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미쉐린의 상반된 맛

2016.12.26

by VOGUE

    미쉐린의 상반된 맛

    절대적인 맛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미쉐린 가이드〉는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안내서다. 좀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필자 2인에게 한쪽 입장은 접어둔 채 평가를 요청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을 바라보는 상반된 두 가지 시선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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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쉐린이 건네는 대화

    지난 11월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이 환호했고 또 실망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곳도 있었지만, 납득하기 힘든 곳도 있었다. 재미있는 건 <미쉐린 가이드>의 결과를 두고 이렇게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서울만의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거의 매년 매 도시마다 어떤 식당이 별을 받고 못 받았는지를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는데, 이것은 <미쉐린 가이드>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에 대한 비판의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실망이란 기대가 만드는 그림자 같은 것이다. 기대가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실망은 짙고 깊어진다. <미쉐린 가이드>는 복음서가 아니라 안내서이다. 미쉐린의 별점을 그리스 시대의 신탁이나 선지자들의 예언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상대방의 권위를 너무 높게 인정해버리면, 그냥 무비판적으로 맹신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아예 귀를 닫게 된다. 하지만 둘 다 과민한 반응이다. 잘 알려진 대로 <미쉐린 가이드>는 여행자를 위해 레스토랑을 소개하기 위해 발간된 책이다. 하나
    의 가이드북이 완벽하게 모든 레스토랑을 평가할 수는 없다. 특히 <자갓 서베이(Zagat Survey>)처럼 집단 지성의 힘으
    로 순위를 발표하는 방식에 비하면 소수의 평가단으로 운영되는 미쉐린은 표본 자체에 한계를 가진다. 게다가 채 1년도
    안 되는 평가 기간으로는 서울 최고의 레스토랑을 찾아줄 수도,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곳을 발견할 수도 없다. 결국 레스토랑 평가서의 공신력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평가가 수정되고 새로운 관점이 추가되는 축적의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막 도착한 첫 번째 책을 받아봤을 뿐이다.

    ‘여행자가 신뢰할 만한 꽤 일관된 안내서’라고 생각하면 미쉐린의 평가를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받아 든 이 목록은 여전히 다른 도시의 평가와 일관된 방향을 가리킨다. 한식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흥미롭다. 한 개 이상의 별을 받은 24개의 레스토랑 중에 한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13개이다. 별 두 개 이상의 높은 평가를 받은 다섯 개 중에서 네 곳 역시 한식당이다. 전통적인 이탤리언, 프렌치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대신 이를 새롭게 해석한 식당이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다른 비서구권 국가의 평가 결과와도 유사하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미쉐린 3스타를 받은 곳은 대체로 일식이었고 브라질에서도 가장 높은 2스타는 아마존에서 영감을 받은 브라질 레스토랑 D.O.M이 유일했다. 홍콩과 상하이 편도 중식 쪽에 훨씬 더 무게가 실려 있다. 그것은 <미쉐린 가이드>의 주요 독자층으로 외국인을 포함한 여행자를 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이 책을 들고 서울에 온 사람은 단순히 허기를 면하기 위해 식당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기꺼이 2~3시간을 식사에 투자하고 이를 통해 한국을 경험하고 싶은 여행자에게 어떤 식당을 소개해줄 수 있을까? 재료를 내는 한국의 자연과 이를 다루는 사람과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식당은 어디일까? 라연과 가온을 비롯한 13개의 한식당, 11개의 다른 식당이 미쉐린이 내놓은 답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우리나라 외식 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여행자에게 유용할지 몰라도 서울을 잘 아는 우리에게는 이 답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고기구이집 보름쇠가 1스타라면 우래옥은 왜 아닌가? 한국의 중식이 하나의 독립된 지역 음식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면 왜 진진과 유유안에게만 별이 갔을까? 이를테면 왜 팔선은 아닌가? 왜 서울의 일식당은 저평가받았을까? 가성비가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한국에서 한 끼에 20만~30만원짜리 한식 파인다이닝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질문은 계속된다. 이번 <미쉐린 가이드>에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은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이 책의 역할이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 리스트가 낯설다면 그것은 아마도 타인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한식의 세계화는 메아리 없는 공허한 구호였다. 만약 대화가 어떤 생각을 교환하고 함께 그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라면 일방적인 구호여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손에 든 이 별점은 미쉐린이 건네는 대화일지도 모른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코리안 바비큐와 삼계탕, 김치 너머의 한식을 경험하고 싶다’는 것.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면 특급 호텔에선 그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던 한식당을 재정비할 것이다. 파트타임 알바 대신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 그 뒤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전문적인 서버들이 다이닝룸에 배치되고, 소주나 맥주가 아닌 다른 술과 한식을 어떻게 매치할지 고민하는 소믈리에들이 나타날 것이다. 라연이나 곳간처럼 재료에 대한 태도를 장인의 경지까지 밀고 가려는 식당과, 권숙수나 밍글스처럼 담당 셰프가 생각하는 한식을 강하게 주장하는 식당이 더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슴에 별을 달고 다른 나라 셰프들과 교류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이 별점에 주석을 달게 되면 우리는 ‘존맛’과 협찬 받은 블로그 리뷰에서 조금 더 나아간 음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끝까지 이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면 새로운 레스토랑 평가서를 만들어 논쟁의 외연을 넓힐 수도 있다.

    다른 모든 가이드북과 마찬가지로 내용 그 자체보다 어쩌면 당신이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평가의 불공정함이나 문화 제국주의를 발견할 수도 있고, 지금껏 미처 생각지 못한 흥미로운 시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가능하다. 하지만 미쉐린의 별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폄하할 필요도 없다. 이 별과 상관없이 서울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풍류 있는 식당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댈 것이다. 뉴욕의 다니엘(Daniel)이 3스타에서 2스타로 강등되어도 여전히 뉴요커가 사랑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남은 것처럼, 파리의 400년이 넘은 식당 라 투르 다르장(La Tour d’Argent)이 3스타에서 1스타가 되어도 역사적 품격이 퇴색되지 않은 것처럼, 미쉐린의 별 없이도 우래옥은 평양냉면을 사랑하는 사람의 성지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새로 별을 받은 곳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도 된다. 내가 벌써 내년판 <미쉐린 가이드>를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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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쉐린의 진정성에 관하여

    몇 년 전, 나는 외국인 식당 경영자들 그리고 한국 재벌 그룹의 간부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중 한 간부가 “<미쉐린 가이드>가 서울에도 온다”는 내부 정보를 알고 있다고 으스대며 말했다. 프렌치 그리고 이탤리언 레스토랑의 경영자들은 그 소식에 펄쩍 뛰었다. 서울의 요식업계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긴 하지만 서비스나 맛의 일관성에 있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탄식하며 말이다. 그 간부는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비밀을 알려주는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가) 미쉐린을 서울로 가져오려고 방법을 찾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미쉐린은 왔다. 미쉐린의 서울 상륙을 찬양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그 이야기는 진짜 저널리즘이라기보다는 보도 자료 같다. <미쉐린 레드 가이드>가 서울을 요식업계의 중요한 종착지로 만들어주는 걸까? 아니면 <미쉐린 가이드>의 명성을 깎아 먹는 일에 불과할까? 나이 든 정치인들과 사업가들이 미쉐린을 서울로 도입하기 위해 안달이었다. 그중 몇몇은 <미쉐린 가이드>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을 거다. 한국에서 흔히 ‘386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그 노력의 선봉에 서 있었다. 이 세대는 한국이 부강한 나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은 지위와 순위에 집착한다. 특히 세계적인 위상을 말이다. 이 세대는 순진한 벼락부자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보다 이미지를 더 신경 쓴다. 그들은 국제적인 위신이라는 환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한식을 홍보하기 위해 <뉴욕 타임스>에 전면 광고를 내거나,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빌보드에 광고하는 것에 돈을 낭비한다. 물론 그것이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세대가 서구권의 엘리트에게 인정받으려는 이상한 욕구를 가졌다는 걸 고려하면 왜 그렇게 미쉐린을 서울로 끌고 들어오는 데 필사적이었는지 이해가 된다. 나와 저녁을 먹을 때 그 재벌 기업의 간부가 보여준 자신감,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비밀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뉴스가 미쉐린 서울 상륙 목적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했다. 지나치게 열성적이었던 정부 관리들이 국제 스포츠 이벤트, 혹은 다른 국제적인 지위에 대한 심벌로 여겨지는 이벤트를 한국에서 주최하기 위해 부정을 저지른 일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미쉐린을 위해 똑같은 짓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어야 하는 걸까?

    서울의 식도락가들은 미쉐린을 믿었다. 미쉐린이 나이 많은 관료들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좌지우지되지는 않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빕 구르망과 별점이 발표됐을 때, 많은 이들은 미쉐린이 타락했다고 믿게 됐다. 여행자들이 주목할 만한 레스토랑의 리스트인 빕 구르망은 정부의 관광 단체에서 만든 리스트와 매우 비슷했다. 대부분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레스토랑이었다. 그중 몇몇은 여전히 굉장한 레스토랑이지만, 다른 곳은 대부분 유명하다고 소문난 곳에 불과하다. 절반 정도의 식당이 만두와 칼국수 전문점이라는 것도 이상하다. 미식가들에게 그건 완전 초급 요리다. 한국 사람들이 아직 매운 음식을 못 먹을 것 같은 외국인에게 대접하는 음식이란 말이다. 빕 구르망 리스트를 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진 정부 관리가 작성한 건 아닐까 싶었다.

    식도락 커뮤니티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그냥 화난 게 아니라 정말 분노했다) 레스토랑의 별점이었다. 1스타를 받은 많은 식당은 최소 별 두 개는 받아야 하는 맛집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얻기 힘들다는 3스타를 얻은 레스토랑이 어딘지 확인했을 때, “Bullshit”이라 할 만큼 논란이 일었다. 뭔가 잘못됐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은 그냥 좋은 레스토랑이 아니다. 그 레스토랑에서 먹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것이 아깝지 않은 레스토랑이어야 한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고, 최상의 레벨이어야 한다. 완벽한 다이닝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서울에서 3스타를 받았다는 두 레스토랑은 그런 영광을 가질 수준이 아니었다.

    3스타를 받았다는 두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내 친구들은 그곳이 지구 상의 다른 3스타 레스토랑에 감히 비교가 안 된다고 느꼈다. 나 역시 3스타 레스토랑 한 군데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음식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가격은 비쌌고, 음식을 담은 접시도 비쌌지만, 맛은 다른 곳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서비스는 오만했고 나와 같이 식사하던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뉴욕의 3스타 레스토랑에서 한 경험의 퀄리티에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이 일로 뭔가 부정이 있지는 않았는지 의심하게 됐다. 미쉐린은 도시마다 3스타 레스토랑을 몇 개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가 없다. 3스타 레스토랑이 아예 없는 도시도 많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서울에서는 별 세 개짜리 레스토랑이 두 개나 된다 그중 하나는 한식 프로모션 프로그램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사람이 오너로 있는 식당이다. 그는 보통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음식과 소주에 비싼 가격표를 달면 갑자기 그 가치가 상승한다고 믿는 듯하다. 미스터리하게도 그가 운영하는 다른 식당도 별을 한 개 받았다. 그 3스타 레스토랑의 셰프는 기자들 앞에서 한식이 외국인들에게 조금 더 ‘접근하기 쉬워져야’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아주 오만한 발언이다. 내부자들에게 들은 정보에 따르면 미쉐린 감독관들이 미리 레스토랑의 리스트를 받았다고 한다. 몇몇 레스토랑은 사전에 미쉐린 감독관이 온다는 정보를 전해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매우 부도덕한 일이다. <밀레 가이드>의 심사위원이었던 나는 이런 가이드가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문제투성이인지 직접 봤다.

    이제 이 문제를 진실하게 바라보자. 과연 서울에 <미쉐린 레드 가이드>가 필요한가? 이것은 여행자들을 돕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386세대 엘리트들의 또 다른 지위의 상징에 불과한가?

    요즘 전 세계적으로 <미쉐린 가이드>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스스로의 브랜드 가치를 희석시켰다는 점이다. 인터넷이 있기 전에, 또 다이닝 가이드 간 경쟁이 이토록 심하지 않았던 시절의 미쉐린은 매우 존경받았다. 하지만 미쉐린은 결국 비즈니스고, 비즈니스는 몸집을 불려야 한다. 서울 가이드를 출판하면서, 그들은 지위에 목매는 한국 소비자들의 돈을 쉽게 얻게 됐다. 한국 정부가 미쉐린과의 비밀 협정을 통해 최소 4억원의 돈을 주기로 했다는(한 시사지가 확보한 관계자의 증언) 것도 도움이 됐을 거다.

    미쉐린은 매우 빠르게 과거의 유물이 되고 있다. 어떤 이슈가 드러날 때마다 영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레스토랑은 별점을 거부하고 나섰다. 미쉐린이 서울에 온 건 괜찮은 일이지만, 이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길. <미쉐린 가이드> 서울 판을 신경 쓰는 사람은 서울의 국제적인 지위에 집착하는 사람들뿐이다. 그들은 서구권 엘리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서구권 엘리트들의 허락과 인정 없이는 서울이 스스로 전 세계 레스토랑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이다. 서울은 독창적이고, 자랑스러운 식도락 도시다. 미쉐린의 증명은 필요 없다.

    신현호 (음식 평론가, ), 조 맥퍼슨(젠김치 대표, ZenKimchi.com, )
    에디터
    조소현, 김나랑
    포토그래퍼
    KIM BO SUNG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지현
    소품 제작자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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