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Wear to Work

2016.11.28

by VOGUE

    Wear to Work

    3D 직종만 작업복을 입는 게 아니다. 동료들과 똑같이 입는 유니폼만 작업복이 아니다. 매일 아침 우리가 차려입는 옷 또한 우리의 작업복이다.

    실용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업복 재킷. 이번 뉴욕 패션 위크 때 빌 커닝햄을 기리는 의미로 패션 피플과 사진가들이 블루 재킷을 입기도 했다.

    실용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업복 재킷. 이번 뉴욕 패션 위크 때 빌 커닝햄을 기리는 의미로 패션 피플과 사진가들이 블루 재킷을 입기도 했다.

    패션계의 시간개념으로 봤을 때, 워크 웨어는 철 지난 이야기였다. 쿨내 폴폴 풍기느라 수염도 깎지 않고, 체크무늬 럼버잭 셔츠를 구겨진 채로 입고 다니는 힙스터와 오버랩되는 유행이니 말이다. 동화 속에 나오는 벌목꾼처럼 북슬북슬한 수염에 털모자를 쓰고, 바버(Barbour) 스타일의 방수 소재 아우터와 워커 부츠를 신은 ‘럼버섹슈얼’은 미안한 말이지만 한물간 지 오래다. 4~5년 전에 유행한 이 스타일에는 기계화되고 세련된 도시 풍경에 대한 반발, 그로 인한 육체노동과 목가적 삶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로맨틱한 감성이 있었다.

    Balenciaga 2016 F/W

    Balenciaga 2016 F/W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워크 웨어는 새로운 개념을 탑재했다. 여기엔 전원풍의 서정적 감성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새롭게 정의된 워크 웨어는 스타일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진짜 작업복을 뜻하기 때문이다. 숲속에서 도끼로 나무를 베던 이들은 필드 재킷과 누비 조끼를 벗고 회색 공장 지대와 더러운 아스팔트 거리로 내려와서 소박한 작업복 외투를 걸쳤다. 동시에 최신판으로 개정된 패션 용어에서 작업복은 도시적이고, 현실적이며, 포괄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빌 커닝햄이 즐겨 입던 25유로짜리 노동자용 블루 재킷뿐 아니라 값비싼 인테리어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전문직 여성의 발렌시아가 울 스커트 수트도 작업복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작업복보다 ‘전투복’이라는 표현을 애용하지만.

    Vetements 2016 S/S

    Vetements 2016 S/S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작업복에 반하게 만드는 걸까? 거기엔 누구도 비웃지 못할 작업복의 미덕이자 존재 이유인 숭고한 실용성이 크게 작용한다. 그런 면에서 빌 커닝햄과 그의 블루 재킷은 패션사에서 가장 완벽한 조합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거리의 사진가가 파리 철물점에서 사곤 했던 아이코닉한 작업복은 베트멍 2016 S/S에서 오버사이즈 버전으로도 등장했다. 남성복 온라인 편집매장 숍키퍼(theshopkeeperstore.com)는 3년 전부터 프랑스 작업복 전문 회사 ‘르 라부르(Le Laboureur)’의 재킷(커닝햄의 블루 재킷과 비슷한 구조와 디자인)을 판매해왔는데, 최근에는 웨이팅 리스트까지 생길 정도로 인기다. “모든 연령대에서 삽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인기죠. 그들은 진짜 작업복 브랜드의 실용적인 룩에 푹 빠졌어요.”

    Balenciaga 2017 S/S

    Balenciaga 2017 S/S

    마가렛 호웰의 컬렉션은 아주 취향 좋은 가게의 직원들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반듯한 직장이 있고 규칙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이들을 위한 출근복. 디자이너는 실용성에 입각한 겸손한 의상을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선보여왔다. “작업복은 목적이 뚜렷한 옷입니다. 진정성과 정직함, 견고함을 상징하죠. 연령대나 유행에 좌우되지 않아요.” 런던과 뉴욕, 긴자의 도버 스트리트 마켓 매장에서도 질 좋은 ‘구식’ 일상용품 편집매장(사실 철물점에 가깝다)인 ‘레이버앤웨이트(Labour&Wait)’의 푸른색 작업복 스목과 앞치마를 판다. 이 편집매장의 설립자 레이첼 위스 모랜과 사이먼 왓킨스는 디자이너 출신이다. “우린 매 시즌 새로운 걸 만드는 데 신물이 났어요. 클래식하고 잘 만들어진, 유행을 타지 않는 제품을 원했죠.”

    Kiko Kostadinov 2017 S/S

    Kiko Kostadinov 2017 S/S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런던의 남성복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프는 세인트 마틴 졸업 컬렉션 때부터 쭉 작업복의 형태와 기능을 연구해왔다. 그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보모 일과 청소 일을 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고상한 작업복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도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걸 만들고 싶어요. 아무리 간단한 미팅이라도 휴대폰 충전기, 헤드폰, 노트북을 담을 가방이 필요하죠. 옷에 비현실적인 기능의 주머니 수십 개를 달아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흥미롭고 실용적일 필요는 있어요.” 당연히 불필요한 장식은 그에게 최악의 디자인이다. “재단이 아무리 훌륭해도 쓸데없는 줄과 단추가 잔뜩 달린 바지만큼 나쁜 것도 없죠.”

    Heron Preston x DSNY

    Heron Preston x DSNY

    작업복에 대한 페티시는 거꾸로 작업복에 새로움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나이키와 칸예 웨스트의 이지 컬렉션을 컨설팅한 ‘빈 트릴’의 디자이너 헤론 프레스톤은 뉴욕 청소부 유니폼을 리디자인한 DSNY 컬렉션을 성사시키기 위해 뉴욕 위생부(DSNY: The New York City Department of Sanitation)를 설득하는 데 무려 1년이 걸렸다. 그가 이 협업을 마음먹게 된 건 이비자 해변에서 수영할 때였다. 물에 떠다니던 비닐봉지가 팔에 스친 순간(“해파리인 줄 알았어요!”), 자신이 쓰레기 버리는 사람과 더러운 해변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깨달았다. 그가 디자인한 ‘헤론 프레스톤×DSNY’ 유니폼은 버려진 옷과 기부한 청소부 작업복 원단을 재활용해서 만든 것이다. “청소부들은 가장 더러운 유니폼을 입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도시를 깨끗하게 만들고 우리를 건강하게 하죠.”

    Madison Guest

    Madison Guest

    단정한 칼라, 심플한 단추 여밈, 적당한 크기의 주머니가 적절한 위치에 달린 면 소재 재킷. 그러나 이 형태만으로 모든 장소와 상황에 부합하기엔 현대사회는 너무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사실 적재적소에 걸맞은 다양한 형태의 작업복이 존재하고 있다. 맥도날드 직원이 입는 폴로 셔츠(혹은 반팔 셔츠)와 경쾌한 모자, 군인들이 입는 딱딱한 군복, 축구 선수들의 저지 유니폼도 그들의 작업복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작업복은 뭔가? “난 작업복 같은 거 없어”라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 당신이 어디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 생각해보자. 힌트 하나. 나뿐 아니라 많은 여자들이 이것 때문에 종종 지각을 한다!

    Céline 2017 S/S

    Céline 2017 S/S

    그리고 회사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면 매일 새로운 패션을 즐기기보다는 고정된 자신만의 유니폼을 생각해내 아침 시간의 고민을 줄이는 편을 선택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패션 칼럼니스트 크리스티나 빙클리는 매일 아침 옷 입는 고민을 줄여 삶을 보다 간편하게 만들기 위해 같은 블라우스를 열다섯 벌씩 사는 소니 음반사 매니저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에 쓴 적 있다. 런던 셀프리지 백화점의 크리에이티브 리서치 매니저 엠마 키드는 자신의 작업복을 이렇게 설명했다. “검정 왁스 데님이나 가죽 스키니 진, 흰색 버튼다운 셔츠 혹은 티셔츠 그리고 흰색 운동화죠.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은 운동화 대신 부츠를 신고 블레이저를 챙기죠.”

    Loewe 2017 S/S

    Loewe 2017 S/S

    호주의 유명 큐레이터 줄리아나 엥버그는 80년대부터 꼼데가르쏭의 검은색 우븐 셔츠와 리넨 소재 팬츠를 한결같이 입어왔는데, 이 복장이 3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낮에는 작품을 설치하고 밤에는 미술품 수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업무에 가장 적당해서다. 똑같은 옷을 몇 벌씩 사놓고 돌려 입는 건 좀 극단적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각자의 옷장에 미세한 차이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이템이 있다는 걸 잘 안다. 당신이 알든 모르든, 그 옷이 당신의 작업복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Caroline Issa

    Caroline Issa

    아마 옷장이 온통 검은색일 엥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내가 입은 옷을 이야기의 화제로 삼은 적 없죠. 그게 내가 원하는 겁니다.” 같은 블라우스를 보름 치씩 주문해 최소 1년 반에서 2년 동안 쇼핑 비용을 줄인 마틸다 칼(위에서 언급한 소니 음반사 매니저)은 “내가 옷을 소유하는 거죠. 그 옷이 나를 소유하는 게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자신만의 유니폼을 갖는 건 삶을 훨씬 용이하고 명료하게 만들어준다. 역동적으로 패션을 경험하는 시절이 지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여자들에게 특히 필요하다. 당신만의 작업복은 당신의 캐릭터와 애티튜드를 견고하게 해줄 것이다.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GETTY IMAGES / IMAZ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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