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 없는 결혼식을 하려면

남들 앞에서 짐짝 같은 드레스를 입고 걷기 싫어 결혼식을 거부했다. 막상 식 없는 결혼은 온 우주의 기운이 도와도 쉽지 않음을 알았다.

웨딩드레스는 저스틴 알렉산더(Justin Alexander at NMB bridal), 체인 벨트는 토즈(Tod’s), 선글라스는 펜디(Fendi at Safilo).

웨딩드레스는 저스틴 알렉산더(Justin Alexander at NMB bridal), 체인 벨트는 토즈(Tod’s), 선글라스는 펜디(Fendi at Safilo).

“저 결혼해요, 그런데 결혼식은 안 할 거예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뜸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 스몰 웨딩 하려고요?요즘 그렇게 많이들 하잖아요.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유행이고.” “아니, 그게 아니라 식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유행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고요.” 이야기의 향방이 이렇게 흐르면 반응은 다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약간의 찬사를 담아) 나도요, 나도 그러고 싶어요.” 아니면 “(약간의 냉소를 머금고)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어디 한번 두고 보라지’ 식의 오기가 드는 동시에 ‘나도 별수 없는 것일까’ 하는 두 마음이 아직은 솔직히 엇갈린다.

일단은 부모님 설득이 필수다. 한국 사회는 결혼할 때만큼은 누구나 효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녔다. 자식의 결혼은 부모 세대의 세력 과시와 역사적인 축의금 회수의 시간 아닌가. 네가 뭐가 부족해서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지’ 따위의 심리적 반감과 저항감은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 부모님 주변의 속닥거림도 높은 허들 중의 하나다. ‘저 집 딸은 뭐가 켕기기에 결혼식도 안 하고 몰래 결혼을 했을까.’ 구혜선·안재현 커플 같은 유명 연예인이라면 의식 있다는 말이라도 들을 텐데, 나는 여기서 제외일 것이다. 물론 그들처럼 결혼식 비용을 기부하고자 하는 너그러운 마음도 없다. 그만큼 전세 자금에 보태거나 좋아하는 브랜드의 소파나 테이블을 하나 더 놓는다면 모를까. 진심으로 우려를 담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웨딩드레스 입고 꽃길을 걷는 게 여자가 생애 한번쯤 꿈꾸는 로망 아니야? 후회하지 않겠어?” 미안한데 코웃음이 난다. 나를 비롯해 내 주변에는 제발 그것만은 사양하고 싶다는 여자들이 넘친다. 내가 결혼식 하기 싫은 이유가 바로 그거다. 남들 앞에서 짐짝 같은 드레스를 입고 걷기 싫다. 이 말을 하면 다들 농담인 줄 아는데 진심이다.

결혼식장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디즈니 만화에서나 보던 낯간지러운 드레스를 입은 공주, 과장된 장식과 화려한 조명, 사람들의 호들갑스러운 환호와 박수 소리, 순결한 신부의 눈물, 그 한 방울을 끌어내기 위한 의도적 선곡의 축가, 인공적으로 피어오르는 행복의 냄새. 이것이 결혼식이 제공하는 환상성의 스펙터클이 아닐까. 실상은 숨넘어가게 긴박한 30분간의 행사일 뿐이며, 그 짧은 지루함조차 견디지 못하는 아이의 울음소리, 모처럼 차려입은 기념으로 셀피를 찍는 누군가의 셔터 소리, 삶은 스테이크 냄새와 ‘사진은 꼭 찍고 가’라는 읍소의 언어가 분주하게 뒤엉키는 장소다. 친구들과의 기념사진은 양가 부모가 아닌 결혼 당사자가 자신의 사회적 위세를 확인하는 결혼식의 클라이맥스다. 나는 이 타이밍에서 뒷걸음치게 된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하객 대행 알바 지원자의 패기 넘치는 이력서를 보았는데, 보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자연스럽지 않은 미소와 진심인지 모를 행복을 기원하는 말들. 언제부터 결혼식이 인간의 허위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장이 되었을까. 1920년대에 이미 이런 신문 기사가 존재했다. 당시 서울 정동 예배당에서 올리는 결혼식이야말로 신식 결혼식이자 신성한 결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1920년 4월 근대 신여성의 효시인 나혜석이 정동 예배당에서 떠들썩한 결혼식을 올린 것이 그 유행의 시발점이었을 것이다. 보통 예배당에서의 결혼식은 신자들이 치르는 것인데 실제로는 신자가 아닌 신랑 신부가 더 많다며 기사는 ‘허위’라는 단어를 써가며 꼬집고 있었다.

사람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내게 있어 결혼은 수많은 선천적, 후천적 상황의 영향 속에서 내린 최대치의 주체적 선택이다. 나의 독립 가능성을 선포하고 그 의지를 재확인하는 중대한 인생의 사건이다. 내가 직접 나의 새로운 가족을 선택한 것이다. 지극히 은밀하고도 면밀한 결정이자 갖가지 경우를 저울질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그런데 그 서약의 순간에까지 사회적 가면을 쓰고 싶지는 않다. 쓰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결혼식 시뮬레이션을 한번 해보면 알거다. 내가, 당신이, 우리가 어떤 인간인지. 우리는 스스로에게조차 시커먼 위장술을 부리며 산다.

나의 경우 간단하게 웨딩 밴드 정도로 출발했다. 하지만 평범한 디자인은 싫었다. 그러다 보니 명품 브랜드를 보게 되었고 더 파고들다 보니 다이아몬드 솔리테어 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가드 링으로까지 영역이 확장됐다. 반지만으로는 아쉬우니 시계도 커플로 차면 좋겠다 싶었다. 우리 커플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니까 적당히 중량감이 느껴지는 결혼식장의 등급, 이에 걸맞은 ‘스드메’와 본식 스냅, 생화의 종류 등 결정의 항목이 무섭게 늘어났다. 휴대폰에 저장된 지인들의 연락처는 나를 유혹했다. 어디까지 부를 것인가. 누가 얼마를 낼 것인가. 계산기는 바삐 돌아갔다.

결혼식이 ‘신부에게 인생 최고의 날’이라는 프레임도 큰 걸림돌이다. 여기에 짓눌리기 시작하면 결혼식은 내 인생 최대의 스펙 평가 날이 된다. 이건 비단 나의 개인적인 감상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는 드러나는 것에, 사소한 비교에 집착한다. 오죽하면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에서 ‘의’가 맨 앞에 와 있겠는가. 결혼식 당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신부의 모습을 연출해내기 위해서는 몇 달에 걸친 수면 아래의 발버둥이 필요하다. ‘예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예비 신부들은 결혼 전문가를 쫓아다니고 드레스 투어를 떠난다. 승모근에 보톡스도 맞고 얼굴에 녹는 실을 넣는 것까지도 고려한다. 드레스의 디자인은 시댁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리지 않게 하는 노출 범위에서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으로. 눈에 차는 건 대개 수입 드레스다. 기왕이면 사회나 축가는 연예인이 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신부는 자신보다는 하객들의 반응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 나는 결혼식 전 과정을 그리면 그릴수록 고고학자가 모래와 먼지 속에서 유물을 섬세하게 발굴해내듯 나의 속물근성을 낱낱이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타인의 평가에 민감했던가. 전전긍긍하는 나를 발견하니 모욕감마저 들었다. 사람들에게 각인될 내 결혼식의 인상이 곧 나의 사회적 등급이라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타인의 결혼식에서 그런 것들을 재단하고 있었을까. 나는 이 끔찍한 생각을 한시라도 빨리 멈추고 싶었다. 결혼식을 통해 나의 결혼을, 나의 행복의 규모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불명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결심한 친구는 나처럼 결혼식을 원하지 않았지만 외동딸의 숙명으로 결국 호텔 결혼식을 택했고, 예단이며 혼수며 한국식 혼인에 필요한 절차를 하나하나 밟아나갔다. 그녀는 토로하듯 말했다. “결국 나의 결혼이 아니라 그들의 결혼이 되어버렸어.” 그때 그녀가 말한 ‘그들’이란 과연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