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버스에서 읽는 책

2023.02.20

by VOGUE

    버스에서 읽는 책

    흔들리는 버스에서 어떤 책을 읽으세요? 저는 적당한 그림, 여백을 살린 레이아웃, 폭신하고 달콤한 혹은 공감되어서 ‘낄낄’거릴 수 있는 책들이 좋습니다. 왕복 2시간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읽었던, 좋았던, 미소 지었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엄마를 미워해도 될까요?>

    처음엔 또! 알콩달콩 사는 얘기를 늘어놓는 일본만화겠지 했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저자는 부모님과 인연을 끊고 사는 만화가입니다. 지나치게 간섭하는 치맛바람 엄마, 방관하는 아빠 때문에 어릴 적부터 스트레스를 받죠. 겉보기에는 단란한 가족이라, 못된 딸, 배부른 딸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말이죠.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바다를 가려는 딸에게, 엄마는 말하죠. “한  달 동안 엄마랑 이탈리아 여행가자.” 시무룩한 딸에게 엄마가 소리칩니다. “이게 얼마짜리 여행인데 그래!” 정말 배부른 소리라고요? 딸의 의견보다 ‘다정한 엄마 코스프레’를 더 중시하는데도요? 아버지는 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이렇게 반항하면 우리 죽고 나서 후회할거다.” 다행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 위로 받습니다. 그런 식의 “부모님 저주”를 다들 받아본 거예요. 가족, 모성애 등 따뜻해야만 하는 ‘금기어’에 괴로웠던 분들 계시죠? 이 만화가 작은 위로가 될 겁니다. 당신은 절대 천하의 불효 자식이 아니에요!

    다부사 에이코(지은이) / 이마(출판사) / 2017년 01월 출간

    <고양이의 기분을 이해하는 법>

    고양이

    요즘 고양이 관련 책이 무척 많죠? 고양이를 대상화한 경우가 많아 속상했는데, 이 책은 마음에 듭니다. 도쿄 고양이 의료센터 원장 핫토리 유키가 고양이와 행복하게 살기 위한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귀여운 그림과 함께, 궁금했던 점들을 쏙쏙 골라 설명해줘, 애묘인으로서 여기저기 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처음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에게 선물해도 좋을 것 같아요. 지진이 많은 일본이기에, 재난 발생 시 무서워하는 고양이를 구출하는 법이 있을 만큼, 고양이에 대한 섬세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핫토리 유키(지은이) / 살림(출판사) / 2016년 12월 출간

    <생활의 美學 미학>

    요즘 하도 미니멀 라이프네 하면서, 내용 없이 사진만 그럴싸하게 찍은 책들이 많죠. <킨포크> 흉내내면서요. 이 책은 정갈하고 산뜻한 살림살이 보는 맛도 있지만 살림 노하우가 꽤 유용합니다. 예를 들어 누렇게 찌든 백색 베개커버는 과탄산소다를 푼 물에 담근 뒤 푹푹 삶는다든지, 소파나 침대 청소할 때 베이킹 소다를 면 전체에 뿌렸다가 청소기로 빨아들이면 먼지와 함께 냄새가 없어진다든지 하는 방법들 말이죠. 책을 읽고 청소 삼총사 ‘베이킹 소다, 구연산, 과탄산소다’를 바로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다 아시는 내용이라고요? 네, 저 살림 초보입니다.)

    본질찾기(지은이) / 세이지(출판사) / 2016년 11월 발행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요즘 SNS를 중심으로 뜨겁게 사랑 받고 있는 양경수 작가의 그림 에세이입니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반공 포스터에서 본듯한’ 그림체로 표현해 통쾌하면서도(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 허탈하면서도(아, 회사생활이란 다 똑같구나), 웃긴(나도 모르게 소리 내서 웃고 있어) 책입니다.

    양경수(지은이) / 오우아(출판사) / 2016년 11월 출간

    <모두의 연애>

    인스타그램에서 야한 그림을 그린다는 일러스트레이터 민조킹의 그림에세이입니다. 야한 그림이 아니라 남녀의 연애를 필터 없이 그려낸다는 설명이 더 맞겠네요. 막 만남을 시작한 연인의 설렘부터, 데이트 풍경, 서로에게 무심해지는 모습까지를 그림으로 담았습니다. 깔끔하지 않은 우리의 연애를 깔끔하게 그렸네요. 어라, 이거 제 얘긴데요?

    민조킹(지은이) / 팬덤북스(출판사) / 2016년 12월 출간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873470544

    사노 요코는 지금은 작고한 일본의 그림책 작가이자 삽화가입니다. 2015년에 낸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지요. 저도 자애롭기 보단 쿨하고 모던한 사노 요코 할머니의 이야기를 즐겁게 읽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는 고양이끼리 포옹하는 표지가 귀여워 읽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40대 시절에 낸 첫 번째 수필집이었습니다. 잔잔한 봄바람 같은 이야기에 귀여운 고양이 그림까지, 행복해지는 책입니다. 몇 구절만 옮깁니다.

    p. 78

    이제 더는 먹을 수 없는데, 떡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나는 배가 불러서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서 나와서 손을 씻는데, 나는 진심으로 흡족했다. 또 떡을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너무 행복해. 지금 손을 씻는 이 순간이 행복이야. 이 행복을 언제까지나 잊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다. 방으로 한 발 들이밀면서 나는 그 한쪽 발을 자세히 보고, 씻은 손을 천천히 보았다. 내가 처음으로 선명하게 ‘행복’을 자각한 것은, 일곱 살의 어느 날 떡을 배 터지게 먹었을 때였다.

    p. 92

    “나 바지 안 입고 왔어.” “괜찮아, 멋 내지 않아도.”

    사노 요코(지은이) / 북폴리오(출판사) / 2016년 10월 출간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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