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버린 여자들

〈보그〉 피처 에디터들이 각자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채 살아보기로 했다. 국내외 많은 페미니스트의 주장대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혹은 불편해서.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노메이크업 일러스트

 

노, 노 메이크업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 ‘노메이크업 무브먼트’가 릴레이처럼 이어지고 있다. 알리샤 키스는 화장을 하지 않고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있고 기네스 팰트로는 44세 생일 아침에 노메이크업 셀카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자는 것. 메이크업 하나 지운다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자기들이야 예쁘니까 그렇지.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옴과 동시에 궁금해졌다. 메이크업 하지 않은 내 얼굴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메이크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화장 좀 하고 다니지 그래?” 따위의 공격에 초연해질 수 있을까? 성공하면 술 먹고 세수 안 하고 자도 되겠군. 기네스 팰트로의 표정에는 묘한 해방감이 피어올라 있었다. 나는 노메이크업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첫날, 나는 자외선 차단제와 무색 립밤으로 스킨케어를 마무리하며 평소보다 다섯 단계를 생략했다. 리퀴드 파운데이션, 프라이머, 팩트 파운데이션, 프레스트 파우더, 립스틱을 바르지 않으니 외출 준비가 굉장히 간소화된 기분이 들었다. 절대적 시간은 10분 정도 차이일 테지만 메이크업은 고도의 집중력와 양질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평소 나는 색칠 공부하듯 피부를 메우며 ‘오늘은 얼굴이 또 왜 이래?’ ‘화장이 너무 떴나’ ‘스펀지는 왜 이렇게 더러워’ 같은 생각을 모공 수만큼 해댄다.

그렇게 노메이크업으로 세상으로 나간 첫날, 요즘 힘드냐, 어디 아프냐, 왜 이렇게 안색이 안 좋냐는 얘기를 세 명에게 들었다. 회사의 피처 팀장은 붉은 기가 토핑된 누런 얼굴을 보자마자 미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이 칼럼을 지시한 주인공), 미용실 원장은 방사능 물질도 몸 밖으로 배출한다는 만병통치약 스피룰리나를 권했다. “평소 색조 화장을 하지 않고 피부 톤이 그리 불균형하지 않아서인지, 인상이 달라 보이지는 않아. 조금 탄 것 같은 느낌인데?” 평소 내 얼굴을 근거 삼아 성의 있는 대답을 해준 선배도 있었지만 조금도 고맙지 않았다.

풀 메이크업을 해왔던 건 아니기에 오랫동안 나를 봐온 지인들은 “평소와 비슷해. 별 차이를 모르겠는걸” 같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남자 사람 친구는 노메이크업을 실천 중이라는 말을 꺼낸 후에도 조금의 차이도 발견하지 못했다(장님이냐!). 남들이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나는 매일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마음에 안 드는 옷을 입고 나온 날 같았다. 평소보다 땀이 더 많이 났고 자꾸만 얼굴이 붉어졌다. 불특정 다수를 대해야 하는 길거리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걸음이 빨라졌다. 가장 피하고 싶은 대상은 처음 알게 되는 사람이었다. 업무상 만나 명함을 건네야 하는 사람들. 프레스 행사에 참석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원래 이렇게 생겼다고 생각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사실은 제가 노메이크업 체험 중인데요(제가 원래 지금보다는 예쁜데요)…” 평소 외모에 대해 상당히 쿨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쿨한 척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순간 나는 촬영장에서 만난 사진가에게 “지금 제 얼굴이 성의 없게 느껴지나요?”라고 묻고 있었다.

페미니스트 작가 에머 오툴은 “제품을 바르지 않으면 우리의 피부는 사회적으로 잘못된 빛깔이다. 우리 외모가 사회적 이상형과 다른 것이 우리 몸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저서에서 밝힌 바 있다. 나는 그 말에 머릿속으로 백배 천배 공감한다. 하지만 한 달 동안 노메이크업으로 지내면서 사회가 정한 미의 기준에서 조금도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꼼꼼한 클렌징 의무로부터 해방되었을 뿐 내 눈엔 여전히 아이라인으로 눈꼬리를 올리고 입술에 붉은빛을 얹은 얼굴이 예뻐 보였다. 유인원이 엉덩이를 붉히며 짝짓기를 시작한 데서 발그레한 볼과 붉은 입술을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가설이 맞는지도 몰랐다. 어릴 적 봤던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님의 모습이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한 선배는 “남자 인터뷰이를 만나러 갈 때는 소개팅 나가듯 예쁘게 꾸미고 가. 훨씬 얘기가 잘 풀려. 여자 인터뷰이를 만날 때는 반대로”라고 말했다.

사회가 정한 아름다움에 부합하면 부합할수록 세상 살기는 수월했다. 단신에,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내가 ‘단정한 외모’로 세상에서 누렸을 편의는 그야말로 미약하다. 하지만 그것조차 내려놓을 수 없었다. 평생 나는 예쁜 여자상을 주입받았고 한 달의 시간은 그 여자상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 실제로 내 몸이 피곤하든 말든 피곤해 보이고 싶지 않았고, 선천적 안면 홍조가 도드라져 타인에게 내 감정이 드러나는 게 여전히 죽도록 싫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는 있었지만 나는 그 자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이언티는 ‘노메이크업’에서 “넌 그냥 그대로 너무 예쁜 걸. 넌 모를 거야. 아이라인 없이 웃는 너의 예쁜 눈웃음을”이라고 노래한다. 하지만 그는 이어 부른다. “넌 모를 거야. 메이크업 베이스 지우면 빛나는 우윳빛 피부.” 노메이크업 무브먼트는 한국 땅으로 건너와 생얼처럼 보이는 메이크업 트렌드를 불러왔다. 나는 다시 피부 화장을 시작했고 립스틱을 발랐다.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nobra

내 노브라의 10년 진화

“너 혹시 안 했어?” 대학 시절 남자 친구가 기함하며 물었다. 나는 10년 전부터 ‘선택적 노브라’를 해왔다. 핵심은 젖꼭지였다. 젖꼭지 실루엣이 드러나거나 색이 비치는 옷을 입을 때만 브래지어를 했다. 웬만하면 긴 머리로 가슴을 가리며 노브라로 다녔다. 남자 친구는 “나랑 있을 때는 괜찮지만, 밖에 나갈 때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내가 노브라를 한 이유는 불편해서다. 스스로 속옷을 사기 시작한 스무 살부터 ‘내게 맞는 브라’를 찾아 헤맸다. 없었다. 고급 속옷 브랜드에서 상의 탈의를 하고 치수를 재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내 가슴 모양이 평균이 아니라 모든 브래지어가 불편한가 싶었다. 나의 노브라는 여성 해방의 문제가 아니라 불편했기 때문이고 그래서 선택적이었다. 말했다시피 티 나지 않는 선에서만 노브라였으며(오죽하면 머리를 길렀겠나), 불특정 남자들과 계속 부딪치는 자리에는 브래지어를 하고 나갔다. 노브라는 타인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성적 대상화가 될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설마 쟤가’ 하는 시선을 느낀 적도 많다. 섭섭한 건 동성 친구들이 애먼 소리를 할 때다. “너 그러다 큰일 나면 어쩌려고 해.” 설리가 인스타그램에 ‘노브라 의심 사진’을 올렸을 때, 여성 전용 사이트의 댓글도 충격이었다. “xx송파맘-저렇게 예쁘면 노출 안 해도 남자들이 매력 느낄 텐데요.”

지난여름 <USA투데이>는 노브라 열풍 기사에서 “60년대 여성해방운동과 달리 정치적 이유가 아닌 개인의 안락함과 패션을 위해 노브라를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켄달 제너는 트위터에서 더 쉽게 말했다. “노브라가 무슨 대수예요. 섹시하고 편안하고 내 가슴이 괜찮으니까 하는 거죠.” 맞다. 무슨 대수인가. 편안하면 됐지. 게다가 요즘은 노브라가 쿨해 보인다. 켄달 제너처럼 토플리스까진 부담스럽지만 영화 <비거 스플래쉬>에서 라프 시몬스의 의상을 노브라로 입던 틸다 스윈튼처럼은 되고 싶다. 가슴을 옥죄는 과정 없이 한 번에 쓱, 옷에 몸을 밀어 넣고 외출하는 모습은 실루엣도 아름다웠지만, 행위 자체가 산뜻하고 자유로웠다. 나도 노브라로 옷을 입을 때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가볍다. 자유롭다. 이젠 편안함뿐 아니라 삶의 무게를 하나 처치한 듯한 기분을 느끼고자 노브라를 한다. 무언가에 해방된 내가 스스로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습게도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노브라가 혁오 밴드를 인터뷰 하러 갈 때는 당당했고, 남동생 앞에서는 움츠러들었다. 혁오는 쿨하게 받아들이고, 내 동생은 가족끼리 왜 이래 할 거 같아서? 아, 내 노브라는 갈 길이 멀다. 이런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면 내 삶은 분명 변할 텐데.

흔히 노브라는 ‘선택의 자유’라고 말한다. “브래지어가 예뻐서 입을 뿐” “글래머러스한 옷매를 살리려면 그분이 필요함” 등 내가 입고 싶으면 입고, 말고 싶으면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브래지어를 안 하면 가슴이 처진다는 이유에서 불편함을 참기도 한다(둘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는 놀랍도록 제각각이다. 연구는 후원하는 자본, 정치 상황 등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까). 어쨌든 몸에 대한 결정권은 본인에게 있으니, 브래지어를 하든 말든 내 마음이라는 것. 그런데 주체적이라는 내 선택이 체제의 영향을 받진 않았을까. 미국의 유명 페미니스트 주디스 버틀러는 역사와 문화가 만든 규범 아래서 행동을 반복하면서 젠더 정체성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 젠더 정체성을 올바르게 수행하면 여러모로 보상을 받는다. 예를 들어 사회가 이상적이라 여기는 여성스러운 의상과 행동을 하면 성적으로 더 매력적이거나 믿음직스럽거나 사랑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브래지어를 할 때 섹시해 보인다는 것. 그래서 노브라로 지내다가 데이트할 때만 브라를 하는 것. 이런 내 생각, 느낌, 행동이 체제의 산물임에도 내가 그것을 선택했다고 믿는 거 아닐까.

18개월 동안 제모하지 않은 겨드랑이 털을 TV 쇼에서 선보인 페미니스트 에머 오툴은 말했다. “관습이 만든 이상적인 의상과 신체 조건에 따르면 얼마간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죠. 하지만 여기서 비롯되는 행복은 당신의 성격, 재능, 고유한 아름다움에 가치를 두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과는 달라요.” 이제 난 처진 가슴, 드러난 젖꼭지가 아름답지 않다는 생각도 지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