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예술가 – 패러독스 오디세이

현재를 사는 한국의 예술가들이 동시대를 기록하는 수만 가지 언어와 방식이 있다. 그중 박찬경과 함경아가 삶을 통틀어 제안하는 예술적 화두에 공감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날이 명백해진다.

패러독스 오디세이

함경아의 사적 영역과 세상이라는 공적 영역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살펴보는 건 흥미롭다. 그 가운데로 대륙, 이념, 감각 그리고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길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랩 장식이 달린 재킷과 팬츠는 록(Rock at Mue), 노란색 펌프스는 디올(Dior).

스트랩 장식이 달린 재킷과 팬츠는 록(Rock at Mue), 노란색 펌프스는 디올(Dior).

“전 아침을 먹기 위해 일어나요. 커피 한 잔, 이런 게 아니라 제대로 차려서 똑같이 먹어요. 다섯 가지의 야채를 끓는 물에 데쳐서 주스로 마시고, 이 빵은 여기서, 저 빵은 저기서 사서, 달걀 프라이, 햄, 연어를 얹어 샌드위치를 만들고, 아보카도와 바질에 발사믹을 뿌려 올리브랑 먹어요. 커피는 꼭 네스프레소로 내리는데 첫 잔은 아메리카노, 두 번째 잔은 카푸치노. 아침 먹기 전, 물 한 잔을 마시고, 유산균을 두 알 먹고, 물에 프로폴리스를 열 방울 떨어뜨려 마저 마셔요. 1년 365일 내내 똑같은 패턴이에요.” 타이베이 비엔날레의 첫날, 함경아 작가는 늦잠을 잔 통에 세수만 하고 뛰쳐나온 내게 잘 닦은 복숭아와 바나나를 내밀며 말했다. 내친김에 덧붙이자면, 그녀는 매일 초현실적인 꿈을 꾸느라 잠을 설치고,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며, 고양이와 함께 산다.

나는 편집증적일 정도로 규칙적인 아침 식사 메뉴가 흥미로웠다. 예술가 함경아의 작업 방식은 이 질서 정연한 아침 식사와는 정반대에 있기 때문이다. 함경아는 자신의 경험, 기억, 일상에서 길어 올린 예술적 사유를 실천하기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가는 작가다. 게다가 그녀는 “인생의 불완전성과 불가피성을 예술적 요소로” 끌어온다. 예상하겠지만 이번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자수 작업 중 ‘SMS 연작’은 알려진 대로 북한 사람들의 노동으로 완성된 작품이며, 이 절대적 명제 때문에 함경아는 종종 원치 않게, 일종의 ‘북한의 인권과 휴머니티’ 식의 드라마 주인공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남북문제에 치중한 질문은 그녀에게 ‘예술가의 아침 식사’ 같은 이름의 카페를 차릴 거냐 묻는 것보다 더 부질없어 보인다.

함경아의 작품이 가진 서사적 속성은 작가 자신이 ‘이동’할 때부터 이미 발현됐다. 아시아를 여행하며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을 쫓아가 이 색에 얽힌 다양한 삶을 ‘체이싱 옐로우’에 담았고, ‘바나나’라는 단어를 집요하게 추적한 끝에 필리핀의 유기농 바나나 농장까지 쫓아가는 ‘허니 바나나’로 만들었으며, 경찰 분장을 하고는 도쿄 시부야의 경찰소 앞에서 경찰관 흉내를 낸 퍼포먼스 ‘Police/POL is’를 선보였다. 그녀가 노란색에 그렇게 동물적 혹은 예술적으로 반응한 건 과거 어디쯤의 기억과 맞물리고, 경찰관 코스프레의 뒷면에는 공권력에 대한 이슈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명제는 ‘움직인다’는 것이다. 함경아의 예술적 언어는 그녀의 몸을 통해 역사의 한순간으로, 현상의 한 지점으로 이동했고, 그녀의 영토는 그렇게 종으로, 횡으로 확장돼왔다. 급기야 그녀는 자수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작품 자체를 이동시키고 있다. 대륙, 이념, 감각 그리고 삶의 경계 등 숱한 경계를 넘나드는 이 길은 ‘오디세이’라 할 만하다.

“2008년 어느 날인가, 집 대문 아래에 뿌려진 ‘삐라’를 발견했어요. 나만의 예술적인 방식으로 그들과 커뮤니케이션 해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똑같이 삐라를 만들어 뿌릴 수도 있고, 아름다운 시를 뿌릴 수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그들이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자고 생각했어요.” 함경아식 극한의 소통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가 사는 디지털 세상은 클릭 한 번으로 다 열리지만, 그곳은 그렇지 않잖아요. 디지털과 가장 반대적인 요소가 뭘까 고민하다 자수를 떠올렸어요. 아날로그보다 더 노동 집약적인 방식이니까요.” 점묘파처럼 그림이 픽셀로 남을 때까지 확대한 도안을 북한에 보내고, 그곳 사람들은 이를 자수로 채워 돌려보내며, 한참 후에 다시 그녀의 손에 당도하는 방식. “이번에도 ‘니들링 위스퍼, 니들 컨트리’를 선보였어요. ‘니들링’에는 ‘바느질하다’라는 뜻 말고 ‘살살 긁는다’라는 의미도 있잖아요. 가히 기분이 좋진 않지만 신경 쓰이는 그런 거. 내가 어떤 텍스트나 이미지를 보낸다면, 작업하는 이들은 그걸 매일 수십 번씩, 수백 번씩 보면서 경험하겠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길은 없지만, 저는 씨앗을 뿌리는 일이라 여겼어요.”

생면부지의 사람과 모스 부호로 소통하듯, 함경아는 몇 년째 비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방가방가’ ‘Big Smile’ ‘Imagine’ ‘Are you lonely, too?’ 등 ‘남조선’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그곳에서 각인될 수도, 은어처럼 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함경아가 선별하는 단어는 실제 일상 언어라 할지라도 추상에 가깝다. 그녀는 2년 전 리움 10주년 <교감>전에서 색면 추상화가 모리스 루이스의 작품을 자수로 표현한 ‘추상적 움직임-모리스 루이스 델타 감마 1960’을 선보였다. “CIA의 엑스파일에 나와 있는데, 추상주의 자체가 굉장히 정치적인 맥락에서 태생했어요. 당시 소련에 대항하는 미국 자유주의를 문화적인 형태로 만들었고, 최고의 수혜자가 잭슨 폴록이었다고들 하죠. 하지만 대부분은 추상주의를 순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 태생은 ‘Poetry Weapon’인데 말이에요.” 아이러니한 미술적 형태인 추상주의를 정치적 상황에 들고 와서, 추상이 전혀 존재할 수 없는 곳에 다시 보내는 것, 함경아라는 예술가의 사적 영역과 남북한이라는 공적 영역을 통과하여 소통과 실험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사실은 재미있다. 이 작품이 티셔츠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만큼이나.

지난 3월 홍콩 아트 바젤 때 함경아의 자수 샹들리에 작품은 현지 매체에서 가장 자주 언급한 화제작 중 하나였다. 전시장 정중앙에서 샹들리에는 거대한 컨벤션 센터를 밝혔다. “포츠담 회담이 열린 다섯 도시를 상상하고 계획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를 만든 거죠. 저는 샹들리에를 구성하는 스티치 뒤에 존재하는 이들이 시대에서 배제된, 희생된 사람들이 아닐까, 그리고 이들의 존재를 예술로 끌어들여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각했어요.” 마찬가지로, 서울과 달리 밤이 되면 깜깜해지는 타이베이의 파인아트뮤지엄에서도 그녀의 작품은 형형히 빛날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어두운 형광등 아래서 몰래 작업했을 작품의 카무플라주 패턴은 원래의 쓰임대로 그들의 존재를 위장한다. 동시에 이들은 이 작품의 중요한 전제이자 한국 땅에서도, 전 세계 미술계에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절대 감춰질 수 없다. 거리의 패션 요소로서의 카무플라주가 그렇듯, ‘카무플라주 이즈 언카무플라주’의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흰색 재킷은 김서룡(Kimseoryong),  식물 자수가 새겨진 검은색 블라우스는  로샤(Rochas at Mue),  검은색 와이드 팬츠는 록(Rock at Mue).

흰색 재킷은 김서룡(Kimseoryong), 식물 자수가 새겨진 검은색 블라우스는 로샤(Rochas at Mue), 검은색 와이드 팬츠는 록(Rock at Mue).

“‘야호’ 하면 한 1년 정도 있다가 ‘야아호오…’ 이렇게 메아리가 들리는 식이에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어요. 시간도, 돈도 모든 게 순응적이에요. 간혹 들켜서 숙청을 당하기도 하고, 작품을 압수당하기도 하고, 별의별 일이 다 있어요. 그렇게 간절히 기다려서 완성본을 받았는데, 제가 치워버리라고 한 적도 있어요. 그들에게 익숙한 색의 조합을 난 예술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거죠. 같은 검정이라도 여러 색을 섞어서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까만 실로 시커멓게 해버리는 사람도 있잖아요. 미적인 측면에서 스스로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요. 한번은 작품을 방에 풀어두었는데, 정말 온갖 냄새가 나는 거예요. 여로를 담고 있는 냄새죠. 어떤 지역을, 어떤 어려움을 딛고 왔나… 제 고양이 한 마리가 작품 위를 걸어 다니며 계속 냄새를 맡더군요. 살아남은 자의 고단함과 슬픔 같은 게 고양이에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어요.”

함경아의 작품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태생적으로 작품이 내포한 방대하고 치밀한 역설의 미학을 즐기는 것이다. 그녀의 메시지나 이야기가 어떠한 길을 걷는 발 없는 존재가 되어 남기는 발자국을 따라가보는 것이다. 전시장에 진열된 작품은 ‘보이는 결과물’일 뿐,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이 있다. 북한 사람들이 읽게 될 텍스트와 보게 될 이미지 역시 모두 작업의 일부가 된다. 또 소통의 방식으로 사용된 자수는 요즘 럭셔리 패션 하우스에서 가장 고급 기술이자 값비싼 아이템이다. 무엇보다 나는 함경아라는 까다롭고 집요한 예술가가 모든 걸 그들에게 맡긴 채 손 놓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그래서 그녀는 몸이 아프다고 했다), 체념(내가 바뀌는 게 낫다는), (그들의 시스템에 대한) 순응 등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어쩔 수 없이 변화하는 지점까지 모두 예술 작업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유명해질수록 작업은 힘들어지는 딜레마적 상황, 어쩌면 작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는 실패까지도 말이다.

“전 결국 돈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극단적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제 작품을 두고 ‘자수 회화’라고들 하지만, 그런 점에서 전 오히려 ‘컨셉추얼 아트’, 프로세스적인 작업이라 생각해요. 언뜻 보기에는 공예적이기도, 키치적이기도, 오리엔탈적이기도 하고, 사이키델릭하다고도 하더군요. 제각각 다른 곳을 보지만, 그 간극을 관객들이 상상력으로 메우고 함께 참여하길 바랍니다.” 상상력은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어떤 대상이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올해의 작가상 2016’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중 한 명으로 선정된 함경아는 카무플라주라는 개념의 예술적 영토를 또 한 번 확장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축구에 재능 있는 한 탈북 소년이 흰색의 빈 종이와 공간에 축구공을 튕겨서 만든 카무플라주 작품 ‘악어강 위로 튕기는 축구공이 그린 그림’이다. 잭슨 폴록도 울고 갈 근사한 작품 옆 영상에는 주인공인 소년이 뛰고, 놀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혹자는 소년을 동정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함부로 동정한다는 건 오만한 태도이며 더욱이 그것이 탈북자이기 때문이라면 지나치게 표피적이다. 함경아의 작품과 영상에는 살아남아 축구로 꿈을 꾸는 이 총명하고 강한 소년에 대한 존중과 감동 그리고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함경아는 타이베이에서의 인터뷰 말미 “나의 인생과 작품을 관통하는 어떤 서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녀가 온 생을 던져 예술 혹은 세상과 관계 맺는 풍경을 목격하며 그 말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