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의 세 번째 시집

오은이 세 번째 시집 〈유에서 유〉를 냈다. 그가 틀어놓은 음악에 맞춰 매끄럽게 뛰어노는 단어들은 오은 이 관찰한 아찔한 세상을 전달하는 강력한 시가 된다.

체크무늬 니트는 디올 옴므(Dior Homme), 화이트 셔츠와 블랙 팬츠는 바톤 권오수(Baton Kwonohsoo), 안경은 뮤지크x슈퍼 픽션(MuzikxSuperfiction)

체크무늬 니트는 디올 옴므(Dior Homme), 화이트 셔츠와 블랙 팬츠는 바톤 권오수(Baton Kwonohsoo), 안경은 뮤지크x슈퍼픽션(MuzikxSuperfiction)

오은이 건네준 명함에는 ‘대리’라는 직급이 적혀 있었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람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로봇청소기에서 어떤 기능을 가장 필요로 하느냐’ 같은 질문을 기업이 갖고 오면 조사하고 분석해 리포트를 써서 넘기는 일을 3년 10개월째 하고 있다. ‘직장인 오은’은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는 근거를 숫자로 증명하고, ‘시인 오은’은 단어를 블록 삼아 조립하며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다. 직업과 좋아서 하는 일이 상반된 지점에서 객관적이고 주관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세 번째 시집 <유에서 유>는 직장인 오은이 글 쓰는 날로 정한 일요일마다 우직하게 카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세상을 관찰한 결과물이다. “시집을 읽은 김소형 시인이 쓸쓸하다고 하더라고요. 왜 쓸쓸해졌을까 생각해보니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조직 사회에 들어와서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걸 몸에 새기는 작업 자체가 유쾌하지 않아서 슬펐던 것. 아무리 밝게 살고 싶어도 사회가 더 살기 어려워져서 우울해졌던 것.” 한 시기를 시집이라는 형태로 마무리해온 그에게 지난 몇 년은 돈이 나올, 숨 쉴,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하고(구멍), 일요일이면 빈털터리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던(일주일)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시집에는 살아남거나 떨어지는(서바이벌) 사회와 뭐든 잘하되 은은하게 드러내야 하고(다움) 착한 척(척)을 강요받는 매일매일이 있었다.

그는 지난 3년을 정리하는 단어로 ‘아찔’을 꼽았다. 사회적으로 믿을 수 없는 사건이 터져 ‘아찔’했는데 대응하는 방식은 더 ‘아찔’했고, 직장에서 갑자기 함수를 풀어야 하는 ‘아찔’한 일상이 있었고, 직장인으로 살면서 시를 쓰는 게 ‘아찔’했다. “예전 시집과 세 번째 시집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관찰자 입장으로 쓴 시가 많다는 거예요. 카페에서 시를 쓰다 보면 주변 테이블에서 하는 대화가 들리는데 밝은 얘기가 없었어요. 엄마들의 자식 걱정, 대학생들의 취직 걱정… 모든 걱정의 온상이 카페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살기 힘들구나 싶었고 그때부터 관찰했습니다.” 산책하며 들려오는 이야기 중엔 꼬맹이들의 것도 있었다. ‘엄마! 예쁜 거랑 아름다운 거랑 뭐가 달라?’처럼 세상에 반짝거리는 호기심을 가진 자들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그 질문의 답을 고민하는 게 시인의 역할 같기도 해요. 관찰하면서 어떤 것이든 궁금해해야겠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도 했어요. 주변에서 받는 찰나의 충격, 그 스파크의 순간이 모여 시가 되는 거 같아요.”

오은에게 모였던 스파크의 기운은 어두웠을지라도 그의 시에는 여전히 ‘팬톤7416C(오은의 시그니처 컬러. 첫 번째 시집부터 표지에 주황색을 사용한다)’ 빛깔을 띤 리듬감이 자리한다. 이 리듬감은 ‘오은 스타일’로 설명 가능한 ‘말맛’에서 시작된다. 꿀맛은 꾼 맛도 아니고 꾸는 맛도 아니라 달콤한 것이고(시인의 말), ‘너무나도’는 ‘너무’와 ‘나도’로 분리되었다가 합쳐지길 반복하며 ‘너무’를 향해 달려간다(너무). 불가능에 물을 끼얹고(아찔), 영은 숫자와 영혼 사이를 자유롭게 오고 간다(뭉클). 단어로 저글링을 하는 듯한 그의 말놀이는 앞모습만 알고 지내던 단어의 등짝까지 보여준다. 공중에 띄운 단어들은 분주히 매력 발산을 하다가 그가 세워놓은 ‘제목’이라는 깔때기 속으로 쏙 들어간다. “제 시가 제목으로 수렴된다고 느꼈다면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쓰기 때문일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목만 생각하며 이미지를 연결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불러들이기도 하죠.”

오은의 시는 단어에서 시작한다. 그는 단어를 정말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사전이고 사전은 그에게 도피처이자 충전소가 되어준다. 첫 월급을 타서 가장 먼저 산 책도 30만원 상당의 표준국어대사전이었다. “사전에서 ‘먹다’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100개 가까운 뜻을 가지고 있어요. ‘먹다’의 숨겨진 면을 보여주는 일이 제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입니다.” 머금고 있는 주제의 무게와 별개로 오은이 익숙한 단어를 부려 내놓는 신선함은 무덤덤해진 뇌에 쫄깃함을 선사한다. 작품 해설을 맡은 권혁웅 시인은 그의 시를 현대의 ‘도시락 폭탄’에 비유했다. 시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말놀이. 하지만 그 흥겨움 속에는 혁명의 기운이 서려 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시인의 몫이 아니지만 그들은 세상을 한발 앞서 내다보며 진단한다. 시인들은 모두 날개를 숨기고 산다.

과거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나왔을 때 쓸쓸한 소년의 말놀이는 말장난으로 치부되기도 하며 뜨거운 관심을 몰고 다녔다. 원래 세상에 없던 시가 나올 때마다 겪는 낯섦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그의 시는 이제 작가명을 지워도 알아볼 만큼 하나의 스타일이 됐다. 그의 시 속 언어유희는 ‘유희’가 있고, 표면과 이면을 끊임없이 사유하게 한다. 평소 시를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시는 읽힌다. 라임에 굶주린 래퍼들은 ‘단어의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을 갖고 싶어 하는 오은의 시를 ‘리스펙’한다. 매드 클라운은 ‘외로운 동물’이라는 노래에서 ‘모던타임즈’의 시 구절 “엄마는 현실이 펴지길 바라셨고 아빠는 이상을 굽히질 않으셨네”를 인용했다. 언어에 예민한 오은이 만지고 또 매만진 문장은 카피나 패션 아이템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커버스토리’의 한 구절 “너는 매혹적이다 사랑스럽다 언제 어디서나 눈길을 끈다 애초에 그렇게 태어났다”는 작가의 의도와 상관 없이 아이돌 찬양에 애용된다. 오은의 세 번째 시집은 출판되자마자 3쇄를 찍었다.

‘마술’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자 시집의 제목 <유에서 유>는 그의 작품 세계 그 자체다. ‘‘‘유’는 ‘있을 유’, ‘흐를 유’도 되고 영어로 ‘당신’이 됩니다. 당신이라는 대상이 없으면 시가 쓰일 이유가 없지요. 무엇보다 ‘놀 유’가 있습니다. ‘말미암다’라는 말을 좋아해요. 당신이 있음으로 해서 말미암은 시입니다. 단어가 없으면 시가 없고 말에서 시가 나온다는 점에서 ‘유에서 유’이기도 합니다.” 어원 ‘불켠듯’에 반해 ‘불현듯’이라는 부사를 사랑하고, 연유를 중시해 ‘말미암다’라는 동사를 좋아하는 오은은 ‘구원’이라는 시에서 단어가, 문장이, 시가 하나의 넋을 건져 올렸음을 말한다. 앞으로도 그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감따위 믿지 않고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느끼는 대로 가만가만 단어를 만지며 파장의 진원을 만들어낼 것이다. 한 시인이 백지를 채우며 누리는 쾌락은 아름다움이 되어 세상에 뿌려진다.

마지막으로 나는 시처럼 예쁜 시인의 이름이 본명인지 물었다. “네, ‘은 은’을 써요. 형제가 모두 돌림자가 ‘진’인데 저만 은이라서 주워왔다며 놀림을 당하곤 했지요. 울다가 ‘아빠, 왜 난 오은이야?’라고 물었더니 ‘오금은 저리고 오동은 나무니까’라고 하시더군요. 어린 마음에도 수긍이 가서 울음을 멈췄어요.” 촬영 전 딱딱한 구두에 발을 넣느라 진땀을 뺐던 그는 구두를 벗으면서 중얼거렸다. “회사 같네요. 들어갈 땐 힘든데 퇴사할 땐 너무 쉬워요.” 공통점이 없던 ‘구두’와 ‘회사’ 사이 시냅스에서 화학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은이 시를 쓰는 일은 어쩌면 단어가 단어에게 가서 닿는 길을 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