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한반도를 달군 라이언의 매력

2016.09.19

by VOGUE

    한반도를 달군 라이언의 매력

    카카오프렌즈 라이언의 인기가 뜨거운 한반도를 지글지글 달구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탐구한 라이언도 몰랐을 라이언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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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술 취한 후배는 묻지도 않은 고백을 해왔다. “선배, 비밀인데요. 저 요즘 잠자기 전에 라이언 태그 검색해서 30분씩 보다 자요. 남들 남친이랑 통화할 때 저는 라이언 보다가 잔다고요! 개도, 고양이도 아니고 라이언이오. 제가 이래서 남자가 없는 걸까요?” 지인들의 라이언을 향한 고백담은 그 후로도 이틀에 한 번씩 이어졌다. “두 살 된 조카가 다른 인형은 베개 취급하는데 라이언은 꼭 끌어안거나 손을 잡고 잔다? 정말 이상하지?” 당사자는 말이 없기에 소감은 듣진 못했다. 그즈음이었다. 강남대로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 매장 앞에 구불구불 긴 줄이 눈에 띄었다. 휴대폰에서 폭염 재난 경보가 울려도 그 줄은 줄어들 줄 몰랐다. 한평생 살면서 엑소도, 나이키 리미티드 에디션도, 맛집도 아닌 오직 캐릭터를 위해 줄을 서는 광경은 처음 봤다.

    처음 라이언이 등장할 때만 해도 기존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에 대한 사랑이 차고 넘쳤기에 텃세가 좀 있었다. 원더걸스에서 선미가 탈퇴하고 혜림이 들어왔을 때처럼, <슈퍼스타K>가 뜨자 <위대한 탄생>, <K팝스타>를 줄줄이 제작했을 때처럼 ‘어디 얼마나 귀엽나 두고 보자’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기대보다 뭔가 심심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리락쿠마, 보노보노, 폰데라이언의 얼굴이 스쳐갔다. 충격적인 건 곰인 줄 알았던 라이언이 사실 사자라는 사실이었다. 갈기가 없는 게 콤플렉스인 수사자 라이언은 아프리카 둥둥섬 왕위 계승자였으나, 자유로운 삶을 동경해 탈출한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꼬리가 짧은 건 꼬리가 길면 잡히기 때문이었다! 라이언은 대한민국 드라마의 필수 요건인 ‘반전’을 갖춘 캐릭터였다.

    후발 주자에 대한 색안경은 라이언을 카톡 대화에서 이모티콘으로 사용하면서 녹아버렸다. 라이언은 울고 있는 튜브 머리를 ‘쓰담쓰담’하거나 공포에 질린 어피치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새로운 친구라기보다 원래 모두 절친인데 다른 친구들 챙기다가 한발 늦게 자기소개를 한 느낌이랄까. 게다가 라이언은 무표정했다. 뉴 페이스로서 자리 잡기 위해 엄청 어필해야 할 것 같은데 멋쩍은 듯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감정은 몸으로,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표현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안주연은 바로 이 무표정한 얼굴에서 평범한 현대인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편이죠. 소심하고 체면이 중요하잖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관계에 대한 욕구가 크죠. 사실 다른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는 외국인이나 연예인에 가까웠어요. 감정을 오버해서 드러내잖아요. 라이언은 조용히 파이팅을 외치는 느낌이에요. 티는 안 내지만 열심인 모습이 우리를 많이 닮았어요.” 친한 척도, 귀여운 척도, 불쌍한 척도 하지 않는 라이언은 등장 이래 이모티콘 스토어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라이언의 무표정한 얼굴은 감정을 이입해서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기분 좋은 상황에서 보면 기쁜 얼굴로, 민망한 상황에서 보면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보인다. 무표정 캐릭터의 시조새 격인 헬로키티 디자이너 야마구치 유코는 “보는 사람이 감정을 투영하려면 캐릭터의 표정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디자인적으로도 점 두 개, 굵은 선 두 개로 이루어진 라이언의 얼굴은 미니멀리즘의 극치다. 미니멀한 디자인은 선입견이 생기지 않고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라이언은 패션으로 친다면 블랙 재킷이나 화이트 셔츠 같은 존재인 셈이다.

    외모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라이언의 인기에는 큰 키도 한몫을 한다. 다른 캐릭터들과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라이언은 키도, 덩치도, 얼굴도 제일 큰데, 이는 뭔가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캐릭터 디자인을 하는 슈퍼픽션 김형일 대표 역시 라이언의 비례감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말한다. “실제 토끼와 곰이 덩치 차이가 나더라도 캐릭터 디자이너들은 키를 똑같이 맞추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라이언은 실제 사자처럼 덩치가 큽니다. 그 비례감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큰 키는 위로의 아이콘이자 조언자 역할을 부여받은 라이언에게 썩 잘 어울린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데서 세심하고 따뜻하게 챙겨주는 키 큰 남자. 라이언은 ‘츤데레’의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킨다.

    라이언의 출신 배경은 또 어떤가. 왕위 계승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찾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금수저’다. 라이언에게 중한 가치는 돈과 명예가 아니라 자유와 친구인 것이다. “우리는 남부러울 것 없이 모든 걸 가진 자가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데 대한 판타지가 있어요. 사실 석가모니도 있는 집 자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깨달은 바가 있어 출가하지 않았던가요? 현실 속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자유를 누리는 대가는 두려워합니다. 자유와 안전의 욕구는 배치되기에 결코 공존할 수 없어요. 라이언은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킵니다.” 라이언 스토리의 극적 효과를 물어보는 질문에 소설가 백영옥이 들려준 답변이다. 그칠 줄 모르는 호기심에 따라 마음껏 세상을 누비다가 삶에 안정이 필요한 순간 번듯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남자. 그녀는 라이언에게 털이 없다는 점이 제모 강박증에 시달리는 우리의 무의식을 건드렸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라이언이 완벽하게 제모된 사자라는 점에서 그루밍 잘된 남자가 떠올라요. 과거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해도 털은 야성미의 상징이었어요. 하지만 요즘 털은 더러움, 게으름, 지저분함, 불성실함을 상징하곤 하죠. 털에서 자유로운 라이언은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신남성’인 셈이죠.”

    라이언의 여유로움은 패션 감각으로도 나타난다. 카카오프렌즈 측은 일상의 패션을 반영한 패셔니스타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옷을 입어 더 잘나가는 캐릭터는 턱시도와 후드티를 입은 라이언뿐이다. 특히 하늘색 후디를 입은 라이언 인형은 극심한 품절 사태를 빚고 있다. “블루의 채도를 페일하게 떨어뜨림으로써 보색 대비를 통해 존재감을 명확하게 드러냈습니다. 귀를 표현한 후드와 소매 시보리, 후디 끈 디테일에서 섬세함이 묻어납니다. 적절한 길이로 잘린 후드 티가 라이언의 배를 살짝 드러내며 귀여운 이미지를 한껏 부각시키는 것 같습니다.” 91,2 디자이너 이구원은 이렇게 후드 티의 디자인적 가치를 평가했다. 턱시도로 격식을 갖출 줄 알지만 옷 좀 입어본 자만이 풍길 수 있는 캐주얼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다. 라이언 출생의 비밀을 알 턱이 없는 친구의 두 살짜리 조카는 왜 라이언을 사랑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나는 관상학자를 찾아가 라이언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는 일단 2만원을 요구했다. “동그란 얼굴은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를 상징합니다. 사자 특유의 맹수적 인상을 거의 없애버린 것입니다. 일자 눈썹은 평범함, 온순함을 나타냅니다. 검고 작은 눈은 줏대가 없죠. 먹이를 노리는 집요함이 없는 방관자의 눈입니다. 주인 노릇 할 생각이 없는 평범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 보일 정도로 작은 입은 욕심이 없음을, 작은 귀는 세상사에 무관심함을 나타냅니다. 실제 가장 사나운 동물인 사자가 가장 온순한 얼굴을 하고 있네요. 각박한 사회에 대한 도피, 평화에 대한 갈구를 상징하는 얼굴로 보입니다.” 관상이 운명을 만들고 운명이 관상을 바꾼다는 말이 떠올랐다. 사랑받을 운명을 타고난 밀림의 왕자가 왕좌와 갈기를 내려놓자 우주가 온 힘을 다해 그를 귀여워하기 시작했다. 난세 속 슈퍼스타 라이언의 매력에는 출구가 없다.

    에디터
    조소현
    제품 협찬
    카카오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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