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곱게 입을 용기

2016.09.06

by VOGUE

    곱게 입을 용기

    드라마 속 40대 한국 여자와 뉴스 속 50대 영국 정치인을 보고 문득 ‘곱게’ 입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중년의 패션을 성숙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중요한 건 잘 입는 것 자체보다 잘 입고픈 욕망의 근원을 아는 것. 무엇부터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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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 드라마는 그저 그런데, 법정 드라마라 그런가 재미있어요! 안 보세요? 한번 보세요!” 진달래색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에바 가드너처럼 눈썹을 그린 여자가 말한다. 그날 밤 나는 그 드라마를, 그래, 한번 봤다. 음악과 카메라 앵글에 놀라다가 전도연이 아라비아의 밤 같은 짙푸른 스커트 수트를 입고 법정에 선 모습에서 ‘어어…’ 했다. 며칠 뒤 통화한 친구의 말마따나 연기는 끝내주지만 옷 잘 입는다는 말에는 아쉽던 전도연이 작정한 듯 입고 있다. 무릎 길이 스커트 수트, 하이웨이스트 팬츠, 화이트 셔츠나 실크 블라우스, 긴 재킷, 서류 가방과 시계. 이건 커리어 우먼 스타일의 전형이다. 그런데 여기에 포인트가 될 만한 의외의 컬러 사용과 선이 곱디고운 하이힐, 상의를 하의에 꼭 넣어 입는 방식 등을 사용해 느낌이 확 다르다. 비율과 선(패션에서 가장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으로 얻어낸 탐나는 스타일이다.

    영국 총리인 테레사 메이. 브렉시트가 결정되고, 이를 주도한 보리스 존슨이 차기 총리 후보로 유력시될 때 나는 ‘같은 미용실을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멍청이가 영국과 미국을 손에 넣는 건 아닌가’ 덩달아 암울해했다. 그러다 선명한 자주색 원피스에 입술 프린트 플랫 슈즈를 신은 테레사 메이가 등장했을 때, 속물인 난 그 옷차림에 그만 기분이 상쾌해지고 말았다. 언젠가 국제통화기금(IMF)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를 봤을 때처럼 말이다. 은발에 산뜻하고도 아방가르드한 스카프와 딱 떨어지는 팬츠의 절묘한 균형 감각은 돈을 주고라도 배우고 싶었다. 어머니는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랬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사람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것보다 좋은 소개장이라 하지 않았나. 사실 옷 잘 입는 여자는 주변에 차고 넘친다. 소셜 미디어만 둘러봐도 나이가 무색하게 스타일 좋은 여자들이 매일 축제를 벌인다. 그런데 전도연과 테레사 메이는 좀 다른 느낌이다. 그러니까 한 명은 굳이 젊어 보이려 하지 않고, 다른 한 명은 좀 제멋대로 입는다. 아무래도 이 두 가지는 나이 든 여자의 패션을 위한 키워드가 될 것 같다.

    화제의 드라마를 1화부터 4화까지 단숨에 본 나는 한밤중에 옷장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뭐 없나, 예쁜 거?’ 나날이 늘어나는 책과 비좁은 집 사이의 접점을 찾기 힘들어진 나머지 이렇게 외쳤다. “그냥 옷을 줄여야겠어. 어차피 내가 옷 입는 꼴을 보면 사계절 내내 바지는 똑같고, 상의만 반소매와 긴소매를 왔다 갔다 하잖아!” 살다 보면, 그러니까 40대 아내와 엄마로 살다 보면 “옷 입는 일쯤이야, 뭣이 중헌디?”의 순간이 온다. 그런데 전도연이 단 몇 시간 만에 ‘예쁘게 입은 40대 여성’이 되고 싶은 마음이 일게 한 것이다.

    나는 옷장 속에서 나의 상태를 짐작하게 하는 특질적인 면을 발견했다. 요약하자면 ‘과거에 대한 향수와 현실 부정. 미래는, 에라, 모르겠음’. 나의 옷장은 진작에 찾아온 40대를 유예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그 많은 면 티셔츠와 청바지 틈에는 한창때 입던 미니스커트와 캐미솔 톱이 여러 벌 그대로 있었다. 톰 포드와 구찌의 트랙 팬츠가 여태 살아남은 건 야단법석 로맨스의 개인적 기록이랄까? 나의 옷장이 거대한 아수라장인 건 육아와 체중 증가라는 특수한 상황만 지나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리라는 호기로운 작정 때문일 것이다.

    의외로 많은 여성들의 패션은 자기가 가장 아름답던 시절에 머물러있다. 얼굴의 탄성과 상관없이 10년 전과 똑같은 눈썹 모양을 고수하는 식이다. 30대 중반만 되어도 스타일링에 관한 가이드는 ‘예전처럼’ 젊어 보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러나 어쩌면 100년을 살아야 할지도 모를 우리의 한창때가 오직 과거에만 있는 거라면 가혹하다. 바로 지금을 한창때로 만들기 위한, 나이 좀 있는 여성이 현재 최고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첫 번째 할 일은 ‘헤어질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다.

    누구와 언제 어떻게 헤어질지는 자신만이 알 일이다. 어떤 사람은 65세에 하이힐과 헤어질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40세에 데님 쇼츠와 헤어질 수도 있다. 42세의 나는 미니스커트와 미니 드레스, 너무 많은 청바지, 브이넥 티셔츠와 이별 중이다. 물론 이별 1순위는 콜라겐과 수분이 많이 줄어든 낯설고도 익숙한 나의 몸이다. 반면 새롭게 사귀게 될 것들로는 무릎 길이의 A라인 스커트(점점 일자가 되어가는 몸에서 등과 허리를 구분해주고, 허리가 가늘어 보인다), 재단이 잘되어 몸의 라인을 살려주는 바지(탄력이 떨어지는 엉덩이와 허벅지의 살을 잡아줄 좋은 바지에 아낌없이 투자), 실크 셔츠(순전히 개인적으로 그냥 그게 나아서). 이 이별과 친교는 내가 단지 40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처럼, 그때는 그걸 입고 예뻤는데 지금은 아니기 때문이다.

    헤어질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데는 두 개의 거울이 도움이 된다. 하나는 뒷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 다른 하나는 확대경. 얼마 전 이사한 집은 벽에 붙은 전신 거울과 옷장의 거울이 서로 마주 보고 있어서 적절한 각도로 만나면 반듯하게 선 상태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보통 보이프렌드 진에 갭의 남자 티셔츠를 헐렁하게 입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런 나의 뒷모습이 4등신 남자 같다는 걸 알고 화들짝 놀랐다. 앞에서는 분명 6등신 여자였는데. 그 후로 나는 오랫동안 고수해온 긴 머리의 커트 라인을 재설정했고(하이힐을 포기했으니 적절한 비율을 위해 머리 길이도 달라져야 했다), 좀 타이트하게 입어 몸의 라인을 살리기로 했다.

    많은 뷰티 전문가들은 40대 이후에는 확대경을 자주 사용하라고 권한다. 나날이 달라지는 피부 톤과 쉽게 자리 잡는 잡티, 잔주름 등에 빠르게 대응해 메이크업 방법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확대경으로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어느새 노안이 찾아와 그동안 내 얼굴이 제대로 안 보였다는 것! 40대가 된 나의 눈은 얼굴 잡티에 대한 정보를 뇌로 전송하는 걸 생략 중이었다.

    바바라 그러프만이 쓴 책 <The Best of Everything After 50>에는 나이 든 여자들의 스타일을 위한 유용한 팁이 열거되어 있다. 예를 들어 누렇게 변색된 치아의 노화를 간과하지 말 것, 너무 많은 안티에이징 시술이나 수술을 하지 말 것(“예쁜 여자는 늙어도 예쁜가요?”라는 나의 질문에 성형외과 전문의는 “네, 고치지 않으면요!”라고 답했다), 체중과 체형에 맞는 자신만의 헤어스타일을 찾을 것(스타일은 종종 옷보다 머리 모양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운동할 것(고맙게도 의사들은 지나친 운동이 오히려 노화를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게으른 내가 추천하는 최소한의 운동은 코어 운동 중 하나인 플랭크.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몸을 반듯하게 해주는 힘을 길러준다), 상체 모양을 잘 잡아주는 속옷에 투자할 것(최근 속옷을 모두 라펠라로 바꿨는데 겉옷을 입었을 때의 모양이 확실히 다르다). 자, 이 정도면 충분한가? 뭔가 알맹이가 빠진 것 같다고 느낀다면 그건 정말 당신이 나이 든 여자라는 증거다. 중년은 어떤 것의 알맹이에 대한 탐색이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시기니까.

    유행이란 거대한 또래 문화라 할 만하다. 20대는 유행의 체득과 그것의 과시가 예쁜 나이다. 그런데 요즘 샤넬에서 에르메스, 알라이아로 손에 손잡고 넘어가고 있는 나의 또래들을 보는 마음이 피로한 건 무엇 때문일까? 성숙한 패션이란 우아한 스커트 수트에 있는 게 아니라 유행과 스타일을 넘어선 정체성 같은 것에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나의 다정한 친구들을 연약한 자아나 낮은 패션 자존감 같은 걸로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얼마나 촘촘한 사회적 좌표 속에서 살고 있는지 안다면 섣부른 폄하는 못된 일이다. 우리는 그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질문하고 답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지나친 모범생들일 뿐이다.

    지난 겨울, 꼼데가르쏭 매장에서 정말 멋진 여자를 봤다. 반백의 머리칼을 날카롭게 휙휙 자른 그녀는 검정 터틀넥 스웨터에 아방가르드한 검정 바지를 입고, 경추부터 요추까지 곧게 세운 채 옷을 고르고 있었다. 유행과 상관없이 그저 꼼데가르쏭을 입는 반백의 서울 여자라니! 그때부터 나는 종종 ‘일생 단 한 브랜드의 옷만 입어야 한다면 무엇을 입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그 답이 자꾸만 준야 와타나베여서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싶지만). 나는 아마 특정 브랜드의 정체성에 기대어 패션 정체성을 획득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건 쉽지만 가짜일 확률도 높다.

    의외로 많은 여성들의 패션은 자기가 가장 아름답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어쩌면 100년을 살아야 할지도 모를 우리의 한창때가 오직 과거에만 있는 거라면 가혹하다. 바로 현재 최고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첫 번째 할 일은 ‘헤어질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다.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대중화 시킨 심리학자 나다니엘 브랜든의 책 <자존감의 여섯 기둥>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은 스스로 자기 편이 되라는 부분이다. 남이 내 편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투쟁의 연속에서 패션은 구애의 수단이나 인정 받기 위한 타협밖에 되지 못한다. 패션은 개성의 표현이라지만 사실 옷 입기에서 내가 그냥 나인 순간은 대체 몇 번이나 있었나! 40대가 되고 나니 솔직히 이런 아슬아슬한 신경전이 지겹기도 하다. 전도연의 팔자 주름에 나의 마음을 싣자면, 그녀의 얼굴에는 ‘나는 그냥 나인데 이래도 뭐 꽤 괜찮지 않나!’라는 통쾌함이 있다.

    한국의 대통령이 영국 여왕을 알현할 때 찍은 기념사진에서 알록달록 패치워크 코트에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검정 비닐 장화를 신고 있던 게 바로 테레사 메이다. 그 사진을 보고 영국 여자의 영국식 의전 풍경에 기분 좋게 웃은 기억이 있다. 호피 구두에 대한 애착으로 ‘의회의 이멜다’로 통하기도 한 그녀는 “나는 머리가 있고 진지합니다. 그러니까 예쁜 신발을 신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나는 패션을 즐깁니다. 여자들은 정치든 비즈니스든 어떤 분야에서든 자기 자신인 채로 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자처럼 일해야 한다고 느낄 필요 없어요.”

    나는 나이 든 여자들이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거나 정성껏 눈썹을 그리는 행동에 매료되는 편이다. 그 속에는 시간을 초월해 지금 여기의 시간을 흠모하는 놀라운 삶의 기술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기시미 이치로의 말처럼 “지금 여기가 그냥 스쳐 지나가버리지 않도록”.

    에디터
    윤혜정
    황진선(패션 칼럼니스트)
    포토그래퍼
    ILLUSTRATION / PARK CHANG YONG, GETTYIMAGES / IMAZINS,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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