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Together

통이 크거나 기부 천사가 아니어도 된다. 2016년 우리는 다 같이 잘 살고 싶은 본능으로 기부를 한다.

161104_Vogue_힙한 기부

페이스북을 이용하다가 문득 궁금할 때가 있다. 지금 두 살인 마크 주커버그의 딸 맥스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이해하고 난 뒤 부모가 자신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52조원의 주식을 내놨다는 걸 알았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남들보다 편하게 살 수 있는 부를 물려주는 게 아니라, 아예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꿔주겠다는 약속. 딸을 위해 예쁜 옷도, 주식도 아닌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준비하다니 나는 이보다 멋진 기부를 본 적이 없다(나는 주커버그의 딸이 아니니까). 마크 주커버그, 프리실라 챈 부부는 맞춤형 학습과 질병 치유, 강력한 공동체 건설을 위해 ‘챈 주커버그 이니셔티브’를 설립했고 맥스가 두 살이 된 올해, 2100년까지 세상의 모든 질병을 없애겠다며 3조3,000억원을 추가로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장 스크린에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의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라는 문장이 등장했을 때 온몸에 오스스 소름이 돋은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수십 년간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누가 누가 더 기부를 많이 하나 경쟁을 해온 마당에 주커버그의 기부액이 새삼 놀라운 건 아니다. 주커버그의 행보가 달라 보이는 건 기부의 다음 단계인 기부의 결과까지 약속했다는 점이다. 기부의 목적이 “딸과 딸의 친구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한다면, 그 세상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그 일을 가장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를 고민하고 그 목적을 이뤄내기 위한 방편으로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기존 자선단체에 대한 불신의 발현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다. 자선단체에 ‘통 큰 기부’를 했던 세대가 막연한 선행을 베풀었다면 이후 세대는 기부를 통한 결과물까지 주도적으로 책임진다. ‘내가 도울 대상은 내가 정해. 나는 뭣이 중한지 알고 있어’라는 것.

얼마 전 박재범의 대학교 축제 공연비 기부가 화제가 된 것도 기부하는 태도에 있었다. 그는 한 음악 프로그램에 나와 오래전 히트곡 설명이라도 하듯 덤덤하게 말했다. “가수란 몸값이 있는데, 대학교에선 정해진 예산이 있잖아요. 전 대학교 축제 무대가 재미있어요. 내 가치도 깎이지 않고 공연도 하고 좋은 일도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면 그냥 재능 기부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재범은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출연료를 주는 학교에 다시 장학금으로 기부를 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준 학생들에게 정확히 보답했다. 박재범은 앞으로도 공연비 기부를 계속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기부자가 기부금의 사용처를 지정하는 건 기부자에게 기부를 지속할 동기부여도 된다.

상표권 침해 합의금 수백만 달러를 기부한 마이클 조던은 또 어떤가. 시카고의 대형 슈퍼마켓 두 곳은 마이클 조던이 NBA 명예의 전당에 오르자 스포츠 잡지에 축하 광고를 실었고, 조던은 자신의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6년간 치열하게 진행됐고, 승리한 조던은 자신의 등 번호 23만큼, 23개 비영리단체에 합의금 전액을 기부했다. 흑인 저소득층 고등학생, 히스패닉계 이민 가정 등이 승리의 수혜자가 됐다. 돈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과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한 소신이었다는 걸 말하기 위해 조던은 ‘기부’를 했다. 조니 뎁으로부터 받은 이혼 위자료 76억원을 로스앤젤레스 아동 병원과 미국 시민 자유 연맹에 기부해버린 앰버 허드도 마찬가지다. 폭행, 마약, 손가락 절단, 복수의 문신까지 이들의 결혼 생활은 한 편의 독한 스릴러 영화였다. 조니 뎁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고, 이혼의 이유에 당당하기 위해 그녀 역시 기부를 선택했다.

기부자가 느끼는 ‘나눔의 행복’을 넘어서, 요즘 세상의 기부는 기부자의 소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 된다. 학교 재단 비리를 폭로해서 해직됐다가 소송 끝에 밀린 임금을 받은 한 대학교수는 사학 비리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에 목돈을 기부했다. 관광차 한국을 찾았다가 택시 기사로부터 바가지를 쓴 외국인은 신고를 통해 수십만 원을 돌려받은 뒤 어린 장애우에게 기부하고 떠났다. 기부를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라도 결과적으로 기부가 이루어지는 상황. ‘기부’의 선한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공동체 일원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깔려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돈 때문에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건 아니야. 그 대가로 받은 돈을 가지고 싶지 않아. 내 신념이 희석될 테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게 낫지 않겠어?” 같은 마음 말이다. 기부는 내기의 단골 소재로도 흔하게 등장한다. 노엘 갤러거는 맨시티가 이기면 수익금 전부를 기부하겠다고 공약했고, 노홍철은 <굿모닝FM 노홍철입니다>에 지각하면 1,0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10년 전 미래 예측 전문지 <퓨처리스트(Futurist)>는 2020년 미래 사회 10대 트렌드에 고령화, 융합화, 여성성 강화 등에 이어 기부 문화(Philanthropy)를 포함시켰다. ‘착한 일은 좋은 것’이라고 배우며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던 어린이들은 ‘이왕이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IT 기술의 발달로 기부는 쇼핑만큼이나 쉬워지고 게임만큼 재미있어졌고, 착한 마음을 자극하는 기업 덕분에 돈을 쓰면서 기부도 할 수 있는 오만 가지 방법도 알게 됐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기부할 수 있을까 구상하고 실천하는 단계까지 넘어왔다. ‘희생’이 따른다는 누명을 벗은 기부는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삶을 말하기 시작했다. 한편 우리는 얼마 전 기부금도 비자발적으로 ‘뜯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래저래 기부가 ‘핫’한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