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찾는 순례길

‘기껏’ 남자 때문에 이런 ‘짓’까지 하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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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찾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정효정 작가. 그녀가 길 위의 남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를 몇 시간째 들여다보고 있다. 결혼과 연애에 대한 익명의 담론이 지나치게 솔직하고 원색적이라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올 수 없다. 남자를 찾으러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여자에 대한 포스팅이 시발점이었다. 순식간에 1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다들 놀라기보단 ‘그럴 만하다’ ‘나는 이런 짓까지 해봤다’란 반응이었다. ‘쯧쯧’ 혀를 차기도 한다. 그 주인공인 <남자 찾아 산티아고>의 저자 정효정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그녀는 이 여행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할 때부터 “고결한 순례길을 모욕한다, 사대주의에 찌든 김치녀, 외국 놈에 발정 난 한국 여자” 같은 악플이 압도적이었다고 했다. 어쩌면 여성 커뮤니티는 여성이라는 연대 때문에 댓글의 수위가 약한 걸지도. 그녀는 정말로 “산티아고에 괜찮은 남자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여행을 결심한다. “이탈리아에 가면 거지도 모델이란 말에는 떠나지 않았죠. 장기간 도보 여행을 떠나는 남자라면 제 이상형에 부합한다고 여겼어요. 내 바다에 물고기가 없으면 원양어선이라도 타고 멀리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선 초식동물만 있는 세렌게티 초원처럼, 서로에게 아무런 욕망 없는 이들만 남은 상태였다고. 그녀가 결국 남자를 만났는지는 책 판매를 위해 말을 아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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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자괴감이 들지는 않았을까. 내가 한때 1분 미팅(20여 명의 남녀가 모여 1분마다 울리는 종에 맞춰 파트너를 교환하는 자리)에 나갔을 때 느낀 느낌 말이다. 한때는 브랜드에서 야심 차게 내놓은 옷이지만, 아울렛을 돌고 돌다, 킬로그램 단위로 묶여 제3국으로 팔려가는 기분. 정효정은 한국에서 미혼으로 살면서 “예쁜데 왜 아직도 연애를 못하죠” “이렇게 따지고 드니까 그렇지” “저도 언니처럼 되면 어쩌죠” 같은 말로 자괴감은 이미 차고 넘쳤기에, 더 이상의 자괴감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고 말한다.

남자를 찾아 떠나는 순례는 방법이 다를 뿐 주변에 늘 있었다. 결정사(커뮤니티에서는 결혼정보회사라 하지 않는다), 데이팅 앱, 동호회, 교회 등 클래식한 방법은 기본이고, 요즘엔 ‘게하 커플(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커플)’도 인기였다. 친구는 데이팅 앱에 빠졌는데, 아직도 거길 헤매느냐는 구박에 당당히 말한다. 교포나 외국인을 만나는 앱, 회사 출입 카드를 스캔해야만 가입되는 앱 등 <이코노미스트>가 예견했듯이 데이팅 산업은 창업계의 노다지로 해가 갈수록 성장했다고. 하지만 앱이든, 온라인이든 결국은 면 대 면의 고전으로 귀결되기 때문인지 이성을 만나긴 쉬워도 성사는 어려웠다. 그녀는 커리어를 쌓느라 남자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며 오늘도 새로운 데이팅 앱에 가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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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익명으로 연애 기사를 숱하게 썼는데, 절반이 인연을 찾아 헤맨 내용이었다. 앞서 말한 클래식한 방법부터 다소 신선한 기부 연대나 봉사 활동 등 활동 영역도 다양했다(남을 돕는 가치관과 능력을 겸비한 자가 이상형이니까). 지금 와서 괜찮은 남자를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또 얘기하는 건 종이 낭비다. 다만 남자 만나려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여성을 보면서, 왜 이렇게까지 우리는 애쓰는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전에 이런 물음을 분석한 일간지 기사가 있었다. 남녀를 스펙에 따라 A·B·C·D 등급으로 나누고, 남자 A는 여자를 등급(스펙)과 상관없이 만나고, 여자 A는 남자 A만 바라기에 결국은 커리어 좋은 여자만 미혼으로 남는다는 괴상한 기사였다. 우습게도 외국에도 비슷한 기사가 많은데,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인 이하모니(eHarmony)는 데이트 자료 100만 건을 분석까지 해서 여자는 자신과 나이, 교육, 소득 수준이 비슷한 남자를 찾지만 남자는 여자의 교육 수준 같은 항목은 신경 쓰지 않고 매력에 반응해 결국은 이른바 괜찮은 여자들이 미혼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한때 <뉴욕 타임스>에 실려 뜨거운 댓글을 불러온 프린스턴대학 졸업자의 편지가 정점을 찍는다. 수잔 패튼이란 여성은 모교 후배들에게 “남자들은 대체로 여성의 외모가 뛰어나면 학식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니, 자신처럼 똑똑한 남성을 원하면 학교에서 찾아야 한다. 프린스턴을 졸업하는 순간 기회는 줄어든다”라고 말했다. 이건 남자를 만나려고 살풀이를 하고, 월급의 절반 이상을 ‘결정사’에 바친다는 여성 커뮤니티의 글만큼이나 놀라웠다. 심지어 본명으로 쓰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수많은 기사와 조사 결과는 어쩌면 괜찮은 인연을 찾기 위해 적극 나서는 여성에 대해 선입견과 비난을 키우는 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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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찾아 산티아고를 걷는 것은 미혼 여성이 취하는 지극히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이다. 정효정도 그 여행이 자존감을 키웠다고 말한다. “그동안 연애 패턴이 누가 고백하면 사귀는 식이어서 나의 수동성을 변화시키고 싶었어요. 아인슈타인도 말했잖아요 ‘매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꿈꾸는 건 미친 짓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애 문제에 대해 원하는 바를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여정의 결과가 어떻든 그런 시도만으로도, 자신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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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이런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비난의 대상이다. <연애의 시대>를 쓴 권보드래는 1920년대부터 한국 사회에 여성의 연애 표현이 대두됐다고 말한다. 1910년 말 이광수의 <무정> 속 신여성을 시작으로, 연애편지를 엮은 <사랑의 불꽃>의 인기(1923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초판이 50여 일 만에 매진)처럼 자유연애와 사랑이 시대적 아이콘으로 떠올랐다고. 하지만 이것이 여성 해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지적한다. 여성이 그 풍경의 일부가 되는, 즉 잘못 ‘대상화’된 것이다. 지금도 우리의 연애와 사랑에 대한 갈망은 잘못 대상화되고 곡해된다. 예를 들면, 남자를 찾아 헤매는 행동은 ‘짓’이다. 게다가 이 모든 ‘짓’이 결혼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인식된다. 남자를 찾아 떠난다고 하자 “네가 드디어 결혼할 맘이 생겼구나”라고 회신하는 것처럼. 여성 커뮤니티에서 한 이용자가 설문 조사한 결과 결혼의 압도적인 이유 중 하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기 위해”였다. 정말이다. 나는 결혼이 아니라 본능과 사랑을 위해 적극적으로 남자를 찾으려 한다. 거창하게 열사처럼 말했는데, 남자를 찾는 일에 자존감을 갖고, 그것이 정당한 권리임을 확인하고 싶어 격해졌나 보다. 그간 스스로조차 나의 행동을 깎아내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