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디 최가 베니스로 날아가기 전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코디 최가 선다. 흥분할 건 없다. 독일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프랑스 마르세유 현대 미술관 등에서 유럽 회고전을 하는 중에 베니스에 가는 것뿐이니까.

코디 최는 유럽 회고전을 준비하다 잠시 성북동 작업실에 들렀다. 다행히 그곳엔 사랑하는 고양이 코코가 있다. 문화의 정체성과 권력관계를 탐구해온 작가이자 문화 이론가인( 등을 펴냈다) 코디 최의 작품은 10월 28일부터 11월 30일까지 PKM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코디 최는 유럽 회고전을 준비하다 잠시 성북동 작업실에 들렀다. 다행히 그곳엔 사랑하는 고양이 코코가 있다. 문화의 정체성과 권력관계를 탐구해온 작가이자 문화 이론가인(<20세기 문화 지형도> 등을 펴냈다) 코디 최의 작품은 10월 28일부터 11월 30일까지 PKM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에 이완 작가와 함께 선정됐어요. 작가로서 어떤 의미인가요?
중요한 전시는 맞아요. 하지만 제 입장은 젊은 작가들과 좀 달라요. 젊은 작가라면 국제 무대에 진출할 찬스를 얻는 거지만, 저는 감사하게도 3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알려졌고 유럽에서 회고전을 열고 있어요. 가산점은 감사하지만 흥분하고 싶지 않아요. 제자들에게 하는 조언이 있어요. 베니스 비엔날레는 국제 행사다 보니 시끌벅적하고 약간의 이벤트적 성격을 띠고 있어요. 참여 작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종종 교만에 빠지기도 해요. 알다시피 좋은 작가와 성공한 작가는 종종 같지 않아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자신이 ‘좋은 작가’라고 착각하다 나중에 박탈감을 느끼거나 작품이 흔들리죠. 이 점을 경계하라고 해요.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래도 작가에게 좋은 기회 아닌가요?
그럼요, 무수한 비엔날레 가운데 베니스 비엔날레가 역사가 긴 만큼 권위도 있죠. 2000년대 이전에는 미술 산업이 아예 나라마다 독립적이거나, 미국이 중심이고 나머지는 변방처럼 여겨졌죠. 하지만 영국, 독일에 이어 중국이 떠오르면서 점점 국제 미술 산업이 활성화됐어요. 베니스 비엔날레의 의미도 좀 달라졌죠. 이젠 정말 전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현장이에요.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6개월 동안 세계의 주요 미술 관계자가 자신의 작품을 본다고 생각하면 돼요.

비엔날레에 대한 전시 구상은 끝났나요?
이전에 한국관에서 전시한 작가들이 공간의 제약을 토로했는데요. 동감해요. 전시관의 전면이 유리예요. 그림을 걸어놓을 상황이 아니죠. 공간이 세 군데로 나뉘는데, 어떤 곳은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천장이 낮아요. 조각을 제대로 설치할 수 없을 정도죠. 며칠 전에 미술 관계자가 와서 “한국관이 보기가 좋지 않은데, 넌 어쩔 거냐”고 묻더군요. 언젠가 한국관의 재건축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도 위치는 좋아요. 바로 옆이 일본관, 독일관, 맞은편이 프랑스관, 영국관이에요. 핵심적인 국가관 사이에 있거든요.

독일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와 프랑스 마르세유 현대 미술관 등에 이어 유럽 회고전을 이어가고 있죠?
11월에 스페인 말라가 모레노 빌라 전시관, 말라가 대학 전시관, 내년 4월에 독일 켐니츠 미술관, 12월에 파리에서 그룹전이 있어요. 그 사이에 베니스에 가야 하죠. 스케줄 짜기도 어렵고, 진행 경비도 만만치 않아요. 시차 적응은 포기했어요.

여느 아티스트들처럼, 사랑하는 예술을 하기 위해 이런 라이프스타일도 감내하는 건가요?
예술을 사랑해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언젠가 “작업을 통해 아픈 것이 100% 치유된 건 아니지만, 흉터가 남은 상태로 어느 정도 편해졌다”고 인터뷰했는데요. 이것이 예술을 하는 이유인가요?
사회학을 전공하다 얽히고설켜 미술로 들어섰죠. 거창하게 사회 부조리니, 저항이니 같은 말은 안 할래요. 아마 젊었으면 멋있는 척 얘기했을 거예요.(웃음) 내 나라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그저 너무 속상하니까 이유를 찾기 위해 공부를 했고, 너희들이 모르는 이런 것이 있다,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아는가 하면서 작품으로 풀었어요. 처음에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다른 나라의 언어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시각적인 것, 미술에 더 집착했죠. 작가는 발언이 있을 때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영화배우도, 가수도 마찬가지예요. <슈퍼스타 K> 보면 다 노래 잘하잖아요. 가수와의 구별점은 자기만의 철학이나 스타일을 갖고 있느냐죠. 작가도 마찬가지예요. 오랜 시간 연구하고 공부하고, 고민해서 자기만의 세계관이나 철학이 서야 프로페셔널한 작가라고 할 수 있어요.

요즘 작품을 통해 발언하고 싶은 건 뭔가요?
작품 활동의 초반 20년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심리적, 철학적인 부분을 다뤘어요. 동양인으로서 서양을 바라보며 왜 갈등이 생기는지 질문을 던지고 공부를 했죠. 그러다 2000년대 중반 한국에 와선 변한 모습에 정말 놀랐어요. 뭔가 서양을 흉내 내려는 모습이 보기 불편했죠. 이젠 미국에도 한국에도 종속되지 않은 중간자의 입장에서 문화의 차이를 고민해요. 흔히 말하는 세계화도 동양이 서양화되는 걸 의미하곤 해요. 전 동서양이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The Thinker, December #3, 1996

The Thinker, December #3, 1996

이런 것들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하고자 하나요?
주로 서양 미술의 아이콘을 소재로 삼아요. 예를 들어 로댕의 ‘The Thinker’에 소화제인 펩토비스몰을 뒤집어씌운 작품이 있어요. 로댕의 ‘The Thinker’가 대단하다는데 왜 그런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유럽에서 이성주의가 싹틀 때, 종교가 아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새로운 흐름을 제시했다는 의미부터 깊게 얘기하자면 길어지죠. 이도 유럽의 시각에서 대단한 거지 알고 나면 우리에겐 그 정도까진 아닐 수 있어요. 서양의 것들을 많이만 먹었지 제대로 소화시켰느냐는 의미로 그 작품을 만들었죠.

어떤 작가로 남고 싶나요?
남기긴 뭘 남기겠어요. 10여 년 전부터 그런 게 없어졌어요.

그래도 작품 활동을 하면서 바라는 지점이 있을 텐데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학자는 누가 있나, 학술 서적은 뭐가 있나, 계속 공부해요. 그렇게 알게 된 것을 스스로 해석하고, 작품으로 구성하고, 그러다 갤러리에서 전시하자면 ‘좋네’ 하면서 부담스러워도 해보고, 전시를 안 해주면 ‘슬프네’ 하면서 소주 한잔 먹고, 때로는 책을 쓰기도 하고,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러다 보면 나이가 들 거고, 제자들이 현장에서 뛰면 뒷바라지해줘야죠. 아, 누가 기회를 주면 마지막에 쭉 정리를 해보고 싶어요.

그 마지막 전시에는 어떤 평가를 받고 싶나요?
제가 죽고 난 50~100년 후에 열리면 어떨까 해요. 현재는 정치, 사회적인 관계망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본질을 볼 수 없어요. 시간이 흐르면 관계망이 무너지고, 작가와 작품만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사회적인 옷을 벗은 상태에서 본질만 갖고 나를 재평가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뭐, 굳이 안 해도 되고요. 지난 30여 년 동안 충실히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