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Sense, Feel, Emote and Xavier

2017.02.07

by VOGUE

    Sense, Feel, Emote and Xavier

    트렌드를 고려하지도, 예상하지도 않는 것. 자비에 돌란이 세상에 늘 새로운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다.

    자비에 돌란은 루이 비통의 앰배서더로 활약 중이다. 블랙과 크림 컬러가 조화를 이룬 패턴 스웨터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자비에 돌란은 루이 비통의 앰배서더로 활약 중이다. 블랙과 크림 컬러가 조화를 이룬 패턴 스웨터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자비에 돌란(Xavier Dolan)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대표적 키워드가 ‘엄마’라는 사실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천재 감독, 최연소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칸의 총아, 패션 아이콘, 440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그래머 같은 수식어는 자비에 돌란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놀라울 정도로 잘생긴 돌연변이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에 세상에 내놓은 장편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에서부터 <로렌스 애니웨이> <탐엣더팜> 등을 거쳐 <마미>에 이르기까지 자비에 돌란은 ‘엄마’ 그리고 ‘관계’라는 주제에 천착해왔다. 사랑과 증오가 범벅이 되어 있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관계는 한 인물을 이해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곤 했다.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영상, 컬러를 부리는 솜씨,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음악은 구체적인 잔상을 남겼고, 사람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힘은 가슴에 보이지 않는 여운을 남겼다. 그의 영화는 스타일리시했지만 수단과 메시지가 전복된 적은 없었다.

    여섯 번째 연출작 <단지 세상의 끝>에서 그는 다시 한 번 ‘가족’ 이야기를 꺼내 든다. 장뤽 라가르스의 희곡이 원작으로, 불치병에 걸린 유명 작가 루이가 12년간 연락을 끊었던 집에 돌아가 가족과 재회하는 내용이다. 처음 그가 이 작품을 접한 건 <아이 킬드 마이 마더>와 <마미>에서 어머니 역을 맡았던 앤 도벌이 4년 전 건넨 연극 대본이었다. 당시 그는 이 불완전한 가족 이야기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서재 어딘가에 두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대본을 다시 읽게 되었고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감정이 와 닿았다. 불완전함, 외로움, 슬픔, 열등감…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가족’과 맞닿아 있음을, 가족에게 사랑은 미움과 동의어임을 자비에 돌란은 다시 한 번 지독하도록 섬세하게 그려냈다. 언젠가 진짜 삶이란 영화를 촬영할 때라고 했던 그의 말은 진짜였다. 또 한 번 영화라는 수단으로 자신의 성장을 알린 그에게 제 69회 칸 영화제는 기꺼이 심사위원대상을 안겼다.

    1989년생으로 여전히 젊음이 도드라지는 감독이 끊임없이 파고드는 주제가 ‘가족’이라는 점은 그가 세상에 내놓는 창작물이 자기 자신에서 출발했음을 계속 증명해 보이는 것만 같다. <단지 세상의 끝> 한국 개봉을 앞두고 <보그>는 자비에 돌란과 얼굴을 마주한 채 그 출발점에 대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음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기에 생기는 시간차, 분주해질 수밖에 없는 한 해의 끝과 시작 지점에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자비에 돌란은 기꺼이 이메일 인터뷰를 수락했고, 커피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라도 한 듯 차분한 답변을 보내왔다. 다만 그는 답하고자 하는 질문에는 항상 긴 대답을 하게 된다며 이를 줄이거나 편집하기보다는 질문 전체를 빼주길 부탁한다는 정중한 메모를 남겼다. 그리하여 지금부터 당신이 읽게 될 대화는 자비에 돌란의 정직한 단면이자 그가 구사하는 온전한 문장이다.

    자비에 돌란과 루이 비통은 디자인과 스타일에 대한 확고한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 레드의 강렬함이 돋보이는 모헤어 스웨터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자비에 돌란과 루이 비통은 디자인과 스타일에 대한 확고한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 레드의 강렬함이 돋보이는 모헤어 스웨터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지금은 베벌리힐스에 있지만 1시간쯤 뒤에 팜스프링스에 갈 예정이에요. 외국어 영화상 리스트에 오른 영화를 위한 이벤트가 열리는데, 거기에서 <단지 세상의 끝> 시사회를 하거든요. 그다음에는 몬트리올로 돌아가서 다음 영화 <더 데스 앤 라이프 오브 존 F. 도노반>의 프리 프로덕션을 준비할 거예요. 2월에는 유럽에서 촬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단지 세상의 끝>에는 마리옹 코티아르, 레아 세이두, 뱅상 카셀, 가스파르 울리엘, 나탈리 베이 등 이름만 들어도 영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캐스팅 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다섯 배우가 다 같이 있었던 건 엿새뿐이었어요. 몇몇 배우들이 함께 찍는 장면이 있긴 했지만, 다섯 배우 전부가 등장하는 장면은 6일 만에 촬영을 끝내야 했거든요. 무척 힘든 도전이어서인지 아드레날린이 팡팡 터졌죠. 몬트리올 교외에 있는 조용한 집에서 촬영했는데, 6월 중순이라 집 안에 열기는 가득했지만 다 같이 집 안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어요. 여러 사람이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비밀 기지를 짓는 개미 떼 같았어요. 마리옹 덕분에 놀란 순간도 있었어요. <화형대의 잔다르크>의 오라토리오를 공연하기 위해서 2주간 뉴욕에 갔다가 가스파르와 함께 하는 장면을 찍으러 돌아왔을 때였어요. 오라토리오를 공연하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대사를 외워야 했을 텐데, 돌아오자마자 다시 찍은 장면도 만만치 않았거든요. 혼자 계속 쉬지 않고 떠들어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그녀가 맡은 캐릭터의 대사 중에서 가장 긴 독백이었어요. 그 장면을 다시 찍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당일에야 해줬는데 2~3분 만에 그 많은 대사를 전부 다 기억해내더라고요. 단어뿐 아니라, 어디에 쉼표가 있었는지, 어떤 순간에 머뭇거려야 하는지 하는 것도 완벽하게요. 우리가 그 자리에서 추가한 아이디어까지 더해서 첫 테이크에 깔끔하게 끝냈죠. 가끔 몇몇 배우들이 자신의 대사를 외우지 못하는 것이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되거든요. 앉아서 대사를 외워오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의 연기 스타일이나 연기적인 본능으로 포장하는 건 그냥 프로답지 못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마리옹은 두뇌를 500개로 나눴는지 모든 음절을 정확하게 말했죠. 진짜 ‘물건’이라니까요.

    배우라는 직업은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자 영원히 매력적인 존재라고 말해왔습니다. 당신과 작업했던 배우들은 당신이 배우를 대하는 세심한 방식, 새롭고 특별한 연출력에 대해 애정을 드러내곤 합니다. 마리옹 코티아르는 당신이 ‘라이브 아트’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는 얘길 하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당신이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배우는 어떤 배우인가요?
    정말 운 좋게도 같이 일했던 배우들은 제가 좋아하고 같이 일하고 싶은 스타일의 배우들이었어요. 시간이 더 흘러봐야 제가 어떤 스타일의 배우를 좋아하지 않는지 알 것 같아요. 사실 만나보고 일해보기 전에는 제가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할지 모르니까요.

    <단지 세상의 끝>에서 배우 얼굴을 깊게 클로즈업하는 연출이 인상 깊었습니다. 인물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이 전해졌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을 전달하고자 하는 장치였을까요?
    배우의 얼굴에서 너무 많은 것이 드러나고 있었고 저는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또 작가의 극작 스타일이었던 역설을 그대로 표현하려면 이런 클로즈업이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연극에서는 관객이 모든 단어를 느낄 수 있지만 캐릭터의 수다가 결국 조소와 창피의 대상이 됩니다. 아주 아름답고 인간적이지만 쓸모가 없거든요. 끝에 가면 모든 말은 다 의미가 없어지고 정말 의미 있는 것은 말로 하지 않은 것이에요. 이런 연극의 아름다움을 스크린에서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최대한 캐릭터와의 거리를 좁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모순과 중의적 메시지, 비밀, 그리고 그들이 억누르는 모든 것이 그들의 눈과 얼굴을 지나가죠. 서브텍스트를 필름으로 담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은 가족인가요? 영화의 제목처럼, 세상의 끝은 가족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늘 지니고 있고, 영화에서도 그걸 늘 보여주려고 해요. 그때의 향기, 질감, 소리 그리고 지나간 시간을 찾으려고 하죠. 제가 27세밖에 안 되긴 하지만 노스탤직한 사람이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과거에 매달려서 산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현재에서 과거를 재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요즘 우리 삶의 기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기후, 현대 인간으로서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 그런 것과 저를 나란히 두는 것이 낯설어요. 예전을 생각해보면서 그 평화로운 시절에 저를 감동시켰던 것을 다시 가져오고, 이야기와 영화를 통해 현실에 다시 적용해보려고 해요. 제가 살고 싶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요. 하늘의 색깔에서 찾을 수도 있고, 제가 자랐던 비치하우스에서 느꼈던 이제 막 깎은 잔디의 냄새에서 찾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두 여성의 자애로운 우정에서도, 우리가 잃어버린 듯한 보편적인 희망의 감각에서도 찾을 수 있겠죠.

    우리는 모두 가족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독립된 인격체로 자라납니다. 한 뿌리에서 태어나 거대한 몸통을 지나 각자 뻗어나가는 나뭇가지처럼요. 당신은 가족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저희 가족의 가장 좋은 점이라고 하면 다문화적인 환경에서 제가 자랄 수 있었다는 거예요. 엄마와 아빠가 제가 두 살 때 헤어지셨는데, 그때 엄마가 몬트리올 교외로 이사를 갔어요.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매년 봄, 여름 그리고 겨울을 몬트리올 북쪽으로 3시간쯤 떨어진 이모할머니의 비치하우스에서 보냈어요. 아빠는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몬트리올의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는 동네에 살았죠.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60년대에 배우가 되겠다고 카이로에서 몬트리올로 건너온 이집트 남자, 시골에서 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70세 여자, 그리고 퀘벡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산층 이상의 백인 여성, 이렇게 세 사람 사이에서 자랐던 게 큰 복이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사회계층 그리고 인종의 융합을 겪었기 때문에 제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자라게 됐던 것 같아요. 도시에서 자란 몇몇 아이들은 시골 사람들이 무지하고, 하루 종일 신에게 기도만 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반면에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도시 사람들이 전부 심각한 마약 중독자일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멍청한 편견보다 더 많은 것이 있잖아요. 다양한 장소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편을 들어줄 수도, 이해할 수도 있었죠. 저희 아빠 집안은 이집트 사람의 정석 같은 사람들이고, 엄마 집안은 아이리시 계통이지만 이미 4대째 퀘벡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었어요. 그 둘은 꽤 흥미로운 조합이고, 제 생각이지만 저도 독특한 특성을 물려받은 것 같아요. 하지만 가장 크고 인상적인 유산은 지리적으로 다문화적이었던 양육 방식에 있는 듯하네요.

    영화에서는 엽서, 편지, 피처폰 등 아날로그적인 장치와 소품이 등장합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이전 시대에 대한 향수가 있나요?
    있죠. 저는 현대적인 자동차, 전화기 혹은 플라스마 스크린 같은 게 영화에 너무 많이 나오는 게 거슬려요. 저속하다고 여기죠.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스마트폰이나 이제 막 공장에서 나온 듯한 반짝이는 프리우스 같은 걸 클로즈업하는 게 너무 광고 같잖아요(물론 우리 모두 아이폰을 쓰고 평면 TV를 보고 있긴 하지만요). 너무 영화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광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토리텔러입니다. 노래나 이미지에서는 팝 컬처적 소스를 좋아하지만 홍보와 연결되는 그림은 별로예요. 그래서 오래된 차, 전화기 그리고 오래된 것을 더 선호하는 거죠.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물건이라기보다는 역사나 기억으로 심어져 있는 것이니까요. 힙스터라고 하셔도 돼요. 꼭 그렇게 불러야 직성이 풀리시겠다면요.

    세상에 없던 비범한 스타일과 도발적인 메시지가 담긴 영화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인식했기 때문에 세상은 당신에게 계속 ‘새로움’을 기대합니다. 이에 대해 부담감이나 강박을 느낀 적은 없나요?
    부담을 느끼긴 하죠, 가끔은. 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부담은 아닙니다. 저는 저예요.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거나 트렌드를 만들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거나 인생을 살 수는 없어요. 절대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답게 인생을 살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거죠.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변해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배우고 싶고, 늘 궁금증이 가득하고, 미지의 것을 흡수하고 경험하고 싶거든요. 제가 다른 것을 탐험하거나, 다른 스타일을 빌리거나 혹은 다른 언어로 이야기해서 오해를 사는 일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표현하는 방식이 무엇이든 거짓되거나 인공적이지 않은, 그때 그 순간의 제가 반영된 모습만 보게 될 거예요.

    영화, 책, 사진, 그림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이것이 영화에 표현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때로는 파산할 정도로 책을 산다고요! 최근 당신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영화 <재키> 그리고 2015년에 나온 네덜란드 영화 <소년들>. 제가 본 것들 그리고 앞으로 볼 것들을 포함해서 가장 달콤한 러브 스토리였어요.

    감각하는 것과 사유하는 것 중 당신을 더 자극하는 것은 뭔가요?
    감각이죠. 예술은 생각할 수 없어요. 시도해보면 알 거예요. 우리는 무엇을 할지 선택할 자유가 있잖아요. 저는 먼저 느껴보고 그다음에 생각해요. 카뮈가 그랬죠. “생각은 정직하지 않지만 감정은 정직하다.” 만약 제가 얼굴에 타투를 하게 된다면 그 문장을 적을 거예요.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SHAYNE LAVERDIERE
      스타일리스트
      팀 림(Tim Lim)
      헤어 & 메이크업 아티스트
      폼므 세일레르(Pomme Seiler@B Agency)
      프로덕션
      다니엘 헤트만(Daniel Hettmann)
      촬영 어시스턴트
      루카스 헤겔리(Lucas Haegeli), 스탠 레이 그레인(Stan Rey Grange)

      SNS 공유하기