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Gift

어느 순간 우리 주변에 캐시미어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극소수만 찾는 고급 부티크는 물론, 대형 마트 할인 코너와 TV 홈쇼핑까지.

WARM EMBRACE따스한 햇살처럼 포근한 캐시미어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은 받고 있다. 캐시미어 소재의 코트와 니트, 조거 팬츠는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 패치워크 밍크 베스트는 시니(Sini), 플로피 햇은 아테나 뉴욕(Athena New York at Amabilia), 목걸이는 에스카다(Escada), 팔찌는 먼데이에디션(Monday Edition).

WARM EMBRACE
따스한 햇살처럼 포근한 캐시미어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은 받고 있다. 캐시미어 소재의 코트와 니트, 조거 팬츠는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 패치워크 밍크 베스트는 시니(Sini), 플로피 햇은 아테나 뉴욕(Athena New York at Amabilia), 목걸이는 에스카다(Escada), 팔찌는 먼데이에디션(Monday Edition).

“전신에 프리미엄이 흐른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느 TV 홈쇼핑 호스트의 말에 나는 리모컨을 잠시 멈췄다. “이런 말씀 드리면 맞을까요? 천상의 부드러움과 천상의 포근함을 고객님들에게 진짜 선사해드리고 싶었어요. 내가 구름 속 천사가 된 것 같은 기분? 너무 너무 부드럽고요, 닿는 느낌이 단 1%도 까끌까끌하지 않고요, 구름이 있다면 구름을 만지는 느낌이랄까요? 자, 크림 핑크 90 사이즈가 빨리 빠진다고 하네요.” 천국을 향한 열쇠라도 팔고 있는 듯한 그녀의 손에 들린 건 9만9,000원짜리 100% 캐시미어 스웨터.

며칠 후 비슷한 광경을 또 목격했다. 이번엔 또 다른 TV 홈쇼핑 채널. 카디건을 앞에 두고 유명 스타일리스트와 쇼핑 호스트의 만담이 한창이었다. “똑같은 캐시미어라 하더라도 실제로 어떤 원사냐, 어디에서 가져온 원사냐에 따라 퀄리티가 나눠지고요!” 쇼핑 호스트의 말에 스타일리스트가 박자를 맞췄다. “그게 완전, 정말 달라요! 완전! 정말!” “캐시미어 중에서도 정말 캐시미어, 평생, 일생 동안 단 한 번 채취할 수 있는 그 캐시미어가 바로 베이비 캐시미어입니다. 이 베이비 캐시미어를 채취해서 실제로 제품으로 만드는 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 베이비 캐시미어를 여러분께 카디건으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주어와 서술어가 엉키고, 감탄사와 외계어만 반복하는 그들이 소개하던 아이템 역시 15만9,000원짜리 “100% 퓨어 베이비 캐시미어 카디건”.

찬 바람이 불 때면 곳곳에서 캐시미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패스트 패션 체인 매장은 “100% 캐시미어 스웨터 9만9,000원부터!”라는 붉은색 문구를 걸고, 백화점은 “핸드메이드 캐시미어 코트 특판가 세일”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팸플릿을 배포한다. 홈쇼핑은 물론 블로거조차 “특별히 공장에 부탁한 아이”라며 “이태리산 100% 캐시미어 특별 제작 코트” 판매에 열을 올린다. 부티 나는 취향과 재력을 상징하던 고급 울이었던 캐시미어(인도 카슈미르 지방의 캐시미어 염소나 티베트산 염소의 연한 털을 사용해 가늘게 짠 소재가 원조)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한때 캐시미어는 특정 계층만 향유할 수 있는 희소 가치 높은 패션이었다. 현재 대부분의 캐시미어가 탄생하는 곳은 몽골과 중국. 그곳에 사는 염소 한 마리가 스웨터 하나를 만들 정도의 털을 기르는 데 필요한 시간은 4년. 그 털을 빗어 모은 뒤 순수한 털만 골라 워싱한 후 다시 솎아내는 과정 역시 모두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털은 다시 이태리(혹은 중국)의 공장으로 넘어가 염색, 워싱을 거쳐 원사와 니트 조직으로 다시 태어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떤 염소의 털을 사용하는지, 어느 정도 길이의 털을 사용하는지, 어떤 워싱 과정을 거치는지에 따라 그 등급과 가격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최고급 캐시미어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로로 피아나의 공정이 흥미로울 만하다. 그들은 매년 5월 베이징과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국 북부 사이에 사는 유목민을 찾아간다. 가는 데만 5일. 목적지에 도착하면, 맨 먼저 고대 의식에 따라 채취한 털에 대한 협상을 진행한다. 그래서 얻는 건 3개월에서 12개월 사이의 히르커스 새끼 염소에게서 얻은 솜털. 한 마리에 30~40g에 불과한 솜털(스웨터 하나를 위해선 열아홉 마리의 털이, 코트 한 벌을 위해선 쉰여덟 마리의 털이 필요하다)은 그 후 이태리로 옮겨온 후 재탄생한다. 혹시 새끼 염소라는 단어에 동물의 안위가 걱정된다면 그에 대한 염려는 ‘넣어 둬도’ 좋다. “이 희귀한 솜털은 염소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는 정교한 빗질을 통해 채취합니다.” 로로 피아나 측은 현지 염소 목동들과의 직접적인 협업으로 ‘지속성과 윤리’를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LVMH가 브랜드를 구입한 이유도 이 독특한 소재가 가진 프리미엄 때문일지 모른다).

베이비 캐시미어에 맞설 만한 건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아뇨나의 ‘화이트 캐시미어’. 염소의 속살에 맞닿아 있는 순백의 캐시미어다. 캐시미어 등급을 나누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불순물 함량이 제로에 가까워 고급 소재로 지칭된다. “이 화이트 캐시미어를 통해 아주 매혹적인 색감을 표현할 수 있죠. 또 아주 연하고 가장 빛이 나는 색깔도 선보일 수 있습니다.” 10월 서울을 찾았던 아뇨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이먼 홀로웨이는 <보그>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렇기에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꾸뛰르 하우스와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아뇨나의 원단을 찾아왔습니다.” 제냐만의 비밀 병기는 또 있다. “원단의 솜털을 세워 더욱 부드럽게 가공하기 위한 ‘코밍(Combing)’ 과정에서는 아직도 이태리 남부의 야생 산토끼꽃 열매(Teasel)를 100년 전과 똑같이 쓰고 있습니다.” 딱딱한 강아지풀을 닮은 열매로 고이 모셔온 솜털을 일일이 빗는 것이다. 덕분에 아뇨나에서는 1m에 달하는 캐시미어 묶음이 고작 35g밖에 하지 않는, 그야말로 깃털처럼 가벼운 더블 캐시미어다.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이태리 럭셔리 브랜드의 캐시미어 코트는 1,000만원을 넘어서는 반면, 한국의 TV 홈쇼핑 채널은 어떻게 10만원 안팎의 스웨터를 팔 수 있을까. 그 비밀은 위의 공정에 있다. 고급 캐시미어에 속하지 않는 짧은 털을 뭉치거나, 여러 번 워싱을 거쳐 원래 거친 털을 부드럽게 만들거나, 짙은 염색으로 본래의 컬러를 완전히 감추는 방법 등이다. 그 차이를 느껴보고 싶다면 엄지와 검지 사이로 옷을 구겨보면 된다. 만약 쉽게 주름이 생기거나 짧은 털이 빠진다면, 좋은 품질의 캐시미어라고 할 수 없다. 볼에 비벼보았을 때 캐시미어 특유의 부드러움이 덜하다면 그 역시 의심해볼 만하다.

싼 캐시미어라고 모두 품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유니클로는 중간 업자 없이 모든 공정을 직접 담당하기에 저렴하게 좋은 품질의 캐시미어를 판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을 취재한 <뉴욕> 매거진의 기사를 살펴보면, 유니클로는 비밀 염소 농장부터 원사를 뽑는 공장, 스웨터를 제작하는 공장까지 모두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니클로의 10만원짜리 스웨터와 럭셔리 브랜드의 100만원짜리 스웨터는 정말 차이가 없을까? 연구 및 개발 부문 대표인 유키 가쓰타는 이렇게 답했다. “모두들 똑같이 중국과 몽골의 특정한 지역에서 캐시미어를 사옵니다.” 같은 솜털이 고객을 만날 때 어떤 가격표를 달게 될지는 결국 브랜드에 달렸다는 아리송한 대답.

물론 모든 것이 솜털의 고향에 달려 있진 않다. 패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예를 들어 뉴욕의 신예 디자이너 라이언 로쉬의 캐시미어 스웨터는 네팔에서 만들어진다. 그 속에 더 많은 디자인과 디테일이 들어가는 건 당연하다. “좀더 저렴한 스웨터는 다른 부분을 만든 다음 연결할 지도 모릅니다.” 니트 디자이너로 유명한 마르시아 팻모스의 얘기다. 단순히 여러 소재를 연결한 스웨터보다 실을 짤 때부터 디자인을 고려해 완성하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이다. “케이블이나 와플 조직을 만들면 더 비싼 것도 당연하죠.” 네타포르테에서 검색해보면 좀더 이해가 쉽다. 유려한 디자인의 엘더 스테이츠먼 캐시미어 카프탄의 가격은 3,007달러. 반면 심플한 크림색 제이크루 라운드넥 스웨터의 가격은 339달러. 디자인에 필요한 아이디어, 옷을 완성할 때의 공정 또한 가격에 반영된다.

이렇듯 주위에 넘쳐나는 캐시미어를 보니 두 번째 의문이 생긴다. 과연 중국의 염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끝없이 솜털을 뽑아낼 수 있을까. 지난해 구찌와 생로랑 등이 속한 럭셔리 그룹 케어링은 캐시미어에 대한 리포트를 발표했다. 캐시미어의 대중화 덕분에 오히려 캐시미어의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는 주제. 즉, 중국과 몽골에 캐시미어 염소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목초지가 황폐해지고, 지구온난화 덕분에 염소털의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양털이나 목화처럼 농장에서 재배할 수 없기에 캐시미어의 위기는 계속될 예정. “최근 걱정거리는 패션 산업이 질보다 양을 우선으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로로 피아나의 부회장 피에르 루이지 로로 피아나의 말이다. 그들은 2009년 2만4,000마리의 염소를 효과적으로 방목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 목적은 목초지를 보호하고 건강한 염소를 기르기 위한 것이다. “염소뿐 아니라 목장주들의 삶의 수준을 높이고자 합니다. 또 동물과 환경 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죠.” 버버리와 케어링 등 몇몇 럭셔리 브랜드 역시 캐시미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윤리적인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저는 그곳의 끝없는 대지, 극도로 짧은 여름의 선명한 색상, 지역 사람들의 고요한 성격과 친절함에 감명받았습니다.” 질 좋은 캐시미어를 찾아 몽골까지 찾아간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꼭 시간이 멈춘 듯한 곳이었죠. 그곳에서 찾은 소재를 올바른 방법으로 선보이고 싶습니다.” 새로운 ‘캐시미어 킹’으로 불리는 그가 말하는 건 캐시미어가 지닌 상징성. 너그러운 자연에서 소중히 얻은 소재로 아름다운 옷을 만들겠다는 마음이다. 올겨울 캐시미어 쇼핑에 나설 때 한 번쯤 떠올려보면 좋을 듯하다. “과연 이 캐시미어는 어떤 곳에서 태어나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번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