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의 식탁

SNS에 ‘먹는 흙’ 사진이 올라왔다. 런던에는 3D 프린트로 요리하는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힙스터들이 자기만의 식탁을 갖기 위해 애쓴다. 여기에는 건강, 신념, 경험이 있다.

“먹다 먹다 이제 흙도 먹는다.” 온라인 뉴스 채널의 편집장 K의 SNS에는 독일산 흙 사진이 올라왔다. 물에 타서 매일 마시면 장에 좋다고 한다. 댓글이 줄줄 달린다. “장에 좋은 다른 것도 많은데…” “ 먹을 만한가요” “ 흙치고 패키지가 예쁘네요” “ 제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인데요,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은 피하고 양배추 가루를 먹어요. 음식 조심도 해야하지만 수영이 제일 좋은 거 같아요” 란 진지한 조언까지. 그가 후에도 꾸준히 흙을 먹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건강을 위해 이렇게 애쓰고, 이런 정보도 안다는 반응은 충분히 끌어냈다.

나도 주문해 먹어보았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먹고 시간 여행을 떠나듯 나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이끌었다. 넘어져서 입에 모래가 들어간 맛. 독일어로 적힌 효능을 읽어보았다. 위, 장, 신진대사, 다이어트, 온 우주의 좋은 기운을 끌어다 모은 듯한 설명이다. <뉴욕타임스>에서 흙을 먹는 트렌드에 관한 기사를 다룬 적 있다. “흙도 와인처럼 출신 지역이 중요합니다. 그리스 렘노스 섬의 흙, 베들레헴 동굴의 흙이 유명하죠.” 나도 흙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보았다. 역시나 신기하다는 반응. 그중 스타일리스트 K의 댓글이 압도적이었다. “나는 매일 먹는걸.” 프레데릭앤컴퍼니의 정용현 대표도 ‘직구’해서 꾸준히 먹는다고 했다. “기자님은 어디서 주문하세요?” 독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낼 때 배가 아프면 이모가 약국에 가서 흙을 사서 타 먹였다고 했다. “신기한 게 아니라, 익숙한 일인데요.” 그러곤 덧붙였다. “이제 맛있는 것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시대는 끝났죠. 국내에서 흙이야 독특할 순 있겠네요.” 힙스터는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는 뉘앙스다.

생각해보니 특히 식문화에 있어 힙스터와 대중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이런 양분을 이해해주길. 힙스터는 남들과 다름을 추구하며, 먼저 발굴하길 좋아하는 인물이라고 정의할 때, 그 성향은 ‘먹스타그램’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이젠 너도나도 ‘먼저’ 맛집에 드나들며 (어떻게 알았는지) 나만의 신고식을 치른 지 오래다. 나와 동료 기자는 테이스팅룸과 멜팅샵을 성공시킨 오너의 페어링룸이 가오픈할 때 항정살 파스타를 먹으면서 사진을 찍었지만, SNS에 올리지 않았다. 누구는 흙을 올리는데 파스타는 좀 촌스럽달까.

기존의 맛있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음식으로는 자아실현이 불가능해진 힙스터들은 그만의 식탁을 차리기 시작한 것 같다. 줄기는 몇 년간 식업계를 꽉 잡은 ‘건강’임에는 변함 없다. 음식 평론가 이용재도 “점점 더 대량생산, 기계화와 반대되는 음식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널린 것’이 아니다. 코트라가 <2017 한국이 열광할 세계 트렌드>에서 고단백질의 식용 곤충을 꼽은 것처럼. 영국의 <메일 온라인>이 꼽은 ‘SNS의 끝없는 자랑 음식 베스트’도 건강과 밀접하다. 케일, 쿠스쿠스, 농어, 퀴노아. 그리고 덧붙였다. ‘이제 케일을 올리는 시대는 끝났다. 케일을 대신할 다섯 가지 신기한 채소’. 영국의 <데일리 메일>도 말했다. “음식도 패션처럼 떴다 사라지길 반복하죠. 요즘 누가 컵케이크와 폴드 포크를 올리나요? 사람들은 덜 알려진 음식을 발견하고 싶어 해요. 컵케이크라도 할머니의 건강 레시피라는 차별점이 있어야죠.” 구글에 힙스터의 음식을 검색해봤다. 엔터테인먼트 사이트 ‘버즈피드’가 선정한 힙스터의 음식 역시 ‘건강’ 그리고 ‘독특한 소재 혹은 형태’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반인의 소시지, 힙스터의 레몬 케일이 들어간 초록 소시지. 일반인의 머핀, 힙스터의 두부, 생강, 쌀이 들어간 머핀. 영미 사이트임을 감안할 때, 그들에게 두부, 생강이 얼마나 큰 도전인지 알 것이다. 뉴욕에서 미술 평론가로 활동한 이나연은 SNS에 정체 모를 초록의 음식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이젠 뉴요커들이 미역 든 잡채 같은 것을 먹기 시작했다.” 미국의 음식 전문 매체 <푸드 비즈니스 뉴스>에는 2017년 미국에서 떠오를 식재료로 강황과 정어리를 꼽았다. “강황 음료와 강황 파우더가 인기를 얻을 겁니다. 이미 몇몇 레스토랑에서는 정어리 토스트를 메뉴로 선보였죠.” 그들은 건강을 위해 모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정어리도 기네스 팰트로가 촉발한 퀴노아처럼 품절 사태를 빚을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퀴노아가 인기를 끌면서 가격이 일곱 배가 뛰고, 이를 주식으로 하는 안데스 주민들은 정작 먹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페루 정부 차원에서 생산량을 늘리려고 밭을 무리하게 갈고, 전통 농업 방식을 버리면서 환경문제도 발생했다. 텃밭을 가꾸는 디자이너 O는 “힙스터라면 단순히 건강한 음식을 추구할 뿐 아니라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용현 대표는 ‘소비자와 생산자, 나와 지구를 배려한다’는 슬로건의 생협에서 장을 본다. “서촌의 생협에서는 멋진 차림의 커리어 우먼을 종종 보죠.” 그 역시 유행하거나 건강하다고 무작정 사 먹는 게 아니라, 이것이 환경과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서 소비한다고 했다. “힙스터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소비합니다. 그게 진짜 쿨한 거죠.” 나도 그런 마음으로 생협에 가입해 왁스를 칠하지 않아 거친 감귤을 샀고, 주류점에 들러 땅을 생각해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는 유기농 와인을 살폈다. 그 와중에 한 차원 더 나아가, 농장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비료를 주지 않으며(식물이 양분을 흡수하는 능력을 저하시키지 않으려고), 음악을 들려주고, 달이나 별의 주기에 따라 수확한다는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을 소개받았다. “포도 덩굴을 만지며 주문을 외우기도 하죠.” 이 마녀의 주술 같은 와인의 가격은 감히 물어볼 수 없어 주인장의 자랑스러운 표정을 뒤로하고 나왔다. 와인에 그만한 돈을 지불할 신념은 아직 없었다.

최근 힙스터의 식탁에서 요소를 하나 더 추가한다면 ‘경험’이다. 지난 11월 <뉴욕타임스>는 피레네 산맥에서 야생 비둘기를 사냥해 요리하는 크루를 소개했다. 고대 바스크 지방에서 내려온 풍습인데, 이런 전통을 현대의 식탁으로 가져오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중요한 한마디. “단순한 사냥이 아니죠. 식사를 위해 친구와 어깨를 부딪치며 시간을 보냅니다.” 식탁에 앉기까지의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난여름, 런던에는 3D 프린트 팝업 레스토랑인 ‘Food Ink’가 들어섰다. 식기, 조명, 식탁, 의자 그리고 음식까지도 모두 3D 프린터로 제작했다. 콩 반죽을 기계에 넣으니 푸딩이 디자인되어 나온다. “피시앤칩스를 주문하니 셰프가 ‘프린트’ 버튼을 누르더군요. 코스 중 최고는 3D 프린트가 뱅크시처럼 그린 초콜릿 케이크였어요.” 증강현실 고글을 쓰고 음식 시연을 다시 한 번 감상한 고객이 말했다. 그는 기꺼이 230파운드의 식사 비용을 지불했다. ‘Food Ink의 오너인 안토니 도브젠스키는 <보그 코리아>의 “왜?”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3D 프린터는 미래의 강력한 도구예요. 미래에 대해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 우리 식당에 오죠. 코스 요리가 끝나면 이 흥분되는 ‘미래 경험’을 얻어갈 거예요.” ‘Food Ink’는 베를린, 로마, 파리, 두바이, 샌프란시스코, 대만, 홍콩, 일본 등을 거쳐 내년 여름에는 서울에도 팝업 스토어 형태로 들어선다. ‘3Digital 쿡스’ 창업자인 루이스 로드리게즈는 이것을 가정에서 쓰게 될 거라고 했다. “피곤한 퇴근길, 집에 있는 3D 프린터에 레시피를 전송하세요. 집에 도착하면 맛있게 ‘출력’돼 있을 겁니다. 이제 요리하는 노동에서 해방되고 니즈에 맞춘 메뉴를 즐길 수 있어요.”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집집마다 상용화된다면 (그럴 날이 멀어 보이지만) 힙스터는 또 다른 식탁을 찾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