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뉴얼 유감

하루가 멀다고 서울의 공간을 리뉴얼 한다. 그런데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인더스트리얼과 빈티지뿐. 트렌드만 있고 정체성은 없다.

리뉴얼 유감

renewal

“쓰타야를 표방하고 싶나 본데, 호두나무 색은 너무 올드하고, 꽃집과 소품 숍이 뒤섞여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망.” 인테리어 컨설팅하는 친구는 교보문고 강남점을 다녀와서 페이스북에 이렇게 한탄했다. 오프라인 서점만의 살길을 보여주기 위해 리뉴얼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목재를 늘리고 조도를 낮췄지만 MD의 무분별한 배치로 ‘피로도’는 높아졌다. aA디자인뮤지엄의 김명한 관장도 아쉬움을 표했다. “지난 2~3년 동안 교보문고 지점의 리뉴얼에는 여백은 없고 유통만 있어요. 책을 보는 공간 자체가 없죠. 광화문 본점이 큰 테이블을 들여놨지만, 마케팅일 뿐이에요.”

최근 1970년대 아현동의 목욕탕을 개조한 예술 공간 행화탕에 갔다. 2년 후 재개발되면 없어질 목욕탕을 재생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만,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여관을 개조한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이나 최근 문을 닫은 대안 공간 커먼센터나 다들 비슷하다. 이제 내장재를 노출하고 낡은 타일을 장식처럼 두는 리뉴얼이 뻔하고 지루하다. 행화탕을 나와 요즘 한창 뜨는 동네 익선동에 갔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리고 밀려, 익선동에 모인 힙스터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선보였지만 역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인더스트리얼’ 그리고 ‘빈티지’. 철물점이었고 복덕방이었던 익선동의 공간을 리뉴얼하면서 이 둘을 벗어날 순 없었을까.

SSG 푸드마켓을 컨설팅한 비 마이 게스트의 김아린 대표는 해외 매체에 이런 질문 아닌 질문을 받았다. “어느 나라든 주류가 있지만, 한국처럼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곳은 처음이에요.” 소위 힙하다는 카페가 거의 비슷하다는 푸념에 김아린 대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이른바 센 인테리어보다 빈티지, 톤 다운된 무드를 좋아해요. 주류에 속하는 것을 편안해 하는 한국 사람들의 성향상 쉽게 변하지 않을 거예요. 당연히 상업 공간은 함부로 트렌드에 반할 수 없죠. 매출과 직결되니까요.” 하지만 웬만한 카페의 천장이 죄다 노출 콘크리트인 건 좀 너무하지 않나. “다른 인테리어를 쉽게 흡수하고, 빠르게 시공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해 ‘가성비’에서 압도적이죠.” 1980년대 안도 다다오가 건물 내·외장을 콘크리트로 마감해 공간감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 여전히 2016년 서울 카페를 점령하고 있다. 에스플러스 디자인의 김치선 소장은 “그것이 주는 가성비와 안전성은 경제적으로 불안한 사회가 만들어낸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더스트리얼이냐, 빈티지냐의 문제를 떠나 더 큰 문제는 트렌드만 있고 정체성이 없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태극당의 리뉴얼은 두고두고 아쉽다. 70년 역사를 가진 태극당의 분명한 정체성은 새로운 클래식을 선보일 기회였다. 김치선 소장도 그 점에 동의한다. “과거에만 집착한 디테일이나 감성팔이는 TV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심지어 빈티지가 아닌 빈티지풍의 무늬로 장식한 것에 전문가가 아닌 나도 놀랐고, 이럴 바엔 리뉴얼 없이 가는 게 낫지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태극당을 즐겨 찾던 김아린 대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 한다. “태극당 건물의 2층은 완전 보물 창고예요. 수십 년 전부터 모은 책, 샹들리에, 라디에이터, 나무 천장… 이 천장만큼은 꼭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걸 떼서 마감하려면 큰돈이 들고, 기술자가 있을지도 미지수라더군요. 새 샹들리에를 사면 5만원인데 옛것을 살려 쓰려면 500만원이 드는 식이죠. 건물주의 이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예요. 모두가 에르메스 메종처럼 다시 지을 수 있는 자금이 없잖아요.” 정체성과 크리에이티브는 번번이 가성비에 밀리기 십상이다.

가성비만의 이유는 아닐지 모른다. 코엑스의 3000억짜리 리뉴얼의 ‘폭망’은 어쩌란 말인가. 리뉴얼은 건물의 사용 목적이나 이용 방법이 달라지면서 요구된다. 코엑스는 저렴한 이미지를 벗어야 쇼핑몰계에서 살아남으리라 여겼고, 교보문고는 책을 사기보단 책이 주는 영감을 만끽하러 오는 이들을 위한 리뉴얼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변화를 100% 제대로 감지하진 못했다. 사람들이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놔두고 굳이 고급화된 코엑스를 찾고 싶을까, 교보문고 고객들이 책이 아닌 수많은 MD에 둘러싸이고 싶을까. 움건축사무소의 양지우 소장은 후암동의 헤럴드 스퀘어를 잘된 예로 꼽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한 엠피아트가 2015년에 리뉴얼한 건물로, 기존 신문사가 주는 권위를 없애고 개방형으로 만들었다. 강한 대칭과 계단 위주의 위압적인 입구를 폐쇄하고, 빛과 바람을 들인 카페를 만들고, 사무실도 위계 없이 배치했다. 이는 언론사를 향한 사회와 시민의 바람과도 통한다.

태극당처럼 역사가 오랜 공간의 리뉴얼은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야 숨 쉴 수 있다. 양지우 소장은 좋은 예로 정동의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을 언급한다. 기존 건물을 만든 건축가 김원의 방향성은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경직된 홀을 층마다 다르게 하고 투명한 방을 만들어 생기 있고 젊어졌다. 과거를 존중하면서 현재가 요구하는 바를 반영한 것이다. 태극당이 이왕 리뉴얼할 거였다면 정통성뿐 아니라 요즘 세대가 원하는 바를 더 고민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서울 리뉴얼에 대한 혹평이 가혹하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양지우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6  25 이후를 서울 재건의 시작이라 보면 이제 겨우 60여 년 됐어요. 앞으론 달라질 거예요. 일하면서도 느끼지만 리뉴얼을 가능하게 하는 자재 같은 하드웨어도 다양해지고, 경리단길, 서촌, 망원동 등 개성 있는 거리에서 보이듯이 그런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그는 서울 리뉴얼의 희망을 개개의 건물이 아닌 ‘거리’에서 찾는다. 익선동, 경리단길, 연남동, 망원동, 서촌 등 특화된 거리는 서울 리뉴얼의 훈훈한 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용산기지가 공원이 되고, 한양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새롭게 변화할 경리단길, 가로수길의 변모에 거는 기대도 크다.

여러모로 오는 10월에 공개될 aA디자인뮤지엄의 리뉴얼이 기대된다. 리뉴얼 컨셉을 묻는 질문에 이들은 ‘Few & Far’라는 브랜드 목표부터 언급했고, 이는 이번 리뉴얼이 aA 뮤지엄의 정체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설명으로 이어졌다. 다만 ‘인더스트리얼’이 주는 안전성을 포기하고 ‘컨템퍼러리’로 실험하는 이들의 행보가 너무 빨리 트렌드로 자리 잡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