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Super 5 in SEOUL – ④ Stephen Jones (스티븐 존스)

2016.08.02

by VOGUE

    Super 5 in SEOUL – ④ Stephen Jones (스티븐 존스)

    패션계는 패션의 미래를 이끌 마켓으로 상하이와 도쿄가 아닌 서울을 지목했다. 그리고 2016년 상반기만 해도 많은 패션 전문가들이 서울을 방문했다. 서울에 들른 유명 디자이너 중 제일 영향력 있는 5인을 〈보그 코리아〉가 인터뷰했다. ▷ ④ Stephen Jones

    “어느 날 영국 에서 일하는 안나 하비로부터 전화 가 왔는데, 다이애나 비를 위한 의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당시 제가 그녀를 위해 모자 몇 개를 제작했죠.” 런던 코벤트 가든의 나이트클럽 블리츠(Blitz)의 ‘죽돌이’였 던 그의 명성이 런던 밖으로 뻗친 건 이때부터일 것이다. 스티븐의 초기 고객들은 ‘블리츠 키즈’들이었다. 80년대 뉴 로맨티시즘의 아이콘이었던 보이 조지, 스티브 스트레인지부 터 존 갈리아노, 이자벨라 블로우 등등. 스티븐은 당시 코벤트 가든에서 인기 절정이었던 매장 ‘PX’ 지하에 부티크를 마련해 고객을 맞았다.

    “어느 날 영국 <보그>에서 일하는 안나 하비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다이애나 비를 위한 의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당시 제가 그녀를 위해 모자 몇 개를 제작했죠.” 런던 코벤트 가든의 나이트클럽 블리츠(Blitz)의 ‘죽돌이’였던 그의 명성이 런던 밖으로 뻗친 건 이때부터일 것이다. 스티븐의 초기 고객들은 ‘블리츠 키즈’들이었다. 80년대 뉴 로맨티시즘의 아이콘이었던 보이 조지, 스티브 스트레인지부터 존 갈리아노, 이자벨라 블로우 등등. 스티븐은 당시 코벤트 가든에서 인기 절정이었던 매장 ‘PX’ 지하에 부티크를 마련해 고객을 맞았다.

    존스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민머리 를 고수하고 있기에 더 예전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일지 모른다. 그가 30년째 민머리인 이유 역시 흥미롭다. 술에 취한 친구들이 새해 전날 무심코 그의 머리를 밀어버렸는데, 우연히 매끈한 머리가 여성용 모자를 피팅하기에 알맞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바로 그 민머리에 한국의 갓을 씌우는 아이디어가 이번 촬영의 출발점이었다. 올해 60세 를 맞은 스티븐이 수백 명을 만나는 콘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컨퍼런스 일정 중에 도심 쉼터처럼 편히 들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한국의 정취를 듬뿍 담 은 곳으로 북촌 한옥만 한 데가 없었다.

    존스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민머리를 고수하고 있기에 더 예전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일지 모른다. 그가 30년째 민머리인 이유 역시 흥미롭다. 술에 취한 친구들이 새해 전날 무심코 그의 머리를 밀어버렸는데, 우연히 매끈한 머리가 여성용 모자를 피팅하기에 알맞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바로 그 민머리에 한국의 갓을 씌우는 아이디어가 이번 촬영의 출발점이었다. 올해 60세를 맞은 스티븐이 수백 명을 만나는 콘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컨퍼런스 일정 중에 도심 쉼터처럼 편히 들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한국의 정취를 듬뿍 담은 곳으로 북촌 한옥만 한 데가 없었다.

    촬영팀 모두가 언덕바지에 있는 한옥 대문 앞에 서서 고개를 빼고 스티븐을 기다리는 모 습을 보니, 다들 영락없이 명절에 멀리서 오는 친척을 마중 나간 사람들 같았다. 좁다란 골목을 비집고 점보 택시가 진입했고 문이 옆으로 스르륵 열렸다. “안녕하세요?” 환한 미소를 짓는 스티븐이 인사를 건넴과 동시에 이런저런 짐을 우리 손에 안겼다. “뭘 그렇 게 많이 갖고 오셨어요!”라는 대답이 한국말로 터져 나왔지만, 그 정성에 내심 감동한 것 도 사실이다.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친절히 인사를 건넨 그는 안뜰이며 정원이며 한옥 구석구석을 살폈다. “음, 이쯤이 좋겠군요.” 스티븐은 대청마루 앞에 모자를 세 줄 로 깔아놓았다. 스티븐 존스와의 대화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촬영팀 모두가 언덕바지에 있는 한옥 대문 앞에 서서 고개를 빼고 스티븐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다들 영락없이 명절에 멀리서 오는 친척을 마중 나간 사람들 같았다. 좁다란 골목을 비집고 점보 택시가 진입했고 문이 옆으로 스르륵 열렸다. “안녕하세요?” 환한 미소를 짓는 스티븐이 인사를 건넴과 동시에 이런저런 짐을 우리 손에 안겼다. “뭘 그렇게 많이 갖고 오셨어요!”라는 대답이 한국말로 터져 나왔지만, 그 정성에 내심 감동한 것도 사실이다.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친절히 인사를 건넨 그는 안뜰이며 정원이며 한옥 구석구석을 살폈다. “음, 이쯤이 좋겠군요.” 스티븐은 대청마루 앞에 모자를 세 줄로 깔아놓았다. 스티븐 존스와의 대화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VOGUE KOREA(이하 VK) 당신은 한국에 몇 차례 온 적 있어요. 이번 방문길에는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STEPHEN JONES(이하 SJ) 한국은 늘 큰 협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방문했어요. 몇 년 전 10 꼬르소 꼬모에서 안나 피아지를 기억하며 그녀가 썼던 모자를 전시했죠. 이번엔 콘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컨퍼런스 때문에 왔습니다. 행사를 진행한 수지 멘키스는 제가 모자 일을 시작할 때부터 인연을 맺었고 어제 같이 저녁 식사를 함께 한 코치의 스튜어트 베버스는 런던에 사는 친구죠. 이렇듯 지인들과 함께 서울에 오니 가족 여행 같은 느낌이 드네요.

    VK 오늘 모자를 여러 개 가져왔어요.
    SJ 우선 이 빨간색 모자 ‘방돔 광장(Place Vendôme)’은 내가 같이 일했던 여자들, 특히 안나 델로 루소에게 영감을 받아 제작한 거죠. 버킷 햇 모양의 ‘캔디랜드에서의 하루(A Day in Candyland)’ 모자는 꽃과 동물이 어우러져 있는데 친구와 딸에게서 영감을 받은 거예요. 양면 모자라서 한 면은 딸을, 한 면은 친구를 의미하죠. 나머지는 F/W 컬렉션 모자들이에요. 런던 소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는데, 그곳에 사는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에 대한 모자죠. 이브닝 파티장에서 쓰면 좋겠군요.

    VK 자신의 모자를 만들기도 하지만, 톰 브라운, 모스키노, 존 갈리아노 등의 모자도 만들죠. 그럴 땐 무엇에 가장 신경을 쓰나요?
    SJ 훌륭한 ‘청취자’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잘 이해해야 하죠. 또 모자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디자이너들이 상상하지 못한 것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 생각해보세요. 파티에 가면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과는 각기 다른 대화를 나눠요. 그게 사람과 사람이 이어져 있는 방식이니까요. 다른 디자이너를 만나면 이전과는 다른 식으로 대화를 해야 해요.

    VK 당신은 개인 고객을 위해 모자를 만들기도 합니다.
    SJ 마찬가지로 고객의 말을 우선적으로 들어야 해요. 그리고 그들이 모자를 씀으로써 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립니다. 모자는 코스튬과 같아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을 때 쓰기도 하거든요. 저에게 모자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파티나 이벤트를 위해 특별한 모자를 쓰고 싶어서예요. 얼마 전에는 어느 부부가 모자 제작을 의뢰했는데, 베니스에서 열리는 큰 파티에 간다고 하더군요. 그전에는 이렇게 만들어본 적 없는데, 한쪽 모자가 다른 쪽의 짝인 것처럼 만들었어요.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었죠.

    VK 살면서 정말 많은 인터뷰를 했을 것 같아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나요?
    SJ 음, 글쎄요. 하하. 지금 리졸리 출판사와 새로운 책을 준비 중인데, 이 책이 제가 받았던 수많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겠네요. 장담해요. 제목은 예요. 기념품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여기에는 호화롭고 아름다운 사진도 들어가지만, 제가 다섯 살 때 어머니에게 쓴 웃긴 편지, 어린 시절 사진 등 작은 추억도 포함됩니다. 그 옛날 마크 제이콥스의 컬렉션 모자를 만들던 때도 담겨 있어요. 마크 제이콥스가 “스티브, 나는 모자를 크게 만들고 싶었는데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모자를 작게 만들었어!”라고 한 때도 등장하죠.

    VK 당신은 V&A에 처음 가서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어요. 2009년에는 V&A에서 당신의 전시를 공동 큐레이팅했고 10만 명이라는 관람객이 모였죠. 몇몇 모자는 V&A에 영구 소장됐어요.
    SJ 내가 만든 모자가 박물관에 소장된다는 건, 내가 죽어도 모자는 그곳에 계속 있을 거라는 뜻이잖아요. 아, 언제까지고 ‘계속’ 있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큰 영광이죠. 박물관에서 사람들이 내 모자를 보고, 내가 다른 사람의 모자를 볼 때만큼 흥미롭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VK 그렇다면 V&A 뮤지엄에서 패션에 대한 꿈을 품었던 1970년대로 돌아간다면 자신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나요?
    SJ 40년 전이라… 음… “걱정하지 마.”

    VK 걱정하는 삶을 살아서 그런가요?
    SJ 물론이죠. 저 역시 많은 사람들처럼 걱정하며 살았죠.

    VK 늘 영감을 주는 사람들과 어울렸던 것 같아요.
    SJ 작업에 영향을 준 존재 중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넘버원은 친구예요. 그다음은 모자를 쓰는 사람들. 친구들은 대화를 통해 늘 영감을 주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모자를 만들어주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친구였을 거예요.

    VK 그렇다면 당신에게 클럽은 어떤 의미였나요?
    SJ 클럽에서 보낸 시간이 모자를 만드는 데 영향을 많이 줬어요. 내 모자는 실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이유요? 모자가 아무리 크고 특이해도 춤을 출 수 있다면 그만이니까!

    VK 모자 만드는 사람에게 푸페(Poupées. 두상 모양 인형)는 어떤 의미인가요?
    SJ 패션 디자이너로 치면 마네킹과도 같죠. 우린 매일 푸페와 마주 보며 일해요. 그래서 모자 만드는 사람은 작업할 때 가끔 푸페에 캐릭터를 부여하기도 하죠. 하지만 매일 핀으로 찌르는 대상이기도 하니, 푸페에게는 우리의 작업이 고문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네요.

    VK 오랜 시간 앉아 작업하면 요가든 스트레칭이든 뭐든 필요할 것 같아요. 건강을 위해 뭘 하나요?
    SJ 물론 스트레칭도 하고 달리기도 해요. 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는 남산공
    원을 뛰고 왔어요. 해가 막 뜨자마자 운동했는데 사람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군데군데
    꽃이 피어 있는 게 참 아름다웠어요.

    VK 당신이 꿈꾸는 작업실은 어떤 모습인가요? 모두가 행복한 작업실?
    SJ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하하. 직원들이 작업실에서 뭔가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작업실은 그저 하나의 공간이 아니니까요. 직원들이 일에 성취감을 느꼈으면 합니다.

    VK 작업실에 오자마자 맨 먼저 하는 건 뭔가요?
    SJ우선 코트와 모자 순으로 벗어놓아요. 늘 모자를 잊어버리지만! 모자가 너무 많아 그래요. 그리고 앞치마를 둘러요. 사실 아침에 바로 스튜디오로 출근하지 않고 오전 10시까지는 집에서 일해요. 그래야 오전의 교통 체증을 피할 수 있거든요. 제가 제일 늦게 출근하기에 직원들에게 장난으로 “굿 이브닝!”이라고 인사하며 들어오죠. 사무실에 오면 오늘의 할 일과 변동된 일정에 대해 어시스턴트와 얘기해요. 그리고 디자이너와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상의하고 기자들을 만나죠. 그리고 오후에는 고객들과 모자 피팅을 해요.

    VK 당신에게 모자 없이 집을 나서는 건 불가능해 보여요. 어떤 기준으로 매일 쓸 모자를 고르나요?
    SJ 정말 불가능해요. 하하. 저는 매일 다른 모자를 써요. 우선 편안한 모자가 좋아요. 여행 갈 때는 부드러운 모자를 주로 챙겨요. 격식을 차릴 수 있는 모자 한두 개, 그리고 캐주얼한 모자 열 개 정도. 찌그러질 수도 있으니 모자 상자에 넣어서요.

    VK 예전에 사람들이 모자를 가방, 신발 같은 액세서리에 비해 덜 중요하다 생각한다고 말한 적 있어요. 2016년인 지금도 마찬가지일까요?
    SJ 네, 사람들은 매일 신발을 신고 매일 뭔가를 갖고 다녀요. 하지만 매일 모자를 쓰는 사람은 흔치 않죠. 그러나 옷 입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자를 쓸 거예요. 언젠가는 ‘패셔너블하다’의 기준은 어떤 핸드백을드느냐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패션에서 모자를 더 강조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VK 수십 년 동안 창의적일 수 있는 비결은 뭔가요?
    SJ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저는 제 삶을 모자로 표현해요. 다른 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늘 제가 하고 있는 것, 내가 관심 있는 것을 모자에 투영하죠. 그래서 내 작업이 항상 변화하는 거예요. 삶은 늘 변하니까요. 저는 항상 새로운 걸 만들길 원해요. 그리고 그게 패션의 포인트죠. 새로움으로써 누군가를 고취시키는 것!

    VK 어떨 때는 슬럼프가 찾아올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자신만의 극복 방법이 있나요?
    SJ 터치 우드(Touch Wood)! (영국식 속담으로 행운을 빈다는 뜻. 스티븐은 동시에 대청마루의 나무를 ‘탁!’ 하고 쳤다) 나는 늘 바쁘게 살아요. 내 브랜드의 모자, 다른 패션 브랜드의 컬렉션 모자를 만드는 것 외에도 많은 걸 하죠. 최근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열린 롤링스톤스 전시 에 참가한 것처럼 매번 새로운 일을 해요(이 전시에서 스티븐은 롤링스톤스의 의상 전시용 마네킹에 씌우는 모자를 100개쯤 제작했다).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젊은 모자 제작자를 도와주려고 하죠. 어딘가에서 읽은 구절이 기억나는군요. “만약 당신이 지루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당신이 지루한 것이지 당신을 둘러싼 세계가 지루한 게 아니다.”

    VK 지난날 모자 디자이너로서 이룬 업적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나요?
    SJ 우선 영국 여왕으로부터 OBE(대영제국 4등 훈장)를 받은 것. 하지만 사실 제가 이룬 것 중 가장 큰업적은 바로 매일 모자를 만들었다는 거죠. 뭔가를 ‘하는 것’보다 ‘계속하는 건’ 정말 어렵기 때문이에요. 한편으로 매일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큰 영광이죠. 창의적인 사람으로서, 어떤 걸 만드는 건 숨 쉬는 것과 같아요.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요. 어떤 큰 야망과 꿈을 품고 있느냐고, 제일 어려웠던 도전은 무엇이냐고. 나는 그저 ‘다음’ 모자를 만들 궁리를 해요. 그게 내 야망이에요. 하루하루, 하나씩 모자를 만드는 것!

      에디터
      남현지
      포토그래퍼
      HYEA W.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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