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햄릿

“연극(배우)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햄릿의 대사이자 김강우의 좌우명이다. 15년 전, 연극영화과 학생이던 김강우는 햄릿을 연기하면서 배우가 되기로 했다. 몇 년 전엔 술을 마시고 학교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극을 하고 싶어요.” 이제야 다시 햄릿이 됐다.

김강우, Kim Kang Woo

화이트 터틀넥 니트와 코듀로이 팬츠는 앤디앤뎁(Andy&Debb), 바이커 재킷은 산드로 옴므(Sandro Homme), 스니커즈는 컨버스(Converse).

화이트 터틀넥 니트와 코듀로이 팬츠는 앤디앤뎁(Andy&Debb), 바이커 재킷은 산드로 옴므(Sandro Homme), 스니커즈는 컨버스(Converse).

저건 땀인가? 눈물인가? 독백하는 햄릿, 김강우의 얼굴은 젖어 있었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땀이 아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호흡까지 대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연극 관계자는 김강우를 ‘필연적 햄릿’이라 부른다. 사실 그에게 햄릿은 처음은 아니다. 2001년 연극영화과 시절, 김강우는 <햄릿-더 플레이>의 전신인 <햄릿-슬픈 광대의 이야기>로 무대에 섰다. 당시 연출가가 갑자기 부재해 선배 김동연에게 연출을 제안했다. 지금 <햄릿-더 플레이>의 연출가 김동연이다. 몇 년 전 김강우는 술을 먹고 김동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극을 하고 싶어요.” 슬럼프였다.

미니멀한 울 소재 재킷은 닐 바렛(Neil Barrett), 니트 풀오버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미니멀한 울 소재 재킷은 닐 바렛(Neil Barrett), 니트 풀오버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대학 시절 햄릿을 연기하고 배우로 살리라 결심했어요. 모든 것을 쏟아부었죠.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연기를 만들었고요. 연기는 늘 제 안에 있었어요. 하지만 연기 외적인 부분이 절 힘들게 했죠. 저는 배우가 특별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돈을 벌고 생활을 영위하는 하나의 직업이죠. 그러면서 그 안에 예술이라는 가치관은 있어야 해요. 그런데 그게 흔들리는 순간이 와요. 이게 맞는 건가… 외로워지죠. 다시 햄릿을 연기하면서 15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간절함을 찾고 싶었죠.” 햄릿의 대사는 그가 배우가 되고부터 늘 좌우명이었다. “연극(배우)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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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연 후에는 ‘괜히 했다’ 싶었다. “날것 같은 첫 공연을 좋아하는 팬들이 있다지만, 아무래도 동선이나 여러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죠.” “이걸 50회나 할 수 있을까 싶었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거든요. 햄릿은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연극 배역일 거예요. 대사도 많고 감정 소모도 많거든요.” 말하는 그를 찬찬히 살피니 광대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볼이 핼쑥하다. 살이 너무 빠져서 걱정이라고 했다.

스티치 장식의 턱시도 수트와 셔츠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스티치 장식의 턱시도 수트와 셔츠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뭐든지 축약하는 단문의 시대에, 장문으로 얘기하는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우리도 축약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의 말하는 방식은 아니니까요. 나 혼자 신나서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지루하지 않을까. 이걸 해결할 방법은 감정밖에 없어요. 지루할 틈 없이 감정을 쭉 밀고 들어가서, 결국엔 믿게 해버리는 거죠.” 그는 감정을 덜 쓰고 표현만 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끝까지 해볼 수밖에 없다.

간결한 디자인의 셔츠와 수트는 노앙(Nohant).

간결한 디자인의 셔츠와 수트는 노앙(Nohant).

“진하게 부딪쳐보고 싶었어요. 아예 원점으로 돌아가자. 사실 겁도 났죠. 15년 만에 공연을 했는데 못하면 얼마나 창피해요.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배우로서 힘을 못 받을 거 같았어요. 이것이 좋은 해결책인지는 두고 봐야죠. 저만 잘되는 게 아니라, 이 연극을 만들고 참여한 모든 사람이 만족한다면 그렇겠죠?” 자신은 “TV에서 보던 배우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기하니 진심이 느껴진다”란 평가만 받아도 좋겠다고 말한다. “땀 흘리고 집에 돌아가는 새벽, 문득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때마다 내 선택이라고, 운명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