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nkle Sparkle

1895년, 다니엘 스와로브스키는 ‘모두를 위한 다이아몬드’라는 비전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보석으로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의 진가를 처음 알아본 이는 파리의 수준 높은 고객들. 이후 최초의 꾸뛰리에인 찰스 프레데릭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파리의 많은 아틀리에에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엔 당시 대표적인 프랑스 디자이너인 코코 샤넬과 엘자 스키아파렐리도 포함돼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자유롭고 사치스러워진 시대 분위기에 힘입어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은 역사상 가장 큰 인기를 누렸으며 플래퍼 드레스, 주얼리부터 머리 장식과 신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패션 아이템을 빛나게 했다. 1932년에는 마를렌 디트리히 주연의 영화 <금발의 비너스>로 할리우드에 진출, <오즈의 마법사>를 위한 루비 슬리퍼와 유리 구두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피스를 제작하기도 했다. 1956년에는 크리스찬 디올을 위해 무지갯빛을 내는 새로운 크리스털 ‘오로라 보레알리스’를 개발했으며 무슈 디올뿐 아니라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도 자신의 꾸뛰르 의상을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장식했다. 비슷한 시기, 스와로브스키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등장했으니 바로 마릴린 먼로.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에서 그녀가 가진 건 실제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었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때는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1만 개로 뒤덮인 시폰 드레스를 입어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그 후로도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은 기억될 만한 역사적 순간을 함께해왔다. 아름지기에서 열린 <스와로브스키 헤리티지> 전시는 이런 의미 있는 피스를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친근한 가격대의 보석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폭넓게 표현 가능한 색과 크기의 스펙트럼은 120년 동안 패션과 공연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보석 가공에 있어 창의적인 범위를 확장시켰다. 특히 한옥을 배경으로 전통 가구와 함께 어우러진 설치는 스와로브스키의 오랜 전통을 돋보이게 했다. 원석 커팅 모양을 응용한 장치, 장신구와 경대의 매치 등등. 국내 주얼리 디자이너 김선영과 차선영의 협업 작품도 포함돼 더 특별한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