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불신증

언젠가부터 공산품을 믿을 수 없게 됐다. 텃밭에서 자급자족한 것만 먹고 살 수 없는 현대인에게 이것은 또 하나의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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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세탁조를 청소할 때가 된 것이다. 곧바로 세제에 대해 검색했다. 가습기 살균제 파동에 연관된 O·H·A·L사를 제외시켰다. 미드 <CSI>에서 새로 산 청바지에 묻은 화학제품 때문에 죽은 사람 이야기를 본 뒤로 먹는 것뿐 아니라 입는 것도 조심스럽다. 나는 하루를 살더라도 건강하게 살고 싶다.

몇 가지 제품을 정하고 구입처를 골랐다. 근무 중 사망한 비정규직에 대해 책임을 거부한 적 있는 대형 유통 회사 E와 H를 제외했다. 배송 기사들을 교묘하게 착취하기로 악명 높은 소셜커머스 C와 고객 개인 정보를 대거 유실하고도 책임을 회피 중인 인터넷 쇼핑몰 I도 걸러냈다. 나는 하루를 살더라도 떳떳하게 살고 싶다.

이제 선택지가 별로 없다. 동네 슈퍼마켓에 나가봤다. 이름 없는 회사의 ‘친환경 세제’라는 것이 눈에 걸린다. 성분표를 읽어본다. 대부분은 베이킹 소다고, 알 수 없는 성분 몇 가지가 섞여 있다. 알 수 없는 물질은 집에 들이는 게 아니지. 진열대 앞에 선 채로 ‘세탁조 청소, 세제 대용’이라고 검색해본다. 결국 나는 정직한 베이킹 소다 한 통과 식초 한 병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세탁조에 두 가지를 같이 붓자 부글부글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빨래에서는 더 이상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물건을 살 때마다 반복하는 과정이다. 유별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도 전엔 그랬다. ‘하루 2시간씩 운동하고 좋은 것만 먹어도 교통사고로 먼저 가더라. 당장 편하면 됐지 뭐하러 골 아프게 살아?’ 누군가 손수 만든 세제, 계면활성제 없는 미용용품 따위를 선물하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캐비닛에 쌓아뒀다. 나는 안전과 품질을 보증하되 대량생산으로 비용을 절감한 것이 브랜드라 믿는 평범한 소비자였다. 예컨대 수년 전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것이 공식 허가를 받지 않은 미심쩍은 신생 기업의 아이디어 상품일 거라고 아무 근거 없이 확신했을 정도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직접 써보고 축적한 제품의 데이터가 많아지고, 드라마보다 뉴스를 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프리랜스 에디터로서 기업의 홍보에 부역한 경험이 쌓여가면서, 나는 점점 의심이 많은 사람으로 변해갔다.

결정적 계기는 생리대였다. 생리할 때면 구토와 탈진은 기본, 자궁근종과 내막종 제거 수술을 받고 몇 개월의 임의 폐경까지 치른 뒤에도 지긋지긋한 생리통이 나아질 기미가 없자 속는 셈 치고 천 생리대를 쓰기 시작했다. 첫 달부터 당장 몸이 달라졌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대체 이놈의 회사들이 생리대에 뭘 갖다 바르고 있는 거지?’

비슷한 시기, 미용실을 끊었다. 새치 때문에 두 달에 한 번씩 염색한다고 했을 때, 지독한 화학제품 불신자인 친구는 염색약이 불임의 원인이라는 음모론으로 나를 겁줬다. 하지만 출장 갔다가 하루아침에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머리가 세었다는 선배도 주기적으로 염색하면서 애만 잘 낳았고, 염색약을 매일 만지는 미용사들도 마찬가지고, 무엇보다 내가 아이를 낳을 일이 없을 것 같기에 무시했다. 문제는 눈에 안 보이는 난소의 건강이 아니라 당장 자긍심 저하를 불러일으키는 모발의 건강이었다. 주기적 염색 2년 만에 나의 머리카락은 트리트먼트나 드라이로도 수습이 안 될 만큼 무참히 파괴됐다. 그제야 미용실 대신 집에서 천연 헤나로 직접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왜 사이비 종교에서 병든 자를 낫게 하는 퍼포먼스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알게 됐다. 몸으로 겪은 것은 안 믿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먹는 것, 입는 것, 바르는 것, 호흡하는 것 등 내 몸에 관한 한 기업화된 물건들을 경계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창 식품 산업에 관심이 생겨 관련 서적을 독파할 때는 대륙을 이동하는 농산물과 GMO, 공장식 축산에 대한 공포 때문에 도무지 살 게 없어 장 보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얼음정수기, 공기청정기, 자동차 에어 필터에서 유해 물질이 검출됐다는 뉴스에도, 고가의 수입 향초에 파라핀을 사용하고 있다는 보도에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관리받는 정수기는 물론이고 생수도 못 믿어서 직접 필터를 가는 주전자형 정수기를 사용하고, 향초도 만들어 쓰고 있으며, 공기청정기는 일부러 사지 않았으니까.

이제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름이 성분표에 적힌 물건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혼자일 땐 증조할머니가 안 먹었을 것 같은 음식은 삼가고, 몇 번 더 손이 가더라도 원재료와 생산자에 가까운 물건을 산다. 요즘은 건강과 관련이 없는 지출에서도 기업의 도덕성을 따져보는 버릇이 생겼다.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하려다가 정신 차려보면 독일, 일본 광학 기업의 과거 전쟁범죄를 조사하는 식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정신병에도 사회적, 시대적 맥락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윤에 눈먼 기업과 부패한 관리·감독 기관, 방만한 시스템의 부역자들 때문에 안방에 앉아 목숨을 잃을 수 있다거나, 나의 무관심이 그들을 배 불릴 수 있다는 노이로제에 가까운 의심은 내 생활을 적잖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러다 나도 모르게 뉴스 생방송 스튜디오에 몰래 들어가 “내 귀에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이 들었다!”라고 외치는 건 아닐까 불안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병을 애써 치유할 생각이 없다. 서기 2016년 대한민국에서 생존은 셀프고, 의심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