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Cry Me a River: Ugo Rondinone

2016.11.29

by VOGUE

    Cry Me a River: Ugo Rondinone

    만약 당신이 현재 가장 중요한 예술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우고 론디노네 를 언급하거나, 만나거나, 그의 작품을 보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최근 파리 방돔 광장에 들어선 거대한 올리브 나무 앞에서 그를 만났다.

    Seven Magic Mountains, Public Art Production Fund and Nevada Museum of Art, Las Vegas, 2016

    Seven Magic Mountains, Public Art Production Fund and Nevada Museum of Art, Las Vegas, 2016

    Portrait_Ugo Rondinone_Photo Christian Grund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는 1964년 스위스 남부 이탈리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비엔나에서 공부한 후 현재는 뉴욕에서 살고 있다. 이탈리아인, 스위스인, 오스트리아인 그리고 현재는 미국인이기도 한 그는 최고의 모더니즘이 길러낸 작가다.

    1990년대 초 스위스에서 데뷔한 후 그는 20세기 예술 역사가 낳은 상징을 끊임없이 변형시키며 재검토하는 작업을 해왔다. 재현될 수 있는 연작으로 가공하면서 말이다. 예를 들어 일찍이 1996년 비디오 설치 작품에 등장했던 광대들은 조각 형상이나 심지어 살아 있는 캐릭터가 되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과 프랑스의 님 등 전 세계 전시 공간에 보내졌다.

    Sunrise. East, Museum dhondt-dhaenens, Deurle, 2010

    Sunrise. East, Museum dhondt-dhaenens, Deurle, 2010

    우고 론디노네는 초점이 맞지 않는 동심원으로 뒤덮인 둥근 판 모양의 캔버스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동유럽에서 조수들이 분무기로 색칠한 이 연작은 최면을 거는 듯한 ‘어려운’ 오브제였다. 사람들은 그 오브제에 눈의 초점을 맞출 수가 없었고, 캔버스 앞에 서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곤 했다. 이 만다라(둥근 원 안에 우주를 담은 그림으로 불교 등의 종교에서 쓰인다) 같은 그림은 1991년 거대한 흑백 풍경화와 함께 모든 문화 관련 아이템을 비추는 거울로 등장한다. 만다라는 대중적이고 화려한 과녁 같은 작품과 좀더 관련이 있었으며,(종종 반전 효과를 준) 그림은 산업혁명 이전의 목가적인 풍경을 표현했다.

    Human Nature, Public Art Fund, Rockefeller Plaza, New York, 2013

    Human Nature, Public Art Fund, Rockefeller Plaza, New York, 2013

    많은 저자들은 이를테면 광대와 같은 론디노네의 작품에서 우울증을 진단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품을 여러 가지 실험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 설치 작품으로 만들어져 공간에 진열된 정밀하고 다양한 전시는 인간적인 감정과 경험을 무시하지 않는 작가의 재능을 보여주는 증거다. 또 많은 저자들은 카탈로그가 그의 작품의 또 다른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목록을 만드는 것은 다양한 작품 사이에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기 위한 방법이다. 관객이 따라갈 경로를 그리는 것은 작품의 끊임없는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작가가 제안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Every Time the Sun Comes Up, Neon, perspex, translucent film, aluminum, 2016

    Every Time the Sun Comes Up, Neon, perspex, translucent film, aluminum, 2016

    우고 론디노네가 지난 20년 동안 구축해온 여정을 정당화할 내러티브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용과 의미를 연결 지을 필요가 있다. 이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배경을 위한 풍경화, 무언이며 동시에 시가 주도하는 과녁 작품(무언)과 무지개(시 중심), 커뮤니티 중심의 메시지, 유년 시절과 관련 있는 인물들이나 로날드 맥도날드를 참고한 소름 끼치는 작품으로 설정된 (조각된, 살아 있는 혹은 비디오로 촬영된) 광대 등등. 반복되는 형태, 원형,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인 표시, 자연과 문화의 아이템 탐구 등은 실제로 우고 론디노네가 그동안 자신의 경력과 작품을 지속하기 위해 구성해온 일련의 기록이다. 수년 동안 론디노네의 작품은 얼굴, 서 있는 형상, 토템 같은 인간의 문화적 오브제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를 다루면서 지금과 같은 단순성과 효율성 그리고 힘을 얻었다.

    Every Time the Sun Comes Up, Place Vendôme, Paris, 2016

    Every Time the Sun Comes Up, Place Vendôme, Paris, 2016

    작가는 종종 자기 자신을 대중적인 성격을 가진 작가라고 얘기한다. 그의 최근 (실내 및 야외) 프로젝트인 ‘세븐 매직 마운틴(Seven Magic Mountains)’은 인종과 대중, 거칠고 둥근 돌과 형광색 사이의 강력한 동맹을 보여준다. 무색의 사막이나 어떤 국제적인 미술관 또는 문화시설의 입구에 전시될 새로운 가공품을 위한 자연과 기술의 밀착 관계다.

    초창기의 조각을 포함해 다양한 스타일과 유형의 미술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로서, 당신은 여전히 공공 예술에 부응하라는 요청을 받아왔다. 그런 제안에는 어떻게 반응하나?
    1996년에 처음으로 공공 조각에 대해 생각했다. 지하철 입구였는데 독일 출신의 설치미술가 마르틴 키펜베르거(Martin Kippenberger)가 전 세계에 배포하고 싶어 했던 작품 ‘The Portable Metro-Net’을 봤다. 이를 통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며 어디든 전시될 수 있는 만국 공통의 표시를 활용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지개 표시를 떠올렸다. 하나의 상징이자 시로서의 무지개 말이다. 무지개로 만든 첫 번째 작품은 ‘Cry Me a River’였는데, 전 세계적으로 전시될 수 있는 다른 무지개 열여섯 개를 만들었다. 이것이 공공 미술 작업의 가이드로서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다. 다른 배경은 다른 생각을 필요로 한다. 무지개에는 분명히 이원적인 측면이 있었는데, 밤에는 불을 켜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이지만 인공적이다. 나는 영어를 공통언어로 사용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전세계에 시를 소개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보그 코리아> 독자를 위해 당신이 선보여온 공공 미술 작품을 소개해주는 건 어떨까?
    나의 공공 미술은 몇 가지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다. 무지개 시리즈, 마스크(‘Moonrise’와 ‘Sunrise’), 올리브 나무, 수석, 돌 형상 그리고 ‘세븐 매직 마운틴’과 같은 돌탑. 다시, 무지개에는 다른 공공 조각 그룹 여섯 개가 있다. ‘Moonrise’라는 제목의 열두 가지 마스크는 12개월이 작품을 구성하는 방식이 되었다. 스무 개나 백 개의 마스크가 아니라 열두 개의 마스크로 개수를 제한했다. 내가 차용한 시스템이 작품의 수를 결정한다. ‘Moonrise’는 달의 다른 형성 과정과 단계를 보았던 알래스카의 독창적인 유피크(Yupic)족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들은 달의 눈과 입의 모양에 따라 계절을 알아냈다.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과 같은 초현실주의자들도 유피크족의 마스크를 수집했다.

    이번 방돔 광장 프로젝트뿐 아니라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도 설치되어 있는 올리브 나무에 대해서도 설명해달라.
    2006년에는 고대 올리브 나무로 공중 조각의 네 번째 그룹을 만들었다. 우리 부모님이 성장한 곳에 땅을 샀고, 그곳의 올리브 나무가 내게 뿌리가 되어주었다. 아이디어는 시간을 압축하는 것이었다. 올리브 나무는 분재와 같다. 좀더 큰 버전의 분재처럼, 5m 이상은 자라지 않지만 수천 년에 걸쳐 압축된다. 즉 시간이 압축되는 것이다. 나는 열네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골랐다. 1200년 이상 된 나무이다. 그리고 나는 각각 다른 시인의 이름을 따서 제목을 붙였다. 2007년에는 다른 올리브 나무로 새로운 12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 이번엔 2000년 된 나무였으니, 역사가 더 깊었다. 물론 나무를 죽이지 않고 그 위에 그대로 초대했다.

    당신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돌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연유로 돌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되었나?
    몇 년 전부터 나는 수석을 수집하는 중이다. 모두 스님들과 학자들이 수집한 중국 명나라의 돌이다. 그들이 인공적인 환경에서 자연에 대해 사색하는 방식이다. 자연을 명상하는 장치랄까. 내가 소장한 수석 중에서 높이가 30cm를 넘지 않는 아주 작은 것 중 열네 개를 확대했다. 3D 스캔을 이용해 콘크리트, 모래, 자갈로 4.5~5m 높이로 만들었다. 이것이 17 점 시리즈다. 제목은 열일곱 개의 단어로 된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 따왔고, 각각의 조각은 17 단어 중 한 단어에 헌정되어 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We run through a desert on burning feet, all of us are glowing our faces look twisted.”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자연을 내 모든 작업의 기본 토대로 간주한다. 대중들은 추상 조각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다. 형식은 구성과 조각에 작용하는 힘을 보여주는 자연 그 자체로부터 주조된다. 대중이 추상 혹은 현대미술 작품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가 무엇이든, 수석은 ‘추상’이라는 현대미술의 개념이나 클리셰에 형태를 부여한다고 믿는다.

    수석 작품 이후 돌과 자연, 추상과 실제에 대한 사유가 록펠러 센터를 위한 프로젝트의 석물 작품으로 발전한 것인가?
    2012년 뉴욕의 록펠러 센터를 위한 프로젝트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가 장소에 어떻게 반응하는 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가서, 이것은 환경이 중요한 장소에 내가 직접적으로 반응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예다. 고도로 발달된 기술과 지적 성취가 맨해튼 중심부에 압축되어 있고, 그곳에서 나는 조각품을 둘러쌀 인공 건물이 발전해온 높이와 대조를 이룰 만한 원형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돌 형상의 제목은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골랐다. 반드시 돌이라는 물질과는 연관시키지 않을 제목이었다. 같은 시기에 네바다 미술관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네바다 사막과 ‘협업’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돌로 작업하는 중이었기에 사막에서 돌을 탐험한다는 건 꽤 자연스러웠다.

    대지 예술의 역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작업은 그때부터 선보인 것인가?
    60년대 말 대지 예술의 의도는 예술의 상업화, 베트남 전쟁에 항의하기 위함이었다. 벽에 걸릴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작품을 만드는 대신 밖으로 나가 확대하고 싶어 한 것이다. 그들은 자연을 기초 물질이자 도시로부터의 탈출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들은 뉴 멕시코로 갔고, 이것이 대지 예술의 시작이었다. 자연과 대립하지 않고 매우 존중하는 그들은 위장술을 발휘한 것처럼 자연과 동화되고자 했다. 록펠러 프로젝트 이후 몇 년이 지난 지금, 대지 예술이라는 개념을 갖고 작품을 만든다면, 차라리 인공을 자연으로 끌어들이는 작품을 하고 싶다. 그런 식으로, 예술 작업을 자연스러운 배경에 있는 하나의 섬으로 강조하고 동시에 자연의 돌을 날것으로 유지했던 내 이전 작업과 이원적인 대화를 나누고, 사막에서는 정반대로 인공적인 오브제를 창조하는 것이다. 돌탑을 보면(나는 부두교의 산에서 영감을 받아 돌탑을 그냥 산으로 부른다) 일단 돌에 색을 칠하는 것은 그 돌을 죽이는 것이며 돌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자연이 이 작품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어준다.

    두 그룹의 조각이 있는 파리의 방돔 광장, 한쪽에는 하얀 올리브 나무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커다란 돌조각이 있어서 스케일과 기념성이라는 개념을 다루고 있다. 올리브 나무는 실제 나무를 본떠 주조한 실제 크기이고, 돌 형상은 당신이 정한 크기로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공공 작업을 위한 작품의 크기는 어떻게 설정하는가? 그리고 만들고자 하는 장소의 규모는 어떻게 측정하는가?
    처음에는 방돔 광장의 스케일이 워낙 방대해서 예술 작품의 존재감이 사라져버릴 수 있는 현장이 두려웠다. 그래서 일찌감치 작품의 존재성과 높이를 수용할 수 있는 무대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기로 했다. 방돔 광장 바닥에 나무 판을 대는 기초공사가 없었더라면, 역시 대단히 대칭적인 장소인 방돔에서 작품이 왜소해 보였을거다. 나는 그 장소의 대칭과 대조를 이루도록 두 개의 유기적인 작품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념적인 작품이라고 불필요하게 크기를 키운다는 의미는 아니다. 공공 미술 역시 교육적이며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람들이 예술과 마주하는 진정한 순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이것은 나무이고, 이것은 돌 형상이다 등등 뭔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방돔 광장은 작품을 설치하기에는 바닥이 평평하지도 않고, 광장 내부의 설치 조건도 제한이 있어, 내 작품을 위한 공간을 따로 찾아야 했다. 바닥을 만들면 작품을 안전하게 둘 수 있고, 동시에 관객을 초대하는 무대로도 이용할 수 있다. 깨끗하게 잘린 건 아니지만, 그 목재 바닥은 제 기능을 한다. 대중을 위해서나, 작품을 위해서나, 나는 무대라는 개념을 좋아한다.

    캘리포니아 주 모하비 사막에 설치한 ‘세븐 매직 마운틴’은 세 개에서 여섯 개의 말뚝에 네온 컬러로 된 무겁고 둥근 석회암 돌을 올려놓은 작품이다. 자연 속의 팝적인 인공물이니, 매우 인상적이다. 베이지색 모래로 가득한 건조한 풍경에 이렇게 밝은 색상을 주입한 것이 쉬운 결정이었나? 최근 대지 예술의 동향은 되도록 자연과 동화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말이다.
    이 작품을 통해 사막을 처음 경험했다. 작품의 스케일은 내게 도전이었다. 사막에서는 모든 것이 작게 보이고, 따라서 사막을 정복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직접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작품을 설치할 지점을 고려할 때, 멀리서도 보이지만 가까이 접근하면 거대하게 느껴질 곳을 원했다. 일곱 개 산 사이의 간격이 좁아 보이게끔, 5~7m를 넘지 않도록 했다. 이로써 작품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가까이 접근해야만 하는 협곡 같은 환경을 만들어냈다. 사막에서는 규모를 측정하기가 정말 애매하다. 크기를 두 배로 키운다 해도, 멀리서는 큰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차이가 생긴다. 무엇이든 경험하려면 현장에 가야 한다. 로버트 스미드슨(Robert Smithson)이나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의 대지 예술 작품은 인공적으로 창조한다는 것이 내 작품과의 차이점이다. 자연을 자연 그 자체의 힘으로 컨트롤하며 자연의 색을 이용해 자연을 구성했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했다. 자연의 특성을 존중하지 않고 억압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돌을 플라스틱으로 만든다고는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데이글로의 화려한 색은 돌이 지닌 자연적 특성을 잃어버린 채 대중문화 요소가 스며들어 있다.

    초창기 풍경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일련의 작품을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
    처음에 작업한 풍경화는 내 작품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성장하려면 스스로 어떤 기반을 마련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하고, 그 기반이 당신을 성숙하게 한다. 나는 먼저 풍경화 작업을 했고, 수년 후에 완전히 반대 느낌이지만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줄 만다라 작업을 했다. 내가 사용하는 모든 상징은 독일 낭만주의를 기초로 삼고 있으며, 내가 이용해온 모든 것에서 이 사실이 드러난다. 나는 영국이든, 프랑스든, 어쨌든 낭만주의 운동을 좋아한다. 비합리성과 꿈을 포용한 최초의 무브먼트이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1930년대에 시작했지만, 여전히 매우 새로운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감성적(Sentimental)이지 않은 낭만적인 특성은 잘 생겨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부정적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선입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감정을 피하지 않는다. 감성의 특성은 기억에 의해 제공되며 기억이 모든 행동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기억이 없는 창조물은 언어도 이미지도 없다. 나는 감성을 부정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이 사회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 존재다.
    물론이다. 내가 방돔 광장 프로젝트를 했을 때, 프랑스 혁명을 염두에 두긴 했으나 그 사건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알리고 싶진 않았다. 나는 늘 일상적인 뉴스 이상의 무언가를 다루고 싶다. “태양은 매일 떠오르며, 지속성의 증거다(Every time sun goes up, sign of continuity).”

      에디터
      윤혜정
      김승덕(르 콩소르시움 공동 디렉터)
      포토그래퍼
      ALL IMAGES COURTESY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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