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다이어트

키, 눈동자 색, 탈모 여부, 반드시 앓게 될 질병… 유전자에는 당신의 모든 신체적 운명이 새겨져 있다. 무엇을 먹어야 하고 먹지 말아야 할지까지도. 두 달 스마트폰 요금이면 누구나 DNA 검사를 할 수 있는 시대, 일상 속으로 들어온 영양유전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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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는 득, 나에게는 독

“지방이 누명을 썼대!” “파인애플 식초를 먹으면 살이 빠진다던데?” 내 별명 중 하나는 ‘어른 코끼리 점보’. ‘카더라’가 들려오면 귀가 팔랑팔랑, 하늘을 난다. 매일 비행을 반복하던 나를 정착시킨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DNA 검사와 푸드 알레르기 테스트!

당시 나는 완전식품이라 불리는 달걀과 고구마를 주식으로, 우유와 야채를 곁들여 먹으며 몸을 만들고 있었다. 일주일에 네 번 필라테스를 하고 간식은 견과류 한 주먹, 허기진 밤에는 요구르트를 뿌린 샐러드를 먹었다. 미스터리한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헬시 라이프에도 불구, 이상하게 늘 피곤하다는 사실. 잦은 운동이 무리였나? 일 스트레스가 쌓인 탓일까? 원인은 엉뚱한 곳, 바로 음식에 있었다.

의심되는 가족력을 체크하기 위해 DNA 검사를 신청한 날, 담당 의사는 푸드 알레르기 테스트도 함께 권했다. 몸에 좋은 음식은 이미 먹고 있고 사과, 복숭아 등 호흡이 가빠지는 알레르기 리스트는 항상 금하고 있는데 굳이? 무엇보다 두 검사를 모두 받으면 100만원이 넘는다. 부담스러운 마음도 잠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음식이 반드시 두드러기 같은 증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닙니다. 피곤함, 졸음, 불면, 소화불량, 변비 등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고 심지어 수일 후에 발생하거나 축적되기도 하죠.” 더 클리닉 김명신 원장의 설명에 바로 카드를 꺼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나의 피는 녹십자와 바다 건너 미국으로 떠났고 3주 후 분석지가 도착했다. 결과는 가히 충격적. 달걀 흰자와 노른자 그리고 우유 옆에 ‘Severe’, 즉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 표시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 몸은 음식과도 면역반응을 해요. 나와 맞지 않는 적이 들어오면 그들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죠. 힘을 다른 데 쓰니 충분히 재생되기 어렵고 이는 노화나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DNA 검사 결과에 따라 약하게 태어난 장기에 무리를 주지 않는 식이요법도 처방 받았다. 나는 췌장이 취약해 당 대사가 좋지 못하니, 단것은 인슐린이 가장 많이 나오는 오후 3~4시경에 먹고, 미약하나마 유방암 인자가 있으니 폐경기에 닥쳐 호르몬요법을 쓰기보다는 미리미리 콩 단백질로 여성호르몬을 섭취해두는 게 좋다는 충고를 들었다.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아스피린 복용도 의논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냉장고를 열고 위험군으로 분류된 음식을 모두 버렸다. 단백질 섭취원을 콩과 두부로 바꾸고 달걀과 우유로 만든 모든 음식, 빵, 쿠키도 금했다. 2등급 경고를 받은 유제품과 소고기, 대구, 캐슈너트도 휴지통행.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까? 거짓말처럼 컨디션이 좋아졌다. 격무에 시달리는 시기였음에도 피로감이 확실히 덜하고 저녁이 되면 퉁퉁 부어오르던 하체도 얇아졌다. 누군가에게는 득이지만 나에겐 독이 되는 음식이 있었던 것이다.

 

내 몸에 새겨진 대로 먹어라

몇 년이 지난 올 6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며 민간 업체도 직접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게 된 것. 암과 희귀 질환을 제외한 12개 항목에 대한 검사가 자유로워지자 제노플랜, 헬로진 등의 기업이 ‘예측성 개인 유전자 검사 분석 서비스’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검사 방법은 간단하다. 온라인으로 상품을 구매하면 고유 시리얼 넘버가 붙어 있는 시험관 모양의 타액 수집기를 배송해준다. 다운받은 애플리케이션에 번호를 등록한 뒤 침을 뱉어 착불로 발송하면 끝. 약 2주 후 피부 노화, 피부 탄력, 색소침착, 탈모, 모발 굵기, 비타민 C 대사, 체질량 지수, 중성지방 농도,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카페인 대사에 이르는 12개 항목에 대한 결과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달된다. 내 몸속 상세 지도를 손에 넣게 되는 셈이다. 사실 지도 자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이 상품이 제공하는 라이프스타일 가이드.

호주 뉴트리션 리서치 디렉터, 플라비아 파예트 모르 박사는 “유전자는 음식과 상호작용을 한다”고 말하며 커피를 예로 들었다. “만약 카페인 대사가 취약한 사람이라면 커피를 하루 네 잔 이상 마시면 안 됩니다. 심장마비 확률이 네 배나 증가하니까요.” 하지만 카페인을 빨리 대사시키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오히려 더 많은 커피를 마셔야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같은 음식이 사람마다 다르게 작용하는 것이다. 제노플랜 김민준 부장은 이런 차이를 ‘스위치를 켜는 것’에 비유했다. “특정 환경이 결여된 상태에선 해당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만약 과다 섭취된 당에 민감하게 반응해 피부 노화가 촉진되는 유전자를 가졌다면 당 섭취량을 조절함으로써 해당 유전자의 스위치를 내릴 수 있다. 그러면 좀더 오래 젊은 얼굴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게놈이 지도 자체라면 이와 같은 식이 코칭은 내비게이션! 연료를 낭비하지 않고, 당신을 안전하고 넓은 길로만 인도한다. 이것이 바로 요즘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뉴트리지네틱스(Nutrigenetics), 즉 영양유전학이다.

해외에는 이미 수년 전부터 ‘23andme’, ‘Nutrigenomix’ 같은 서비스가 존재했다. 하지만 한국인에겐 유전자 분석도 메이드 인 코리아가 최고다. 서양인과 동양인은 생김새만큼이나 유전자도 다르기 때문이다. 민족적 특성과 지역적 환경이 두루 고려되어야 하는 서비스기에, 우리에겐 국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출시한 상품이 최적이라는 말씀.

 

지피지기, 음식 혜안

지난 한 달 대한민국 슈퍼마켓 진열장에는 유기농 버터와 치즈, 올리브 오일, 파인애플 식초가 전진 배치됐다. 파인애플 식초의 레시피를 찾아보니 파인애플, 식초, 설탕의 비율이 1:1:1. 설탕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데 과연 살이 빠질까? AnG 클리닉 안지현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답은 역시나. “발효 식초는 유기산이 풍부해 대사가 느린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다 맞는 다이어트 방법은 아니에요. 게다가 잘못 만들면 설탕물이 돼버려 오히려 살이 찔 수 있죠.” 고지방 다이어트?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에게 문자를 보내자 3초 만에 ‘고지방 다이어트 하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포스팅과 ‘금나나의 하버드레터: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허와 실’ 기사의 링크가 도착했다. 언제나 그랬다. 유행하는 다이어트에 대해 문의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답을 얻는다. We 클리닉 조애경 원장은 “늘 바나나 다이어트, 마녀수프 다이어트, 레몬 디톡스 등 당시 유행하는 다이어트의 성공 후기가 넘쳐나죠. 하지만 궁금하지 않아요? 그분들이 아직 그걸 하고 있을지. 아마도 지금은 핑거루트나 카카오닙스에 도전하고 있을걸요?” 통화는 ‘균형 잡힌 소식만이 늘 옳다’는 문장으로 마무리됐다.

지피지기, 건강한 음식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큼, 그것이 나에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를 알아보는 혜안 또한 중요하다. 물론 우주를 닮은 인체, 광활한 게놈 중 겨우 12가지 항목을 분석한 검사에는 한계가 있다. 단백질을 많이 먹으라고 가이드 받았지만 내게 독이 되는 달걀로 섭취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으니까. 가능하다면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구체적으로 걸러주는 알레르기 테스트를 병행하길 권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DNA 질병 검사를 통해 자신의 미래의 병증까지 알아낸 후 이 모두를 종합적으로 해석하고 가이드해줄 주치의를 만나는 것이다. 너무 비싸다고? 새털같이 많은 나날, 당신이 앞으로 평균수명까지만 산다고 쳐도 이 모든 검사의 비용은 하루 50원꼴이다. 껌 한 개 값도 안 되는 돈으로 맑은 정신과 좋은 신체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는 데 더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이보다 더 수지 타산이 좋은 투자는 없어 보이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