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Vogue – ⑧ 이선미, 유희경

지난 20년 동안 숱한 아티스트를 뮤즈로 삼아온 〈보그〉는 이달 ‘Another VOGUE’라는 테마 아래 뮤즈에게 주체가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아티스트 20팀에게 ‘보그’ ‘패션’ ‘트렌드’ ‘서울’ ‘20’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와 함께 작품으로 지면을 가득 채워달라는 러브콜을 보냈다. 기꺼이 〈보그〉의 컨트리뷰팅 에디터가 된 아티스트 20팀은 각자의 방식으로 키워드를 해석했고, 촉감도 모양도 향기도 다른 스무 가지 작품을 보내왔다. ▷ ⑧ 이선미, 유희경

이선미, Lee Sun Mee – 내 머무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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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다가 버려진 안경알을 재료로 작업을 한다. 물려줄 수도, 빌려줄 수도 없는 안경알은 한 명의 사람이다. ‘내 머무름 자리’는 우리가 머물렀던 시간과 공간으로 세상이 이루어짐을 지구로 표현한 작품이다. 대륙과 바다의 형태에 맞춰 안경알로 엮은 작품에 빛을 쏘면 지구와 똑같은 그림자가 생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말했다. 안경알은 가까이 보면 흠집이 많지만 한발 떨어져서 보면 보석처럼 빛난다. 전 세계에서 빛나는 를 보고 지구를 떠올렸다. 전 세계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의 화려함에 감춰진 그림자도 보였다. 20년은 한 사람이 성인이 되는 나이다. 스무 살 이후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사용하다가 버려진 안경알을 재료로 작업을 한다. 물려줄 수도, 빌려줄 수도 없는 안경알은 한 명의 사람이다. ‘내 머무름 자리’는 우리가 머물렀던 시간과 공간으로 세상이 이루어짐을 지구로 표현한 작품이다. 대륙과 바다의 형태에 맞춰 안경알로 엮은 작품에 빛을 쏘면 지구와 똑같은 그림자가 생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말했다. 안경알은 가까이 보면 흠집이 많지만 한발 떨어져서 보면 보석처럼 빛난다. 전 세계에서 빛나는 <보그>를 보고 지구를 떠올렸다. 전 세계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보그>의 화려함에 감춰진 그림자도 보였다. 20년은 한 사람이 성인이 되는 나이다. 스무 살 이후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유희경, Yoo Hee Kyoung – 아직은 없는 아름다움을 위한 밤

의 20주년 소식을 듣고 뒷모습을 떠올렸다. 조금은 쓸쓸한 빛에 기대어 어둑어둑한 창밖이 보이는 사무실에서, 세상에 떠도는 아름다움에 대한 온갖 소식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이다. 화려함의 최전선은 사실 뒷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에디터라고 부르는 이들의 그 등이, 어쩌면, 아니 분명히 트렌드의 꼭짓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싣고 있는 잡지 이상의 잡지를 만들어온 사람들을 독자 모두가 기억해주고 축하해주었으면 좋겠다.

<보그>의 20주년 소식을 듣고 뒷모습을 떠올렸다. 조금은 쓸쓸한 빛에 기대어 어둑어둑한 창밖이 보이는 사무실에서, 세상에 떠도는 아름다움에 대한 온갖 소식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이다. 화려함의 최전선은 사실 뒷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에디터라고 부르는 이들의 그 등이, 어쩌면, 아니 분명히 트렌드의 꼭짓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싣고 있는 잡지 이상의 잡지를 만들어온 사람들을 독자 모두가 기억해주고 축하해주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없는 아름다움을 위한 밤

– Vogue 편집부에게

책상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창문이 보였고 나는 그것을
열고 잠시 아래를, 다음엔 공중을
보았고 그곳에는 여름의 바닥과 공중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방금 전화를 끊은 것처럼
적막이 지나가고 있다

창문에서 벗어나 다시, 낡은 노트 앞에 앉아
빛의 명멸로 가득한 거리를 상상해보려 하지만,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두운 책상 위
적지도, 적히지도 않을 어떤 이들의 밤

거울에 나신을 비추어 보는 숙녀처럼

환호의 낮과 사랑의 밤이
쇼윈도와 꺼지지 않는 간판을 지나
가리지 않는 욕망과 슬픔 사이를 지나칠 때
반복되지 않는 사건과 소란의 계절이
때 없이 형태와 내용을 바꾸어갈 때
그들은 스탠드 불빛에 기대어
아직 세상에는 없는 그러나,
사라질 수도 없는 것들을 기록한다

사라져버린 작은 부끄러움과
그로부터 비롯된 특별한 세계를 위해1)

십 년, 꺼진 적 없는 열정의 불에
감각의 날개를 태우고
남은 재처럼 부연 새벽을 통과해 귀가하는 동안
그들은
아름다움의 태동과 소진 없는 가치와 의미를
인적 드문 거리 위에 그려보는 사람들

닫혀 있으나, 열리려는 옷장의 망설임과
설렘의 사이를 서성이는 숙녀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창문을 본다
그것을 열고 잠시 아래를, 다음엔 공중을
그곳에는 여전히 여름의 바닥과 공중
그러나 어떤 아름다움이 흔적을 남기고 있다
더 이상 적막이 아니다
아직은 없는 아름다움을 위한 마음이
쏟아지고 있다 도시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시 시작될 새날들의 모양을 향해 간다.

1) <보그 코리아> 창간호 ‘에디터스 레터, What is VOGUE’의 일부 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