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이 너무해

한 집 걸러 한 집이 편의점인 대한민국. 24시간 불을 밝힌 청춘의 쉼터가 건강을 위협한다면?

핸드백은 에르메스, 향수는 바이레도, 콤팩트와 립스틱은 샤넬, 반지는 불가리.

핸드백은 에르메스, 향수는 바이레도, 콤팩트와 립스틱은 샤넬, 반지는 불가리.

오늘 남편의 퇴근이 늦다. 서운한 마음이 드는 한편 머릿속은 ‘혼밥’ 메뉴 선정에 복잡해진다. 아마 메인은 GS25 한정판 오모리 김치찌개 라면. 사이드로 비교적 내용물이 실한 세븐일레븐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곁들일 참이다. 집으로 가는 방향에서 살짝 돌아가야 하지만 CU에 들러 요즘 없어서 못 판다는 누가 크래커의 재고를 확인한 뒤 바로 옆집 미니스톱에 들러 겨울 한정 벨기에 초코 아이스크림으로 달콤한 입가심.

편의점 네 곳에 들르는 데 필요한 시간은 30분, 예상 금액은 5,000원.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시나리오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난 요즘 편의점 투어에 푹 빠져 있다. 이건 나만의 즐거움은 아니다. 평일 저녁 7시쯤이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몰려든 직장 남녀로 편의점은 인산인해다. 나란히 줄지어 있던 삼각김밥은 눈 깜짝할 사이 동이 나고 전자레인지 앞엔 즉석 조리 식품을 손에 쥔 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이들이 일렬종대로 서 있다.

밤늦은 시간 집 근처 마트의 영업이 끝나 마지못해 찾던 무미건조한 편의점 풍경이 180도 달라졌다. 사람들이 들끓는 동네 사랑방이자 가성비 최고의 레스토랑이요,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으로 넘쳐나는, 한마디로 푸드 테마파크다. 최근 혼자 밥 먹는 ‘혼밥’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편의점은 제2의 부엌이자 삶의 일부다. 미니스톱 신사제일점 노용균 매니저는 한 끼 식사를 위해 편의점을 찾는 여성들을 자주 접한다고 말한다. “조리가 쉽고 간편하니까요.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제품이니만큼 맛 또한 실패 확률이 적죠.” GS25 압구정타운점 직원은 “10년 전과 비교해 식사 대용으로 편의점 음식을 찾는 손님이 많게는 10배 가까이 늘었다”고 말한다. “예전엔 편의점 도시락을 먹을 바엔 조금 귀찮아도 도시락 전문점을 이용하자는 인식이 컸어요. 맛이나 구성 면에서 훨씬 못 미쳤던 거죠. 하지만 요즘 편의점 도시락 퀄리티가 도시락 전문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편의점을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음료수, 과자, 아이스크림처럼 식사 이후 한 입 거리 간식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면 요즘은 어떤가. 매달 새로 나온 신상 메뉴가 우리의 눈과 입을 자극한다. 편의점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케이블 채널 tvN은 편의점 음식을 조합해 그럴듯하게 한 끼를 해결하자는 취지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1월 13일 첫 방송한 대한민국 최초 편의점 레시피 프로그램 <편의점을 털어라>다. 야근이 잦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편의점은 천국과 다름없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찾는 음식도 제각각이다. 홍보대행사 리앤컴의 권정화 대리는 매운 게 당기면 분식집이 아닌 편의점을 향한다. “GS25에서만 판매하는 죠스 떡볶이와 찰순대 조합을 추천해요. 전자레인지에 3분 데우기만 하면 죠스 떡볶이에서 먹는 바로 그 맛을 즐길 수 있죠. 여러 번 먹다 보니 나만의 레시피도 생겼어요. 라면에 넣어 먹는 모차렐라 치즈와 삶은 달걀을 함께 구입해 떡볶이 위에 얹어 돌리면 ‘치볶이’가 완성되죠. 매콤하고 짭짤한 맛을 즐기다 보면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기분입니다.” GS25의 또 다른 인기 메뉴는 ‘위대한 시리즈’다. 핫도그, 스파게티, 닭강정, 훈제오리까지 아홉 가지 시리즈를 한꺼번에 늘어놓으면 웬만한 뷔페 저리 가라다.

먹방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유명인을 앞세운 신상 메뉴를 정복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CU는 백종원, GS25는 김혜자와 홍석천을 앞세워 도시락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청담동 브러쉬라운지의 네일리스트 최지숙 실장도 편의점 음식을 즐겨 먹는다. “예약 손님 체제라 점심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최대한 빨리, 맛있게 먹는 것이 중요하죠.” 그녀의 추천 메뉴는 청양고추라면. CU 단독 판매 상품이다. 지점별 단독 상품은 편의점 투어의 재미를 더한다. 누군가는 매달 새로 나온 제품을 호기심에 맛볼 뿐 편의점 음식을 즐기지는 않는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의 혀는 이미 맵고 짜고 달콤한 편의점 음식의 자극적인 맛에 조금씩 길들여지고 있다.

편의점 음식의 두 얼굴

조리가 쉽고 간편한 데다 값은 저렴한 편의점 음식은 대한민국 외식 트렌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하지만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은 입을 모아 편의점 음식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시작은 도시락이다. “어린 친구들이 좋아하는 육 가공 위주의 반찬으로 구성되어 있어 남녀노소 불문 인기가 높아요. 정해진 시간 내에 빨리 해치울 수 있어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메뉴죠. 하지만 가공된 육류는 우리 몸에 해로운 지방과 콜레스테롤, 방부제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린 클리닉 배지선 원장의 설명이다. 방부제의 일종인 산도 조절제도 문제다. “음식을 썩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량 섭취 시 위장과 신경에 문제가 생기고 심할 경우 정서 불안까지 염려됩니다. 학습 능력이 낮아질 위험 또한 무시 못하죠.”

일반적으로 김밥은 조리 후 2시간이 지나면 재료의 변질이 시작된다. 김밥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김밥의 경우 만들고 난 후 바로 판매하는데 이는 곧 방부제가 들어 있지 않다는 증거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김밥의 유통기한을 확인해보라. 평균 2~3일. 오랜 냉장 보관을 위해 방부제 함유량을 높였다는 의미다. 바로 데워 먹는 레토르트 식품의 경우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형태로 되어 있다. 사실 플라스틱 용기 자체가 우리 몸에 좋은 식기가 아니다. 음식이 전자레인지에서 조리되는 동안 내분비를 교란시키는 환경호르몬이 배출되는데 환경호르몬은 성호르몬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불임과 같은 산부인과적 문제를 야기한다. 또 단가를 맞추려다 보니 조리법이 대부분 튀긴 음식 위주로 되어 있는데 튀긴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산패돼 음식의 냄새나 색깔에도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식품 자체의 변질에도 영향을 준다.

편의점을 찾는 여성 손님의 단골 품목 중 하나로 탄산수를 빼놓을 수 없다. 콜라나 사이다에 비해 칼로리가 낮은데 소화 개선 효과는 크다는 게 인기 이유. 하지만 소화기 내과 전문의들은 “소화가 빨리 된다는 것은 그저 증상이 호전되는 기분일 뿐 광천수와 같은 천연 탄산수가 아니면 사실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탄산수는 약산성이기 때문에 위벽이 약하거나 위산 분비량이 많을 경우 과도하게 섭취하면 위 내부 식도 괄약근 기능이 떨어질 위험이 있으며 심할 경우 역류성 식도염이 뒤따르니 무분별한 음용은 역효과다.

이왕 먹을 거 제대로 잘 먹자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는 주된 목적은 두 가지. 생명 연장과 건강 유지다. 어릴 적 부모님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건강한 음식 섭취를 강조한 이유는 단 하나, 체내에 들어온 음식물은 어떤 형태로든 신체에 누적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맵고 짜고 달콤한 편의점 음식에 길들여지면 영양의 불균형은 기본, 각종 인스턴트 방부제 등 화학 첨가물이 신체에 누적돼 건강을 해친다. 이미 몸속에 해로운 음식이 축적되면 아무리 좋은 영양분이 들어온다고 해도 제대로 흡수될 리 없다. 혈액 또한 오염되어 면역력이 약해질 뿐만 아니라 나트륨 함유량이 높아 부기와 비만의 원인으로 작용하니 미모를 해치는 1순위가 바로 잦은 편의점 음식 섭취다.

그렇다고 편의점의 모든 음식이 잘못됐다는 소리는 아니다. 조금만 신경 써서 먹으면 간편함과 건강을 한 번에 거머쥘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비빔밥처럼 채소의 비율이 높은 음식을 택하거나 제철 식재료로 만든 메뉴, 당일 제조한 샐러드와 과일도 추천할 만하다. 가공식품과 튀긴 음식은 피하고 플라스틱이나 종이컵 재질의 용기는 유리그릇에 덜어 먹지 않을 거면 가급적 안 먹는 쪽이 몸에 훨씬 이롭다. 좋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배고픔’이라는 일차적 욕구 충족 외에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건강한 음식은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핵심 도구 중 하나임을 잊지 말자.

우리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인스턴트 방부제 범벅의 해로운 음식을 장기간 섭취할 경우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뿐만 아니라 성질이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물론 어쩌다 한두 번쯤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다. 이건 급하다는 전제가 있을 때만 유효한 이야기다. 그러니 적어도 집에서만큼은 신선한 재료로 조리한 음식과 제철 과일을 섭취하는 습관을 들이자. 삼시 세끼 몸에 좋은 음식을 적당히 배부르지 않게 먹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삶의 지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