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우정의 아리아

2016.10.28

by VOGUE

    우정의 아리아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플라시도 도밍고 와 소프라노 박혜상이 〈보그〉 카메라 앞에 섰다. 세기의 거장과 신예 아티스트의 만남. 말보다 음악이 편안한 이들이 건네는 하모니에 영원의 풍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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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적 재능, 세상에 없던 예술 작품, 재능을 세상에 내보이는 방식과 능력… 예술가가 우리 삶을 위로하는 순간은 실로 다양하지만 예술의 영속성을 증명해 보이는 이들은 결코 많지 않다. 도밍고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산다” 같은 평소 허망하게 들리던 문장이 세상에 실재함을 느낀다. 플라시도 도밍고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롤렉스 시계가 현재 시간을 알려주고, 티켓 구매까지 가능한 콘서트 일정이 나온다. 2017년 7월까지 한 달도 빠짐없이 공연이 잡혀 있다. “늘 기대되고 매일 발전하는 걸 느껴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을 한다는 건 굉장한 특권이에요. 이에 대한 감사를 잊을 수 없습니다.”

    박혜상의 코트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러플 장식 샌들은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드롭 귀고리는 에이피엠 모나코(Apm Monaco).

    박혜상의 코트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러플 장식 샌들은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드롭 귀고리는 에이피엠 모나코(Apm Monaco).

    음악을 사랑하고, 오페라를 사랑하고, 자신이 받은 재능이라는 선물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청년 예술가의 양성이다. 26년 전부터 콩쿠르 ‘오페라리아(더 월드 오페라 콩쿠르)’를 개최해오고 있고,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바르셀로나에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한국 무대에 함께 선 테너 김건우와 소프라노 박혜상은 모두 ‘오페라리아’ 수상자 출신이다. 2014년 줄리어드 오페라와 로시니의 <이탈리아의 터키인>에서 피오릴라 역으로 뉴욕에서 데뷔 무대를 선보인 후 <오페라 뉴스>로부터 ‘화려하면서도 서정적인 벨칸토 창법’에 대해 극찬을 받은 소프라노 박혜상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영 아티스트로 선발되어 활동하던 중 오페라리아에서 2등으로 입상하며 도밍고와 인연을 맺었다.

    언밸런스 드레이프 셔츠는 DKNY, 네크리스는 에이피엠 모나코(Apm Monaco).

    언밸런스 드레이프 셔츠는 DKNY, 네크리스는 에이피엠 모나코(Apm Monaco).

    사실 처음 예정된 곡은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창백한 빛이 내 얼굴에 비치네’였으나 일주일 전 도밍고는 곡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저는 바뀐 곡이 훨씬 좋았어요. ‘딸아!’ ‘나의 아버지!’로 시작하는 곡이에요. 도밍고 선생님은 사람들로부터 조롱 받는 꼽추로 등장하고, 저는 온실 속 화초처럼 보호 받는 딸로 나옵니다.

    박혜상이 빠른 걸음으로 미끄러지듯 등장해 아버지에게 삐친 듯 등을 휙 돌리고 엄청난 스승 도밍고가 딸에게 쩔쩔매는 장면을 연출한 무대는 이날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고 관객석에서는 연신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흔히들 소프라노의 노래를 묘사할 때 ‘하늘에서 내려온 목소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목소리가 아니라 마치 대지에 안착한 목소리 같았다. 배역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그 소리는 진실했으며 박혜상은 무대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도밍고의 타이는 겐지 가가(Kenji Kaga at Lansmere), 박혜상의 드레스와 샌들은 프라다(Prada).

    도밍고의 타이는 겐지 가가(Kenji Kaga at Lansmere), 박혜상의 드레스와 샌들은 프라다(Prada).

    박혜상은 얼마 전 한국 바비큐를 먹으며 도밍고 선생님께 ‘쌈’을 10개도 넘게 싸 드렸다고 웃었지만 1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팝으로 따지면 마이클 잭슨을 만나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처음 뵈었을 때 입이 떡 벌어지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뛰었지만 지금은 굉장히 큰 의미를 주는 존재가 되었지요. 저에겐 멘토 같은 분이에요. 뵐 때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또 어떤 자극을 주실까 기대를 품게 돼요. 이제 유럽 무대도 생각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시기도 하지만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좋은 말씀을 정말 많이 해주세요. 선생님이 음악을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늘 감동이에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해요.”

    여전히, 영원히, 플라시도 도밍고

    VOGUE KOREA(이하 VK)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던 공연이었습니다. 서울 무대에 선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PLÁCIDO DOMINGO(이하 PD) 이런 훌륭한 무대에 섰다는 사실이 정말 흥분되고 즐거웠습니다. 공연장에 서서 관객들을 바라보는데 굉장히 감동적이었지요. 다른 참가자들도 같은 감정을 느꼈으리라 확신합니다. 400년이 넘은 예술 오페라의 생명을 연장하는 길은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트레이닝 시키는 일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오페라리아에 많은 한국 성악가들이 참여해준 데 대해 늘 자랑스러운 마음이 있었고 이번 공연에서 보답을 하고 싶었습니다.

    VK 이번 공연은 어떻게 레퍼토리를 구성했는지, 평소 공연 레퍼토리는 어떤 기준에 따라 구성하는지 궁금합니다.
    PD 레퍼토리는 스페인 오페레타와 미국 코미디 뮤지컬 전문가가 구성합니다. 우리는 성악가 각자의 목소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을 고르고 있습니다.

    VK 140여 개 배역을 소화한 기네스북 기록을 가지고 계시죠. 최근 새롭게 추가하신 배역이 있나요?
    PD 목소리가 깊어지고 어두워져서 레퍼토리에 바리톤을 추가했습니다. 요즘은 베르디의 <나부코>와 <맥베스>에서 배역을 추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내년 6월 비엔나에서는 <돈 카를로> 로드리고의 한 파트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 배역은 나의 148번째 배역이 될 것입니다!

    VK 배역 그 자체로 보일 정도로 그 감정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주시곤 합니다. 배역에 어떤 식으로 몰입하십니까?
    PD 마리아 칼라스는 캐릭터가 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우리 일부분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VK 평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PD 노래하고 연기함으로써 캐릭터의 내면과 소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의 목소리, 특히 노래하는 목소리는 폭넓은 감정을 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물의 감정을 살아 있게 전달하는 일이 노래 부르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이지요.

    VK 수많은 무대 중 가장 의미 있는 무대는 언제였습니까?
    PD 최고의 오페라 무대는 현재 공연하고 있는 무대입니다. 음악으로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퍼포머는 그 순간에, 그 곡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몇 분일지라도 이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VK 50여 년간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돌이켜봤을 때 가장 그리운 시대는 언제입니까?
    PD 다시 젊어진다면, 정말 오래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멋진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나는 미래에 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2021~2022년까지 로스엔젤레스 오페라의 총책임자로 활동하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는데 그때 나는 81세일 것입니다. 그때도 내가 그 일을 무사히 해낼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VK 처음 노래를 시작할 때와 지금, 변함없는 것은 무엇이고 변한 것은 무엇일까요?
    PD 세상이 변했고, 오페라의 세계도 함께 변해왔습니다. 어릴 때 오페라 산업은 살아 있었고 건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존재하지 않아요.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오페라가 더 넓게 보급되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베토벤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을 인용하곤 했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은 짧지만 예술은 오래오래 계속됩니다.

    VK 지금까지 현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요?
    PD 복합적입니다. 운이 좋았고 체력이 따라주었습니다. 목소리를 낭비하지 않고 현명하게 사용했습니다. 모든 성악가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배웁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받은 선물을 어떻게 사용할지 배우지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노력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무대에서 트리스탄(Tristan)과 지크프리트(Siegfried) 역할을 맡아 노래하는 걸 좋아하지만 이는 내 목소리를 망칩니다. 나는 그 파트를 서서히, 신중하게 녹음하고 무대에서는 라이브로 공연하지 않습니다. 본능을 거스른다면 나는 아마 몇 년 안에 노래하는 것을 멈춰야 할 것입니다.

    VK 평소 자기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PD 시간, 목소리, 몸 상태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오랜 시간 배워왔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목소리와 체력은 변합니다. 75세에 25세나 35세처럼 노래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스케줄을 신중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VK 전 세계 무대에 오르기에 항상 ‘여행’ 상태입니다. 이런 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PD 힘들지만 오랫동안 해오던 일이에요. 나에게 비행기를 타고 다른 대륙으로 날아가는 건 다른 사람들이 버스나 차를 타고 출근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VK ‘플라시도 도밍고’가 ‘차분한 일요일’이라는 의미라 알고 있습니다. 이름이 당신의 인생에 끼친 영향이 있을까요?
    PD 활동적인 삶을 이어왔기에 인생이 차분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런 기질이 있고 이는 내 삶을 통과하며 많은 부분 확실히 도움을 주었습니다.

    VK 미래와 과거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들어왔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까? PD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물리적으로나 목소리적으로나 지금 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페이스대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인생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VK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PD 항상 그렇듯 내게 그럴 힘이 있는 한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계속해서 즐거움을 주는게 꿈입니다.

    지금부터, 앞으로 박혜상

    VK 근황이 궁금하군요.
    PARK HYE SANG(이하 HS)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내년 1월 오페라 <루살카>로 데뷔를 앞두고 있습니다. 인지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사람들이 점점 기대감을 가지면서 스스로 좀더 신중해지고 있는 단계예요. 지금은 영 아티스트와 프로페셔널 중간에 서 있습니다.

    VK 도밍고 선생님과 첫 만남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HS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연습을 마무리하던 길이었어요. 슬리브리스 티셔츠에 안경을 쓰고 땀에 흠뻑 젖어 노래를 부르며 나오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딱 막아섰어요. 고개를 들어보니 도밍고 선생님이었어요! “네가 하는 노래구나”라고 말씀하셨지요.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VK 플라시도 도밍고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어떤 곡인가요?
    HS 선생님을 알기 전에는 그냥 다 좋았어요. 항상 들으면서 공부를 했으니까요. 하나만 꼽긴 힘든데 오랑주 페스티벌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을 부르신 게 기억납니다. 아들을 위해 떠나달라고 부탁할 때 정말 눈물이 났어요. 모든 감정이 온전히 다 느껴졌고, 선생님은 제르몽 그 자체였어요.

    VK 2010년 <라 트라비아타>로 데뷔했습니다. 성악가로 살아야겠다는 확신을 가진 무대는 언제였나요?
    HS 여전히 “성악가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쑥스러워서 “저는 노래쟁이입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성악가로서 무대에 선다기보다 그냥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무대에 서는 게 훨씬 나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억에 남는 무대를 하나 꼽자면 탈북민을 위한 음악회입니다. 그전까지는 사람들을 노래로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 무대를 통해 그 생각을 버렸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하면 사람들이 느낀다는 걸 알았어요.

    VK 노래로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나요.
    HS 사실 저는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이에요. 하지만 무대에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노래로 속마음을 얘기하고 비밀도 노래로 얘기하지요. 무대에서는 내 안에 생각이 밖으로 표출되는 거 같습니다. 언젠가 매니저가 “Do you need music? Do you love or just want music?”이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매니저는 단지 사랑하고 좋아하는 걸로는 안 된다고, 정말 절실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저는 노래로만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고 노래는 정말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VK 무대를 보고 표현력이 정말 풍부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HS 너무 과하다는 얘기도, 표현력이 좋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예전에는 모든 감정을 다 쏟아부었는데 요즘은 ‘Less is More’가 더 와 닿아요. 배역을 맡으면 캐릭터에 수식하는 문장을 더하며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비슷한 상황을 끌어와서 노래합니다. 그러면 노래가 훨씬 진실해지고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VK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HS 목소리가 엄청 커서 어머니가 목욕탕에 못 데리고 가셨다고 들었어요. 피아노를 배우면서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합창단에 들어갔는데 언젠가 어머니한테 크게 혼이 나는 일이 있었다고 해요. 당장 합창단 그만두라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노래만은 계속하게 해달라고 울면서 빌었대요. 그렇게 노래 부르길 좋아하던 아이였기에 여기까지 온 거 같습니다.

    VK 도밍고 선생님은 내한 공연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셨는데 당신의 레퍼토리에 가곡도 있나요?
    HS 리사이틀 때마다 한국 가곡을 부릅니다. 가장 자주 부르는 노래는 ‘시편 23편’이고 ‘아리랑’ ‘내 마음의 강물’ ‘강 건너 봄이 오듯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도 즐겨 부릅니다. 외국에서 아무리 노래를 해도 나의 아이덴티티로 노래를 부를 때만큼의 감동은 없어요.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사람들은 내가 진실하게 부르는 걸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게 음악의 신비니까요.

    VK 소프라노 박혜상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HS 지금은 상상할 수 없어요. 그저 ‘Be Myself’가 제일 중요하다는 걸 알았을 뿐입니다. 전형적인 아시아인으로 세계 무대에서 노래하면서 불편하거나 하기 싫어도 무조건 ‘Yes’라고 말하며 지내왔어요. 이제는 ‘No’ 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중입니다. 도밍고 선생님은 지금도 음악 한 곡에 춤추고 기뻐하시면서도 원하는 바에 대해 정확히 말씀하시잖아요. 원하는 바를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ZOO YONG 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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