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의 감독, 드니 빌뇌브의 놀랍고도 확고한 세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영역에 드니 빌뇌브 감독이 발을 디뎠다. 우아하다 못해 고결한 SF 영화 <컨택트> 얘기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와 외계생명체와의 낯선 만남과 그들의 언어 교류. 이러한 ‘소통’에만 몰두하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예측을 뛰어넘는 반전과 만나게 된다. 이 놀라움은 단지 ‘충격 효과’ 수준이 아니다. 우리의 인식 체계를 뒤엎어 버리는 영화적 경험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쏟아내고 영화의 풍경은 완전히 낯설어진다. <컨택트>는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따뜻하게, 그리고 영혼은 충만하게 만드는 SF 영화다. SF 활극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따분하고 모호하게 들릴지 모르는 수사일 테지만, 감독의 전작을 한 편이라도 챙겨본 관객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거다.
드니 빌뇌브는 대개 외부 세계의 사건은 선명하게, 내부 세계의 카오스는 고요하게 그려내는 감독이다. 수사의 과잉이 없다는 측면에서 미니멀리스트이기도 하다. 전작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를 떠올려 보라. 미국 국경 무법지대에서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는 이야기. 활약하는 주인공인 줄로만 믿고 있던 케이트(에밀리 블런트)는 영문도 모른 채 이리 저리 끌려 다니다 종국엔 무력하게 고개를 떨군다. 이런 장면에서조차 드니 빌뇌브는 절대 대상을 클로즈업 하지 않는다. 다만 스케일 큰 와이드숏의 화면 속 한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를 내어줄 뿐이다.
이러한 순간은 <그을린 사랑>에도 자주 등장한다. 공증인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유언을 듣게 된 쌍둥이 형제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건물 밖으로 나와 말다툼을 벌인다. 하지만 이때도 카메라는 멀리 있다. 어머니의 비밀스러운 과거가 하나씩 벗겨질 때도 영화는 상황을 자세히 그리지 않고 짐작하게 하거나 일부만 보여주거나 할 뿐이다. 궁금증도, 충격의 강도도 거세진다. <컨택트>에서 쉘과 외계생명체의 형상을 드러내는 방식과도 흡사하다. 언제 보여줄 것인가,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계산이 철저하다. 드니 빌뇌브는 감정 묘사가 아닌 치밀한 플롯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또 다른 자아와 충돌하는 남자를 그린 신경증적인 심리 스릴러 <에너미>나 실종된 아이를 찾는 아빠와 형사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담은 <프리즈너스>도 마찬가지다. 드니 빌뇌브는 관객이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장르의 외피를 쓰고, 내면에 파문을 일으킬 만한 철학적 메시지를 심어 놓는다. 미니멀한 형식에 선과 악, 이상과 현실, 실재와 상상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드는 ‘경계에 선’ 이야기를 즐긴다. 그야말로 이 시대가 원하는 감각과 재능, 방향성을 갖춘 감독이다. 앞으로 우리는 그의 이름을 더 즐겨 부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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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현민(영화 저널리스트)
- 에디터
- 윤혜정
- 사진
- UPI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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