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를 사랑한 소설가

천명관이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냈다. 먹고살려고 애쓰는 못난 수컷들에 대한 연민은 여전하다. 그 역시 영화라는 양아치에게 끌려다니며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언제나 돌려받는 게 아니라고.

코트와 셔츠, 데님 팬츠는 디올(Dior), 안경은 뮤지크(Muz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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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한마디로 기내식 같은 여자였다. 별로 당기지는 않는데 안 먹으면 왠지 손해일 것 같고, 그래서 억지로 먹기는 먹되 막상 먹으려고 보면 뭔가 복잡하고 옹색하기만 하고. 까다로운 종이접기를 하듯 조심스럽고 겨우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식후에 구정물 같은 커피를 마시다 보면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갖출 건 다 갖춘 것 같은데 왠지 허전하고, 결국 포장지만 한 보따리 나오는 그런 여자였다.” 영화로도 제작된 천명관의 소설 <고령화 가족> 중 한 대목이다. 이 뛰어난 묘사에 반해 그를 좋아했다. 2004년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은 데뷔작 <고래>부터 그의 작품을 전부 읽어보았다. 점점 묘사보단 이야기의 힘에 끌리기 시작했다. <고래>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의 다사다난하고 거대한 인간사를 떠올리게 했고(정말이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시청률 30%를 찍는 주말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했다. 소설가 성석제와 함께 천명관은 내게 소설가라기보단 ‘이야기꾼’이었다. ‘아주 옛날, 아니 얼마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말이지’라고, 이야기꾼이 찾아와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 같은 작품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시종일관 스스로를 즐거우면 됐지, 큰 문학적 가치를 찾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장편을 읽고 나면 조미료 없는 집밥을 맛있게 잘 먹고 믹스 커피 한 봉을 타 먹은 것처럼 든든했고, 일종의 ‘살아갈 수 있겠구나’란 희망을 느꼈다. 그러다 그가 소설보다는 영화에 목매달았으며, 흥행에 실패한 영화 몇 편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영화에 빠지기 전인 20대에는 여러 직장을 전전했음도 알았다. 그래서 그가 소설을 말할 때는 산뜻하다. 거기에 세상의 구원도, 거대한 가치관도, 잘난 척도 담고 싶지 않아 했다. 그는 신작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도 참으로 차지게 써놓고, 자신이 20년째 사랑해온 영화(마음을 안 받아주는 녀석 정도라고 해두자)에 구애를 하고 있다.

계속 인터뷰 요청 전화가 오네요.
이 소설로 할 얘기가 많지 않은데… 그냥 재미있게 읽으면 되는데 말이죠.

저는 궁금한 게 많은데요.
심오한 문학적 의미가 없거든요. 소설을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했는데, 댓글을 보니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어서 그래도 성실하게 답변하는 것도 예의다 싶었어요. 또 출판사에서 이 인터뷰는 꼭 하라더군요. 여성 독자들이 중요하다면서.(웃음)

인상적인 댓글은 뭐였나요?
‘좋아요’를 많이 누른 댓글 1위가 “<흡혈고딩 피만두>인 줄 알았다”예요.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표지에 나오는 캐릭터가 그 만화랑 비슷한가 봐요. 아, 이 사람들은 기존에 알던 문학 독자와는 다르구나. 이들이 내 글을 어떻게 볼지 궁금했죠.

어떻게 보던가요?
아시다시피 카카오페이지는 로맨스, 무협 장르가 대부분이에요. 그날그날 즉흥적으로 읽는 시스템으로, 옛날로 치면 귀여니의 웹소설이죠. 주로 학생들이 학내에서 연애하고, 라이벌과 싸우고… 제 소설과는 많이 달라요.

왜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를 시작했나요?
새로운 플랫폼에서 시작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솔직히 제 소설은 인기가 없었어요. 조회 수가 8만 정도였는데, 거기서 인기 작품은 조회 수가 100만 넘어요. 저는 상대가 안 되죠.

오늘 <보그>의 사진 촬영은 어땠나요? 2014년 작 단편 <왕들의 무덤>에 “감색 머플러를 두르고 벤치에 앉아 고개를 돌린 채 사색에 잠겨 있는 우아한 여류 작가의 사진은 인터뷰 기사와 함께 한 패션지에 실렸다. 거짓 이미지들”이란 글귀가 있는데요.
인터뷰 사진도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잖아요. 저도 영화 연출을 하는 사람이라 재미있어요.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면 나도 근사해지는구나.

사진 촬영을 위한 셔츠도 준비해와서 놀랐어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의 포스터가 프린트된 셔츠예요. 마피아 문신을 한 손이 그려져 있죠. 사이즈도 안 맞는데 런던에서 발견하자마자 바로 샀어요. 제가 워낙 마피아 영화를 좋아하는 데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팬이거든요. 그의 <폭력의 역사>도 좋아해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겠죠? 김언수 작가의 소설 <뜨거운 피>의 영화화를 준비 중인데요.
과연 그만큼 나올지 모르죠. 그러고 싶은 거죠.

크랭크인은 했나요?
톱스타가 안 붙었어요.(웃음) 스타 감독 몇을 제외하곤 톱스타 없는 영화 제작은 불가능에 가깝죠. 한 해 충무로에 1,000편의 영화 시나리오와 감독 준비생이 쏟아지는데 그중 몇만 기회를 잡죠.

부산에 장소 헌팅을 다닌다고 들었는데요. 제작이 결정된 거 아닌가요?
아직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라 무대를 둘러본 거예요. 배우가 붙고, 투자가 결정돼야죠.

소설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데, 영화는 외부의 힘이 크게 작용하니 허탈하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죠. 몇 년 전에도 <코리안 갱스터>라는 영화를 준비하다가 3년을 그냥 보냈어요. 20년째 이걸 반복하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너무 소모적인데 이 일이 원래 그런 걸 어떡하겠어요.

체념하고 받아들인 건가요?
안 받아들일 수 있나요. 여기 질서가 그런데.

영화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나요?
우선은 성공하면 돈을 많이 벌죠.(웃음) 소설 써서는 생계 유지가 힘들어요.

본인 정도면 성공한 작가 아닌가요?
저 정도도 살기 쉽지 않은데 다른 작가들은 오죽하겠어요. 그래서 권력이 생기는 거예요. 어떻게 청탁이라도 받고, 문학상 받고, 교수 자리를 얻어야 먹고살 수 있죠. 그 문단 권력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요.

영화는 성공할 확률이 더 작지 않나요?
남자로 태어나서 도박 한번 하는 거죠.

30대부터 영화에 빠졌으니 20년째 도박이라…
끝까지 해보고 안 되면 손 털고 일어나죠.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요?

이 애증을 영화 <카지노>를 예를 들어 설명했더군요. 영화 속에서 샤론 스톤이 양아치 같은 전 남자 친구에게 계속 끌려다니는거랑 비슷하다고.
샤론 스톤은 제임스 우즈 같은 쓰레기를 사랑하고, 로버트 드 니로는 그런 ‘나쁜 년’을 또 사랑하고. 그런게 세상살이죠. 사랑은 언제나 돌려받진 않거든요.

<뜨거운 피>는 꼭 돌려받길 바라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장편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얘기를 해보죠. 이번 작품도 그렇고 2012년 장편 <나의 삼촌 브루스 리>부터 먹고살려고 애쓰는 남자에 대한 연민이 강해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늙어서 그런가 봐요.(웃음) 특히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에는 대리 기사, 막노동꾼처럼 사회에서 낙오되고 가난하고 못 배운 중년 남자들이 등장하죠. 지금은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된 ‘개저씨’들에게 연민이 있죠.

장편 <고령화 사회>에서 데뷔 못한 영화감독이 작가의 자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에 자기를 대입시킨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이번 소설에는 없는 거 같은데… ‘뜨끈이’가 아닌가 싶네요. 호랑이 사준다고 ‘뻥치는’ 사기꾼이죠. 나와 제일 비슷해요. 저도 소설로 ‘구라’ 치며 살고 있잖아요.

좋은 거짓말이죠.
데뷔작 <고래>에서 저의 페르소나는 약장수예요. 지식인인 척하고 다니다 나중에 들통나 죽죠.

본인을 왜 자꾸 격하시키죠?
맞는 말인데요. 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문단에 와서 지식인 행세를 하고 있어요. 들켜서 지금 쫓겨날 처지예요.(웃음)

누구한테 들켰는데요?
선생님들한테?

문단에서 이단아로 불리곤 하죠.
종교도 서로 상대보고 이단이라는 것과 비슷하죠. 나는 혼자고 저쪽은 다수니까, 저쪽 말이 맞겠죠.

언젠가 소설보다 영화가 더 좋다고 말해서 문단에서 한 소리 들었던데요.
문단에서는 문학을 종교처럼 생각하는 거 같아요. 숭고한 신앙심을 요구하는데, 저는 의심 많은 도마예요. 예수가 무덤에서 살아나와 다들 엎드려 울 때 도마는 의심했죠.

이른바 지식인이라면 그래야죠.
맞아요. 도마는 예수의 상처에 손까지 넣어 확인한 뒤에야 울었어요. 진짜 작가라면 도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이미 30대에 구상한 얘기라고요.
네, 그때 조폭 코미디 장르가 한국 영화계의 트렌드였죠.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같은. 저도 그런 얘기를 좋아해서 그때의 단편적인 아이디어를 토대로 썼죠.

혹시 그런 무리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나요?(웃음)
그렇진 않아요. 책상물림 같은 엘리트가 아니라면, 제 세대 남자들은 뒷골목의 얘기를 언제나 궁금해하고 잘 알아요. 우리 때는 그런게 일종의 로망이니까. 반에서 1등 하는 애보다 주먹 잘 쓰는 애를 부러워했죠.

본인은 어느 부류에 속했나요?
저는 이도 저도 아니었어요. 공부는 반에서 꼴찌 하고. 고 3 때 성적 증명서를 떼어보니 58명 중에 58등이더라고요. 그렇다고 노는 애들과 어울린 것도 아니고, 늘 무력했어요. 학교에 잘 안 가고, 가도 수업 시간에 맨날 자고.

30대에 영화에 본격적으로 빠졌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동안은 어떻게 보냈나요?
군대를 다녀와서 이런저런 직장 생활을 했죠.

뒤늦게 영화라는 좋아하는 분야를 만났네요.
그걸 발견해서 인생이 꼬였죠, 완전히.(웃음)

개인적으로 단편 <퇴근>을 좋아해요. 배경이 10% 슈퍼리치와 90%의 실업자들이 있는 미래 사회인데, 본인이 현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점인가요?
그렇죠. 과거에서 현재로 흘러온 방향대로 계속 선을 그으면 미래가 보여요. 슈퍼리치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실업률은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 수치로도 나오죠. 생산 소득보다 자본 소득이 앞서가다 보면 결국 미래는 그럴 수밖에요.

작가가 단편과 장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느껴져요. 단편은 어두운 본연을 정제 없이 꺼내놓고, 장편은 고된 삶에도 희망을 제시한다고 느꼈거든요. 혹시 장·단편을 쓸 때 태도를 달리하나요?
아마 단편은 희망까지 얘기하기에는 짧기 때문 아닐까요. 장편은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뒤에 가선 희망도 얘기할 수 있죠.

길이의 문제인가요?(웃음)
왜 그런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나의 이유이지 않을까 싶네요.

<퇴근>처럼 사회를 바라보는 시점은 어둡지만, 장편에서 보이듯이 그래도 하나의 희망을 품고 있다고 느껴져요.
글쎄요, 제 스스로가 잘되고 있지 않은걸요.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에서도 주인공이 교도소에서 다 늙어 나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긴 하지만, 과연 그게 잘된 걸까 싶네요.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에서 ‘울트라’는 사랑하는 말과 아름다운 여자를 모두 얻었잖아요.
그건 유머러스하게 푼 거고요. 거기에 저의 진지한 세계관이 들어 있진 않아요.

저는 그래도 순수한 울트라가 잘되는 걸 보고, 사람에게 희망을 찾는다고 느꼈는데요.
결국 믿을 건 사람이죠. 시스템을 믿겠어요? 그런데 이 시스템을 만든 것도 인간이니… 갈수록 인간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어렵네요.

데뷔작 <고래>로 1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탔을 때 은희경의 심사평이 공감됐어요. “이 작가는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 작품에 빚진 게 별로 없는 듯하다.(…) 이 작가에게 이 대목이 이 소설에 왜 필요하냐고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야기로서의 위력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이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싶으면 스스로,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지요?라고 익살을 부린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저도 천명관의 소설에서 ‘이야기의 힘’을 느껴요.
못 배웠다는 평가죠.(웃음) 아마 진짜 심사평에서 좋은 것만 발췌한 걸 거예요.

이야기의 위력을 중시하는 게 천명관의 소설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문학적 가치가 무엇에 있느냐를 논하고 싶지 않아요. 모르기도 하지만 배운 게 없으니까. 그냥 내가 재미있으면 되고, 내가 다른 소설을 읽으며 감흥을 받듯이 그 정도면 되죠. 아무래도 내가 영화를 좋아하고 시나리오도 쓰다 보니 이야기가 강한 면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문학적 가치는 굉장히 복잡해요. 이야기에 대한 가치도 있을 테고, 묘사, 문장, 철학, 종교, 교양으로서의 가치 등 다양하죠. 중요한 건 잘 쓰는 거예요. 어떤 문학관을 가졌든, 스타일이 다르든, 잘 쓰는 게 중요해요.

‘잘 썼다’의 기준은 뭘까요?
읽으면 누구나 알죠. 근데 ‘뽕끼’ 있는 노래가 인기 있듯이 대중이 좋아하는 부류가 있고, 좀더 다른 작품을 좋아하는 부류가 있고. 각각의 장점이 있어요. 문단에서 좀 너그럽게 받아들여주면 좋은데, 가치 기준이 획일화돼 있죠. 문장과 내면적인 묘사를 중시하고….

이번에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어떻게 보나요?
개인적으로 젊을 때 무척 좋아하는 가수였어요. 밥 딜런이 여느 시인이나 소설가에 비해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구나 그가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위대하죠. 사실 노벨상 안 받아도 그만이에요. 그거 받는다고 밥 딜런이 더 위대해지지 않으니까. 밥 딜런이 노벨보다 더 위대하지.

평소에 음악을 좋아하나요?
젊을 때는 아주 좋아했죠. 밥 딜런은 50~60년대 히피, 포크 세대죠. 그 뒤에 록의 시대가 왔는데 그 시절의 음악을 좋아해요.

2010년에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도 오락가락해요. 내가 소설가가 맞나? 나한테 여전히 불편한 옷 같기도 하고. 10년 넘게 소설가로 밥 먹고 살고, 사람들이 나를 소설가라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죠. 이제 영화를 만들면 감독인 거고.

단편 <왕들의 무덤>에서도 소설가인 주인공이 자신의 글에 회의를 느끼는 독백이 있어요. 본인의 글에 그런 회의감이 들 때가 있나요?
오히려 소설에 대해 회의한 적이 없어요. 잘 썼다는 게 아니라 ‘이건 이렇게 나왔네?’ 하고 받아들이죠. 예를 들어 이번 작품은 ‘가볍고 스피디하게 읽히고 마지막에 통쾌하게 마무리하자’고 생각하며 썼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가 그렇게 나온 거죠. 작품에 큰 욕심을 내지 않아요.

산뜻하네요. 세상을 1도 정도 따뜻하게 만들고 싶다든가 하는 목표를 가진 작가들도 있는데요.
무리죠. 내가 남보다 세상살이에 통찰력이 있지 않은데 말이죠. 내가 쓸 말 쓰고, 사람들이 즐겁게 읽어주면 목표에 부합했어요. 말했다시피 ‘걸작을 쓰겠다’란 마음이 없어요.

영화도 소설이랑 비슷한 마음가짐인가요?
소설은 안 팔려도 되지만 영화는 흥행이 되어야죠. 많은 돈과 사람이 참여하잖아요. 사람들을 불행하게 해선 안 되는 책임이 있죠.

20년 넘게 창작자로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비즈니스 하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어떤 비즈니스인가요?
그게 영화죠. 영화감독은 창작자이면서 비즈니스맨이거든요. 많은 사람을 만나 설득하고,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조율하고 협상하고. 저는 그 일이 맞아요.

기본적으로 사람과 어울리길 좋아하는군요.
맞아요. 사람과 어울려야지 산속에 들어가서 글 쓰는 거 싫어해요.

고립되어서 매일 규칙적으로 8시간씩 글을 쓰는 작가들도 있어요.
참 성실한 작가들이 많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못 돼요. 제가 살아온 게 있는데, 이제 와 작가라고 학생처럼 8시간씩 앉아서 글 쓰는 건 웃기죠. 다 생긴 대로 사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