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crete Phenomenon

유아인과 친구들이 만든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2년여 만에 서울을 대표하는 창작 집단이 되었다. 예술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이들의 행보는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인간과 세상, 우정과 재능에 대한 질문과 응원을 던지게 한다. 본질과 현상을 동일 선상에 놓고 ‘예술과 우리의 상관관계’를 열심히 탐구 중인 유아인을 통해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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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이 예술을 하지 않을 때는 없었다. ‘개성 강하고 입바른 소리도 잘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예인’에 대한 호오가 갈릴 때도, ‘어떤 입지’의 스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간지 기자들의 부름을 받지 못할 때도 그는 스스로를 대중 예술가라 칭했다. 연기로 예술을 한다는 자각과 스스로 예술 작품이라는 자의식, 그리고 기꺼이 스스로 예술 작품이 되겠다는 의지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었다. 유아인의 동력(화력이 더 어울리겠다)은 매우 다양했지만 핵심은 욕망이었다. 그는 편안한 대화 자리에서도 이 단어를 자주 썼는데, 그의 욕망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모순을 들여다보게 했기 때문이다. 실존주의자임을 자처했던 그는 어느새 본질에 대한 고민으로 날카롭게 벼린 사유의 칼을 품은 존재로 진화했다. 세상은 유아인이 전례 없는 특이한 인류라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물론 그가 무엇이 다른가 식의 질문은 왜, 어째서 다른(척이라도 하는)가 보다 진부함을 시인하는 게 먼저였다.

이에 발맞춰 그는 매우 독자적인 방식으로 ‘유아인이라는 직업’의 일련의 눈부신 성공을 이루어냈다. 맬컴 라우리나 밀란 쿤데라 같은 고고한 예술가들이라면 이런 훈수를 두었을지도 모른다. “성공이란 집에 불이 난 것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다. 명성은 영혼의 집을 소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아인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어렵사리 쌓은 성공과 명성으로 영혼의 집을 구축하고, 재건하고, 장식하고, 확장하는 데 충분히 활용한 것이다. 영혼의 집에는 불 꺼질 날이 없었다. 그는 그 휑한 집에 뜻이 맞고 재능 있으며 착하고 존경할 만한 친구들을 날마다 초대했다. 어떤 화두에 대해 토론하고, 반문하고, 그 질문에 대해 다시 스스로 답하는 일련의 과정이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영혼의 집 곳곳, 거실과 침실, 부엌에 전도유망한 예술가 친구들의 작품을 좋은 값에 구입하여 걸어두는 데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그 집을 나와 우리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과 예술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는 실험실로 변화시켰다. 예술 작품이 삶에 끼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걸 넘어, 예술적 정신과 시각, 태도가 비루하기 짝이 없는 삶을 바꿀 수 있는지에 몰두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세련된 파티에 근사한 옷을 꺼내 입고 호스트로 나서기도 하고, 며칠 동안 면도도 안 한 채 두문불출하며 하나의 주제에 집착하기도 했다. 그 결과물은 전시 혹은 패션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하고, 잘 팔리거나 덜 팔렸지만, 그는 결국 해답이 아니라 숱한 질문과 알맞은 실천법을 주조하고 있었다. 지금 같은 시대에 딱히 쓸모없을지도 모를 숱한 질문에 깔린 중요한 전제는 (존 레논의 말을 빌리자면) “예술가는 우리 모두를 반영하는 상으로 모든 이들이 느끼는 것을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유아인은 영혼의 집,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치명적인 꿈’을 꾸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성욕보다 나쁜 건 물욕이고, 물욕보다 나쁜 건 명예욕이라고 했지만, 나쁘기로 따지자면 세상을 바꾸겠다(혹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욕망이 최고다. 나빠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순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욕망이 야심이 되는 순간, 진정성은 증발하거나 가려진다. 동시에 이는 현대를 이전 사회와 차별화하는 바로미터이자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상급의 단계다. 물론 유아인은 예술이라는 영혼의 집을 본격적으로 짓기 이전에도 트위트 라인조차 온전히 자신의 생각으로 채우곤 했다. 이를테면 “우리는 ‘이렇게 이 일상의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가?’라고 묻지 말고 차라리 ‘이 일상의 현실이 과연 그토록 확고하게 실존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같은. 그가 몇 년 전에 트위터에 쓴 지젝의 문장이야말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요즘 뉴스를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질문 아닌가? 어떤 프레임을 파괴하는 프레임으로서의 어떤 자세나 태도는 10년 전에도 그의 것이었지만, 더 이상 철벽 같은 담론 안에서 논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유아인이 스스로를 작품화하려는 시도를 ‘일단정지’ 한 것 같다. 일례로 가을 초입에 열린 장 줄리앙 전시의 오프닝을 지켜보며, 서울 시내에서 이런 광경, 최적의 연대를 도모하는(흥겹고, 함께 있어 즐겁고, 쿨하고, 힙하며, 쓸데없는 참견 없이 스스로 꾸릴 수 있을 정도의 탁월한 규모) 풍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유일할 거라 생각했다. 한남동의 좁은 이면 도로로 나 있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창은 일종의 캔버스이자 스크린이 되었다. 그는 매우 노련한 가드들까지 동원하며 연예인으로서, 갤러리 대표로서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전시를 보러 온 건지 유아인을 보러 온 건지 모를 사람들이 뒤섞인 풍경은 그 구분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이는 유아인이 만들어낸 중요한 현상처럼 다가왔다. 지금 이들에게 본질과 현상은 동의어다.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 것보다 삶이 예술을 훨씬 더 많이 모방한다. 예술이 실재이고, 삶이 거울인 것이다. 그건 삶의 모방본능뿐 아니라 삶의 의식적인 목표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예술은 삶에 그 에너지를 구현할 수 있는 일종의 아름다운 형식을 제공한다.” 오스카 와일드가 100여 년 전에 세상에 뿌린 이 문장은 유아인을 위한 것인 동시에 외려 다소 부족하다. 그는 자신은 표현하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스스로 역할을, 임무를, 사명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아름다움뿐 아니라 추함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지난 2년 전부터 어느 순간까지는 유아인이라는 역할의 경험치를 어떻게 스튜디오 콘크리트에 합당하게 접목하고, 이 돌연변이를 (고작 연예계가 아닌) 미술계에서 어떻게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게 할지 고민했다면, 이제 그는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한다. 이를테면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성공과 실패 자체를, SNS를 잘 이용하는 방법이 아니라 SNS의 폭력적 수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골몰하는 식이다. 그게 무엇이든 본질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중심으로 갈수록 중력은 강해지고 제 무게는 몇 배 더 무거워지지만 그는 그조차 자기 몫임을 알고, 최선을 다해 스스로의 역할에 복무한다. “성격이 곧 운명이라고 했다”고 이준익 감독이 말한 것처럼, 이것이 동시대를 살고, 반응하고, 깨어있고, 버텨내는 ‘제 생긴 대로의’ 방법이자 운명임을 순순히 시인한다. 예술의 어원은 기술이다. 산업 혁명 후 교회, 왕족 등 절대 권력이 약해지면서 예술가들은 의뢰에 따라 ‘예술해주는’ 기술자가 아니라 의지대로 예술하는 자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예술이 지금처럼 예술로 불릴 수 있었던 건 예술가가 자기 목적성 혹은 자기 충족성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본질에 가까울수록 개혁한 미술로 대우받는 요즘, 그것이 개념 미술가들의 것만은 아니며, 그의 표현대로 ‘근본 없는 예술가 나부랭이들’에게서 그 희망을 종종 발견한다. 이것이 비단 예술 얘기만이 아니라는 걸, 요지경의 세상이 증명하고 있다.

이 특집은 12월 3일부터 예정된 전시 <CCRT-Aerospace: The Other Side; 경계의 저편>(이하 <에어로스페이스>)과 연계, 이들의 무브먼트를 선언하는 방향으로 기획됐다. 약간의 피해 의식과 반항심도 작동했을 것이다. 이조차 충분히 응원할 이유와 가치가 있었다. 어떤 예술가를 지지한다는 건 저항한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이들의 태도와 자세는 변화하고 있다. 유아인의 또 다른 질문도 시작되었다. 본질을 더 냉정하게 파고들기에 이른 그는 지긋지긋하게 따라붙는 사유를 적당히 끊어내고 자족할 만큼 뻔뻔하지 못하다. 몇 번의 만남 끝에 “일관성이란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의 마지막 도피처”라는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유아인의 우주는 엄청난 밀도로 폭발 직전이며, 따라서 이것은 현상이자 본질로서의 젊은 예술가들의 위태로움과 설렘, 허무와 의지의 기록이다.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연 지금 저 사람은 ‘유아인’인가 ‘엄홍식’인가, 새삼 궁금해졌다.
나조차 구분이 안 된다.(웃음) 물론 사람들에게 ‘홍식아’라고 부르는 그 마음가짐이 있고, ‘아인아’라고 부르는 마음가짐이 있다. 내 어시스턴트인 니콜라이만 봐도 여러 가지 호칭을 동시에 쓴다. 콘크리트 관련해서는 ‘엄 대표님’, 이쪽(배우) 일 할 땐 ‘유 배우님’, 퇴근 후에는 그냥 ‘홍식이 형’. 그런 걸 보면 부르는 사람의 몫인 것 같다. 예전의 난 진짜 그런 걸 구분 잘했다. 그게 굉장한 편의를 주기도 하고 의지도 표현할 수 있었으니까. 콘크리트에서의 이름은 엄홍식이라고 하겠다는 건 ‘유아인의 후광을 최소화하리라’이자 이 일을 개별적으로 가져가리라는 의지였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다 무색하다. 내가 백날 엄홍식이라고 써봐야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그냥 ‘유아인 카페’일 수 있는 거다.(웃음) 호칭은 내 의지를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어쨌든 여러 개로 불리는 게 좋긴 좋다.

좋다고, 그게?
그게 재미는 있다. 어쨌든 그런 것이 의미 없어지는 단계를 지나가는 것 같다. 스스로 ‘홍식아, 그런 것에 집착하지 마, 별거 아니야,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라고 해’하는 단계랄까. 난 항상 뭔가를 설정해놓고 그걸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강요 혹은 주입하는 데 굉장히 애쓰면서 살아왔다. 이건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전시를 하고 뭘 해도 ‘유아인 카페’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고, 예술적인 영혼에 살을 찌우겠다고 오는 사람도 있고. 그 공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다양한 욕망이 투영되고, 다양한 목적이 반영되는 것에 대해 나 스스로 조금 유연해졌다고나 할까. 전략적으로는 중요하지만 집착하진 않게 되었다.

모든 공간은 유기적으로 진화한다. 만든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 마음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렇기에 어쩌면 ‘어쨌거나 유아인 카페’라는 것이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한계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쉬운 얘기가 아니지만, 어쨌든 이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목적이 ‘유아인’인 건 최소화하려고 한다. 장사하는 공간에 와서 소비라는 걸 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무시하거나 그들을 억제하겠다는 것 자체가 배부른 이
야기일 수도 있겠다. 물론 내 팬들이 나를 통해서 어떤 작가를 접한다든가, 어떤 문화적 기회를 접한다든가 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공간의 80%가 나의 팬으로 가득 차 있는 건 과연 긍정적인가? 그렇다고 굳이 내가 일하는 공간에 발길을 끊거나 혹은 ‘고객 성분 조정’을 하겠다고 하는 행위가 예쁜 건가? 고민하게 된다. 본격적인 전시 공간을 만들면 해소되는 문제일까 싶다가도 그런 생각이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하는 일에 진정성을 드러내겠다고 되레 더 가증스러운 일을 더하는 건 안 하고 싶다. 사실 뭐가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스스로 가벼워진 걸까?
굳이 예술적인 걸 떠나 사는 것도 그렇지 않나. 예전에 그렇게 목을 매던 것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깨우쳐주는 더 큰 의미가 번번이 찾아오니까. 어떤 과제를 해결하고 나면 넥스트 레벨의 과제가 주어지니까. 물론 내가 새로운 무게를 짊어지지 않고 그저 가벼워지기만 한다면 못생긴 꼰대가 되어가겠지. 이름, 호칭, 공간의 성분 등 스스로 의미 부여한 모든 것과 씨름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내게는 훨씬 중대한 게 있어, 이런 상태인 것이다.

지난 8월 말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났는데, 이제까지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웃음)
바로 다음 날이었어도 또 달랐을걸. 난 진짜 매일매일 다르다.(웃음)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본질이나 정체성에 대한 생각 중 한껏 무거워진 부분도 있나?
분명히 있다. 처음에는 놀이터 같은 개념이었다. 나는 이게 좋아, 이런 식으로 내 취향을 드러낼래, 소개할게, 우리 쿨한 척하자, 힙스터 플레이 하자 등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 지금은 놀다 보니 ‘내가 무엇을 위해 놀고 있지? 아, 내가 이래서 놀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나 할까. 그것 자체가 무서운 거다. 난 뭔가 확립된다는 자체를 굉장히 두려워하는 편인데, 내가 말하기도 낯뜨거운 그놈의 예술을 이렇게 부대끼게 부여잡고 있는가가 정립되어가는 거다. 내가 이걸 통해 무엇을 바라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해가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같은 것이 많이 생겼다.

배우로서의 유아인을 인터뷰할 때도, 대중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첨예하게 고민했다. ‘대체 연예인은 왜 그래야 해?’라는 건 당신의 단골 질문이었지 않나.
결국은 나 개인의 욕망에 가장 크게 닿아 있기에 움직이는 거겠지만, 나 스스로에게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 이를테면 유아인의 배우 활동 반경에 다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자꾸 사람들의 의식을 확장하고 싶어 하고, 나 스스로 그걸 통해 실험하고 성장하고 싶어 하며, 그걸 해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스튜디오 콘크리트 일을 하지 않았을 때도 내가 선택한 키워드는 청춘, 성장 같은 거였고, 비즈니스에도 똑같이 반영되고 있다. 기존 의식 안에 들어가서 노는 것에 대한 어마어마한 반감이 있는 것도 같고.

남을 1cm라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번번이 자신의 것을 먼저 깨야 한다는 게 이른바 영향력 있다는 자들의 숙명 아닌가?
내 취향도, 감성도, 감각도 박살 내면서 새로운 걸 찾는 것이, 진화하려고 하는 것이 처음 배우 시작할 때의 자세와 비슷하다. 처음엔 나도 예술을 그저 예술 작품의 개념에서 접근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저렴하지만 썩 괜찮은 예술품을 자기 침대 옆에 두는 그 정도의 가치를 삶 속에 녹여서 가져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지금은 실험하는 사람의 자세가 확실히 강렬해진 것 같다.

<사이키델릭> 전시 서문에도 그런 내용을 썼다. 태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꽤 일리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엄청난 사명감이 생겼다. 우리가 매달리고 있는 수많은 기술과 과학, 어떤 시각과 자세도 모두 예술이 될 수 있는데, 이것을 인생에 녹이면서 함께 나아갈 때 이 꽉 막힌 절벽의 실마리가 풀릴 것 같은, 그런 메시지를 감지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 풀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인간이 가져갈 수 있는 예술성을 어떻게 삶에, 사회에, 문명에 녹이느냐. 예술품으로서 매몰되어 있던 예술이라는 코드가 굉장히 확장되었을 때, 우리 삶을, 끝도 없는 불합리한 세계를, 발전하고는 있지만 진화를 멈춘 인간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 말이다. 예술품 시장이 내게 하나도 흥미롭지 않다는 걸 알았고 그렇다면 다 떠나 그저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판을 짜고 그 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는 지점에 도달했다.

이런 생각이 배우로서의 유아인에게 어떤 식으로는 영향을 주고 있나?
연기나 배우 활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겨나고 있다. ‘인생 공부가 최고의 연기야’라는 챕터를 지나와서 예술이라는 걸 개인적인 연구로 가져가면서 내가 이 비즈니스를 병행하고 있는 이 순간이 엄홍식 혹은 유아인(혹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이 연예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거지. 그래서 영화는 뭐지, 연기는 뭐지, 내가 왜 하지, 연기로 빚어진 나는 뭐지, 내가 어떤 걸 할 수 있지, 그런 것을 계속 생각하게 된다. 대중이고 순수고 다 떠나서 결국에는 영향력을 갖게 되는 사람의 몫이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일 수도 있고.

같은 대중이라도 배우로서 만나는 관객과 스튜디오 콘크리트 대표이자 디렉터로서 만나는 관객은 이질적일 수도 있다. 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나?
우리는 뭔가를 만들고 남들이 봐주는 것에 굉장히 익숙하다. 나는 그저 한 사람일 뿐인데, 그런 나를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이 봐준다는 걸 얼마나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한 명 두 명이 갑자기 1,000만이 되면 결국 다수라는 그림을 향해 무언가를 하게 되고 개개인을 그렇게 가져가지 않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하루에 많아봐야 100명, 200명 찾아오는 전시를 하고 있고, 이들과의 만남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유아인 구경하려고 찾아온, 직접 마주할 수 있는 대중, 관객에게 어떤 자세를 가질 것인가, 같은 고민이 있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보여지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책임이라는 건 어느 정도의 무게일까?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동료 중 한 작가가 유학 갔다 와서 세상에 좋은 걸 주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보수적으로 말했다. “좋은 게 뭔데? 어떻게 좋다고 장담할 수 있어? 너는 12시간 그걸 공부한 사람이지만, 생업 현장에서 예술이나 철학과는 상관없이 사는 사람에게 개념 하나 던져주는 것이 무조건 좋은 걸까? 저마다의 인생이 있을 텐데.” 고고한 예술 이면에는 제발 봐주세요, 내가 맞다고 해주세요, 하는 연약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확립하는 자존과는 별개로 세상에 뭔가를 내보이려고 할 때는 철저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대중에게 가 닿을 때 최대한 말쑥한 뭔가를 뽑아내려는 의지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니, 아무것도 못하게 되더라.(웃음) 기꺼이 무책임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따른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활동을 눈여겨보게 된 건 주류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또 다른 주류를 만들겠다는 욕망이 더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그 욕망은 어떤 상태에 있나?
주류가 뭔지 모르겠는 상태?(웃음) 물론 경계는 분명 있다. 모르겠다는 건 모르고 싶다는 거고. 요즘도 항상 타진하긴 한다. 주류가 뭐지? 나에게는 어떤 욕망이 있지? 그냥 우리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 건데, 그럼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주류스러운’ 건가? 아닌가? 그럼 아닌가 보지, 그 정도다. 사실 주류, 비주류라기보다는 성분 자체가 아주 많이 다른 것 같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기존 미술계에 대한 반감이 상당해 보였는데, 그 파이팅은 다 어디로 갔나?(웃음)
그런 척한 거다.(웃음) 편승하고 싶은데, 못 끼면 반감이라는 게 생긴다. 하지만 안 끼는 거라면 상관없어진다. 사실 유아인도 진짜 비주류였지 않나.

이젠 누구도 유아인을 두고 주류, 비주류를 따지진 않는다.
내가 보는 한에서, 시장 안에서도 주류, 비주류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우리 같은 애들도 많은 것 같다. 그에 상관없이, 우리보다 훨씬 잘하는 팀들도 있고. 물론 기존 룰을 자꾸 따라가려는 관성은 있다. ‘갤러리스러운’ 것, ‘전시스러운’ 것, 고급스러운 것, 좀더 자유로운 것… 하지만 우리는 무조건 우리 방식으로, 너희들이랑 잘 놀면서 결국 어디까지 올라갈래, 이런 것이 무색해진 것 같다. 그보다 중요한 건 뭘 하고 싶은가다. 작업할 때 친구들에게도 얘기 많이 한다. “자존심이 어디 있어,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자존심이지. 그걸 통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목적인 거지.” 이를테면 한류 스타나 톱스타 같은 건 목적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나 사이에 있는 것일 뿐이다.

시간이 흘러도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고수했으면 하고 바라는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무엇일까?
우리가 스튜디오이건, 유아인 카페건, 독립 갤러리이건, 해외에 진출하건, 누구와 일하건, 우리는 그냥 처음 우리가 한 말대로 예술과 창작을 포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사람들일 거고, 이 세계에서 창작이 무엇인지, 그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를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끊임없이 학습하는 상태로 그냥 의미 없는 수많은 것을 유연하게 바꿔치기하고, 때로는 저런 척도, 때로는 이런 척도 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가져갈 수 있는 집단이면 좋지 않을까. 지금은 <에어로스페이스>라는 걸 하고 있는 거고, 다음에는 <개새끼들>이라는 전시가 될 테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타진해보는 거다.

<에어로스페이스>에는 어떤 욕망이 투영되어 있나?
모르는 것을 향한, 밟아보지 못한 땅으로 가려는 모험 정신? 그걸 표현해내려는 의지? 예술적인 자세에 대한 포괄적인 반영인 것 같다. 인간의 연구, 기술, 과학의 정점이 우주과학이지 않나. 그런 것처럼 예술적인 접근에 있어서도 완전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어떤 마음이랄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하얀 캔버스가 작가의 예술 세계로 채워지고, 도전 정신, 의지, 모험심을 작품으로 반영하고 전시나 프로젝트로 가져가면서 우리가 성찰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계속 실험해볼 수 있는 무대, 또 다른 놀이터 같은 개념으로 접근했다. 우주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말이 된다. 우리 모두에게 무지의 공간이니 그 영역 안에서 생각이나 의지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허무맹랑한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 한국을 사는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거라고 기대하나?
그 시각 자체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지구는 위기에 처해 있고, 모든 개개인도 그런 상황이다. 우리가 기꺼이 알고 있다고 오만 방자하게 얘기한 세계의 바깥 시선에서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게 하는 것. 그런 시각은 과학적으로 하지 않아도 가능한 게 아닐까? 사실 미국에서조차 생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천문학적인 액수를 왜 저렇게 쏟아붓나, 이런 식의 아젠다가 생겨 우주산업이 정체된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엘론 머스크가 그 어마어마한 돈을 스페이스엑스에 쏟아붓고 우주를 건드리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그런 부분도 흥미로웠다.

유아인도 그런 마음으로 우주에 돈과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걸까?
우리가 테슬라는 아니니까.(웃음) 다만 어떤 예술적인 접근도 이런 시각이라면 재미있는 것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 거다. 우리가 열심히 만든 콘텐츠에 누군가가 얼마나 반응해줄지, 얼마나 유행할지는 측량할 수 없지만, 그것마저도 타진해보면서 그냥 우리 방식으로, 우리가 가진 무기로 우주로 향한다, 무슨 일이 펼쳐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꺼이 우리의 몸을 거기에 던지겠다! 그런 거다.

굉장히 선언적이다. 그래서 오렌지색 트레이닝복을 내세운 건가?
그런 부분도 분명 있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 자체가 옷을 만들며 시작된 거다. ‘1 to 10(원투텐)’ 시리즈로 나름 큰 성공을 거둔 후에 옷 만드는 일을 조금 더 흥미롭게 가져가는 방식을 고민하다 여기까지 왔다. 여러 가지 생각, 별의별 개념, 우리의 활동이나 욕망 같은 것이 한데 묶인 거다. 내가 뿌려놓았던 흩어져 있던 퍼즐이 다시 조합되는 느낌도 있다. ‘내가 왜 UFO를 외쳤지? 왜 굳이 우주라는 단어를 선택했지?’부터 ‘지금 자본주의는 어디까지 왔나, 인간 진화의 열쇠는 무엇인가’까지.(웃음) 뭔가 우주라는 컨셉으로 포괄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면에서 <에어로스페이스>는 전시가 끝나도 계속될 것 같다.

우주라는 광활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Fragile(연약함)’로 표현한 이유가 있나?
살을 붙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친구들과 그런 얘기를 나눴다. 우주여행을 왜 떠나는데? 지구가 위기이니 도망가자는 거야? 그러다 보니 Fragile부터 출발해야겠구나, 했다. 그래서 원래는 Fragile or Leave였다.(웃음)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시대에 대한 위기의식을 표현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정치를 떠나서 우리가 사는 이 사회와 세계, 혹은 질서를 지탱하는 요소가 얼마나 뿌리 깊이 위기인지. 하지만 그 위기의식을 개인에게로 가져오면서 많이 눈을 감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 안에서는 그냥 대놓고 Fragile 플레이를 펼치는 것이 우리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아님 나의 선택이었나?(웃음)

‘스튜디오 콘크리트’라는 이름이 새삼 신선하다. ‘구체적인, 실제적인’의 의미도 있지만 보통은 ‘콘크리트 지지층’처럼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 콘크리트가 Fragile이라니. 게다가 자기네들끼리 활동한다는 선입견과 젊은 작가들과의 협업에 목말라하는 실체 사이의 간극도 꽤 크다. 게다가 이번엔 무려 황병기 선생과의 협업이다.(웃음)
여전히 아무도 못 들어와, 이런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이번에 황병기 선생을 모시는 건 그래서 의미가 있다. 어쨌든 1936년에 태어나신 백발 성성한 노인이 그 시대에 만든 음악이 세월을 건너 어떤 반영 의지를 가지고, 지금 이 순간의 시대성을 읽어내는 일, 이 모든 것이 일종의 무브먼트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어떻게 투영해 정확한 상이 맺히는 전시의 결과물로 표현할까, 많이 생각했다.

 전시 형태나 가치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예전에 말쑥한 결과물을 도출해내기 위해 나누는 대화와 고민, 그 과정이 작품 하나로 대변되고 사라져버리는 게 아쉽다고도 말한 바 있고.
항상 젊은이들로 들끓던, 뭐가 뭐가 더 최신이냐 하던 그 공간에서 ‘전곡을 다 들으면 죽는 귀신 들린 음악’이라는 식의 학창 시절 괴담의 주인공인 ‘미궁’을 전혀 다른 애티튜드로 소개하고 그의 공연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을 누군가와 맞닥뜨린다면 그게 전시 아닐까 싶다. 재미있을 것 같고 기대도 된다. 다만 내가 스튜디오 콘크리트라는 공간을 가지고 있고,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선뜻 내보일 결과물에 골몰해야 한다는 사실이 고민으로 다가온다. 어떤 순간 자체를 결과를 향한 과정으로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고. 크게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8월 말, 그 과정을 새로운 실천의 방식으로 풀어보고자 했던 라이브 방송은 결과야 어떻든 꼭 한 번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섭외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인 거고.
그 방송, 1만2,000명이 봤다.(웃음) 우리, 방송을 끝내고 나서 어떤 톤, 어떤 규칙을 가지고 가야 할지 등의 얘기를 나눴지 않나. 결국 실험을 했으면 그 결과를 잘 반영할 또 다른 실험의 판을 짜는 과정이 필요하다. 유아인이라는 직업을 수행한 엄홍식이라는 아이의 욕망, 환경, 뒤따르고 있는 단계를 계속 얘기했는데, 그마저도 내가 한 실험을 지금 내가 하는 또 다른 실험에 반영하는 것 같다.

그날 방송을 함께 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유아인이라는 사람의 날것의 모습을 보았고, 그 모습이 매우 존중하고 싶은 모습인 동시에 다소 고단해 보이기도 했다.(웃음)
개개인의 업에는 각자의 고단함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단어가 약간 불편하다. 다르다는 것, 유아인은 특별해, 이런 말.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나야말로 정말 다르고 싶어서 환장한 애였는데.(웃음) 그냥 다르다는 것보다는 다르다는 것의 가치를 크게 보면서 행동하고자 했고. 하지만 지금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기 때문에 나의 어떤 기질, 요소가 자연스럽게 ‘다른 짓’을 하는 걸로 투영되는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게 그렇게 멋있지도 않고, 효과적인 것 같지도 않고, 나를 그다지 배부르게 하는 것 같지도 않고.(웃음)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게 해주지도 않고. 그래서 그 라이브 방송 하고 나서 생각이 많았다.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거 한다고 내 인생이 바뀔 것도 아닌데, 두렵지만 그냥 하는 거니까.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 없는 일반인인 나조차도 룰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방송을 한다는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당신이 가장 불안했을 거라는 생각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내가 대체 뭘 지키고 싶기에 두려운 거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두려운 짓거리를 해보지 않으면 그걸 모른다. 그래 봐야 내가 지키고 싶은 게 뭐겠나. 고작 나의 이미지? 실패했다는 딱지를 받고 싶지 않은 무언가? 덜 완성도 있는 걸 내보였다는 자괴감?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 내려놓은 것 같다. 어찌 보면 본능적으로 연예인병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유독 긴장한 듯 보여서 의아하긴 했다. 그걸 영리하게 활용하기로는 소문난 실력자 아닌가?
나의 애티튜드뿐 아니라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방송을 보게 하지? 같은 것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다. 어느 정도의 목표를 설정하는 게 합당한가, 주제에 맞는가의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 무조건 유아인이니까, ‘유아인’이라는 코드를 연예인병 걸린 듯 생각했나 싶은 거다. 이를테면 만 명이 봤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가 성공했다고 사람들이 여겨줄 것 같다는 사실에 매달리면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대상, 보는 사람이 목표가 되어버리는 거다. 그게 두렵다. 그래서 매 순간 그 생각과 싸우고 있고.

우리는 성공과 실패가 이분된 세상에 산다. 사회가 규정한 성공을 취하지 못하는 것 자체를 실패로 간주하는 세상 말이다. 그래서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제발 다른 성격의 성공을 보여주길 바라기도 했고.
나는 정말 이제는 어떤 걸 해도 남들이나 나 스스로가 상정한 부분을 성취하지 않아도 이 실험에 성공했어,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쉬운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이건 비즈니스니까. 만약 ‘원투텐’ 티셔츠를 만 장 팔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장사 잘됐네, 그럴 거고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성공했네, 힘이 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난 그런 표피적인 것이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동력이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가 재미있게 일했는가, 혹은 누가 이걸 소비했지? 우리의 수익은 어떻게 세상에 분배되고 있지? 우리 크루들은 여기에서 어떤 성취를 얻어가고 있지? 우리도 성공에 너무 목매고 있진 않나? 그런 부분에서 정말 나는 더 많은 부분을 플레이풀(Playful)하게 가져가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확신이 움직임에 대한 확신을 준다고 하지 않았나?
맞다.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다는 거다. 콘크리트도 그런 거고, 유아인이라는 애도 그런 거고, 옷을 만든 것도 그런 거고, 트위터를 한 것도 그런 거고… 그럴 때마다 꼭 성공한 사람이어야 하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쁨과 칭찬을 받아야 좋은 결과인가? 이런 고민이 따라온다. 사실 실험이라는 말은 안전하게 선택한 거다. 뭘 해도 됩니다, 하는. 최대한 안전장치를 많이 만들고 확신을 크게 가져가면서 생산한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 얼마나 재미없는가를 뼈저리게 느꼈는데, 수익을 내야 하는 생산자의 입장이 되고 보니 이런 거구나, 쉽지 않은 길이 되겠구나 싶다.

갤러리든, 패션 사업이든,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그 성공이라는 걸 포기하기도, 외면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할 작정인가?
브랜딩이건, 마케팅이건, 이미지 메이킹이건, 결국 실험적인 걸 던지면서 위험함을 어떤 식으로 채워갈지, 흔히 얘기하는 리스크를 어떻게 매니징할 것인가, 차라리 그 싸움을 하는 게 훨씬 더 흥미롭고 재미있다. 우리는 옷 만드는 것이 목적인 애들이 아니지 않나. 재미있어하는 패션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패션을 대하는 자세가 ‘내가 제일 잘나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저 더 잘나가는 자들의 결과를 소개하는 통로로서의 역할 자체가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아니라고 어느 정도 자세를 잡아가는 것 같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을 했다. 나 역시도 때때로 그렇지만, 취향에 대한 평가를 너무 쉽게 하는 것 같다. 우리가 꽤나 잘난 줄 아니까 이 일을 하는 거겠지. 혹은 어떤 취향을 가진 애들로 보여지느냐에 집착하면서 보여지는 일이라는 걸 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알맹이는 없고 ‘룩앤필’ 혹은 ‘톤앤무드’만 남을 수도 있구나, 우리에게 이런 함정이 있구나 뼈저리게 느끼면서 가고 있다. 다들 누가 누가 더 잘나가냐, 싸움을 하고 있는 이 판에 잘나가든 못 나가든 멋있는 거 하자, 그럼 뭐가 멋있는 거야? 그게 지금 이 순간은 <에어로스페이스>인 거고. 다음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나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가 다를 때 가장 많이 느끼게 된다. 마치 유아인 카페가 그렇듯이, 배우이자 크리에이터로 산다는 것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어떤 행사에서 가서 4시간 동안 95%의 시간을 사진 찍는 데 할애하다 보면 무척 지친다. 전시 오프닝 때 나도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교류도 하고 싶은데… 파티라는 걸 통해 사람들이 나와 하고 싶은 교류란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는 거구나, 이 사실을 맞닥뜨릴 때 막막함이 들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연예인에 비해서 내가 무엇을 바라보는지, 어디로 가는지 많이 궁금해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자리가 나를 소모시킨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사람들이 나에게서 원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크게 느껴질 때 황망하다. 내가 감동한 무언가를, 영감을 받은 뭔가를 세상에 전달하는 생산자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유아인 없는 콘크리트는 없는 걸까?
요새 자주 생각하고 있다.(웃음) 있을 수도 있지. 있었으면 좋겠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 없으면 안 돼, 이 마인드가 모든 걸 망친다. 어쨌든 이게 콘크리트 정신이다, 기업 이념이다 자주 이야기하긴 하지만, 쏙 빠져 있어도 상관없고. 잘하고 있거나 못하고 있다는 식의 개념이 절대 아니다. ‘우린 자유로워’라는 안전장치 안에 있기 위해서 자유로운 듯한, 유연한 듯한 자세를 가질 필요는 있지. 내가 작품 활동 하느라 공백이 생길 때 ‘콘크리트답지 않다’가 아니라 유아인이 없을 땐 이런 그림이고, 개입하면 또 이런 그림이다, 정도의 방향으로 가져가야겠지. 어떤 걸 온전히 내 거라 생각하면 구성원들에 대한 믿음이 1도 없어진다.(웃음) 저마다 다른 개인들이 자신의 영역만큼 해내면서 서로서로 맞닿은 모습이 스튜디오 콘크리트다. 난 그들이 동의하는 만큼만 가져가길 원한다.

‘의미 있음’의 기준이 변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타인이, 세상이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많을 거다. 나도 그랬고. 꼰대 같지만 젊은 예술가에게 특히 얘기하고 싶다. ‘너잖아, 너. 너의 연약함을 기꺼이 시인하는 게 너의 자존감이냐? 이런 건 아무 상관없어.’ 우리는 실질적으로 상관없는 많은 것에 위탁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때때론 세상의 박수를 받으며 세상이 태워주는 비행기를 타며 꽤나 괜찮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걸로 자신의 인생을 절대 지탱할 수는 없다. 너무 그러지 않는 척하는 걸 보는 게 힘들다. 차라리 나는 세속적인 사람이다라고 인정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나에게도 그게 어떤 고해성사 같은 거였다.

실패를 실패로 간주하지 않는 경지에 이른 건가?(웃음)
정확한 말일 수 있다. 내가 진짜 연약하니까 그 모든 사회적인 실패를 다 상쇄시킬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거다. 그리고 세상의 기준에서 내가 성공한 사람이지만 매몰되지 않게 해주고. 이를테면 전시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자기 자신을 전시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다 아는 전시라는 형태는 어쩌면 석기시대의 것일 수 있다는 거다.(웃음) 우리가 그 개념에 너무 보수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시대에 뭘 보여준다, 나를 보여준다, 나의 무언가를 반영한다,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어떤 경향을 만든다, 내가 바라본다, 느낀다, 이런 모든 과정의 순간이 긍정적으로 일어났으면 좋겠다. ‘계속 나를 봐주십시오’라는 것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의 동력이 고립감 혹은 외로움이라 생각하고 그러면서 더 수준 높은 고립감과 더 수준 높은 외로움을 느끼려고 한다. 그걸 동력으로 살아가고 노출하고 보여주면서 전시에 대한 개념도 계속 변화해가고 있다.

이름은 몇 개라지만 몸은 하나인데, 지금의 이런 시간이 ‘현장에서의 배우 유아인’을 어떤 상태로 둘지 생각해본 적 있나? 그게 언제든, 무엇이 되었든 연기에 매진하는 모습을 또 보여줄텐데 말이다.
그건 직접 연기를 해봐야 알 것 같다. 사실 뭘 하더라도 본업, 그러니까 연기에 크게 영향을 준 일은 없었다. 사생활을 제외하고는 진짜 내가 고립되고, 외로워서 미친 듯이 막 글 쓰고, 세상에 주장을 해대고, 광기를 떨곤 했던 그런 시기 이후 30대 언저리에 내 본업 외에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쏟아내는 일을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하면서 하게 됐던 거다. 그 후 처음으로 만날 작품에서 과연 내가 어떤 모습일지, 이 시간이 내 연기에 어떤 식으로 반영될지 사실 나도 굉장히 궁금하다.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절대로 안 하는 애니까. 그마저도 내버려두면서 하는 애니까, 나는.

YOON SUNG HYUN, 윤성현
Director

웰메이드의 작가, 윤성현

몇 달 전,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 <에어로스페이스> 전시의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박수를 쳤다. 세 친구의 이야기, 모든 것이 서툴고 연약했던 비극적인 소년성을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펼쳐 보인 이 젊은 감독의 데뷔작은 당시 내 마음에 1,000개의 고원을 만들어 그 사이를 한없이 서성이게 만들었다. 모두에게 노스탤지어인 동시에 아킬레스건인 청춘, 우정, 소통, 믿음, 외로움의 화두를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던 윤성현이 역시 이것을 자신의 호흡으로 연기하던 배우 유아인을 만났을 때 어떤 사건이 벌어질 건가에 대한 기대를 차치하고도 흥미로운 점은 충분히 많았다. 아마도 여백이 많은 서늘한 미래시 같은 영상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과 함께. 윤성현과 유아인 그리고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만남은 8분짜리 웰메이드 SF 영상으로 완성되어 곧 세상에 선보인다. 우주를 향한 이들의 첫 여정이다.

유아인이 말하길, 함께 작업한 감독 중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어떤 지점에서 이번 프로젝트에 결정적으로 합류하게 되었나?
아인 씨와 만나 이런저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어떤 한국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시도해보자고 설득했고, 나로선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아인 씨는 개인적으로 존중하고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그와 함께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관객들이야 <파수꾼> 감독이 왜 SF를 하려고 하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내년 초 크랭크인을 목표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도 근미래 SF다.

자유롭게 작업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자본 때문이든, 상업성 때문이든 한국 영화는 장르가 제한적이다. 이제야 좀비물이 나왔을 뿐 드라마, 코미디, 스릴러, 범죄물이나 진지한 사회물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터미네이터> 다 보는데 정작 이렇다 할 한국 SF는 없다. 우주라는 테마 자체가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거다. 이번 기회에 미래나 우주를 제약 없이 표현해보자고 생각했다.

좀더 실험적인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깨는 영상이었다. 중간에 시나리오가 두 번 정도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부분인가?
아인 씨는 재기 발랄하면서 거친 느낌의 영상에 좀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싶어 했지만, 나는 우주선이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매우 정제된 SF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여러 번 제안하고 대안을 내놓으면서 방향을 좀 틀었다. 전 버전은 이야기나 사회적 함의를 담았지만, 최종 시나리오는 정서가 있는 짧은 영상이되 뚜렷한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니다. 이렇게 짧은 영상인 경우, 오히려 이야기를 주장하기보다는 시적인 영상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보는 사람이 자기 얘기처럼 받아들이고 자기 색으로 채울 수 있는 여지도 생기고.

광활한 우주에 대한 그 많은 이야기 중 특히 어디에 주목했나?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다. 출입국 심사대에서 목적지의 도장을 찍어주는데, 그게 화성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였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오히려 미지의 어떤 행성에서 지구로 찾아오는 상황을 만들면 어떨까 했다. 데스티네이션, 어스라는 장면도 있고, 옷 뒤에 붙은 태그에 제각각 다른 행성 이름이 적혀 있는 장면도 있다.

그래서인지, 우주여행이 아니라 우주 이민 같은 느낌이 든다. ‘에어로스페이스’라는 단어 자체를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는지가 어쩌면 이 영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
단지 여행의 설렘을 넘어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거대한 열망으로 해석했다. 우주가 되었든, 상징성을 가진 세계가 되었든, 더 넓은 영역으로의 초월을 뜻한다. 이를 통해 현재를 은유하는 듯한 미래 혹은 미래 사회를 그려보고 싶었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이를 우주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복제인간 등 지구 안에서 이뤄지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시켜 시리즈로 만들 생각도 하는 것 같다.

얼마 전 철야 촬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짧았을 텐데, 결과에 대해서는 만족하나?
지금 준비 중인 영화는 예산이 100억 가까이 된다. 하지만 근미래를 다루다 보니 초우주적, 미래적 SF와는 다르다. 30년 뒤라 해도 디테일만 다를 뿐 프레임은 비슷하니까. 그 와중에 극단적인 SF인 <에어로스페이스>를 만들다 보니 내겐 더 높은 난도의 작업으로 다가왔다. 미술팀의 도움을 받아서 세트를 거의 다 지었다. 한 달 남짓한 시간 안에 우주선과 우주까지 다 나오는 SF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는데, 이번에 이것이 실현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거다. 무모한 도전이 될 수도 있었는데 부끄럽지 않을 정도까지는 표현했다고 생각하고, 덕분에 자신감이 커졌다. 보면 아시겠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지점까지 나아가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겠지만 한국 영화계에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하겠다.
우주선부터 우주까지, 한국에서 사실적이고 세련된 SF를 만들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직접 타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영화인들이 영화를 봤으면 하고, SF 장르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지금 CG팀 인원만 80여 명이 투입됐는데, 거의 이런 색다르고 재미있는 시도에 대한 응원 차원에서 함께 작업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CG 부분 제작비만 해도 천정부지로 뛰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스튜디오 콘크리트와의 만남으로 가능했다. 협업은 어땠나?
창의적인 분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걸 멀리서 보면서 늘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인 씨가 제안했을 때 굉장히 반가웠다. 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 좀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한 일 같다. 아무래도 나는 영화를 하다 보니 문법 속에 존재한다. 이야기의 문법, 스타일의 문법, 장르의 문법… 그 틀에서 벗어나 감각적인 부분을 채워주는 재능있는 사람들과 함께 새로움에 도전했다는 건 내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에어로스페이스〉는 무브먼트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대중과 뭔가를 주고받아야 하는, 그리고 이 시대의 다른 창작자들과 호흡을 주고받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흥미롭게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하는 프로젝트라는 명확한 성격을 갖고 있어요.” — 유아인

“〈에어로스페이스〉는 무브먼트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대중과 뭔가를 주고받아야 하는, 그리고 이 시대의 다른 창작자들과 호흡을 주고받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흥미롭게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하는 프로젝트라는 명확한 성격을 갖고 있어요.” — 유아인

“오렌지 이즈 뉴 블랙이라는 식의 선언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고 싶었다.”

“오렌지 이즈 뉴 블랙이라는 식의 선언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고 싶었다.”

 

KIM JAE HOON, 김재훈
Photographer

베이지 재킷과 베스트는 김서룡(Kimseoryong).

베이지 재킷과 베스트는 김서룡(Kimseoryong).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한 방향을 보면서 함께 일하다 보니 현실적인 문제나 고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과 취향이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한 가지 역시 이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즐겁다는 사실이다. 매번 다른 프로젝트를 해나가면서 서로 부딪치며, 그렇게 매끄러운 돌을 만드는 흥미로운 과정을 겪고 있다고나 할까.

이 과정은 개인적으로 작업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번 <에어로스페이스>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지난해 열린 개인전 <Happening> 때의 작품을 재해석한 것이다. 지난 전시 때는 비행기에서 찍은 창밖 풍경을 스튜디오 콘크리트 2층의 큰 창문 사이즈에 맞춰 액자처럼 사용했다면, 이번에는 윈도 작품 속 이미지의 바깥 풍경을 우주의 모습으로 변형시켰다. 마치 우주선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는 듯한 사진을 통해 관객들이 지금 서 있는 창문 밖을 우주로 상상했으면 하고 기대한다.”

 

PARK NO SUP, 박노섭
Graphic Designer

베이지  태슬 재킷은 랄프 로렌(Ralph Lauren).

베이지 태슬 재킷은 랄프 로렌(Ralph Lauren).

“아티스트란 사진가, 디자이너, 사업가, 바리스타 등의 직업군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신념을 갖고 자기 자신을 만들어나가며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야말로 이러한 ‘아티스트’들의 모임이다. 그래픽 편집 디자이너인 나는 그러므로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아티스트다. 내 역할은 디자인적인 심미안을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진행하는 주제에 맞게 펼쳐내는 것인데, 멤버들과 작업 결과물을 공유하고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수정, 보강해가는 과정이 내겐 큰 힘이 된다. 반드시 결과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받고 이를 나의 일과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유기적으로 성장해가는 느낌을 받는 것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누군가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산다는 건 꽤 의미 있고 즐거운 일 아닐까?”

 

KWON BADA, 권바다
Artist, Cu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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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남짓 런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와 ‘얼떨결에’ 이 친구들에게 의지하고 어울리다가 ‘얼떨결에’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창립 멤버가 되었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얼떨결에’ 관여해왔다. 동시에 나는 나대로 방황하는 ‘방탕아’ 역할을 했지만, 다른 요소를 가진 이들의 이 모든 ‘얼떨결’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던 건 우리가 분명 ‘얼떨결에’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서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그룹’과 ‘스튜디오’라는 타이틀이 주는 로맨틱함이 가장 끌렸다. 서로 다른 자아가 형성한 친밀한 그룹이 세상에 반응하는 창작 활동을 통해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능성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건 자아 전에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외롭고 불분명한 이들이 모여 구체화되고 단단해지는 맥락에서 콘크리트는 완벽한 이름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KWON CHUL HWA, 권철화
Artist

네이비 재킷과 팬츠는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네이비 재킷과 팬츠는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스튜디오 콘크리트 소속 작가로서 가장 좋은 점은 오늘 촬영처럼 재미있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바로 재미와 진정성인데, 창의적인 우리 멤버들과의 작업은 언제나 두 가지 모두가 충족되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간다. <에어로스페이스> 전시에서 나는 윤성현 감독의 영화 스토리보드 작업을 했다. 나는 윤성현 감독, 손문성 프로듀서 그리고 유아인 씨와 한 달가량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 스토리보드 작업은 그동안 내가 해온 일련의 작업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있는 장면을 끄집어내어 그것을 나의 스타일로, 나의 필체로 그리는 작업은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내게 숭고하기까지 한 경험이었다.”

 

CHA HYE YOUNG, 차혜영
CEO

터틀넥, 스커트, 슈즈는 살바토레 페레가모(Salvatore Ferragamo).

터틀넥, 스커트, 슈즈는 살바토레 페레가모(Salvatore Ferragamo).

“솔직히 오렌지나 청록색 트레이닝복은 나 혼자 비즈니스를 했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반신반의하는 내게 유아인이 묻더라고요. 대체 예쁜 건 뭔데? 누가 정한 건데? 너는 그걸 보고 왜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데? 이 말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그걸 우리가 정해주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죠.” 사전 미팅 때 만난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공동대표 차혜영이 한 말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 작은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나아갈 바를 크루들과 함께 어떻게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차혜영은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운영을 도맡고 있다. 사업 기획, 회의, 각종 브랜드와의 협업, 그리고 창작물을 또 다른 세계로 진출시키는, 이를테면 <에어로스페이스> 영상을 MAMA 무대에서 선보이는 일까지 모두 그녀의 일이다. 얼마 전에는 시장 조사차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호텔 콘크리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조언도 듣고 있죠. 요즘 전 호텔이 되었든, 서점이 되었든, 콜레트 같은 패션 문화 공간이 되었든, 전시가 되었든, 취향을 공유하고 제안할 수 있는 공간을 기획하고 상상하는 데 빠져 있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버티고개나 남산 넘어가는 길, 이태원이나 한남동에 일종의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윌리엄스버그가 그렇게 탄생했듯, 우리가 좋아하는 지역을 살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장기적인 계획도 갖고 있어요.”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차혜영은 불과 2년여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유아인과의 10년 우정으로 시작된 이 일이 그녀를 바꾸어놓았다. “물건 파는 행위를 하고, 얼마나 수고하는가에 따라서 내 재산의 정도가 달라지는” 삶을 살던 그녀는 이제는 무엇을 하면 행복하고, 그래서 결국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민하며 삶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했다. “처음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생각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요. 이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큰 만족으로 다가오더군요. 스스로 명예롭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에요.” 그녀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살던 때는 상관없었던 것을 매일 생각하는 이 삶이 좋다고 말한다.

처음 6개월 동안은 낯선 예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느라 공부도 많이 해야 했고, 이질감에 움츠러들었으며, 대표라는 자리의 무게가 버거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렇게 차혜영은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진정 ‘대표’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본질과 진정성을 지키면서 돈도 버는 일은 정말 어려워요. 그것이 매번 나 자신과의 싸움으로 다가오죠. 그래도 괜찮아요. 내가 살아갈 한국을, 서울을 조금 바꿀 수 있음 좋겠다는 희망 때문에 좌절하지 않아요. 우리 괜찮아, 월급 잘 줬고, 통장에 돈도 조금 있고, 잘하고 있어, 그래요. 물론 고민은 많지만요.(웃음)”

지면에 다 풀어놓을 수 없는 고민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차혜영이 만들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은 작가나 작품 리스트만큼 중요한 ‘창조’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들의 독자적 성공은 다른 젊은 창작자들에게 꽤 유의미한 롤모델이 될 것이며, 언젠가 또 다른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생겨날지 모른다. 동시에 이것은 미술계의 숱한 크고 작은 갤러리와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완전히 다른 영토로 확장하는 비기가 될 것이다. “이 일을 비즈니스로 바라봐야 하겠지만, 재미있는 걸 저렇게 하네, 하는 식의 영감을 줄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끼리만 재미있고 끝나는 게 아니라 서울 하면 어디가 생각나요, 하는 질문에 어떤 제안을 줄 수 있는 플랫폼이 되고 싶어요.” 나는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자신을 바꾸었다고 말하는 차혜영이야말로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바꾸고 있다고 확신했다.

 

 

CASPER KANG, 캐스퍼 강
Artist

“스튜디오 콘크리트 멤버들은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같이 무언가를 할 때마다 그저 기쁘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도전적이라는 사실도 좋다. 나는 그림만 그리고 싶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고, 인맥 혹은 사회생활에도 그리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콘크리트 친구들은 그런 나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낸다. 함께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회의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야 하고, 오프닝 행사도 다니고, 하기 싫은 일도 하고, 가기 싫은 곳에도 가는데, 내게 좋은 훈련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이들이 고맙다. 작업적인 측면에서도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내게 영감을 준다. 내가 주로 하는 그림 작업 말고도, 다른 흥미로운 프로젝트에 꾸준히 참여하고 싶다.”

 

PARK SI YOUNG, 박시영
Designer

“콘크리트는 젊다. 동시에 젊음을 서툰 무기로 휘두르지 않는다. 그들은 공동체의 일원을 존중할 줄 알며, 동시에 명확한 요구를 할 줄 아는 드문 집단이다. 무엇보다 이들과 함께하면서 새로움에 흥분하였고, 그들의 존중에 감동받았다. 이번에 권철화의 컨셉으로 출발한 작업은 휴먼 패턴이다. 미답의 영역인 우주를 여행하는 이들이 보게 될 자신과 타인의 모습을 다양한 패턴으로 만들어 자신이 포함된 군상의 이미지를 인식하게 하고자 했다.”

 

HWANG BYUNG KI, 황병기
Artist

어느 날 유아인이 느닷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황병기 선생님을 꼭 만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열일곱 살 때부터 좋아했다는 ‘미궁’의 공연 영상을 첨부해 보내왔다. 황병기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가야금 연주가, 국악인, 가야금 명인 등이 나오겠지만, 그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단어는 음악인 혹은 예술가다. 평소 “새로움 없이 옛것만 굳어지면 그건 전통이라기보다는 골동품이다”라고 말해온 선생은 평생 동안 가야금이라는 전통 악기를 이용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아방가르드하며 재독 작곡가 진은숙의 그것만큼이나 현대적인 음악을 들려주었다.

 

SSAM, 쌤
Artist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로서 멀리서 응원하던 창작 집단과 함께 전시를 하게 되어 영광이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공간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내겐 너무나 신선했고, 게다가 항상 흥미를 가지고 있던 외계란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였다. 외계는 영화나 소설 같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우주에서 온 외계인의 이미지로 우리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나아가 다른 시간으로 접하면 내 의식을 둘러싼 세상이 모두 외계가 될 수 있다. 이질(異質)을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로 삼고, 다른 물체, 다른 재질 등으로 ‘나 자신이 곧 외계’라는 사실에 대해 느끼는 이질감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