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신동경

2016.12.01

by VOGUE

    신동경

    내가 도쿄 여행 가이드 편집자라면 ‘변화한 도쿄를 즐기는 법’이라는 챕터를 따로 만들겠다. 기오이초는 변화하는 도쿄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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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끝난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에 선 것이다. 도쿄의 중심부, 기오이초에 우뚝 솟은 더 프린스 갤러리 도쿄 기오이초, 럭셔리 컬렉션 호텔을 올려다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지난 7월 27일 문을 연 이 호텔은 도쿄 가든 테라스 기오이초라는 고급 주상 복합 단지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건물은 상업, 주거,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운집한 이 지역의 색감과 온도를 바꾸어놓았다. 위로는 신주쿠, 왼쪽으로는 시부야, 오른쪽으로는 도쿄역을 둔 기오이초는 에도시대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 세를 과시하던 지역. 몇 달 전 근처에서는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라는 제목의 루이 비통 전시가 열리기도 했는데, 1978년 루이 비통의 첫 도쿄 매장이 생긴 곳이 기오이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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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프린스 갤러리 도쿄 기오이초는 이 건물의 30층부터 36층까지 총 250개의 객실을 사용한다. 건축 회사 록웰 그룹 마드리드는 도쿄에서 처음 선보이는 스타우드 최상위 브랜드인 럭셔리 컬렉션 호텔을 그 명성에 걸맞은 스케일과 디테일로 완성했다. (럭셔리 컬렉션 호텔은 2015년 처음으로 교토에 오픈했다. 수이란 럭셔리 컬렉션 호텔은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에 위치한 최고의 호텔이다.) 도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에 위치하면서도, 지나치게 트렌디하지도, 절대 고루하지도 않은 중용의 미는 더 프린스 갤러리 도쿄 기오이초의 첫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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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통으로 난 창 바로 앞에 마련된 1m 남짓한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도쿄에서 럭셔리라는 건 방에서 야경을 즐기는 거라는 혹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굳이 도쿄타워까지 가지 않고 평상 같은 그 자리에 앉아 전망을 즐겨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고, 낮잠을 자도 좋으며, 뭔가를 끄적거리거나 그냥 앉아만 있어도 좋다. 어느 젊은 건축가의 작은 아이디어가 시간을 흘려 보낸다는 것 자체를 인상적인 경험으로 만든 것이다. 이 감동적인 창은 도시 풍경을 작품으로 만드는 액자가 되기도, 도시의 드라마를 펼쳐 보이는 스크린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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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카사카 프린스가 지금의 더 프린스 갤러리 도쿄 기오이초의 전신이다. 택시를 타도 아카사카라는 단어를 말하면 더 정확한 지점에서 내릴 수 있다. 아카사카 프린스는 ‘아카프리’라는 애칭으로 두루 사랑 받았다. “나비가 날개를 펼친 듯한 화려한 외관으로 젊은이들에게 ‘시티 호텔=아카프리’라는 동경을 선사했다.” 건축가 이소 다쓰오가 쓴 책 <포스트모던 건축 기행>에도 이렇게 소개되어 있는데, 아마 후지테레비, 도쿄도청 등을 지은 단게 겐조 역시 자기가 지은 이 건물이 ‘포스트모던’으로 불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생을 일한 호텔의 한 간부는 휴대폰으로 아카사카 프린스의 예전 모습을 보여주었다. 호텔 전면에 조명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사진. 도쿄 사람들은 이 트리에 불이 켜져야 비로소 연말임을 실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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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 흥미진진한 건 아카사카 프린스의 역사다. 일본의 최고 전성기이자 거품경제 시기인 1980년대 생겨나 2011년 철거될 때까지, 아카사카 프린스는 일본인들의 일상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에서 일종의 상징이 되었다. 뉴스만 찾아봐도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이 호텔에 들락날락했는지를 알 수 있다. 조치훈 9단이 세계프로바둑선수권 대회를 치렀고, 모 대기업 총수가 결혼식을 올렸으며, 전 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라는 희한한 이벤트가 열렸고, 일본 연예인들은 물론 한류 스타들, 심지어 김연아도 이 호텔에서 일본 대중을 만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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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에는 호텔이 철거될 때까지 이재민 1,600여 명에게 임시 숙소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도쿄 시민들은 수십 년 동안 이 도시를 상징하던 호텔의 마지막 모습조차 따뜻하다며 박수를 보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에는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의 철거 방식이 한국의 메인 뉴스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복잡한 도심 속에서 ‘깨끗하고 조용하게 빌딩을 사라지게 하는’ 스텔스 철거 공법 때문이었다. 비록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작업 모습을 가린 채 건물 한 층씩 없애는 덕분에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소음과 오염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아카사카 프린스가 더 프린스 갤러리 도쿄 기오이초로 변화하는 데는 자그마치 5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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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의 인연도 특별하다(좋고 나쁨의 표현이 아니다). 이름에 포함된 ‘프린스’란 대한민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의 동생, 영친왕(의민태자로 덕혜옹주의 이복 오빠다)을 의미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더 프린스 갤러리 도쿄 기오이초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서양식 근대건축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영친왕이 머물렀다는 곳이다. 영화 <덕혜옹주>에도 등장하는 건물,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는 1930년에 세워진 후 1955년 프린스 호텔 구관으로 개축되었고, 2011년에는 도쿄도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호텔 측은 클래식 하우스를 해체하는 대신 무려 5,000톤에 이르는 건물을 통째로, 1초에 1mm의 속도로, 8일에 걸쳐 44m를 이동시켜 지금의 장소에 옮겨놓았다. 다행이다 싶다가도, 라 메종 기오이라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변모했다는 클래식 하우스를 기웃거릴 때는 어쩐지 복잡한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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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이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공간을 보존해야 한다는 일본 젊은 건축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비용까지 감수하고, 더 프린스 갤러리 도쿄 기오이초라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난 것 자체가 변화를 향한 강력한 의지를 뜻한다. 이들이 얼마나 사회, 경제, 정치 면에 기여할지는 아직 알 도리가 없지만, 적어도 일본 예술·문화계에 대한 관심은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호텔 입구부터 로비, 통로, 스위트룸과 시그니처 바 등 곳곳에 배치된 예술품은 모두 일본 아티스트들의 작품이다. 세계 미술 무대에서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 일본 작가들은 몇몇 스타 예술가로 한정된 것이 사실이라, 일본 예술계의 건강한 토양이 될 이들의 존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인 셈이다.

      에디터
      윤혜정
      포토그래퍼
      COURTESY OF STARWOOD HOTEL & RES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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