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패션을 정의하는 7가지 키워드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 패션계에서도 이런저런 소동과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수없이 작별을 고하고, 깜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던 한 해. 만약 2016년 동안 패션 뉴스에 소홀했다면, 여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신의 패션 지식 지수를 한층 높여줄 7가지 패션 키워드.

 

1 R.I.P.

올해 패션계는 유난히 큰 별을 많이 잃었다. 시작은 데이비드 보위와 프린스. 음악만큼이나 환상적인 스타일을 자랑했던 아티스트들이었기에 패션계에서는 그 아쉬움이 더 컸다. 하나의 제국을 이룬 패션 대가 역시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1월에는 60년대 ‘퓨처리즘’을 이끌었던 앙드레 꾸레주가 92세의 나이로, 8월에는 파리지엔 스타일을 재정의했던 소니아 리키엘이 86세의 나이로 작별을 고했다. 다행인 건 그들의 브랜드가 여전히 젊은 디자이너(꾸레주는 세바스찬 마이어와 아르노 바이양, 리키엘은 줄리 드 리브랑)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우리에겐 특별한 날인 6월 25일, 40년 가까이 거리를 지켜왔던 ‘스트리트 패션’의 대부, 빌 커닝햄 역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안나 윈투어가 “우린 모두 빌을 위해 옷을 차려 입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패션계를 기록한 그의 부재는 앞으로의 패션 위크에서 더욱 크게 느껴질 것. 또, 세련된 취향을 지녔던 런던 디자이너 리차드 니콜이 서른 아홉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이별을 고했고, 낸시 레이건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제임스 갈라노스도, 최초의 아시안 슈퍼 모델이었던 차이나 마차도 역시 올해 세상을 떠난 패션 스타. 그리고 28년 동안 이태리 <보그>를 지켜왔던 편집장 프랑카 소짜니가 12월 22일 1년 동안의 투병 생활 끝에 밀라노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패션 이미지를 통해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패션 아티스트를 적극적으로 수호한 전설적인 에디터는 희귀한 폐암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를 비롯한 모든 패션 슈퍼 스타들은 떠났지만, 그들의 감동적인 업적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May they rest in peace.

 

2 Hire & Fire

2016년에도 패션 회전문을 재빠르게 돌아갔다. 여기서 중요한 건 3년 만기 이론. 대부분의 패션 하우스가 디자이너를 고용할 때, 3년을 기본 계약 기간으로 삼기 때문에 생겨난 이론. 에디 슬리먼, 스테파노 필라티가 모두 3년 만에 각각 생 로랑과 제냐를 떠난 디자이너. 그 기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피터 코핑은 2년도 채우지 못 하고 오스카 드 라 렌타를 떠나야 했고, 피터 던다스는 로베르토 카발리를, 맥스웰 오스본과 다오이 차우도 DKNY에서 갑작스레 뛰쳐나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짧은 기간 만에 브랜드와 작별을 고한 건? 6개월 만에 브리오니에서 해고 당한 저스틴 오셰어. 반면 넘치는 기대 속에 데뷔 쇼를 선보인 디자이너들도 있었다. 뎀나 바잘리아의 3월 발렌시아가 데뷔 쇼는 올해의 컬렉션으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었고, 안토니 바카렐로는 YSL, 마리아 그라찌아 치우리는 디올, 부크라 자라는 랑방에서 각각 첫 번째 인사를 건넸다. 또, 디올을 떠났던 라프 시몬스는 올해 여름 캘빈 클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채용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뉴욕의 젊은 라벨, 몬스를 디자인하는 로라 킴과 페르난도 가르시아는 오스카 드 라 렌타 하우스를 물려받았다(비록 로라 킴이 캐롤리나 헤레라에 사표를 내자마자 벌어진 채용이기 때문에 두 하우스 간에 법정 싸움이 오가고 있지만). 부디 이 디자이너들만큼은 3년 만기 이론의 예시가 되지 않기를.

 

3 Show Now, Sell Now

Ralph Lauren

Ralph Lauren

2016년 패션쇼의 의미는 무엇일까? 요즘 디자이너들은 이 거대한 의문에 푹 빠져 있다. 그리고 몇몇은 2016년 한 해 동안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내어 놓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See Now, Buy Now’. 즉, 패션쇼를 여는 즉시 런웨이에 내어 놓은 의상을 매장에서 판매하겠다는 전략. 런던의 버버리가 가장 먼저 그 포문을 열었고, 뉴욕의 톰 포드, 타미 힐피거, 랄프 로렌, 타쿤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또 하나의 해답은 여성과 남성 컬렉션의 경계를 허무는 것.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남성 컬렉션과 여성 컬렉션을 하나의 쇼로 합쳤고, 많은 디자이너가 그 뒤를 이었다. 아마도 예산은 아끼면서, 더욱 완성도 높은 컬렉션을 선보이는 하나의 전략일 것. 이러한 실험은 내년에도 이어질 예정. 캘빈 클라인에서의 첫 번째 인사를 올릴 라프 시몬스 역시 남성과 여성 컬렉션을 동시에 열겠다고 선언했고, 디스퀘어드2 역시 그 움직임에 동참했다. 과연 이 모든 것이 더 높은 매출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이 패션 고객들은 얼마나 이 변화를 인식하고 있을까? 아직까지는 이 모든 것이 커다란 물음표로 남을 수 밖에 없지만, 오랫동안 변함 없던 패션쇼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4 Models or Nodels

2016년의 슈퍼 모델을 꼽자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 무려 7천만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가진 켄달 제너? 건강한 아름다움으로 종횡무진 활약한 지지 하디드? 거대한 팬층을 누린 이 새로운 ‘인스타 걸’들의 파워를 무시할 수 없지만, 그 반대편에는 모델이 아닌 ‘노델’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구찌 런웨이에 오른 사진가 페트라 콜린스, 마크 제이콥스 무대를 장악한 레이디 가가, 발렌시아가 쇼에 선 DJ 클라라 3000, 후드 바이 에어에 오른 사진가 볼프강 틸먼스까지. 여기에 뉴욕의 에카우스 라타, 레이첼 코미, 집시 스포츠, 런던의 마르케스 알메이다 등은 개성 넘치는 친구와 아티스트로 무대를 채웠다. 슈퍼 모델의 완벽한 아름다움 대신 일반인들의 친숙한 매력이 더 각광받는 시대가 온 걸까? 그건 아직 미지수지만, 좀더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인정받는 시대가 온 것은 분명하다.

 

5 Cult of Merch

지난 10월 17일, 서울 외곽의 경기도 남양주 한 창고 밖에는 아침부터 기다란 줄이 늘어섰다. 베트멍과 매치스패션이 이곳에서 깜짝 ‘개러지 세일’을 연다고 발표하자, 열성 팬들이 전날 밤부터 이곳에서 베트멍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린 것. 가축의 배설물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지만 베트멍 매니아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건? 209,000원짜리 레인 코트와 235,000원짜리 모자. 그날 판매된 제품 중 가장 저렴했던 이유도 빼놓을 수는 없지만, 더 큰 이유는 ‘머치’ 현상 때문일 것. 그곳에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는 ‘머천다이즈’의 줄임말인 머치는 바로 그 역사적인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인증템’. 이 유행의 시작은 칸예 웨스트. 자신의 앨범과 투어를 기념한 아이템을 판매하는 팝업 스토어를 열고, 아티스트에게 디자인을 부탁하는 등 ‘머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건 단연코 칸예의 역할. 여기에 리한나, 저스틴 비버, 위크엔드, 드레이크, 챈스더랩퍼 등의 투어 상품 역시 높은 인기를 누렸다. 무엇보다 머치가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한정판이라는 이유. 영리한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은 이러한 유행을 새롭게 활용했다. 2017 S/S 컬렉션이 끝나고 이어진 애프터 파티에서 아디다스와 함께 한 아이템을 먼저 판매한 것. 그리고 디자이너의 팬들은 기꺼이 삼선이 그려진 티셔츠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섰다. 과연 그들이 그 옷을 직접 입을지, 이베이에서 엄청난 가격으로 되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6 Fashion Disruptors

Demna Gvasalia of Vetements & Balenciaga

Demna Gvasalia of Vetements & Balenciaga

2016년의 패션을 논하기 위해서는 ‘디스럽터’라는 표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시스템과 편견, 익숙한 선입견을 모두 깨어버리는 과감한 이들을 가리키는 단어는 이제 패션계에까지 퍼졌다. 기존의 패션 법칙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파리의 수호자로 떠오른 뎀나 바잘리아,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구찌의 부활을 이끈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대표적인 패션 디스럽터. 여기에 후드 바이 에어의 셰인 올리버, 런던의 파우스틴 스타이메츠, 파리의 완다 나일론과 코셰 등도 주목할 만한 패션 반항아들. 이들은 단순히 파격적인 디자인을 일삼지 않는다. 패션을 선보이는 방식, 자신을 따르는 고객을 만족시키는 방법, 디자이너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파괴하는 과감함 등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고 자신만의 해답을 선보이고 있는 것. 이건 단순히 ‘씨 나우, 바이 나우’처럼 거대한 자본과 안정적인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패션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자신들만의 ‘부족’을 완성하는 것. 지금 우리를 자극하는 패션 디스럽터에게 필요한 첫 번째 덕목은 바로 그것이다.

 

7 Fashionable Politics

패션과 정치의 관계는 단순히 미셸 오바마의 베르사체 스팽글 드레스로 정의 내릴 수 없다. 물론 이제 백악관을 떠나게 될 미국의 영부인은 지난 8년 동안 근사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지만, 지금 패션계 속 정치는 좀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건 때로 더 이상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하리 네프와 같은 트렌스젠더 모델을 특별 대우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디올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집시 스포츠의 디자이너는 남자 모델에게 레이스 드레스를 입히고선 “저거 끝내주게 섹시하지 않냐”고 되묻는다. 더 이상 케케묵은 성 관념과 인종주의에 휘둘리지 않는 패션. 소수자(인종이든 성적 지향성이든)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패션. 멜라니아 트럼프가 입은 구찌의 리본 블라우스가 품절되는 어지로운 세상 속에서도 패션의 긍정적인 기운은 그 힘을 잃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