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영애씨

어떤 고된 오늘도 피하지 않고 내일이면 또다시 튼튼한 하이힐을 신고 걸어가는 이영애와 김현숙은 모두 이 시대의 막돼먹은 모던 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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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만큼 막돼먹지 않았다고들 하죠. 그게 더 현실적이지 않나요?” 화이트 울 코트는 디올(Dior), 반지는 구찌(Gucci).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5가 시작한다. 10년 동안 이영애는 네 번의 이직 끝에 사업을 시작했고 일곱 명의 남자를 만났으며 몸무게는 최고점을 찍었다가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사이 김현숙은 “배신자!”라고 외치는 팬들을 뒤로한 채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으며 직장인을 넘어 엄마까지 대변하는 일상 연기의 아이콘이 됐다. 김현숙은 언젠가 전설이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평범함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켜온 그녀는 이미 굳센 전설이다. 영애씨의 끝을 묻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어떤 순간에도 인생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주름 하나도 다 인생의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싫은 내 모습조차 인정해야 하는 거 같아요.” 기하학적으로 커팅한 케이프는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 하이넥 레이스 드레스는 앤디앤뎁(Andy&Debb), 러브 반지는 제이미앤벨(Jamie&Bell).

“주름 하나도 다 인생의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싫은 내 모습조차 인정해야 하는 거 같아요.” 기하학적으로 커팅한 케이프는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 하이넥 레이스 드레스는 앤디앤뎁(Andy&Debb), 러브 반지는 제이미앤벨(Jamie&Bell).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지금 몸무게가 오랫동안 지속한 몸무게인데 결혼 전에 워낙 많이 쪄서 그렇게 보인다고 하더라. 연애하면서 6kg 쪘던 시즌 13 즈음이 절정이었다. 사실 그동안 살을 빼지 않은 건 영애씨 캐릭터 때문 아닌가. 막돼먹은 영애씨(이하 ‘막영애’)도 10년째 하다 보니 팬들 반응에 변화가 있다. 시즌 2~3 때 영화 작업 때문에 몸무게를 5~6kg 정도 뺀 적이 있는데 시청자들이 캐릭터를 망각한 배신이라며 비상 총회를 열었다. 제작진도 “몇 kg 이하로 내려가면 안 된다는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심각하게 회의를 열었단다. 지금은 오히려 팬들이 “너무 살찐 거 아니에요? 나이도 있는데” 하고 건강을 걱정한다. 마치 가족이 걱정하는 것 같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안 했다.(웃음) 그런데 이제 해야겠더라. 마사지를 치료로 생각하고 수시로 침도 맞고 필라테스도 시작했다. 살을 빼기 위해서라기보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건강관리를 시작한 셈이다. 폭식도 안 하려고 노력한다.

<원나잇 푸드트립>을 보니 먹는 데 있어 철학이 엿보이더라.

조미료 안 쓰고 거의 집에서 해 먹는다. 음식으로 장난치는 거 제일 싫어한다. 음식점 가서 아니다 싶으면 그렇게 화가 난다. 주인에게 꼭 얘기해서 친구들이 부끄러워한다. 얼굴 다 아는데 그만 좀 하라고.(웃음)

혼자서도 잘 챙겨 먹을 거 같다.

‘혼밥’ 정말 잘한다. 예전에 어떤 작가를 만났더니 “왜 그렇게 혼자 밥을 드시러 다니세요?” 하더라. 우리 동네에서 나를 너무 많이 봤다는거다. 촬영 다음 날 힘들어서 꼼짝도 못하겠는데 배는 고프고, 그러면 나가서 혼자 많이 사 먹었거든.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인 받으러 올 때도 있는데 그런 거 의식해서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상황이 더 짜증 난다.

지하철도 혼자 타고 다니지 않나. 인스타를 보니 얼마 전에는 지하철에서 때수건도 샀더라.

싸기에 하나 샀다. 다니는 한의원이 명동에 있는데 복잡해서 주차할 곳도 없고 주차비도 어마어마하다. 사는 아파트가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사람들이 알아볼 텐데 불편하진 않나.

불편하지 않다. 사람들이 휴대폰 보느라고 신경 안 쓴다. 황정민 오빠도 송해 선생님도 대중교통 자주 타고 다니신다.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거리도 못 다니는 삶은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TV에 나온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배우도 똑같은 직업인이다. 내가 이종석이나 지디는 아니니까.

어르신들한테 인기 많던데.

‘막영애’가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가 아닌데도 희한하게 시골에서도 알아보신다. 대중목욕탕도 다니는데 경상도 아줌마들이 무서울 때가 있긴 하다. “사인 좀 해주이소!!!” 하고 한증막에서 갑자기 피부에 좋다며 꿀 발라주고.

 ‘막영애’ 시즌 15에 조동혁이 새로운 썸남으로 등장한다. 축하한다.

정말 영원히 했으면 좋겠다. 결혼해도 합법적으로 연애할 수 있다니. 이제 간통법도 없어졌다.(웃음)

시즌 14는 해피 엔딩 같았다. 사업이 자리를 잡고 두 남자로부터 구애를 받았다. 영애가 행복해질수록 시즌 15에 독한 설정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도 하더라. 

진짜 무서운 게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그대로 대본에 나올 때가 많다.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는데 너무 이상하다. 옛날에 가수들이 노래 제목처럼 산다고 한 것처럼. 어제 1, 2부 대본을 봤는데 섬뜩했다. 요즘 심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는데!

시즌을 거듭하면서 영애가 예전만큼 막돼먹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맨날 어떻게 인생에 소매치기와 변태가 나오겠나. 그게 더 리얼하지 않은 거다. 시청자들이 그렇게 보는 건 막돼먹지 않아서라기보다 예전보다 인물이 입체적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막돼먹은 역할을 이제 다른 캐릭터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관심이 분산되어 서운하진 않나.

어쩔 수 없다. 드라마가 길게 오다 보니까 점점 더 강한 자극이 있어야 하고 센 캐릭터가 필요하다. 바람이 있다면 영애가 왜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과정이 조금 더 그려졌으면 좋겠다는 것. 그동안 내가 봐도 사건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앞으로 더 노력할 것이다.

김산호가 시즌 15에 출연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이영애에게 김산호란?

아파트 분수대에 애 데리고 나가면 아줌마들이 무화과 주면서 “팬이에요. 그런데 산호는 왜 안 나와요?”라고 항의할 정도다. 김현숙으로선 놓치고 싶지 않은데 멍청한 이영애가 그런 거 같다. 결혼도 사랑도 타이밍인데 둘은 어긋났다. 누가 모자라서라기보다는 지금 영애 인생에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마음이 아프지만 결국은 이루어지기 힘든 존재다.

‘막영애’ 작가진은 실제 배우의 특징을 배역에 녹이는 걸로 유명하다. 그동안 당신의 변화는 캐릭터에 어떻게 반영되어 왔을까.

김현숙이란 사람도 처음에는 불의를 보면 ‘욱!’했는데 지금 나는 ‘그래, 어떻게 하나 보자’ 하고 몸을 사린다. 그런 부분이 반영된거 같다. 영애도 나도 같이 늙어가고 있고 똑같이 화가 나도 표현 방법이 달라졌다.

엄마가 되면 연기가 더 깊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는데 결혼과 출산은 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배우는 불행할수록 깊어질 수밖에 없다.(웃음) 남편 환상도 다 깨지고 하니까.(한숨) 28세에 방송에 데뷔했지만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서며 배우 생활을 오래 해왔고 항상 나만 위해 살았다. 가정을 이루고 조화를 생각하려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이해와 경험치가 넓어졌음도 느낀다.

아이는 직접 키우나.

친정어머니가 시골에서 왔다 갔다 해주시고 남편과 셋이 번갈아본다. 지금 17개월인데 아이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나이까지 직접 키워보려고 한다. 정신없을 때는 어머니 기차표도 잘못 끊고 낭패도 많이 봤다. 혹시 이혼하게 되면 결혼 안 하고 연애만 해도 좋을 거 같긴 하다.(웃음) 자기 일이 확실한 여자들에게 결혼은 힘들다. 여자가 희생할 수밖에 없다. 알고 결혼했지만 그래도 충격 받을 때가 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해 가진 오해도 있었을까.

유년 시절부터 결혼에 대해 환상이 없었다. 오래 홀어머니 손에서 자랐고 기억 속 아빠 모습은 좋지 않았다. 20대 후반까지도 독신주의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웃음) 그래서 이왕이면 긍정의 힘으로 가고 있는데 오락가락한다. 행복할 땐 너무 행복하고 “어우씨, 내가 그냥!!!”이 공존한다. 산후 우울증도 심했다. 모성애는 천성이 아니더라.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슈퍼우먼이 아니다. 이제 싫은 건 싫다, 힘든 건 힘들다고 얘기한다.

배역에도 변화가 생겼나.

결혼 전에는 싱글녀 친구 역할이 많이 들어왔다. 김아중 씨나 손예진 씨 나보다 네 살씩 어린데.(웃음) 요즘은 아줌마 역할도 들어온다. <백희가 돌아왔다>에서도 엄마 역할이었는데 이제 이쪽으로 넘어온 건가 싶어 편안해졌다. 오히려 ‘막영애’에서 주인공이다 보니 역할이 작으면 하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더라.

2012년에 만났을 때 여배우가 극을 끌어가는 작품이 많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기억이 난다.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많은 여배우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나서고 있다. 답답한 현실 때문에 스스로 기울인 노력이 있다면.

옛날부터 캐릭터에 타당성과 임팩트만 있으면 분량에 상관없이 흔쾌히 출연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분석하며 “감독님,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 얘 직업이 뭐죠?” “글쎄, 모르겠는데?” 이럴 때면 정말 힘이 빠진다. 아니다 싶어 정중히 거절도 많이 했는데 이젠 정말 안 되겠더라. <수상한 그녀> 때는 “배역도 각자 이유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말해버렸다. 감독님이 “맞습니다. 배우는 각자 우주가 있죠”라고 말씀하시며 일주일 만에 시나리오를 고쳐왔다. 아주 타당하게. 종방연에서 그동안 주인공에 치우쳐서 조연의 삶을 못 돌아본 거 같다고, 반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도 말씀하셨다. 정말 고마웠다.

항상 제작자 마인드가 강한 것 같다.

‘막영애’ 뮤지컬도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하게 됐는데 시나리오를 두고 하도 내가 열변을 토해서 결국 1년 넘게 대본을 고쳐서 무대에 올렸다. 이렇게 짜깁기할 거면 집에서 TV로 다시 보기 하는 게 낫다고, 당신 같으면 몇만 원씩 내고 공연 보러 오겠냐고, 건방질 정도로 할 말 다했다. 남들이 보면 오지랖이고 월권일 텐데, 나는 목표가 무식할 정도로 하나다. 과정이야 지지고 볶든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그 작품을 좋아해야 한다.

‘막영애’ 시즌 15에는 제작자 마인드가 어떻게 반영되었나.

제작 단계부터 “초심으로 돌아가서 연애 자체보다는 영애가 왜 이렇게밖에 될 수 없는가 공감대를 좀더 섬세하게 그렸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많이 했다. 함께 작업했던 연극배우 추천도 하며 배우 프로필을 메일로 일일이 감독님에게 다 보냈다. 연기에서 감독 디렉션은 한계가 있고 배우 입장의 답답함을 서로 아니까 연기 아카데미처럼 새로 합류한 배우들을 도와준 적도 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조금 나은 부분은 함께 해나가려고 한다.

그래서 시청자 게시판도 모니터링하는 건가.

댓글도 다 본다. 자부심과 의무감이 공존한다. 무수히 채찍질을 하고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막영애’만해서 정형화되는 것 아니냐, 라 부장이 더 잘나간다 등 평소 별거 아닌 말도 약해질 때는 날카롭게 꽂힐 때가 있다. 한 작품을 오래 하다 보니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무너진다. ‘전설로 남을 거야’ ‘죽어서 더 회자될 거야’ 하며 자존감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연기적으로 더 보여주려 애쓰기보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서 겸허하게 가려고 한다. 라미란 씨나 이승준 씨, 조덕제 선배님 같은 분들로부터 자극도 받는다.

화보 촬영할 때 대중이 바라는 김현숙과 실제 성향 사이에 괴리감이 있다는 말을 했다.

또래들보다 절망 같은, 이른바 조금 더 늦게 알아도 되는 감정을 많이 느꼈던 거 같다. 초등학교 5~6학년 일기장에 자살 얘기도 있었다. 미술과 음악도 좋아했지만 형편이 따라주지 않았다.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고등학교 때 우연히 연극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런 감정을 아우를 수 있는 게 연기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경험치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은 거 같다. 장조보다는 단조를 좋아하고 어두움이 익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타고난 재능이 코미디를 좀 하더라. 내가 코미디할 때 사람들이 인정해주지만 사실 나는 어둠이 훨씬 편안한 정서다.

연기도 개그도 제대로 하는 유일무이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

예전에는 “개그맨 중에 연기자로 가장 성공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으면 자존심이 상했다. 원래 연극배우인데 개그에도 소질이 있다고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는데 내 맘 같지 않더라. 일일이 붙잡고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출산드라’로 알려진 현실을 부정할 순 없다. 이젠 좀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사람들이 개그우먼으로 아는 게 싫어서 그런 기회를 배제하기도 했나.

예능은 좀 그랬던 거 같다. 망가지는 개그나 희극적 요소가 극 중에 녹아 있을 때는 괜찮지만 예능에 패널로 나가서 하는 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키는 대로 해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단막극 <나청렴 의원 납치 사건>에도 출연했다. 가만히 앉아서 ‘왜 나를 안 써주지?’ 불평할 게 아니라 ‘뭔가를 보여주고 납득이 되면 또 쓰겠지?’라고 생각을 바꿔 먹었다. 앞으로는 생각을 많이 안 하려고 한다.(웃음) 그동안 장르를 가려서 한다는 핑계로 교만했던 거 같다. 더 겸손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제 막 나올 거다. 막 막 막! 예전에는 남들과 비교도 많이 하고 조급했는데 이젠 여유가 생겼다. 결혼하고 달라진 점은 겸허해진 것이다. 내공을 쌓으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아이는 나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전부이니 그 시간을 함께하자고 생각하게 됐다. 배우로서든 김현숙으로서든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도 훈련이다.

 ‘막영애’ 엔딩을 상상해봤을 듯하다.

결혼은 절대 아니겠지. 끝나고 나서 내 마음이 어떨까, 상상은 많이 했다. 한때는 생각만 해도 울컥했다. 박수 칠 때 떠날 타이밍은 이미 놓쳤다. 예전에는 100명 중에 99명이 칭찬해야 했는데 이젠 99명이 욕하고 한 명만 칭찬해도 ‘막영애’를 할 의향이 있다. 그 정도로 독해지고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