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길이 가는 길

영화 〈판도라〉의 주연배우로, NGO ‘길스토리’ 대표로, 보통 사람 김남길로. 김남길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그 길을 혼자 걸어가지 않는다.

그레이 셔츠는 비슬로우(Beslow).

그레이 셔츠는 비슬로우(Beslow).

예전 인터뷰를 찾아봤더니 추리닝 차림으로 다닌다는 얘기가 빠지질 않더라. 추리닝 성애자인가.
핑계를 대자면 배우는 캐릭터에 맞춰서 옷을 입어야 하니까 평소에는 내 몸을 편안하게 해주자는 주의다.

옷장의 풍경을 묘사해준다면.
옷방이 없다. 붙박이장뿐이다. 진짜로 과장 조금도 안 보태고 겨울에는 긴 코트, 점퍼 한두 벌이면 되고, 여름에는 티셔츠에 추리닝 바지면 된다.

무채색 일색이겠다.
그렇지도 않다. 추리닝이 색깔별로 있다. 사람들이 소화하기 힘들어하는 빨간색, 초록색부터 남색, 검정까지… 스태프들이 생일 선물로 추리닝을 준다. “이 색깔은 없을 거야”하며 선물해줘서 색상이 다양하다.

베이지 컬러의 로브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블랙 와이드 팬츠는 준지(Juun.J), 카키 컬러의 트렌치 코트는 노앙(Nohant), 블랙 워커는 디올(Dior).

베이지 컬러의 로브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블랙 와이드 팬츠는 준지(Juun.J), 카키 컬러의 트렌치 코트는 노앙(Nohant), 블랙 워커는 디올(Dior).

<판도라>는 블록버스터긴 하지만 재난을 다룬다는 점에서 평소 관심사의 연장선으로 선택한 작품이 아닐까 싶더라.
환경에 관심이 있는 건 맞지만 그것보다는 시나리오 자체가 재미있어서 하게 된 작품이다. 사실 원전에 대해 잘 몰랐다. 우리나라에 원자력발전소가 20여 곳이나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우리나라 면적이면 두 곳 정도면 충분한데 더 짓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막연했는데 오히려 작품을 통해 공부를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블랙 터틀넥은 에르메스(Hermès).

블랙 터틀넥은 에르메스(Hermès).

원전 폭발 사고는 언제 발생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현실의 이야기다. ‘원전’에 대해 공부하며 알게 된 사실 중 가장 놀라웠던 건 무엇인가.
굉장히 오래간다는 것 그리고 복구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30년 전에 일어난 일임에도 여전히 그 도시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라. 엑스레이를 찍을 때마다 방사능이 축적된다는 사실도 무서웠지만 방사능 수치가 가장 높은 건 담배라는 광고가 가장 공포스러웠다.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이 자료를 나눠주고 스태프들과 다 같이 앉아서 기본적인 공부를 했다. 그런데 감독님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기를 바랐고, 나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정도면 충분하고 드라마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의견 대립도 있었다.

브라운 컬러의 재킷, 니트 톱, 팬츠, 워커는 지방시 바이 리카르도 티시(Givenchy by Riccardo Tisci).

브라운 컬러의 재킷, 니트 톱, 팬츠, 워커는 지방시 바이 리카르도 티시(Givenchy by Riccardo Tisci).

그러고 보니 당신에게는 ‘스타병’이 없었던 것 같다.
좀 생길 법할 때 군대에 갔다.(웃음) 그동안 고생해서 이제 좀 누려보려고 했더니.(웃음) 어차피 나는 티가 잘 안 나는 배우다. 연기하면서 아무 일 없이 지내는 지금이 좋다.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고, 어차피 좋은 일은 좋지 않은 일과 함께 온다. 예전에는 화제를 몰고 다니는 스타를 보면 그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님에 견디질 못했다. 많이 내려놓고 참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많이 무뎌졌고 남의 인생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됐다. 그래서 사실 화보도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 찍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좋은 영화에 좋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가장 부럽다는 사실이다.

벌키한 그레이 니트는 산드로 옴므(Sandro Homme).

벌키한 그레이 니트는 산드로 옴므(Sandro Homme).

<어느날> <살인자의 기억법>이 연이어 개봉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판도라> 카메라 감독님이 “시나리오 한번 읽어볼래?” 하며 추천해준 작품이다. 사실 하기로 했던 영화와 시기가 겹쳐서 못할 작품이었는데 너무 욕심이 나서 들어가게 됐다. 선배님을 받쳐주면서 내가 영화를 홍보하는 역할 진짜 좋아한다.(웃음) <어느날>은 어른 동화 같은 이야기인데 당시에 시나리오를 보면서 엄청 울었다. 사람이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영화를 보면 다 다르게 보이잖나. 당시에 내가 느낀 그 감정을 전달하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찍으면서 그 감정은…(웃음)

블랙 무스탕 재킷은 암위(Am.We), 화이트 롱 셔츠는 포츠 1961(Ports 1961), 블랙 워커는 우영미(Wooyoungmi).

블랙 무스탕 재킷은 암위(Am.We), 화이트 롱 셔츠는 포츠 1961(Ports 1961), 블랙 워커는 우영미(Wooyoungmi).

<판도라>를 통해 ‘안전하게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답은 얻은 것 같나.
사실 영화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희생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먼저 살고 싶고, 희생한다면 얼떨결에 한 일일 거다.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게 안전하게 사는 방법 아닐까. 어떤 일을 해도 빈익빈 부익부가 생기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일기를 쓰는데 가끔 예전 일기를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금 느끼는 것과 예전에 느낀 것, 앞으로 느낄 것은 다를 것이다. 철이야 들겠지만 사실 철들고 싶지 않다. 그냥 조금 더 깊어지고 좀더 많은 것을 생각하며 철없는 소년으로 살고 싶다. 정답도 해답도 없다. 행복이란 막연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