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in Hands

디자이너 한혜자는 손끝으로 패션을 탐구하고, 가슴으로 옷을 감상한다. DDP에서 열린 전시 〈Tactus〉를 통해 펼쳐 보인 그녀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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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이 더듬이로 주변을 살피고 감지하듯 디자이너라면 손끝으로 옷을 만져보며 감각을 키워야 해요.” 지난 10월 중순, 자하 하디드의 유산 DDP 안의 새하얀 복도에 서 있던 디자이너 한혜자가 말했다. “마음만큼 손끝도 예민해야 해요. 그래야 좋아하는 소재에 대한 감각을 기르고 만드는 옷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말을 잇던 그녀가 바라보던 시선의 끝에는 가위, 미싱, 단추 등 패션 디자이너의 재료를 광목으로 감싼 자신의 작품 ‘In Silence’가 있었다. 그곳은 10월 17일부터 11월 20일까지 열린 한혜자의 아카이브 전시 <Tactus> 공간이다. 2017년 봄을 위한 서울 패션 위크에 맞춰 45년간 디자이너로 일한 한혜자의 작품을 모은 초청 전시가 기획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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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각’이라는 전시 제목에 맞게 경사를 높이며 유선형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 전시된 80점의 작품에는 한혜자 특유의 질감과 성정이 담겨 있다.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로서 스스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 위주로 선택했다. 즉, 연대기에 따라 옷을 모은 회고전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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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제가 보관한 작품이 모두 아티스틱한 옷이었어요. 창고에 있던 옷을 모아보니, 그 안에 하나의 흐름이 있는 듯했어요.” 일상적으로 입는 옷이 아닌, 옷 안에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을 하나씩 꺼냈다. 그 속에는 1996년 광주 비엔날레를 위해 아크릴을 불로 그을린 드레스도 있고, 2009년 피에로의 미소 뒤에 숨은 슬픔을 이야기한 다섯 벌의 광대 의상도 있다. 1994년 플리츠를 한국식으로 해석하고자 떠올린 ‘크링클’ 소재의 드레스,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를 위해 마닐라삼을 꼬아 만든 거친 외투, 2003년 뉴욕 컬렉션에서 선보인 바람 같은 시폰 드레스 서른 벌도 모두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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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작품을 모두 한곳에 모아보니, 솔직히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죠.” 그중에서도 그녀가 으뜸으로 꼽는 건 아티스트 이용백과 함께한 작품이다. <보그 코리아> 창간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의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를 한데 모았던 <Art to Wear> 전시를 위해 만든 바로 그 작품. “저와 아티스트의 장점이 잘 드러난 듯합니다. 단순히 예쁜 옷과 아티스트의 작품을 함께 세운 게 아닌, 그 안에 여러 이야기를 펼쳐 보인 것 같아요.” 전쟁터에 버려진 웨딩드레스, 타버린 구두, 뜯어진 베일, 그 위로 새 생명을 알리는 물방울. “섬뜩하게 느껴질 만한 배경과 참혹한 이미지 속에서 가녀린 희망을 엿보는 작품입니다.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로서 표현하고 싶은 주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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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자는 1972년 이화여대 앞 아메리카나라는 서점 근처에 ‘이따리아나’라는 이름으로 디자이너의 삶을 시작했다. 처음 자신의 매장을 찾던 고객이 이제는 딸, 손녀와 함께 여전히 그녀를 찾고 있다. 자연스럽게 신세대 고객들이 아끼는 옷을 만들 때 보람이 컸다. 하지만 패션에만 몰두했던 세월이 40년을 넘어서자 그녀에게도 작은 쉼표가 필요했다. “끊임없이 사계절에 쫓기면서 옷을 만들어왔어요. 그래서 그 궤도에서 잠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었죠.” 인도, 아프리카, 프랑스 등지로 여행을 떠나면서 컬렉션도 잠시 쉬었다. 그 와중에도 새 작업에 대한 목마름은 생겨났다. 지난해 양평에 완성한 작업실이 뉴 챕터를 열 만한 배경이 됐다. “제주도에서 구한 직조기도 있어요. 한국적인 방법을 사용해 새로운 작업을 진행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