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계산법

김영란법은 모르겠지만 더치페이법이라면 환영이다. 한국인은 누가 밥값을 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한다.

셔츠는 푸시버튼(Pushbutton), 핀턱 스커트는 렉토(Recto), 스트랩 슈즈는 프라다(Prada), 가방은 펜디(Fendi), 카드 지갑은 콜롬보(Colombo), 시계는 로즈몽(Rosemont) at Gallery O'Clock, 반지는 하이칙스(High Cheeks).

셔츠는 푸시버튼(Pushbutton), 핀턱 스커트는 렉토(Recto), 스트랩 슈즈는 프라다(Prada), 가방은 펜디(Fendi), 카드 지갑은 콜롬보(Colombo), 시계는 로즈몽(Rosemont) at Gallery O’Clock, 반지는 하이칙스(High Cheeks).

글 쓰는 친구들끼리 작업실을 운영한 적 있다. 일하던 잡지가 망해 본의 아니게 프리랜서가 되거나 적게 벌고 자유롭게 살려고 회사를 뛰쳐나온 자들이었으니 형편이야 말할 것도 없이 곤궁했다. 나이와 경력도 엇비슷했다. 나 한 번, 너 한 번, 처음엔 우리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계산대 앞에서 누군가 말했다. “각자 내자.”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모두가 당황한 기억만 난다. 이유는 안다.

우리 사회에서 밥값을 낸다는 건 권력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사적인 자리라면 재력이 있거나 직급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쪽이 내는 게 보통이다. 그것이 권위의 가격이다. 그래서 숱한 ‘동네 형’들이 와이프에게 “당신은 호구”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때로 나이와 수입이 비례하지 않는데도 자신에게 유리한 기준만 적용해 늘 얻어먹는 사람도 있다. 그냥 “니가 해라 언니”라고 말하고 싶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반대다. 밥값을 내지 않는 게 곧 권위고 권력이다. 홍보할 게 있거나 팔 게 있는 사람 혹은 하청업체 사람이 돈을 낸다. 그것은 고스란히 회사의 운영 비용이 된다. 남녀 관계에서는 주로 남자가 낸다. 이 사회의 또 다른 불문율로 인해, 잠재적 연애 상대로서 테이블에 앉았다면 남자가 좀더 돈을 많이 벌거나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게 보통이고, 연애 초기라면 아쉬운 게 더 많아서, 관계가 확립되고 나면 권위에 대한 갈망이 더 큰 게 그쪽이라, 이래저래 돈을 내는 건 그들의 몫이 된다. 요즘 그 때문에 부아가 치밀어 ‘후식 정도는 사는 게 개념녀’라고 주장하는 남자들이 있는데, 내 경우 첫 데이트에 돈을 내는 건 ‘이 남자와는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 귀찮게 꼬투리 잡히지 않도록 아무것도 얻어먹지 말자’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권력이 엇비슷해서 ‘나 한 번, 너 한 번’ 하는 관계가 있다. 이때부터 정말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진다. ‘저 녀석은 지난번 음식을 소화시킴과 동시에 그걸 내가 계산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게 분명해!’라거나 ‘왜 자기가 살 땐 순댓국, 내가 살 땐 스테이크일까’ ‘왜 저 친구의 인생엔 축하할 일이 이다지도 많이 생긴단 말인가’ ‘왜 집안에 돈 많다는 자랑을 그렇게 하고, 매번 나는 취미도 없는 비싼 데서 만나자고 하면서 돈은 번갈아 내자고 하는 걸까’ 등등 수많은 ‘왜?’를 유발하는 얄미운 친구들이, 누구의 인맥에나 한둘은 끼어 있다. 씀씀이는 달라도 전경련 회원이 아닌 이상 한 번쯤은 가져봤을 의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밥값은 단지 돈의 문제는 아니니까. 그럼에도 이 의문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당신은 천하에 쩨쩨한 사람이 되고 만다. 겨우 밥값 정도를 가지고 뭘 그러냐고.

아무튼 이런 사회에서 짧지 않은 경제활동을 한 우리에게 “각자 내자”는 말은 이제 와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하는 것만큼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처음 몇 번은 체면 차리느라 쭈뼛거리기도 하고 그냥 자기가 내겠다고 호기도 부려보았지만 결국 우리는 이 편리한 방식에 적응했다. 매일 하루 두 끼 이상을 같이 먹는 사이에 ‘나 한 번, 너 한 번’ 순서 따지고 있느니 한 끼니 안에서 빚 안 만들고 계산 끝내는 게 훨씬 깔끔하고 편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 같이 주문하고 머릿수로 나눠 계산하는 한국 동호회 스타일이 아니라 각자 먹고 싶은 걸 주문하고 자기 것을 계산하는 유러피언 스타일이었다. 그러다 누군가 특별한 걸 먹고 싶거나 기분이 좋아 한턱 내고 싶으면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먹으면 되는 것이다. 취직이나 결혼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전까지 그 모임이 출세 전의 록 밴드처럼 흥겨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지지하는 이 편리한 계산법을 한국 사회의 다른 그룹에서 적용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따른다.

요즘 나는 수입이 변변치 않다. 남들 밥값까지 내줄 형편은 안 된다. 뜨는 레스토랑 찾아다니며 식도락할 처지는 더욱 못 된다. 그래서 내가 먹은 정도만 보태려 하면 아예 자기가 다 내겠다는 사람이 많다. 왠지 그 상황이 야박하고 치사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결국은 ‘나 한 번, 너 한번’이 되고 만다. 가까운 사이라면 후배들, 동생들에게도 그런다. 어쩌다 한 번 인세 같은 것이 들어오면 밥을 사는 것으로 간신히 마음의 짐을 부린다. 내가 계산하게 해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으니,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쳤는지 알 만한 노릇이다(짠돌이라 미안합니다!). 요컨대 나에게 밥값이란 내가 내자니 버겁고, 나눠 내자니 아깝고, 얻어먹으면 미안하고, 각자 내자면 민망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버겁고 아깝고 미안하고 민망한 것은 ‘누가 밥값을 낼 것인가, 얼마나 낼 것인가’라는 고민 그 자체다. 왜 이런 비효율적인 계산에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는가. 그런데 최근 국가 차원에서 그 비효율을 바로잡을 묘안이 제시되었다.

얼마 전 저녁 모임에서 모처럼 크랭크인을 앞둔 친분 있는 영화감독에게 밥값을 내라고 했다. 종종 같이 밥 먹고 술 마시는데 그때그때 맥락을 따져 돈 낼 사람을 정하곤 하는 관계였다. 그런데 그가 농담조로 “기자에게 밥 사는 건 김영란법에 위배된다”고 항변했다. 아직 시행 전이라고 눙치고 넘어갔다. 그런데 두고두고 말의 여운이 남았다. 김영란법의 취지를 떠나, 그것이 일상에서 술값, 밥값 몰아내기를 근절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떨 때 어떤 관계에서 법에 저촉되는지, 돈 3만원으로 어떻게 접대를 할 것인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냥 각자 계산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생겨나고 있다.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물 한 병까지 계산서를 나눈다는 몇몇 나라의 문화가 언론에 회자되기도 한다.

김영란법의 효용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더치페이법’이라는 별명만은 마음에 든다. 굳이 법으로 정해야 할 만큼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한국의 밥값 계산 문화를 돌아보게 만든 것만으로도, 나는 김영란 씨와 오래전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공적인 영역에서의 변화는 일상의 관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단은 이런 말로 골치 아픈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요즘 삼성페이, 애플페이보다 더치페이가 핫해요, 각자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