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코리아의 2세들 – 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요즘 패션계에 무임승차, 금수저, 특권층은 무의미한 단어다. 그 자체로 빛나며 뜨겁게 노력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 패션 코리아의 2세들. ▷ 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엘리스 안, Ellis Ahn

Ellis's Adventure 세퀸 드레스는 발렌티노(Valentino), 목걸이는 스베바(Sveva at Boon The Shop), 왕관은 무대의상 이도(Iydo). 헤어 / 권영은 메이크업 / 이나겸

Ellis’s Adventure
세퀸 드레스는 발렌티노(Valentino), 목걸이는 스베바(Sveva at Boon The Shop), 왕관은 무대의상 이도(Iydo).

엘리스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개암나무 열매 같은 눈을 깜박이며 가만히 앉아 주위를 관찰한다. 나뭇가지 위를 재빠르게 내달리다가 뭔가를 발견하고 갑자기 멈춰 선, 호기심 많은 다람쥐 같다. “어, 열여섯 살, 엘리스입니다. 네, 중학교 3학년이에요.” 자기소개는 그 나이 때쯤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 엘리스는 일곱 살 때부터 열 살까지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덜위치칼리지서울영국학교에 다닌다.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키가 겨우 170~173cm 정도여서 패션모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죠. 그러다 YG케이플러스 아카데미에 지원했는데, 적성에도 맞고 재미있더라고요.” 엘리스는 프리마돈나 2016 S/S 컬렉션 쇼로 런웨이에 데뷔했고 첫 쇼에서 어떤 옷을 입었는지도 아직 기억한다. “흰색 셔츠와 검은색 가죽 팬츠 그리고 파란색 데님 원피스요.” 소녀는 1년 사이에 키가 177cm가 됐고, 더 이상은 크지 않길 바란다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흐흐” 웃었다. 그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뾰로통한 새침데기일 거라고 상상하기 쉽지만 엘리스는 여태껏 늘상 반바지에 스냅백, 운동화만 신고 다니던 톰보이였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자신을 꾸미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워가는 중이다. “치마라는 걸 입어본 적도 없고, 옷 입는 데 5분도 안 걸렸어요. 그런데 요즘엔 30분씩 걸려요. 옷장 안을 찾아보고 다 꺼내 입어보게 되더라고요.” 엘리스에게 패션모델로서의 경험은 이상한 나라로 떨어진 앨리스가 겪는 모험만큼 신기하고 새로운 일의 연속이다. “뭘 하든 다 재미있어요. 제가 모델이 아니었다면 평생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수많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이 파란 가발처럼요! 제 머리카락을 이렇게 잘라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훌쩍 큰 키와 어른스러운 침착함은 장점이지만 그 덕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아직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많고 배울 것도 많은 10대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엘리스는 미간을 모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명해주는 컨셉이나 느낌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설명하는 그 느낌이 뭔지 잘 모르겠는데 표현해야 하면, 좀 어려워요. 이것저것 이야기해주시면 그게 뭘까, 싶어서 인터넷을 찾아보죠.” 소녀는 강승현, 강소영, 지지 하디드를 흠모하고 럭키슈에뜨와 제레미 스캇을 좋아하며, 온라인 게임 오버워치에 한창 빠져 있다. 그리고 성적이 떨어지지 않도록, 모델 활동 때문에 학교 수업을 더 이상 빠지지 않기로 했다. “아직 확실하게 정한 장래 희망은 없지만 모델이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부모님도 제가 진짜 뭘 하고 싶은지 찾아야 된다고 늘 말씀하시고요. 그래도 아빠는 제가 아빠의 길을 따라가는 거라서 좀뿌듯해하세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 조언도 많이 해주시죠.” 엘리스는 1980~90년대 패션모델로 활발히 활동한 일마레 안도일 대표의 외동딸이다. 그러나 그건 금수저도, 족쇄도 아닌 그냥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이미 그 자체로 모델계에서 급부상 중인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