힌 후 팬을 뒤집어 완성된 토르티야를 접시에 담는다. ‘집밥 백선생’도 울고 갈 만큼 간단하지 않은가? 1,000원짜리 김밥과 원가 자체는 별반 차이도 없다. 하지만 이 레서피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문타다스라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이 음식의 가치엔 문타다스가 직접 그린 재료 스케치도 포함된다.


얼마전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 또 한 명의 스페인 작가 에바 알머슨은 토마토 콜드 수프 드로잉을 보내왔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차가운 수프는 빵과 토마토, 피망, 오이, 소금, 올리브유 등을 얼음물과 함께 갈아 먹는 스페인 전통 음식 가스파초의 새로운 버전인데, 기존과 달리 수박과 모차렐라 치즈, 새우 한 마리가 더 들어간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 먹는 신선하고 건강한 한끼 식사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리는 ‘행복 작가’ 에바 알머슨다운 메뉴다.


국내 작가들의 레서피도 흥미롭다. 아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트 스타 코리아>의 최종 우승자인 신제현 작가는 낙지 비빔면을 소개한다. 3년 전 친구가 포장해온 낙지 비빔밥의 남은 양념에 소면을 맛있게 비벼 먹은 기억이 있던 그는 이후 프랑스 작가들과 전시를 하면서 한 번도 낙지를 먹어본 적 없다는 그들의 말에 무용수, 음악가와 함께 낙지 비빔면을 만들어 먹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낙지 비빔면 자체는 평범하지만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비벼 먹는 낙지 비빔면은 기발하다.


정승 작가는 모처럼 파리 유학 시절의 추억이 담긴 매콤한 아리사(Harissa) 소스를 만들었다. 당시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 만능 소스를 알게 되었다는 그는 느끼한 음식에 지쳐 매 식사 때마다 이 소스를 곁들여 먹었다고 한다. 그때 생긴 별명이 ‘승소스’다. 작가는 이 소스가 육류와 생선, 구운 채소 요리는 물론 크림 파스타에도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고춧가루를 뜨거운 물에 불린 후,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볶아준다. 여기에 약간의 소금과 후추, 다진 마늘을 넣고, 레몬즙 한 스푼, 올리브유와 화이트 와인 각각 두 스푼, 마지막으로 볶은 고춧가루 페이스트 한 스푼을 추가한다. 실제로 이 아리사 소스를 바른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어봤는데 작가가 장담한 대로 확실히 맛은 기가 막혔다.

김도균의 까나리 액젓 파스타.

김도균의 까나리 액젓 파스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사진을 공부한 김도균 작가는 그무렵 즐겨 먹던 피시 소스 베이스의 파스타를 까나리 액젓 파스타로 변형시켰다. “한국에 돌아온 후, 그때 쓰던 이태리 남쪽 지방의 피시 소스와 맛이 비슷한 까나리 액젓으로 파스타를 해 먹어봤는데, 제 입맛에 잘 맞더군요. 지금도 작업실에서 가끔해 먹는 아주 간단하고 담백한 파스타입니다.” 만약 까나리 액젓이 없다면 멸치 액젓을 넣어도 무방하다.

“시작은 문타다스였어요.”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신보 슬 책임 큐레이터가 말했다. “재작년 토탈미술관에서 문타다스의 한국 첫 개인전이 열릴 무렵이었어요. 전시 준비를 위해 서울에 와 있는 동안 미술관이 문을 닫는 저녁 6시만 되면 큐레이터들에게 진 토닉을 한 잔씩 말아주셨어요. 급기야 하루는 토르티야를 만들어주겠다고 주방을 점거하고 나서셨죠. 필요한 재료와 만드는 방법까지 손수 그림으로 그려보여주면서요.”


레서피를 모집한다는 소문이 돌자 작가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기다려왔다는 듯 저마다의 요리 비법을 전해왔다. 요리에 대한 예술가들의 애정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딸기 케이크, 반 고흐만의 독특한 양파조림, 프리다 칼로의 빨간 통돔 요리… 이들의 음식 사랑은 작품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피카소의 ‘미식가’에는 작가가 즐겨 먹었다는 허브 수프를 바닥까지 맛있게 싹싹 긁어 먹는 귀여운 꼬마 숙녀가 등장하고, 톰 웨슬만은 미국 가정식인 웨지 감자와 채소구이를 곁들인 스테이크가 들어간 정물화를 남겼다. 앞서 언급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의 요리 열정을 집대성한 걸작 ‘최후의 만찬’을 남기기도 했다. 풋참외꽃으로 치장한 검둥오리 넓적다리, 장어 요리, 잘게 썬 당근을 곁들인 삶은 달걀과 빵 등 그는 무려 2년 여의 공을 들여 이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려냈다.

TV 프로그램의 지칠 줄 모르는 ‘먹방’과 ‘쿡방’ 열전에 싫증이 났다면 오랜만에 미술관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미술 작품과 함께 동시대 창작자들이 만든 이색 요리를 실제로 맛보면서 말이다. 예술적 식도락을 즐기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