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ls

패션계는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모든 모델을 ‘걸’이라 부른다. 루이 비통 쇼의 ‘익스클루시브 걸’, 프라다 캠페인의 ‘아시안 걸’ 혹은 스티븐 마이젤이 새로 점찍은 ‘뉴 마이젤 걸’. 수많은 ‘걸’ 사이에서 세 명의 한국 모델이 ‘톱 걸’ 반열에 오르는 행운을 쥐었다. 흰 도화지처럼 새로운 이미지를 흡수하는 데 탁월한 소라, 영리하게 매력을 빛내는 방법을 깨달은 현지 그리고 개성이 돋보이는 하트 같은 얼굴의 윤영. 이 특별한 매력으로 패션계를 매혹시킨 ‘코리안 걸’ 트로이카, 그 새로운 세대의 아름다움.

하트 같은 얼굴의 배윤영, 가느다란 눈매의 신현지, 백자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최소라. 그들이 입은 큼지막한 화이트 울 코트는 디올(Dior).

하트 같은 얼굴의 배윤영, 가느다란 눈매의 신현지, 백자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최소라. 그들이 입은 큼지막한 화이트 울 코트는 디올(Dior).

Sora Choi, 최소라

“백스테이지에 모델들이 차례로 줄을 서 있으면, 한 명씩 무대 앞으로 다가가잖아요. 프로듀서가 큐 사인을 받으면 제 등을 딱 밀어줘요. 그러면 온몸에 소름이 돋아요. 그 짜릿한 기분에 도취된 채 런웨이를 걷는 거죠.” 2년 전 루이 비통 쇼로 패션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최소라는 그 후로 계속 짜릿한 전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의 긴장과 흥분을 선사하는 런웨이에 그녀는 중독되고 말았다.

도트 무늬 롱 드레스는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도트 무늬 롱 드레스는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만약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에 강, 중, 약 단계가 있다면 그 쾌감은 제게 최강 단계를 초월하는 거죠. 이미 그걸 경험해버렸으니 더 욕심이 생기죠.” 런웨이에 대한 욕망은 최소라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한 시즌을 통째로 포기해야 했던 경험 때문에 지독하게 살을 뺀 적도 있고(“그땐 정말 물만 먹고 버텼어요. 근데 이제 잘 먹으니 걱정 말아요.”), 분방한 패션계 분위기 가운데 스스로의 스타일을 발견했다(“제가 직접 자르는 머리가 외국에서 엄청 인기예요.”).

풍성한 볼륨의 스커트는 마크 제이콥스, 클러치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풍성한 볼륨의 스커트는 마크 제이콥스, 클러치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비즈가 박힌 셰퍼드 체크 코트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시스루 셔츠와 줄무늬 실크 쇼츠는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블랙 플랫폼 힐은 발렌시아가(Balenciaga).

비즈가 박힌 셰퍼드 체크 코트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시스루 셔츠와 줄무늬 실크 쇼츠는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블랙 플랫폼 힐은 발렌시아가(Balenciaga).

6년 전 친구의 손을 꼭 붙잡고 모델 아카데미를 찾던 부천의 여고생은 이제 사라졌다. 구찌, 프라다, 루이 비통, 프로엔자 스쿨러 등 제일가는 브랜드만이 소라를 그들의 무대에 올릴 수 있다. 또 에이전트가 그녀의 의견을 물어오면, 내키지 않는 일에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

실버 시퀸 드레스는 돌체앤가바나, 옐로 실크 셔츠는 푸시버튼(Pushbutton).

실버 시퀸 드레스는 돌체앤가바나, 옐로 실크 셔츠는 푸시버튼(Pushbutton).

여전히 모든 것이 롤러코스터를 탄 듯 어지럽지만 뿌듯함은 결코 감추지 못한다. “지금이 너무 행복한걸요. 이 기분은 모를 거예요.” 소라가 탄 롤러코스터는 지금 하늘 위로 점점 더 높이 올라가고 있다.

 

Hyunji Shin, 신현지

화이트 셔츠는 바톤 권오수(Baton Kwonohsoo), 가죽 와이드 팬츠는 노케(Nohke), 서스펜더는 알버트 서스턴(Albert Thurston).

화이트 셔츠는 바톤 권오수(Baton Kwonohsoo), 가죽 와이드 팬츠는 노케(Nohke), 서스펜더는 알버트 서스턴(Albert Thurston).

빨리 어른이 되는 건 장점일까. 적어도 신현지에게 그건 모델 일이 선사한 선물이다. 패션계 정상의 인물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그녀에게 열린 사고와 폭넓은 경험 그리고 독립적 태도를 갖도록 도와주었다. “모델이 됐기에 또래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만큼 더 빨리 자란 편이죠.”

와이드 팬츠는 준지(Juun.J).

와이드 팬츠는 준지(Juun.J).

하지만 동네 사진관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고 농구장에서 워킹 영상을 촬영해 해외 에이전시에 직접 연락하던 당돌함은 타고난 성격일지 모른다. 구부정한 자세 때문에 모델 학원을 찾았던 여중생은 이렇게 상상하지 못한 새 길을 찾았다. 모델 콘테스트에 참여하고, 호주로 건너갔고, 다시 파리와 뉴욕으로 진출한 건 모두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남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고 불안하진 않아요.”

화이트 터틀넥 톱과 화이트 팬츠는 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

화이트 터틀넥 톱과 화이트 팬츠는 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

천천히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현지는 이번 시즌 샤넬, 버버리, 이자벨 마랑 등의 쇼에 서면서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오랜 시간 다져온 견고한 자신감은 웬만해선 흔들리는 법이 없다. 원하는 쇼에 서지 못하는 아쉬움이나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 따위가 두렵진 않다. 물론 먼 미래를 스스로 그리고 싶은 욕심은 있다. 온라인으로 경영학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블랙 롱 코트는 랑방(Lanvin), 체크 원피스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Calvin Klein Collection), 와이드 팬츠는 준지(Juun.J).

블랙 롱 코트는 랑방(Lanvin), 체크 원피스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Calvin Klein Collection), 와이드 팬츠는 준지(Juun.J).

“기약이 없는 직업이니까요. 모든 게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금빛으로 탈색한 눈썹을 살짝 찡그리던 현지가 미래를 생각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가 언제든 저는 아주 멋진 여자가 되고 싶어요.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자들만이 지닌 ‘아우라’가 풍기는!”

 

배윤영, Yoonyoung Bae

큼지막한 니트 카디건과 로고 후디는 구찌(Gucci), 옷핀 모양 귀고리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큼지막한 니트 카디건과 로고 후디는 구찌(Gucci), 옷핀 모양 귀고리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배윤영의 이야기는 슈퍼모델의 성공기와 꼭 닮았다. 백화점에서 스카우트 당하고, 스티븐 마이젤의 콜을 받았으며, 미우치아 프라다의 독점 계약 속에 데뷔.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된 배윤영은 이 모든 게 얼떨떨할 뿐이다. 마이젤의 얼굴을 봤냐는 말에 “잠시 나와서 셔터만 누르고 들어가던데요?”라고 웃으며 답하고, 프라다 피팅을 기다리다 “복도에서 잠이 든 거예요!”라고 말하는 천진난만함.

호랑이가 그려진 아노락 점퍼와 초록색 카디건, 오렌지 미니 드레스와 자수 청바지, 리본 브로치와 자수 백, 로퍼는 구찌.

호랑이가 그려진 아노락 점퍼와 초록색 카디건, 오렌지 미니 드레스와 자수 청바지, 리본 브로치와 자수 백, 로퍼는 구찌.

모든 게 장밋빛은 아니었다. 캐스팅을 다니기 시작한 파리에서의 첫날 밤, 혼자 호텔 방에서 많이 울었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무서웠어요. 낯선 도시에서 돌아다니며 일한다는 게 말이죠. 엉엉 울고 나니까 괜찮아졌어요.” 비록 지하철에서 가방 끈이 끊기고 지갑을 도둑맞기도 했지만 데뷔는 순조로웠다.

블랙 니트 볼레로는 아이아이(Eyeye), 노란  맨투맨 티셔츠는 챈스챈스(Chancechance), 절개 디테일 트레이닝 팬츠는 푸마(Puma×Fenty), 안에 입은 트레이닝 팬츠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귀고리는 프롬 안느(From Anne), 반지는 락킹에이지(Rocking Ag), 스니커즈는 나이키 스포츠웨어(Nike Sportswear).

블랙 니트 볼레로는 아이아이(Eyeye), 노란 맨투맨 티셔츠는 챈스챈스(Chancechance), 절개 디테일 트레이닝 팬츠는 푸마(Puma×Fenty), 안에 입은 트레이닝 팬츠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귀고리는 프롬 안느(From Anne), 반지는 락킹에이지(Rocking Ag), 스니커즈는 나이키 스포츠웨어(Nike Sportswear).

디올, 끌로에, 로에베, 파코 라반 등 잘나가는 런웨이에서 러브콜을 보냈으니까.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도 깨달았다. “어릴 땐 스무 살이 되면 주근깨를 다 없애는 수술을 받기로 엄마와 약속했어요. 이제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아요.” 카메라를 통해 보는 자신의 얼굴이 새로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크롭트 봄버 재킷은 베트멍(Vetements at Mue), 데님 재킷과 디스트로이드 팬츠는 데님앤서플라이 랄프 로렌(Denim&Supply Ralph Lauren), 크롭트 프린트 톱은 카이(Kye), 브리프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언더웨어(Emporio Armani Underwear), 벨트는 아더에러(Ader Error).

크롭트 봄버 재킷은 베트멍(Vetements at Mue), 데님 재킷과 디스트로이드 팬츠는 데님앤서플라이 랄프 로렌(Denim&Supply Ralph Lauren), 크롭트 프린트 톱은 카이(Kye), 브리프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언더웨어(Emporio Armani Underwear), 벨트는 아더에러(Ader Error).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넌 여기가 예뻐’ ‘너는 이 부분이 매력적이야’라는 말을 들으면서 세뇌된 것 같아요.” 이런 자신감은 본격적으로 패션 특급 열차에 오른 윤영에게 무한 긍정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