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 & MOMENTS – Chapter Five

국내 최초의 대규모 한국 패션 전시가 오는 9월 1일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에서 열린다. 1910년대 긴 저고리와 통치마를 비롯, 한국현대의상박물관과 경운박물관의 소장품부터 명동 시대를 꽃피운 1세대 한국 패션 디자이너들의 당대 의상과 오늘날의 스트리트 룩까지, 한국 패션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아카이브 전시다. <보그 코리아>가 창간 20주년을 맞아 오랜 시간 준비해온 展. 시간 여행을 테마로 한 이번 전시는 패션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짚어본다는 점에서 지금껏 보아온 여느 패션 전시와 다른 차별성을 갖는다.

<보그 코리아>의 초대 편집장이자 두산매거진의 에디토리얼 디렉터 이명희 상무와 독립 기획자로 활동 중인 <보그 코리아>의 전 피처 디렉터 이미혜가 기획하고, 스타일리스트 서영희가 패션 큐레이팅을 맡아 시대별 의상을 고증한 이번 전시는 패션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회, 문화, 예술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전통문화와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의 근원을 탐구해온 미술가 최정화가 전체 공간을 총감독하고,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가 전시 전반의 디자인을 담당한다. 또 지난 전주국제영화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총괄한 스튜디오 헤이조(Hey Joe)의 조현열,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무대 미술가 여신동, 비주얼 아티스트 빠키(Vakki), 독특한 발상으로 핀란드 디자인계를 사로잡은 송희원(Aamu Song) 등이 각각 공간을 맡아 연출한다. 2014년 <논픽션 다이어리>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넷팩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감독 정윤석은 패션에 관한 한 편의 논픽션 드라마를 만들었다. 그 밖에 사진작가 육명심, 이갑철, 조춘만, 김형선, 도예가 이승희, 설치 미술가 김호진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디자인으로서의 패션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DJ 소울스케이프는 각 시대의 음악을 재해석해 공감각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지금부터 패션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타고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모던! 모든 것이 모던이다. 모던껄 모던뽀–이, 모던대신, 모던왕자, 모던철학, 모던과학, 모던종교, 모던예술 (중략) 1930年을 中心으로 새로히 생긴 사회적 조건의 반영인 일부 인간생활의 이데올로기를 표시하는 ‘모던이즘’의 ‘모던’은 지금에 우리가 한번 밧게는 더 쓰지 못할 고유명사의 ‘모던’이다.”
–임인생(壬寅生)의 ‘모던이씀’, <별건곤> 25, 1930. 1.

1910년, 열차가 다니기 시작한 지 고작 1년이 되지 않은 경성역 앞은 이제 막 패션에 눈을 뜬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모던 광장이었다. 긴 저고리와 통치마 혹은 양장을 입은 신여성들은 거추장스러운 쓰개치마 대신 검은 양산을 쓰고 거리를 활보했다. 한껏 멋을 부린 양복 차림의 신사들은 지팡이를 들고 갓 정비한 도로를 산책했다. 아스팔트와 지팡이는 근대 문명이 침윤한 경성의 대표 풍경이었다. 당시 동양극장의 전속 극작가였던 이서구는 지팡이라는 장신구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개성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지팡이를 팔에 걸면 신문기자고, 벚나무로 만든 것이라면 사회주의에 관심 있는 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신식 학교에 다니던 여학생들 사이에선 긴 머플러가 유행했다. 여우털 목도리와 작고 깜찍한 오페라 백은 귀부인들의 로망이었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현대무용가 최승희처럼 귀밑까지 머리를 짧게 자른 단발랑들은 존재 자체로 화제였다.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패션은 단 하나의 낭만적 환상이었다. 무더운 여름, 밀짚모자를 쓰고 맥주를 마시던 시인 백석(“동해여, 오늘밤은 이러케 무더워 나는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닙네.”)과 미츠코시 백화점(현 신세계 백화점 본점)의 이국적인 옥상정원에 앉아 <날개>를 구상하던 시인 이상을 상상해보라. 번쩍이는 금시곗줄과 금테 안경으로 재력을 과시하며 케이프 코트 자락을 날리던 김중배의 불순한 야망과 그의 다이아몬드 반지에 마음을 뺏긴 심순애의 어리석은 욕망, 이수일의 가난한 순정도 있었다. 신분제도가 막을 내린 근대 조선에선 패션이 곧 계급이었다.

몸빼 바지를 입지 않으면 버스나 전차조차 탈 수 없었던 일제강점기 말기의 패션 암흑기를 지나 해방 직후의 혼돈과 한국전쟁의 시련을 겪은 서울에 비로소 패션의 봄이 찾아온 건 1950년대 중반 이후다. 머리를 곱게 볶은 자유 부인들은 홍콩에서 밀수입해온 양복지로 옷을 지어 입고 백구두를 신은 멋쟁이 마카오 신사들과 함께 사교장과 댄스홀을 누볐다. 청요릿집과 다방, 양장점이 즐비하던 명동은 이 모든 패션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명동 족속’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은 남자건 여자건 간에 겉보기에 일목요연하다. 최신, 최고… 무엇이든 이 두 가지 요건이 구비된 것만 몸에 붙이고 또 가까이 한다는 것이 이들의 신조인데 여하간에 한국의 유행은 서울에서 퍼지고 서울의 유행은 명동에서 시작된다.”
– ‘서울의 축소판 명동의 하루’, <동아일보> 1957. 11. 25

1940년 종로1가에 송옥 양장점을 개점한 오송죽, 심명언 부부는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 가 부산 광복동에서 장사하다 서울이 환도된 후 다시 명동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양재 기술을 배운 후, 한국인 최초로 양재학원을 설립, 운영한 최경자도 그 뒤를 이어 명동2가에 국제양장사의 문을 열었다. 노라 노와 함께 1세대 한국 패션 디자이너를 대표하는 최경자는 교육자로서도 큰 역할을 했다. 1961년 개원한 국제복장학원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패션의 인재 양성소다. 당시 건물엔 양재학원뿐만 아니라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 워킹을 가르쳐주는 차밍스쿨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지하 헬스클럽도 있었다고 한다. 디자이너 최초로 여성지 <여원>에 스타일 비평을 기고하기도 했던 최경자는 1968년 패션 전문지 <의상>을 직접 창간했다. 한국현대의상박물관의 도움으로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최경자의 청자 드레스는 한국에서 처음 열린 국제 패션쇼 참가 작품이다. 한복의 무지기 속치마를 응용해 고려청자 같은 우아한 볼륨감을 완성하고 이세득 화백이 실크 소재 위에 학과 소나무를 그렸다.

한국의 코코 샤넬로 불리는 노라 노는 스타 디자이너의 시대를 열었다. 1956년 반도 호텔 옥상에서 열린 국내 최초의 패션쇼 주인공도 바로 노라 노였다. 미국에서 패션을 공부한 노라 노의 세련된 디자인은 엄앵란, 최은희, 김지미 등 당대 여배우들의 사랑을 받았다. 60년대 패션 아이콘 윤복희가 귀국 후 첫 서울 리사이틀 공연에서 입었던 A라인 미니 드레스, 펄 시스터즈의 앨범 재킷 속 의상도 노라 노의 작품이다. 노라 노는 누구보다 먼저 해외 진출에 성공한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1970년대부터 기성복에 도전한 그는 아시아 여성 디자이너 최초로 뉴욕 메이시 백화점의 쇼윈도 15개를 점령했다. 한국산 실크로 제작한 투 버튼의 스트라이프 원피스가 특히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 전설적 디자이너가 여성들에게 선물한 건 단순히 옷이 아니라 패션이라는 아름다운 꿈이었다. 오죽하면 소설가 박완서조차 “유일한 사치가 노라 노의 옷을 입는 것”이었다 말했을까?

발랄한 명동 아가씨들에 이어 70년대 명동을 주름잡은 건 나팔바지 차림으로 통기타를 퉁기던 대학가의 얄개들이었다.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는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청년 문화를 꽃피웠다. 청바지 브랜드(‘와라진’)를 비롯해 제일모직의 골덴니트, 화신산업의 레나운 등 기성복 브랜드가 국내에 처음 생기고 섬유산업이 크게 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경부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유행은 서울을 넘어 방방곡곡까지 쭉쭉 뻗어나갔다. 유신 정권이 시작되며 미니스커트와 장발이 단속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기성 사회에 맞선 청춘의 저항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였다. 이데올로기 자체가 패션인 시대였다.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반전운동은 군복 패션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남녀평등과 여성 인권 문제가 대두되면서 바지는 새로운 여성 패션 아이템이 되었고, 자유에 대한 갈망과 소비 욕구가 충돌했다. 판탈롱과 청바지, 티셔츠, 바람에 날린 것처럼 자연스러운 웨이브의 긴 머리카락, 통굽 구두… 그리고 음악과 쎄씨봉! 컬러 TV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1980년대는 기이할 만큼 모든 게 과장되고 총천연색으로 번쩍거렸다. 어깨에 두툼한 패드를 집어넣고 허리는 벨트로 잘록하게 묶어 역삼각형 실루엣을 부각시킨 패션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화려한 컬러들과 과감한 헤어스타일, 큼직한 액세서리… 그동안 억눌려왔던 패션에 대한 욕구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듯했다. 상하의 컬러를 맞추고 구두와 가방, 장신구까지 통일하는 토털 룩도 인기를 끌었다. 80년대 후반엔 이에 대한 반동으로 모노톤의 컬러와 미니멀한 디자인이 유행하기도 했다. 어쨌든 모든 게 극과 극이었다. 숨 쉬기 힘들 만큼 몸에 꼭 달라붙어 몸매 라인을 강조한 보디컨셔스 룩이 뜨는가 하면, 프로야구 개막과 86 아시안게임, 88올림픽 등 전국이 스포츠 열기로 들끓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스포츠 캐주얼웨어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디자이너 박항치가 88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 제작한 아트 투 웨어는 과장된 어깨와 몸에 피트되는 라인 등 당시의 유행을 짐작하게한다. 사람들이 연예인의 패션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도 TV가 대중화된 80년대부터였다. 인순이, 김완선, 소방차는 당시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다. 김완선은 <하이틴> 등 잡지의 단골 모델이었고, 디자이너 신장경은 가수 인순이에게 눈부신 스와로브스키로 화려함을 더한 무대 드레스를 만들어주기도 했다.“서울 서울 서울!” 모두가 서울을 찬양하고 거리에선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 울려 퍼졌다. 풍요의 시대를 향한 서막.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국민소득은 매년 천 단위로 달라졌다. 사람들은 성공을 위한 비즈니스 룩, 파워 수트로 무장하고 성공을 향해 신나게 달려나갔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디자이너들은 해외의 트렌드를 좇는 대신 한복의 선이나 문양 등을 재해석해 한국적인 요소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일월오봉도 드레스와 민화 치마로 유명한 설윤형, 한복 치마를 변형한 오간자 드레스로 화제를 모은 미스 김 테일러의 김선자, 우리의 무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문광자 등이 대표적이다. 용무늬를 강조한 서정기의 밀리터리 코트, 수탉의 화려한 색감을 수놓은 박윤수의 대범한 가죽 드레스, 전통 활옷의 자수를 응용한 진태옥의 드레스도 빼놓을 수 없다.

SFAA(Seoul Fashion Artist Association)가 결성된 건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1989년이었다. 그 이듬해부터 서울에선 시즌마다 정기 컬렉션이 열렸다. 국내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해졌다. SFAA 초대 회장을 역임한 진태옥은 파리 무대에서 미인도와 도포 끈 등을 이용한 삼베 드레스를 선보였고, 1998년에는 한혜자, 설윤형, 지춘희, 박윤수 등이 뉴욕 컬렉션에 참가했다. 90년대 중반부터 파리 프레타포르테에서 컬렉션을 발표해온 문영희는 현재까지도 해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영 디자이너들은 ‘뉴 웨이브 인 서울 컬렉션’을 개최하며 각자의 개성을 발휘해나갔다. 서태지로 대변되는 X세대와 힙합, 옷 입는 스타일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인 압구정동 오렌지족과 홍대 펑크족, 해외 브랜드의 국내론칭, 라이선스 패션 매거진 창간. 그런지 룩부터 프린세스 룩까지 수만 가지 스타일이 혼재하고 토종 브랜드와 수입 브랜드, 동대문 패션과 짝퉁이 뒤섞였다. 밀리언셀러 음반과 100만 관객 영화가 탄생한 문화의 황금기에 한국 패션은 절정을 맞았다. 展에서는 과거 한국 디자이너들의 태동기와 전성시대, 2000년대 이후, 한국 패션의 새로운 변화와 지금 가장 뜨거운 신진 디자이너들까지 지난 한 세기의 패션사를 총망라한다. 흔히 볼 수 없는 역사적인 패션 아카이브뿐만 아니라 잡지 화보 속 패션의 변천사, 유명 연예인들과 무명의 패셔니스타들이 실제로 입었던 수백 벌의 진귀한 의상들도 감상할 수 있다. 8월 31일 오프닝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9월 22일까지 패션 시간 여행의 열차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갈 예정이다. 100년 전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이 거닐던 옛 서울역에서 이 특별한 열차에 탑승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